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32화 (232/268)

< 232화 - 비즈니스에 친분은 없는거야 >

다운이 슬며시 태클을 걸었지만, 스칼렛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페레즈는 선구안이 좋아요. 그래서 자신만의 존이 확고하죠. 저런 타자는 쉽사리 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건 알잖아요.”

다운이 생각한 것과 똑같은 판단을 한 스칼렛. 여기서 그녀의 판단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여기서는 다른 부분을 공략해야한다.

“물론 그렇긴하지.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있어. 그런 타자들의 최대 약점이 뭔지 알아?”

“······나이죠.”

선구안이 좋은 타자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나이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투구를 보는 눈이 점점 안좋아지고, 그러다보니 삼진이 늘어간다. 그 기점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라고 보곤한다.

문제는 페레즈가 25살이라는 점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26살. 만약에 그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했을 때, 레이스가 그를 제대로 쓸 수 있는 기간은 고작해야 2년 반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또 한 가지의 문제가 있지. 페레즈와 같은 호타준족형의 타자는 나이가 들고 좋은 계약을 따내기 시작하면 도루가 줄어들어. 물론 1루수니까 다리가 느려지는건 문제가 되지 않겠지. 하지만 페레즈가 그만큼의 파워가 있는 선수는 또 아니잖아?”

다운이 말하는대로라면 결국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페레즈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선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죠.”

“맞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지. 하지만 정말 잘쳐줘도 갭플레이어야. 그런 선수한테 레이스는 많은 유망주를 투자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레이스한테 팔 생각이 있으면 가치를 깎아라?”

스칼렛의 말에 다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게 들리수도 있지. 하지만 난 내 입장을 간단하게 말했을 뿐이야. 네가 내 생각 이상의 유망주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비드에서 손을 뗄 수 밖에 없어. 그럴바에는 카림 곤잘레스나, 잭 무어를 데려오는게 훨씬 싸게 치니까.”

“그러기에는 레이스 팜에 1루수가 없잖아요.”

“왜 없어? 덕이 당장에 헤메고는 있지만, 재능은 출중한 친구야. 너도 데뷔시즌은 봐서 알거아냐. 지난 시즌도 솔직히 실패라고는 할 수 없지. 그러니 플루크였다는 말은 집어넣어둬. 게다가 한국에 가 있는 코너 재머도 있어. 그 친구 한국에서 성적이 어떤지 알아? 전반기에만 3/4/6 슬래쉬 라인에 24홈런을 때렸어. 시호크스에서 어찌나 만족하던지······.”

다운의 설명에 대런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하지만 다운. 지금 레이스는 갭 플레이어를 들여올 바에는 좋은 선수를 필요한거잖아요.”

“1루수는 지금처럼 돌려도 되는데 굳이 필요한건 아니지.”

“하지만 그건 다운의 스타일이 아니죠.”

다운이 자신을 아는만큼 대런 역시 다운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포지션에서 타격슬럼프가 왔을 때 그걸 보강해줄 수 있는 타자를 미리 채워놓는다. 최선을 다해서 약점이 될 수 있는 모든 곳을 메워놓는게 다운의 철칙 중 하나였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윌슨은 그 간극을 채워주지 못해요. 왜? 한 방은 있지만, 컨택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비어만을 1루로 쓴다? 체력보전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비어만을 1루수로 쓰는건 낭비죠. 특히나 이번 시즌 MVP도 노린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비어만이 그걸 수락할지도 모를 노릇이고요. 당장 마이너에서 올릴 수 있는 선수중에서도 괜찮은 1루수는 없어요. 그렇다는건 분명 다른 구단의 1루수를 노릴거라는 거죠.”

다운은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다른 구단 1루수 노릴거야. 하지만 절대 큰 지출을 할 생각은 없어. 만약 정말로 제 값에 사올 수 있는 선수가 없다면, 구단 내부에서 돌릴거야. 이미 포화상태인 내야 유망주들을 마이너에서 1루수로 경험을 쌓게 해주고 있는 중이거든. 특히나 그 중에서 레이몬드는 가능성이 보이더라고.”

데이튼 레이몬드는 수비보다 타격에 집중할 수 있는 1루로 포지션을 옮기자, 마이너에서 올라갈 수 없는 울분을 토해내듯이 트리플 A를 폭격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당장 콜업될 수 있다는건 아니었다. 비어스가 날아간 현재 상황상 레이스의 벤치는 무조건 외야 커버가 가능한 선수가 있어야만했다. 그러다보니 레이몬드보다 타격이 떨어지는 조 블랜튼이나 로렌 앳킨슨 같은 자원들이 올라와있는 것이고. 하지만 이번에 영입이 이루어지지 않게된다면 다운은 흘로첵을 내리고 레이몬드를 써볼 생각이 있었다.

이렇듯 이미 영입을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플랜까지 모두 짜놓은 뒤였기에 다운은 한층 여유롭게 그들을 대할 수 있었다.

“젠장! 혹시나 이번에 팔게되면 한 번 쪽 빨아먹을 수 있을까했는데!”

대런이 몹시 안타까워하며 무릎을 쳤다.

“양키스 아직 안끝났다며?”

“적어도 팬들한테 그렇게 보여야한다는거죠. 이제 7월 2주차에 들어왔는데 벌써부터 팔기 시작하면 시즌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분명히 나온다고요. 그러면 관중수에도 영향이 있을거고 매출이 떨어지겠죠. 만약에 보내더라도 마감일에 보낼거에요.”

“원하는 선수는 있어?”

대런은 스칼렛에게 들키지 않겠다는듯이 문자로 이름을 적어보냈다.

- 레이몬드를 그렇게 쓴다는건 팔 생각이 없다는거죠?

슬쩍 문자를 확인한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몬드의 현재 타격감이라면 이번 시즌 후반기에 팀에 도움이 될 상황이 한 번은 무조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 조 블랜튼이나 로렌 앳킨슨 중 하나 이왕이면 앳킨슨으로. 거기에 유망주 하나.

둘 다 유틸리티 자원이다. 하지만 둘 다 유격수에서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대런은 앤드류 켈리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지금 당장 양키스 팜에는 빅리그 유격수로 괜찮을 것 같다는 인재가 보이질 않으니까.

특히나 앳킨슨 같은 경우는 파워가 없어서 그렇지, 똑딱이 수비형 유격수로는 꽤 좋은 자원이었다.

“생각해볼게.”

“그리고 앤디랑 이야기해주는것도 잊지말고요.”

“그것까지 딜에 포함이야?”

“네.”

“오케이. 올스타기간동안에 앤디 만나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럼 나중에 해야겠다.”

“아! 다운! 그러기에요?”

“네가 그것까지 딜에 포함이라며? 난 호의로 그냥 물어봐줄라고 했는데 말이지.”

“그럼 그냥 호의로 해주시죠? 네? 마감일에 조건 안바꿀게요.”

“그러다가 마감일 전에 맨브로스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아 정말! 그러면 제가 빚 한 번 진 걸로 하는거죠? 네?”

대런의 백기에 다운이 녹음을 켠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앤드류 켈리에게 양키스와의 계약 연장을 왜 안하는지를 물어봐주는 것을 포함해서 방금 보낸 메시지에 적혀있는 조건을 이번 시즌 마감일까지 바꾸지 않겠습니다. 만약 다운이 저와 딜하는 것을 택하지 않게 된다면 빚 한 번 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녹음버튼을 다시 한 번 눌러 저장한 다운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좋은 딜이었다 대런.”

“제엔장······.”

“너도 좋은 딜이라고 생각하면서 앙탈부리긴.”

대런에게 가장 중요한건 좋은 유망주를 받고 자시고 하는게 아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양키스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앤드류 켈리를 눌러앉히는 것이 그의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유가 뭔지 확실히 알아낼테니까 걱정하지말고 기다리고 있어.”

“부탁할게요.”

대런과의 이야기를 마친 다운은 스칼렛에게 고개를 돌렸다.

“스칼렛. 네 조건은 뭐야?”

스칼렛 역시 대런에게 들키기 싫다는 듯이 메시지를 보냈다.

- 레이몬드?

역시나 단장놈들 보는 눈이 다 똑같다. 다운은 슬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 그럼 포수 제시 톰슨이나 유틸리티 조 블랜튼?

다운은 뭐 그정도면 괜찮지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운의 몸짓을 확인한 스칼렛은 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가 데려올 수 있는 포수중에서 최선의 패는 제시 톰슨이야. 톰슨이 타격에 완전히 눈을 뜨면 우리가 노릴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질거야. 그러니 지금 데려와야해.”

스카우트 팀장의 말이 맞다. 톰슨은 지금이 아니면 데려올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디백스가 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패인 지오반니 페레즈를 주는 대가로 받아오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 그리고 유망주 둘을 줘요.

그녀의 말에 다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디백스같은 경우는 리빌딩을 진행중인 상황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포지션은 어린 선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포수만큼은 달랐다.

디백스를 오랫동안 지켜온 안방마님인 테런 블레이크는 이제 36살로 내년 시즌을 마치면 은퇴할 예정이었다. 그의 백업으로 수많은 선수들이 거쳐갔고, 이번 시즌 역시 세 명의 포수가 오르내렸지만, 그 누구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수비력도 좋고, 타격에서도 슬슬 눈을 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제시 톰슨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조 블랜튼을 주면 되지 않냐고?

조 블랜튼은 그냥 끼워넣어본 패다. 뭐 블랜튼도 포수가 가능한만큼 괜찮긴 하겠다만, 그는 포수 수비보다 유격수 수비가 좋은 친구다. 거기다가 타격도 생각보다 늘지 않고있다.

“전자는 추가로 못줘. 후자는 20위권 하나.”

다운의 말에 스칼렛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페레즈가 그것밖에 안돼요?”

“너야말로 우리 선수가 그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한거야?”

똑같은 말에 당한 스칼렛이 할 말을 잃었다.

“전자를 원하면 페레즈에 우리가 유망주를 받아야겠어.”

“뭐라고요?”

페레즈는 풀타임 1년차로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였다. 그에 비해서 톰슨은 아직까지 많은것을 보여준 적이 없는 포수다. 그런데 더 비싸다니?

- 포수, 어린 나이, 방망이가 터질 기미가 보이는 선수. 이런 선수는 많이 없지?

이미 자신의 타겟을 알고있는듯한 다운의 메시지.

“내 예상이 틀렸다면 후자에 30위권 유망주 하나 더 붙여줄 수 있는데, 그건 어때?”

다운의 말에 스칼렛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네가 잊고있는 모양인데······.”

다운은 옆에서 아침을 마저 입에 욱여넣고있던 대런을 가리켰다.

“나한테는 다른 옵션도 있다고?”

결국 다운은 급하게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급한건 스칼렛이었다.

“한 번 잘 생각해봐. 마감 시한 전까지는 시간 있으니까. 물론 그 전에 내가 다른 구단이랑 딜 할 수도 있다는 건 잊지말고.”

“딱 보니까 원하는거 직설적으로 말안했구만? 그러게 다운한테 왜 심리전을 걸려고 들어. 그냥 원하는거 딱딱 맞춰주는게 제일 마음편하게 딜할수 있다고. 물론 제대로 알아보지 않으면 호갱당하는건 순식간이긴 하지만······.”

대런은 그런 단장들을 수도없이 봐왔다. 그렇기에 다운에게 적당히 줄건 주면서도 나쁘지 않은 수준의 대가를 받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잊지마 스칼렛, 우리가 친하긴 하지만 비즈니스에는 친분따윈 없는거야.”

대런의 차가운 말이 스칼렛의 귀를 비수처럼 찔러들어왔다. 그리고 싸늘한 말을 하는 대런에게 다운의 비수가 날아들어왔다.

“어 그래? 그럼 앤디 일은 없던걸로 할까? 그거 친분때문에 해주려고 했던건데.”

“아 진짜 다운!”

< 232화 - 비즈니스에 친분은 없는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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