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36화 (236/268)

< 236화 - 괜찮겠어요? >

라일리 제이콥스

일명 너클즈

좌완으로 99마일을 뿌릴 수 있었던 유망주. 하지만 세 경기 연속으로 타자를 맞힌 뒤부터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걸려서 축복받은 강속구를 스트라이크 존 안에 꽂아넣지 못하게 되어버린 비운의 투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던질 수 있는 공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너클볼이었다. 너클볼은 그것 하나만 던져도 변화무쌍하고, 뼈만 맞지 않는다면 타자들이 맞아도 아프지 않은 공 중 하나였다. 덕분에 너클즈는 레이스의 눈에 띄어서 드래프트까지 될 수 있었다.

올 시즌 그의 성적은 15경기 118.2이닝 9승 3패 3.27.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꾸준히 이닝이터의 면모를 보여주고있는 너클즈. 그는 올 시즌에도 평균적으로 7.9이닝을 먹어주면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다운은 왜 보내려는걸까?

‘너클볼러에게 자아가 생기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일까?

너클볼러는 아무 생각없이 너클볼을 던질때가 가장 강력하다. 거기다가 허를 찌르는 패스트볼 같은걸 던질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걸 너클볼러인 너클즈가 모를리가 없었다. 너클즈는 올 시즌 더 잘던지기 위해서 지난 시즌에는 너클볼 위주였던 피칭에서 80마일 정도 되는 패스트볼을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그리고 너클볼을 구속을 70마일 초반까지 끌어내렸다.

타자들은 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올 시즌에도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잘 던지고 있었던 것이고.

문제는 이 패스트볼이 먹히기 시작하자 너클즈의 마음에 다른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강력하지만, 내가 더 빠른 직구를 던질 수 있다면?’

‘거기에다가 슬라이더나 커브같은 레퍼토리를 추가한다면?’

‘파인트를 넘어서는 대 투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찬이 꿈은 크게 꿔야하는거라고 했는데······.’

‘도전해볼까?’

다시 말하지만 너클볼러는 구위, 구속, 제구 다 필요없다. 너클볼에 구위란게 있다는게 웃기는 말이었고, 구속은 적당히만 나오면 된다. 오히려 변화가 중요하지. 제구는 딱 존 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 생각을 버리기 시작한 너클볼러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덕분에 마지막 세 번의 등판을 망쳤지.’

5이닝 7실점

7이닝 5실점

7.2이닝 4실점

전반기 마지막 세 경기의 성적이다.

그리고 그 경기 이후에 너클즈는 면담을 요청했다.

***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99마일을 다시 던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다운의 눈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나타났다.

1. 그의 노력을 응원하고 기다려준다.

2. 참고 이번 시즌만 너클볼을 쓰면서 기다려보자.

다운은 두 번째 선택지에 대한 밑밥을 깔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그러고 싶은 이유라도 있어?”

“조나, 찬, 리키, 에디, 그리고 얼마 전부터 선발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알마다까지. 다들 머리를 써서 상대 타자를 어떻게 요리할지를 고민해요. 그런데 전 그냥 너클볼을 던질 뿐이죠.”

너클즈, 아니 이제는 제이콥스로 다시 불리고 싶은 그가 무릎에 두 팔을 올리고 자조섞인 어투로 말했다.

“너클볼만 있으면 편할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1구 1구 던질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알아요? 제발 회전이 들어가지 않길 바라면서, 제발 휘길 바라면서, 제발 정타가 나오지 않길 바라면서, 제발 우리 포수가 놓치지 않고 포구해주길 바라면서 실밥을 보이며 너울너울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매번 기도해요.”

다운은 투수가 아니라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제이콥스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할 것 같았다.

“처음 메이저리그에 등판했을 때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내 너클볼에 죽을 못쑤니까 좋았죠. 하지만 가면갈수록 그 기쁨은 사라졌어요. 저 괴물들은 조금만 변화가 사라져도 다 쳐버리거든요. 그걸 깨달은 뒤부터 타자를 잡았다는 기쁨은 없어요. 대부분은 우리 수비에 의존할 뿐이니까요. 헛스윙 삼진을 잡아도 그저 ‘좋아! 이번 타자도 넘겼구나!’라는 생각 뿐이에요. 그리고 이젠 지쳤어요. 저는 더 이상 운에 의존하는 피칭은 하고싶지 않아요. 한 방 맞더라도 내가 선택한 공, 의도한 공을 던지고 싶어요.”

이렇게 단호한 그에게 다운은 ‘참고 이번 시즌만 던져보는게 어때?’라는 냉정한 말은 할 수 없었다. 결국 다운은 그보다 더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하지만 제이콥스에게는 달가운 말을 꺼냈다.

“후반기에는 트리플 A로 내릴거야. 그리고 네 자리에는 알마다가 들어가겠지. 네 포수로는 제시가 아니라 너클볼을 받을 수 없는 포수를 넣을거야. 그래야지 네가 너클볼을 던질 생각을 안할테니까.”

“오히려 좋아요.”

“난 네가 분명히 다시 예전의 99마일, 아니 그걸 뛰어넘어 100마일 이상을 던질 수 있는 좌완투수가 될거라고 믿고있어. 하지만 우린 그걸 기다려줄 여유는 없어. 너도 우리 팀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있지?”

냉정한 다운의 말에 제이콥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승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죠.”

“맞아. 그렇기 때문에 난 널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때 트레이드 블럭에 올릴거야. 아직까지 너클볼러로 알려진 어린 좌완투수. 굉장히 귀한 매물이거든. 팔 수만 있다면 팔아낼거야.”

“감안하겠습니다.”

“그래. 남은기간동안에 최대한 투수들을 괴롭혀서 많은걸 얻어내. 심지어 알마다조차도 너보다 일반적인 변화구들을 많이 던져봤을테니까. 그리고 미리 마음의 준비도 해두고.”

“알겠습니다.”

***

아직 제이콥스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셰링턴에게 그는 먹음직스러운 매물일 것이다.

‘조니의 예상에 따르면 라일리가 다시 정상적인 좌완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6개월.’

어쩌면 다시는 적응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적응을 하기만 한다면 분명 그는 아마추어시절부터 들어왔듯이 다음 세대의 랜디 존슨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키고싶다.’

2미터의 키. 긴 팔에서 나오는 99마일짜리 공. 그것도 좌완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투수란 말이다.

하지만 기약이 없다.

당장에 써먹을 수 없는 제이콥스를 내주고, 팀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카스티요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레이스 입장에서는 더할나위 없는 일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또 다른 의도도 있지.’

셰링턴이라면 분명히 제이콥스의 최근 성적을 걸고 넘어질 것이다.

“너클즈라면 좋지. 하지만 말이야. 최근 세 경기의 성적이 너무 좋지 않은거 아닌가?”

역시나 그는 마지막 세 경기를 걸고넘어졌다. 다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너클볼러는 그날그날 회전이 먹히는 것에 따라 컨디션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걸 아시잖아요.”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성적이 안좋지 않았나?”

“그런 날도 있는거죠. 그리고 너클볼러의 최대 강점은 성적이나 실점이 아니죠. 그들의 최대 강점은 이닝이터라는 점이잖아요. 파이어리츠 같은 리빌딩을 노리는 팀에서 이닝이터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라일리는 그 점을 확실하게 채워줄 수 있는 친구죠. 거기다가 같이 보내는 제시. 그 친구가 너클볼을 기가막히게 잡습니다. 마이너때부터 시작해서 라일리의 공을 받아왔거든요. 우리 팀에서 가장 너클볼을 잘 잡는 포수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셰링턴이 우려하는건 하나다. 수없이 이어지는 너클볼러의 역사상 에이스, 즉 1선발 역할을 했던 투수는 디키밖에 없었다. 너클볼러는 너클볼러가 아닌 선수들에게 멘탈부분을 제외하고는 유의미한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왜?

다른 구종은 다른 선수들이 더 잘 던지니까.

게다가 수비의 부담이 커진다. 리빌딩 팀의 특성상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수비이닝마다 큰 부담을 안겨줄거다.

팀의 에이스는 야수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존재여야하는데, 너클볼러는 이 한 경기를 버티게 만들어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자연스레 셰링턴의 눈은 다른 곳을 향했다.

“알마다는?”

“안됩니다. 저희 로컬 프랜차이즈 선수라서요. 이건 비밀인데 최근에는 13년 계약 논의까지 하고있거든요. 레이스에 남고싶은 마음이 엄청 강해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본인이 남고싶다고 한 것도 사실이고, 내가 13년은 어떻냐고 물어본 것도 사실이니까 뭐.’

‘논의’는 했다. 논의는.

셰링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알마다는 텄군.’

본인도 남길 원하고 다운도 지키고 싶어하는 느낌이 강했다. 게다가 장기계약논의까지 오고가고 있다면 데려올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했다.

‘그럼······.’

레이스에서 싹수가 보이는 투수라면 마이너에 있는 좌완 대니얼 윌슨이나, 최근에 5년 4500만 달러의 염가계약을 맺은 레이스의 4선발

“에디슨 포레스트는?”

다운은 순간적으로 확장하려는 콧구멍에 힘을 빡줘서 크기를 유지시켰다.

‘됐다!’

하지만 다운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에디요? 에디는 원하지 않으실거라 생각했는데요.”

포레스트는 지난 겨울 앞으로의 5년을 커버하는 4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거기다가 2년 3000만 달러의 팀옵션까지 걸려있는 꽤나 구단 친화적인 계약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들사이즈 마켓을 가진 팀의 입장에서다. 파이어리츠와 같은 스몰마켓 팀에게 연 1500만 달러의 옵션같은건 매력적인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구단에게는 아니지.’

만약 포레스트가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파이어리츠는 얼마든지 ‘싼 옵션이 붙어있다고요!’라며 팔아재낄 수 있었다.

게다가 포레스트는 이미 빅리그에서 꽤 인정받고 있는 선수다. 파인트, 더지, 진성찬으로 이루어진 선발진만 아니었다면 2선발까지 써도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런 선수말이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구단의 에이스급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받고있었다.

하지만 다운이 보기에는 그의 성장은 멈췄다. 오랜시간 그를 봐왔던 거스나 미키, 그리고 선수보는 눈이 좋은 로벨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재능은 있어. 근데 향상심이 없어졌어.”

포레스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상황에 안주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앞에 파인트와, 더지, 진성찬이 있기에 4선발로 만족한다. 알마다나 제이콥스조차 그들을 뛰어넘는 투수가 되고싶어하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포레스트는 메이저리그가 된 뒤, 그리고 4선발 자리가 확고해진 뒤,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계약서에 사인한 뒤 만족해버렸다.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은 그 자리에 멈춰선 선수에게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었다.

분명 포레스트는 도태되기 시작할거다. 알마다에게 밀릴거고, 돌아온 제이콥스에게 밀릴거고, 그리고 트레이드될 것이다. 그 순간이 조금 더 일찍 온 것 뿐이다.

물론 트레이드의 충격으로 포레스트가 각성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절대 레이스에서는 각성할 수 없는 선수였다. 그걸 생각한다면 미련없이 파는게 맞는 선택이었다.

“우리야 에디에서 카스티요로 바뀌는거라 마다할 이유가 없죠. 근데 에디는 보여준 것도 많고, 실력도 있어서 좀 비싼데······. 괜찮겠어요?”

다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 236화 - 괜찮겠어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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