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싫음 말던가 >
켈리와 헤어진 다운은 방에 돌아오자마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으아아아아아! 어떻게 해야하지?”
기쁘지 않냐고?
솔직히 기쁘다.
흔들리지는 않냐고?
리그 최고의 공수겸장 유격수다! 당연히 흔들린다. 그래서 더 문제다.
“후우우우······. 일단 머리를 좀 식히고 생각을 해보자.”
앤드류 켈리
외야에 마이크 토켈슨이 있다면 내야에는 앤드류 켈리가 있다. 6시즌 통산 성적이 0.329/0.426/0.620, ops 1.046에 이르는 괴물이다.
통산 홈런은 201개로 다섯 시즌 연속 30홈런, 세 시즌 연속 40홈런에 도전중이다. 올 시즌 벌써 27개의 아치를 그린것을 생각하면 전자는 무난하게 달성할 것 같고, 후자 역시 달성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통산 볼넷은 589개, 삼진이 631개로 볼삼비가 거의 1에 가깝다. 매 시즌마다 30개 이상을 홈런을 때린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시즌 100개 조금 넘는 수준의 삼진 갯수는 세금도 내지 않고 점수를 벌어들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공격력에다가 강한 어깨와 넓은 수비범위, 탄탄한 수비력까지 갖춘 켈리는 이 시대의 모든 유격수들의 워너비나 다름없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 네이트는······.”
시즌마다 3할 이상은 평범하게 찍을 수 있고, 20홈런 이상은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장타력도 있다. 1번 타자로 나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선구안도 좋고 출루율도 좋아서 쉽게 당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타자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운도 그에게 장기계약을 안겨준 것이고.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내구성과 꾸준함.”
다운을 비롯한 단장들이나 전문가들이 켈리를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부분. 그건 바로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모든 시즌을 150경기 이상 출장했다는 점이었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자 엄청난 강점이었다. 당장에 드레이크만 봐도 매 시즌 자잘한 부상으로 30경기 정도는 선발에서 제외된다. 물론 그건 공격적이고 화려한 주루나 수비를 즐겨하는 드레이크의 플레이 스타일에서 기인한 것이긴 했다. 하지만 그가 매 시즌 어느정도 부상을 당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올 시즌에도 2주짜리 발목염좌 한 번, 1주짜리 손목부상 한 번을 당하며 20경기 정도를 결장했다. 그에 비해서 켈리는 안정적이면서도 편안한 수비, 결코 무리하지 않는 플레이로 매 시즌 150경기 이상을 출장했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더 소화하는 켈리의 가치가 드레이크보다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드레이크는 은근히 슬럼프를 잘 타는 스타일이다. 물론 최근에는 연차가 쌓여서 그런가 슬럼프가 오더라도 곧잘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사실 유격수에 있는 그가 타격에서 조금 슬럼프가 오더라도 벌어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애초에 유격수라는 포지션은 대부분의 팀에서는 공격적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포지션인데다가, 레이스는 드레이크가 아니더라도 좋은 타격을 해주는 선수가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드레이크의 경우 타격에서 슬럼프가 왔을 때, 가끔 수비에서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었다. 워낙에 솔직하고 직선적인 놈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타석에서의 일을 담고있다보니 그게 수비에서도 티가 나는 것이었다.
“만약 켈리가 우리 팀에 온다면······.”
일단 3루로는 보낼 수 없다. 서머스 역시 장기계약을 맺고 레이스와 함께하는 선수였으니까. 이번 시즌이 끝나면 2루가 비게된다. 어차피 로드리고와는 올 시즌이 끝나면 헤어질 사이. 드레이크를 2루로 보내 수비적인 안정감을 챙기고, 켈리에게 유격수를 맡긴다. 그렇게 된다면 드레이크의 흠은 가려지고 레이스의 내야진은 더 안정적이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켈리가 말한대로 500만 달러의 연봉을 보장해주고 500만 달러 정도의 성적 옵션으로 1000만 달러 선을 맞춰서 자존심을 챙겨준다면?
“앤디의 전성기만 뽑아먹는다고 쳐도 남는 장사야. 그렇게되면 마르코는 포기하고······.”
도덕적인 문제나, 포지션 중첩 문제는 다 집어치워두고 단장의 입장이라면 무조건 영입해야한다. 브래넌은 레이스의 슈퍼스타였지만, 켈리는 메이저리그와 현대 야구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그의 영입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팬들은 야구장으로, 그리고 TV앞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다.
어차피 중계권 계약은 끝나지 않았냐고?
켈리가 레이스에 있는 그 기간 동안에 다운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빅마켓 구단으로 도약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될 수도 있는 중대한 기로가 생길 수 있었다. 고작해봐야 중계권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물론 그가 없어도 레이스는 빅마켓으로 도약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테니까. 하지만 켈리의 영입은 그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되어줄 수 있었다.
“일단은 알려줘야겠지.”
잠시 후, 대런이 다운의 방문을 두드렸다. 다운은 대런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이야기 했어요?”
“어.”
다운의 대답에 대런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다운에게 달려들었다.
“뭐래요?”
“일단 앉아봐.”
“앉을 수가 없다니까요? 솔직히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우리 조건이 안좋은 것도 아니었어요. 토켈슨에 꿀리지 않는 역대 최고액으로 맞춰준다고도 했고, 40세 시즌까지 커버하는 15년짜리 계약서, 심지어 전 구단 상대 트레이드 거부권도 있었다고요. 그것만인줄 아세요? 앤디하고 연관된 굿즈 판매금의 5%까지도 주기로 했어요. 심지어 유니폼에 켈리라는 글자를 마킹만해도 주기로 했다니까요!”
대런은 얼마나 흥분했는지 다른 팀에 말할 필요가 없는 계약 세부 정보까지 술술 불어댔다.
“너 지금 그 발언 위험하다.”
다운의 말에 대런이 투덜거렸다.
“어차피 올스타전 끝나면 조금씩 풀 정보였어요.”
앤드류 켈리는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것도 지금 시대의 메이저리그를 이끌어간다는 그를 놓치게 된다면 양키스의 프런트가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을거라는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걸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양키스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라는 증명이 필요하다. 마치 내셔널스가 마르코 루이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팬들도 역대 최고액의 제안, 그리고 15년을 보장한 계약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비난을 줄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뭐래요?”
“양키스 떠날거란다. 양키스한테는 은혜를 다 갚았대.”
“하! 역시······.”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대런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런데 다운이 한 말 중에서 뭔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은혜를 갚아······? 양키스한테는? 그럼 또 은혜를 갚을 대상이 있······.’
대런의 시선이 다운에게로 돌아갔다.
“에이······. 설마 아니죠?”
다운이 슬며시 눈을 피했다. 그걸 본 대런이 자리를 박차고 있어났다.
“아니 다운! 지금 우리 선수 데려가려고 하는거에요?”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진짜야!”
“이거 탬퍼링이라고요! 홀리 쉣!”
“자리 주선은 네가 한거잖아!”
“그렇다고 해도 영입하겠다는 말을 하는건 아니죠! 평소에는 동업자 정신이니 뭐니 하더니!”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니까? 본인이 오겠다고 이야기했다고! 그리고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고 떠났어! 나는 대답도 안했다니까?”
“와아아아아! 진짜! 말도 안돼! 양키스를 버리고 레이스로 간다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도 안된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본인이 오고 싶다는데 어떡해? 내가 거기서 양키스 좋으니까 거기 계속 있으라고 할까?”
“그랬어야죠! 양키스의 프랜차이즈로 남는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다운도 알잖아요!”
“알지! 근데 거기서 내가 어떻게 양키스에 남으라고 하냐? 나도 단장이라고!”
“그래서 우리 앤디를 빼간다는거에요? 와! 진짜 세상에 믿을사람 없다더니!”
“야! 그런 식으로 나오기냐? 한 번 해봐? 뭐? 믿을 사람 없어?”
한동안 언성을 높이던 두 사람은 잠시 후 아픈 목을 부여잡고는 자리에 앉았다. 어찌나 싸워댔는지 두 사람은 의자에 앉은 상황에서도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후우······.”
방 안을 가득 채운 침묵은 5분 정도 떠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머물렀다. 그리고 대런이 입을 열었다.
“다운.”
대런은 등받이에 목을 기대고 고개를 돌려 다운을 바라봤다. 침대에 누워있던 다운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툭 대답했다.
“왜.”
“앤디 살래요?”
순간 다운의 목이 홱 돌아갔다.
“뭐?”
대런이 상체를 제대로 세우고 등받이를 끌어안았다.
“앤디 판다고요.”
그의 말에 다운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하하······.”
그리고 물었다.
“내가 왜?”
반 시즌만 지나면 켈리는 공짜로 영입할 수 있는 FA자격을 얻게된다. 굳이 지금 켈리를 영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생각은 곧 마음속에서 들려온 다른 다운의 목소리에 묻혔다.
‘1루에 맨브로스키, 2루에 네이트, 3루에 서머, 유격수에 앤디를 넣으면······. 아니지. 당장 제수스도 1루는 볼 수 있어. 맨브로스키를 영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내야를 꾸릴 수 있어.’
눈앞에 황금의 내야진이 아른거렸다. 슬쩍 대런을 바라보니 ‘쳇!’하면서 혀를 차며 자신을 보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대가가 중요한데······.’
로드리고를 주면 레이스가 줘야할 대가는 줄어들거다. 하지만 대런도 멍청이는 아니다. 사실상 1년짜리 계약을 하고있는 로드리고를 켈리의 대가로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적어도 근미래에 다시 컨텐딩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는 선수일 것이다.
‘내가 대런이라면······.’
대런이 노릴 수 있는 선수는 선발, 데이튼 레이몬드, 가치가 떨어진 비어스, 혹은 켈리와 포지션이 겹치는 드레이크나 서머스 정도일 것이다. 유망주로 눈을 돌리면 메이저 레디가 거의 됐다는 대니얼 윌슨이나, 더블 A에서 슬슬 자신의 잠재력을 터트리고 있는 에이브러햄 트레인 정도가 타겟이 될거다.
“다운 잘 들어봐요.”
대런이 다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나였다면 일단은 네이트나 알버트를 한 번 찔러보고.’
“드레이크가 켈리하고 포지션이 겹치잖아요. 아니면 둘 중 하나가 밀려난다고 치면 서머스가 붕 뜨려나? 바꾸는건 어때요?”
다운은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트레이드 소문이 돌고있는 리키나, 내가 쓸 거라고 생각하는 데이튼을 노리겠지.’
“더지나 레이몬드는 어때요? 어차피 맨브로스키가 넘어가면 쓸 일이 많지 않을텐데요? 알렉스 윌슨이랑 맨브로스키를 쓰면 되겠네.”
이번에도 다운은 묵묵부답.
‘이렇게 말하면서 최종적으로 노릴만한 선수는······.’
“그럼······.”
“대니얼 윌슨, 패트릭 비어스. 여기에 유틸리티인 조 블랜튼까지.”
“아니 그건······.”
대런의 입이 열리려고 할 때 다운의 입이 먼저 문장을 끝맺었다.
“싫음 말던가.”
< 239화 - 싫음 말던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