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투자의 대가 >
켈리가 2016년 드래프트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손가락질했다.
“너 같은 선수를 누가 뽑는다고 드래프트를 나가니? 그냥 대학 진학이나 해라. 너 머리 좋잖아?”
“야! 그런 말 하지 마. 앤디 집 가난하잖아. 이번에 장학금도 떨어지고 해서 대학 못갈거야.”
“장학금이야 당연히 떨어지지. 주전도 못나가는 애를 누가 장학금 써서 데려와?”
주전 유격수도 아니면서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을 한 자신에게 온갖 말이 쏟아졌다.
“헤이 앤디. 신경쓰지마. 저 놈들은 야구의 B가 V로 시작하는줄 알고 있는 멍청이들이야.”
“맞아 앤디. 우리는 네가 잘되길 누구보다 원한다는거 알고 있잖아.”
“고마워 친구들.”
켈리는 그 당시에 절박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야 돼.’
4년 전 허리케인에 집은 쓸려나갔고, 가장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당시의 여파로 왼쪽 다리를 온전히 쓰지 못하시는 상황.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오고, 재난지원기부금들이 여기저기서 도착했지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기에는 부족했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성적 장학금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대학까지 가기에는 무리였다. 그 전에 생활비가 바닥나는게 먼저일테니 말이다.
켈리에게 남은 유일한 한 방은 바로 드래프트였다. 하지만 허리케인 당시 켈리도 손목을 다치는 부상을 당했었다. 그러다보니 주전 유격수에서 밀리고, 돌아오니 예전의 폼은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드래프트는 포기할 수 없어.’
누구처럼 수백만 달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집에 있는 빚 4만 달러를 갚고,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 자신이 없는 사이에 집세를 충당할 수 있는 그 정도의 돈을 원할 뿐이었다. 몇 라운드에 뽑히든, 누가 뽑아가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만약 뽑히지 못한다면 야구를 그만두고 곧바로 생계전선에 뛰어들 생각이었다.
1라운드와 2라운드가 방송된 그 날. 켈리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뽑힐거라고 예상했어.”
애써 위로해봤지만 씁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만약 저 안에 드래프트 됐다면 자신이 원했던 금액은 물론이거니와 조금이라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받고 아무런 걱정없이 야구를 할 수 있었을테니까.
3라운드부터 10라운드까지 뽑은 둘쨋날. 켈리의 이름은 또 다시 불리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난 주전이 아니었으니까······.”
하루하루가 중요한 드래프티에게 1년을 부상으로 쉬고 1년을 벤치로 보냈던 것은 너무나 뼈아픈 감점요인이었다. 그리고 이 날, 켈리는 드래프트 되는것을 포기했다. 10라운드 이하의 선수들이 받는 계약금은 평균적으로 1만 달러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럴바에는 그냥 일을하는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밝았고, 11라운드부터 점차 이름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4라운드.
24라운드 23번 - 뉴욕 양키스 - 유격수, 앤드류 켈리, 웨스트사이드 하이스쿨(스프링필드, 뉴저지)
“애, 앤디!”
“엄마! 나 뽑혔어!”
“엄마가 된다고 했잖니!”
하지만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건 얼마만큼의 돈을 줄 수 있는지였다. 자신에게 조언을 해줄 에이전트는 지금은 없다. 하지만 들은 것은 많았다.
‘전화가 걸려오면 계약서를 받아본 다음에 얼마만큼 줄 수 있는지를······.’
그렇게 먼저 드래프트되었던 친구한테 들은 내용을 읊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매 번 티비 소리를 줄이라며 문을 쾅쾅 두드리던 앞집의 돈이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화장실 좀 쓸 수 있냐며 매일 아침 찾아오는 옆집의 매건이 힘없이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가볍지만 힘차고 경쾌한 노크. 그리고 이어 들리는 정중한 목소리.
“계십니까?”
켈리는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 누구 올 예정있어?”
“없는데?”
“그럼 누구지?”
켈리는 조심스럽게 한 구석에 있는 배트를 들었다. 그리고 체인을 건 채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켈리와 눈이 마주친 그 남자는 동양인이었다.
“아! 있었네요. 전 또 주소가 잘못된 줄 알고 직원을 조질, 아니 직원에게 뭐라할 뻔 했네요.”
“누구세요?”
켈리의 질문에 그는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뉴욕 양키스 G.M.
다운 정
그걸 본 켈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에에엑?”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했다.
“뭐 못믿겠으면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와요. 여기서 기다릴테니까. 양키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직원란 보면 제일 위에 나와있어요. 아니면 이름치면 사진 몇 개 있는 기사도 있을걸요. 그리고 그 문 뒤에 잡고 있는 배트는 좀 내려놓고요. 방금 놀라면서 배트가 문 두드리는 소리 났거든요. 이왕이면 빨리 확인하고 나와주세요. 여기 복도는 서있기 너무 좁으니까요.”
“네, 네.”
고개를 끄덕인 켈리는 켜져있던 고물 컴퓨터를 이용해서 명함에 적힌 이름을 때려넣었다. 그러자 방금 문 앞에서 본 남자의 얼굴이 찍혀있는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켈리는 다시 문앞으로 달려나갔다.
“확인했나요?”
고개가 떨어질듯 끄덕인 켈리가 문을 열어 다운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드,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집이 좀 허름하죠?”
켈리의 말에 다운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정도가 허름하다고요? 당신이 곧 가게 될 마이너리그의 방은 이것보다 더 지저분하고 허름할건데요 뭐. 아, 어머니이신가요? 뉴욕 양키스 단장 다운 정입니다.”
“어, 어서오세요. 호, 혹시 마실거라도 드릴까요?”
어머니도 당황하긴 마찬가진지 말을 더듬었다.
“아, 그럼 물 한 잔만 부탁해도 될까요? 이야기 할 것들이 제법 있어서 목이 탈 것 같거든요. 그리고 어머니도 같이 들으시면 좋으니까 같이 앉을 곳이······. 아! 저기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자리에 앉은 다운은 절대 을의 입장에 있는 켈리에게 당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을 소개해주었다.
“일단 에이전시는 없죠? 그럼 여기 있는 세 군데에 접촉해봐요. 하위 라운더라고 무시하지도 않을거고, 코묻은 계약금을 떼어가는 곳도 아니니까요. 급할 경우에는 매우 낮은 이자로 어느 정도 돈을 빌려주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추천하지는 않아요.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했을 때에는 이자가 두 배로 뛰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낮은 이자이긴 하지만. 그리고 여기 있는 다섯 곳은 거르세요. 그냥 다 떼먹으려고 하는 곳이니까. 다른 곳은 솔직히 알아서 계약해야겠죠?”
“네, 네.”
“그리고 집에 빚이 좀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 정도죠?”
“어······. 4만 달러 정도요.”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요. 다행히 우리가 제안할 계약금보다 낮은 정도고요.”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계약금!
그 이야기가 나오자 켈리의 눈이 빠릿해졌다.
“어, 얼마나 주실거죠?”
“저희가 현재 남아있는 예상 계약금은 13만 달러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금액을 모두 앤드류 켈리 선수에게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시, 십 삼만 달러!”
13만 달러면 4만 달러의 빚을 갚고, 어머니가 가끔 병원을 다닐 수도 있을 정도의 돈이다. 당장에 집을 살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좋은 곳에서 월세를 살아도 충분할 그런 돈이기도 했다.
“계약서는 어디있죠?”
이미 정신이 팔려버린 켈리의 등을 어머니가 후려쳤다.
“앤디! 계약서는 항상 철저히 해야한다니까! 우리처럼 에이전시가 없는 사람들이 계약을 하게 될때는 언제나 잘 읽어보고 해야한다고······.”
“아, 그리고 추가적으로 이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런데, 앤드류 켈리 선수가 저희 양키스의 마이너리그에 있는 동안은 제가 사비로 의료보험 지원을······.”
“도장 가져와라 앤디!”
“네 엄마!”
***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자, 잠시만. 뭐라고? 네가 갈 팀?”
당황하는 다운을 보는건 처음인지 켈리가 씨익 웃었다.
“네. 제가 갈 팀요.”
“앤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까지 머리가 정리가 안되는 다운을 보며 켈리가 말을 이었다.
“다운. 저도 이제 나이가 있어요. 마이너 3년을 거쳤고,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째 풀로 뛰는 중이고, 곧 FA 자격도 얻는다고요. 그리고 이런 자리가 탬퍼링에 걸릴 수도 있다는것도 알아요. 하지만 오늘 자리는 대런이 주선했잖아요? 이걸로 탬퍼링에 위반된다고 걸 수는 없을거에요. 그러므로 네.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예전의 어리벙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다운. 저는 다운이 저희 집에 찾아왔던 그날부터, 항상 다운과 조니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건······.”
“그냥 호의는 아니었죠. 그것도 알아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조니는 실적이 필요했죠. 하지만 다운은 아니었죠. 24라운더인 저한테 13만 7492달러를 쓴다는 걸로 구단주한테 불려가기도 했었다면서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당시에 구단주가 저랑 관계있는 사람이냐면서 길길이 날뛰었다고 대런이 이야기해주던데요.”
“하여간 대런 그 자식은 입을 꿰메버리던가 해야지.”
“거기다가 제가 마이너에 있는 3년간 사적으로 의료보험도 지원해줬죠.”
“그건 네가 잘될거라는걸 믿고 있었기에 한 투자였어.”
“말 잘하셨네요. 투자가 성공했으면 돌아오는게 있어야하는게 당연한거 아니겠어요? 이제는 대가를 받아야죠. 양키스는 이미 24라운드에 뽑힌 저에게 투자한 13만 7392달러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았어요. 무려 6년간 양키스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는 유격수로 프라이드를 높여줬으니까요. 하지만 다운은 아니죠.”
“내가 해준건 의료보험밖에 없었잖아.”
“내가 마이너에 있으며 원정다닐때 사람을 보내서 어머니가 병원에 원활하게 다닐 수 있도록 보살펴주었고, 명절마다 찾아가서 인사하고 집은 어떤지, 잘 지내는지를 체크해줬죠. 솔직히 처음에는 다운이 엄마한테 관심이 있는건 아닌가 했다니까요? 뭐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지만요.”
게리의 맥주를 깔끔하게 비워낸 켈리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크으~ 있잖아요 다운. 저는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을 하고, 그 오래된 공동주택에서 나와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는 그날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며 맹세했어요. 어떻게든 이 은혜는 꼭 갚겠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앤디. 우리 팀에는······.”
“알아요. 네이트, 재능있는 친구죠. 하지만 제가 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경쟁에서 밀린다면 3루나 2루에서 뛸 수도 있고요. 아니면 그 친구가 거기에서 뛸 수도 있죠.”
“우리 팀은 연봉도 맞춰주기 힘들거야.”
“이미 먹고살만큼은 벌었어요. 제가 원하는건 은퇴 전까지 적당히 벌면서 다운에게 은혜를 갚는거에요. 물론 선발출장할 수 있어야한다는 조건은 있어요. 야구를 그만두기는 싫거든요 하하!”
켈리는 다운의 옆에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 생각해봐요 다운.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어요. 연봉 500만 달러 이상만 주면, 은퇴할때까지 다운이 구단주로 있을 레이스에 뛸거에요. 그걸 위해서 에이전트도 잘랐어요. 다운. 제가 이제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해줘요. 네?”
< 238화 - 투자의 대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