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날 만날 생각이었구나? >
나이가 좀 많고 대가가 더 비싸지만 1선발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
vs
나이는 어리지만 너클볼러로 절대 1선발은 노릴 수 없는 선수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에디슨 포레스트로 하지.”
“그렇다면 추가적인 대가는 못 드려요.”
“제시 톰슨, 덕 흘로첵, 그리고 포레스트까지 3명으로 끝인건가?”
셰링턴의 말에 다운이 검지를 흔들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제시와 에디의 가치가 너무 높아요. 알다시피 에디는 지금도 꽤 좋은 선발투수고, 계약도 좋죠. 게다가 1선발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하고 저희도 키우고 있던 놈이고요. 무엇보다 제시의 가치가 너무 높아졌어요.”
“어리고 수비 괜찮은 포수의 가격은 언제나 높지.”
“오우 벤. 이번 겨울을 생각한다면 그게 끝이 아니란걸 알텐데요?”
“글쎄?”
모르쇠로 일관하려는 셰링턴의 모습에 다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파이어리츠의 상황상 지켜야 할 선수는 총 18명. 물론 카스티요를 제외하고 말하는겁니다. 새로 에디가 들어갈테니 총 19명을 지켜야하죠. 그 중에서 자동으로 보호가 되는 선수는 고작해야 3명에 불과하죠. 그렇다는건 총 16명을 묶을 수 있다는건데······. 제시는 자동으로 보호가 되는 타입의 선수죠.”
다운의 설명에 셰링턴은 포기한 듯 손을 저었다.
“그래. 톰슨이 들어오면 우리가 보호할 수 있는 선수가 하나 더 늘겠지.”
“골머리를 덜 썩여도 되는거죠.”
“그래도 여전히 한 놈은 남는데?”
“그 한 놈은 저희가 데려가죠.”
이번에는 셰링턴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굴 원하는거야?”
“타일러 맨슨.”
맨슨은 4년차 시즌을 보내고 있는 중견수로 파이어리츠에서의 포지션은 갭 플레이어다. 전임 중견수였던 더들리 퍼거슨을 보낸 뒤 파이어리츠 팜 랭킹 1위인 중견수 칼슨 터너가 올라오기 전까지만 살짝 쓰는 그런 선수였다.
그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2년차 시즌에는 2할 중반. 3년차 시즌에도 2할 중반을 마크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타율은 4년차인 올해 갑자기 2할 초반까지 떨어졌다.
그러던 사이 터너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터너는 팀 내 1위 유망주라는 평가답게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말이다.
그럼 다운은 그런 선수를 왜 원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외야수가 필요해.’
거의 예정되어있는 양키스와의 딜에서 다운은 블랜튼을 내보낼 생각이었다. 남은 유틸리티 중에서 앤더슨과 앳킨슨, 모두 외야 수비가 가능하긴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외야를 보는 선수가 라인업에 넷 밖에 없다는건 조금 불안했다. 이번 트레이드 마감일이 지나버리면 외야수를 보강할 방법은 콜업이나 자유계약, 그리고 웨이버 공시를 노리는 수 밖에 없었다. 뭐 트레이드 할 수 있는 꼼수가 없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데려올 수 있는 선수의 실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서 다운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어찌됐건 맨슨은 수비력이 탄탄하다. 어깨도 좋아서 외야 어떤 포지션에 놓더라도 좋은 수비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였다. 타격 역시 나쁘진 않다. 무엇보다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선수 중 하나였다. 제대로 크면 마이어 정도의 타격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유형의 선수였다. 당장에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라인업에서 앤더슨과 마이어 밖에 없다. 그의 가세는 캐시 감독이 원하는 작전을 더 원활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운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셰링턴 역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기다리면 다시 회복할 것 같은데······.’
중반으로만 회복되어도 떨이로 팔려가는 지금보다는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기다려줄 수는 없었다. 셰링턴의 마음 속에서도 15인 명단에서 가장 1순위로 제외될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던 선수가 바로 맨슨이었다. 기다리더라도 올 윈터미팅이 되면 분명히 누군가의 팀으로 떠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지금 파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셰링턴이 마음을 정리했다.
“한 명 더 줘.”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좋은 선수를 달라는건 아냐. 그냥 하위권에 있는 로또픽 하나를 가져가고 싶어.”
로또픽은 어린 나이의 하위권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지금 당장에는 못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잘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투수로요?”
“이왕이면 좌완이면 좋겠는데.”
“욕심이 너무 많네요. 우완으로 하시죠.”
“좋아. 대신 자네가 보기에 나쁘지 않은 로또픽으로 골라줘.”
“호오? 아예 저한테 선택권을 넘긴다? 괜찮겠어요?”
다운은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장이다. 정확한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단장들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다운은 누구 한 쪽이 크게 손해보는 딜은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셰링턴은 오히려 이런 식으로 대놓고 말하면 다운이 나쁘지 않은 선수를 뽑아서 건네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자네 선택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면 제가 나쁜 선수 안 줄줄 알죠?”
“애초에 자네가 뽑은 선수 중에서 완벽하게 나쁜 선수는 없을 것 같은데? 다들 어느 정도의 가능성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약았네요 벤.”
“그런 말이야 항상 듣지.”
속으로 저울질을 해본 다운이 셰링턴에게 물었다.
“하나 붙여주면 확실히 저희랑 딜하는겁니까?”
“그럼.”
솔직히 레이스보다 좋은 딜을 걸어온 구단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질보다는 양이라는 식이었다. 파드레스 같은 경우는 팀의 1, 2, 4, 6위 유망주를 주겠다고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다운은 오래 써먹을 수 있는 성장가능성이 큰 1선발과 먹음직스러운 포수까지 제안했다. 전자는 계약기간도 넉넉했고, 후자는 서비스타임이 넉넉했다. 그리고 흘로첵은 지금 당장에는 헤매고 있지만, 첫 시즌에 보여줬던 그 타격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니 그 타격의 반만 돌아와도 파이어리츠 타선을 이끌어가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세 명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통할거라는 확신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예전처럼 무지성 탱킹이 가능할 때였으면 모를까, 일정 기준 이상 패배한 팀들에게는 페널티가 부여되는 지금은 자기들 내부에서의 랭킹만 높은 선수들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별로다. 그들보다는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준 것이 있는, 그리고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보이는 선수들을 데려오는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그리고 다운은 바로 그런 제안을 했다. 셰링턴의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든 그런 제안이었다.
“이렇게 바로 딜이 성사될 줄은 몰랐네요.”
“자네 제안이 너무 거절하기 힘들었어. 알고 온거 아니야?”
“좀 더 저항하는 맛이 있을 줄 알았는데 순순해서 조금 김이 빠지네요.”
“자네는 저항하면 할수록 좋은 대가 안주는 편이잖아.”
“그게 거기까지 소문났어요?”
“뭐 경험이지. 자네랑 오래 밀당해서 좋은 결과를 낸 단장을 난 아직 못봤거든.”
앞으로는 조금 더 첫 조건을 낮춰도 될 것 같다.
“밑에 이야기해서 트레이드 합의서 제출하라고 했어. 자네는?”
“저도 지시해놨어요.”
“아,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트레이드 발표는 올스타전 이후에 해도 될까?”
파이어리츠와 같은 구단에는 올스타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카스티요가 구단을 떠날거라는 것을 알고있더라도 그가 파이어리츠 모자를 쓰고 올스타전을 치르는 것과, 이적한 구단의 모자를 쓰고 올스타전을 치르는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존재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시즌 올스타에 선정된 파이어리츠 선수는 카스티요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그를 보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팬들도 많았다.
셰링턴은 팬들의 프라이드를 위해서라도 카스티요가 올스타전 기간 동안에는 파이어리츠 유니폼을 입고있길 원했다.
“그 정도는 들어드릴 수 있죠.”
“고마워. 축배나 한 잔 더 할까? 이번에는 내가 사지.”
그의 제안에 다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쉽게도 뒤에 선약이 있어서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야?”
그의 질문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앤디.”
“다운.”
다운과 앤드류 켈리는 환하게 웃으며 껴안았다.
양키스 단장직에서 물러난 뒤 전화는 몇 번 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 그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건지 알아요?”
켈리의 투정에 다운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웃었다.
“하하, 미안해. 너는 내 프라이드 중 한 명이잖아. 그래서 널 보면 양키스가 너무 그립고 떠오를 것 같았어. 그래서 너랑 만날 용기가 안나더라.”
“지금은 괜찮고요?”
“지금은 당연히 괜찮지. 오히려 양키스 단장이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잘나가는 것 같지 않냐?”
다운이 옷깃의 각을 딱 잡으며 으스대자 켈리가 피식 웃었다.
“하나도 안변했네요.”
“정확히는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지.”
“지금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그때는 전화인데도 거의 땅을 파고 들어가는 목소리였다니까요?”
“그땐 그랬어. 내가 야구계에서 쌓아왔던 그 모든게 무너지고 버려진 느낌이 들었거든.”
“아, 일단 한 잔 해요.”
“너 내일 일정 없어?”
“적어도 경기는 없죠. 팬들만 만나면 되는걸요.”
“그럼 간만에 예전처럼 마셔볼까?”
“좋죠. 안그래도 준비해놨어요.”
켈리가 냉장고에서 꺼낸 술은 비싼 위스키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그가 꺼낸 것은 뉴욕의 어느 수제맥주 집의 시그니쳐 맥주였다.
“이야! 엉클 게리스 빈에 갔다온거야?”
“오랜만이죠?”
“진짜 오랜만이다. 게리는 잘 있고?”
“잘 있어요. 다운한테 줄 맥주 사가는거라니까 안에 침 뱉으려고 하던데요?”
이 맥주는 다운이 양키스 단장이던 시절, 그리고 켈리가 양키스와 계약을 맺은 바로 그날 축하겸 데려가 사줬던 맥주였다.
“그 당시에는 맥주가 한 잔에 20달러라는 말에 미쳤다고 했었죠.”
“그리고 한 모금 맛보고는 할 말을 잃은 네 얼굴이 정말 볼만했지.”
“그 정도로 충격적인 맛이었거든요. 맥주가 이런 맛이었을 줄이야! 그렇게 놀라는 저를 보고 다운이 그랬잖아요. ‘넌 이 맥주를 쟁여놓고 마실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버는 엄청난 메이저리거가 될거야.’라고 말이죠.”
“그리고 됐지. 너는 내 자랑 중 하나야.”
그렇게 말하면서 다운은 앞에 놓인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크~ 역시 이 맛은 어딜 가질 않는구만! 택배로 배달이 안되는게 아쉬워.”
“직접 가서 받아오면 되죠. 원정만해도 1년에 몇 번은 오잖아요.”
“가면 게리가 날 죽이려고 할걸?”
“연락도 아예 씹고 잠수탔으니까 그 정도는 감안해야죠?”
“하긴······. 게리가 날······.”
거기까지 말을 하던 다운은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게리의 맥주를 준비했었다고?’
분명 켈리는 ‘다운에게 줄 맥주를 사왔다’고 말했다. 그가 맥주를 산건 올스타전에 참가하기 전, 그러니까 다운이 켈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대런에게 말을 하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말이다.
“너······. 날 만날 생각이었구나?”
다운의 말에 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서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내년에 제가 갈 팀의 단장은 만나야죠.”
< 237화 - 날 만날 생각이었구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