< 240화 - 다운 그는 신인가? >
“비어스라뇨. 제가 미쳤어요?”
“냉정하게 따져봐. 나쁜 조건은 아니잖아?”
“나쁜 조건은 아니죠. 윌슨은 마이너 옵션을 두 번째 쓰고 있기는 하지만,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쓸 수 있는 선발이고, 조 블랜튼도 좋은 유틸리티 옵션이니까요. 근데 비어스는 아니죠.”
비어스는 좋은 선수다. 하지만 이번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레이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징계를 모두 받은 다음 돌아오면 도움이야 될거다. 하지만 팔 수만 있다면 파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나 그 대가로 돌아오는게 켈리라면 더더욱.
“난 나름 잘 맞춰준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뭐가 잘 맞춰준거에요?”
“6개월 뒤면 우리 팀에 오고싶다고 말하는 선수를 조금 더 일찍 쓰겠다고 데려가는거잖아. 내가 절대적인 을이 아니란 말이지. 그런데도 대략적인 대가는 맞춰주고 있잖아?”
“와~ 나 진짜 미쳐버리겠네!”
대런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백날 그렇게 해봐도 다운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켈리는 이번 시즌을 마치고 레이스에 가고자 마음을 먹었고, 다운은 그걸 알고 있다.
‘다른 구단에 넘길까?’
이러면 엄청난 대가를 긁어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다운이 정보를 흘리면 망해.’
서비스타임이 남은 선수를 트레이드해가는 이유는 데려와서 연장계약을 맺기 위함이다. 요즘 추세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구단들은 스스럼없이 좋은 유망주들을 그 대가로 퍼주는 것이다. 트레이드 한 뒤 눌러앉힐 자신감이 있으니까.
하지만 다운이 만약에 단장들에게 ‘켈리는 다운에게 자신을 뽑아준 은혜를 갚기위해 레이스로 가고싶어한다.’라는 정보를 흘린다면? 백이면 백 이렇게 말할거다.
“어차피 6개월 뒤에 레이스 간다면서요? 그럼 비싸게는 못주지. 안간다고? 본인하고 이야기 해보고 안간다는 말 하면 내가 잘 쳐주지. 안그러면 이 이상은 못 줘.”
양아치 같은 단장새끼들이 할 말이 머리에서 자동으로 재생됐다.
‘그럴 바에는 윌슨에 비어스······. 하 시발······.’
다운은 늘 이런 식이다. 어떻게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질 않는다.
제안안 선수가 땡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았을거다. 윌슨은 트리플 A에서 이번 시즌 터져서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좌완선발, 비어스는 약물 이슈가 있기는 하지만 서비스타임도 3년 정도 남아있고, 타격도 좋은 선수다. 블랜튼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 이상 조건을 높이는건 켈리가 이미 마음을 정한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단장놈들이 이 정보를 얻었다면 절대로 이 정도의 선수는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옵션은 있었다.
‘앤디를 일단은 쥐고 있는다.’
문제는 쥐고 있어봤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켈리는 시즌이 끝나면 레이스로 떠날테고, 양키스에게 떨어지는건 고작해봐야 보상 픽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켈리가 버린 구단이라는 소리를 들어먹겠지. 어쩌면 구단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양키스가 뽑고 키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명문을 버리고 다른 구단을 택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치욕이자 모욕이었다. 그럴 바에는 먼저 그를 보내는게 맞는 선택이다.
‘그리고 앤디를 보낼거면 다운의 손을 잡는게 맞아.’
점점 마음이 기울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음을 정리한 대런이 입을 열었다.
“에이브러햄 트레인 하나 더 줘요.”
“안돼.”
“대신 브라이언 앤더슨을 받고 롭 맨브로스키를 드릴게요.”
다운은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브라이언을 주고 맨브로스키를 받는다?’
앤더슨 역시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앤더슨은 레이스에 남고싶어하는데다가 다운 역시 그는 레이스에 필요한 자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앤더슨은 그 어떤 포지션이 비더라도, 심지어는 벤치에서 출발을 하더라도 그가 할 몫의 역할은 수행해준다. 그것도 아무런 불만없이 말이다. 팀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는데 있어서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하는 선수이기에 그의 에이전트와도 연장계약에 대한 협상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를 줄 바에는 다른 선수를 내주는 것이 나았다.
“트레인은 빼. 대신 앤더슨 말고 로드리고를 줄게.”
로드리고는 이번 시즌이 끝나고 옵트아웃을 행사할 것이라는게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좋은 활약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활용도는 앤더슨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켈리가 유격수에 들어오고 드레이크가 2루로 밀려나게 된다면 로드리고는 1루로 밀리게 된다.
‘네이트는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모든 유격수의 롤모델인 앤드류 켈리다. 호승심은 있을지언정 드레이크가 켈리를 싫어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인적이 없었다. 그리고 은근히 승부에 있어서 승복은 잘하는 것이 드레이크(물론 구질구질하게 매일마다 승부를 걸어오겠지만)였다. 그렇기에 켈리에게 밀려난다면 그 즉시 인정하고 어떻게하면 2루에서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하면 다시 유격수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할 놈이 바로 드레이크다.
하지만 로드리고는?
소심한 듯 하지만 은근히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놈이 로드리고다. 2루는 절대로 뺏기지 않으려고 하겠지. 1루로 순순히 밀려날까도 의문인데다가 전문 1루수인 맨브로스키보다 수비를 잘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타격 면에 있어서는 맨브로스키보다 나아. 하지만 수비, 팀 케미까지 생각한다면 맨브로스키를 데려오는게 나을 수도 있어.’
게다가 연봉도 400만 달러나 아낄 수 있다. 그렇게 아낀 연봉은 물론 당장에 켈리가 받고 있는 2650만 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1325만 달러의 일부로 지불되겠지만······.
다운의 머리가 돌아가는 동안에 대런의 머리도 돌아갔다.
‘로드리고는 예전부터 양키스 팬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어.’
이걸 어떻게 아냐고?
로드리고에게 접촉했던게 레이스만은 아니었으니까. 양키스도 로드리고와 접촉했던 팀 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런은 로드리고가 산을 내려와서도 좋은 활약을 보일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고, 다운보다는 좋지 않은 조건을 제시했다. 그 결과 로드리고의 행선지는 양키스가 아닌 레이스가 된 것이었다. 그렇다는건 로드리고가 양키스 생활에 만족만 한다면 남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켈리를 보내면서 아작날 민심도 조금은 달랠 수 있다.
‘원래는 더지 정도는 노리려고 했는데······.’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레이스의 상황상 더지가 빠지게 된다면 후반기에도 지금과 같은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자신이 다운의 위치였다고 해도 절대로 더지는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로드리고로 팬들의 마음을 조금 돌리고, 윌슨과 비어스로 미래를 위한 포석을 다진다. 그리고 유틸리티 자원인 블랜튼으로 남은 시즌 빈 곳을 채운다.’
아무리 생각해도 6개월 뒤에 고작 보상픽 한 장 딸랑 받고 버림받는 것보다는 낫다.
“그거 알아요 다운?”
“뭐?”
“오늘부터 다운이 진짜 싫어질 것 같아요.”
대런이 이 딜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깨달은 다운이 씨익 웃었다.
“난 원래부터 싫었어 짜식아.”
***
다운이 화상회의실로 트레이드 소식을 들고오자 프런트는 난리가 났다.
[미쳤대요? 앤드류 켈리가 온다고요?]
[Oh! My! God! 등번호는요? 몇 번 고른대요? 오 세상에!]
[그것보다 대런 미친거 아니에요? 어떻게 켈리를 팔 생각을 하지?]
특히나 바로 옆에 앉아있던 캐시 감독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헤이 케빈! 케빈!]
[단장님. 감독님 턱 빠진 것 같은데요? 혼이 빠진건가?]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캐시는 믿을 수 없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우리 팀에 켈리가? 그 켈리가? 어떻게? 왜? 다운 그는 신인가?”
“아하하······. 그게 아니라······.”
다운은 켈리와 있었던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줬다. 그제서야 다들 이 결정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이해했다.
[훗! 난 앤디 그 녀석이 은혜를 갚을 줄 알고 있었지. 나한테도 차 한 대 뽑아줬잖아.]
[대런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거네요.]
[맞아. 최고의 선수가 6개월 뒤 떠나면서 달랑 보상픽 한 장 남겨주고 가는 것보다는 선수들을 받는게 훨씬 이득일테니까. 냉정한 선택을 한거지.]
[양키스 측에서도 정보를 뿌리겠죠?]
심슨의 질문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트레이드가 되는 날까지 순차적으로 정보를 유출시킬거에요. 4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계약을 거절한 것 부터, 트레이드로 내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하나씩 유출하다가 트레이드를 하겠죠.”
[그럼 엄청 욕을 먹겠군요.]
“아마 양키스 팬들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받겠죠.”
[레드삭스로 간 것도 아닌데 그런 취급을 할까요?]
[레드삭스는 아니지만 같은 동부지구 팀으로 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겠죠. 거기다가 500만 달러 이상만 되면 계약하겠다고 했잖습니까? 이 부분이 발표되면 무조건 욕먹습니다.]
[오히려 낭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돈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정을 따라간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남았다면 세상에 갈등이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나저나 나쁘지 않네요. 낭만이라······.]
미키의 말에 턱을 쓰다듬은 심슨이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트레이드 직후부터 ‘켈리의 선택은 낭만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선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시스트였다.’라는 기사를 내면서 여론몰이를 조금 해야겠네요.]
“아직까지 트레이드가 된 건 아니니까 입단속 잘 시키고요.”
[저희 마케팅팀 입단속이야 쉬운 일이죠. 입을 놀릴 힘도 없게 만들면 되니까요.]
뭔가 무서운 말을 들은 것 같다. 다운은 마음속으로 마케팅 파트 직원들의 명복을 빌며 애써 못 들은 척 외면했다.
그 사이에 제정신을 차린 캐시가 다운에게 물었다.
“네이트하고 포지션 문제는 어떻게 할건가? 네이트도 보낼건 아니지?”
“그러지는 않을거에요. 일단은 포지션 경쟁을 시키는 쪽으로 하고 밀리는 사람을 2루로 보내는 걸 생각하고 있어요.”
“네이트가 2루로 가겠군.”
“그건 감독님이 정할 일이죠?”
“나한테 떠넘기려는거야? 젠장할!”
“그러라고 받으시는 연봉이니까요. 카스티요까지 안겨드렸으면 잘 하셔야죠?”
다운의 말에 파트장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잠깐만요 단장님. 카스티요는 또 뭐에요?]
[파이어리츠의 디에고 카스티요?]
“아, 내가 말을 안했나?”
그러고보니 어제 셰링턴과 만난 뒤 곧바로 켈리와 만났다. 그리고 밤에는 곧바로 대런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보니 카스티요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걸 깜박한 것이었다.
“제시, 덕, 에디슨, 거기에 제가 픽하는 로또 투수 유망주 하나를 주고 카스티요를 받기로 했어요. 트레이드는 올스타전이 끝나자마자 이루어질 예정이에요.”
다운의 말에 또 다시 캐시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운 그는 신인가? 다운 그는 신인가? 다운 그는 신인가?”
그리고 뒤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다운 너는 신이냐······?”
글라이드였다.
“아하하······.”
< 240화 - 다운 그는 신인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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