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31화 (231/268)

< 231화 - 시동겁니다 >

올스타 브레이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날 다운은 글라이드, 스테이시와 함께 이번 올스타전이 열리는 시카고에 미리 도착했다. 이렇게 빨리 온 이유는 스테이시의 부모님, 할아버지와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기 떄문이었다.

“후우······.”

긴장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운을 보고 글라이드가 어깨를 툭 쳤다.

“긴장되냐?”

“당연하죠.”

“그럴때는 남자답게······.”

“지금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고요? 정말로? 어스틴이 청혼할 때 이야기를 제가 몇 번을 들었는데······.”

다운의 입에서 흑역사가 흘러나올 기미가 보이자 글라이드가 황급히 태세를 전환했다.

“크흠······. 남자라면 당연히 떨릴 수 밖에 없는 날이긴하지.”

“왜요? 어떻게 됐는데요?”

궁금해하는 스테이시에게 다운이 속삭이듯 말했다.

“궁금하면 나중에 찬장에 있는 발렌타인 꺼내서 두 잔 정도만 멕여봐.”

“다 들린다 이놈아!”

“그나저나 부모님들은요?”

“아, 부모님은 요즘 너무 바쁘셔서······.”

부모님도 꼭 오셔서 스테이시와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스케줄이 허락하질 않았다. 다운의 부모님은 한국에 돌아간 뒤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서 민박집과 그와 붙어있는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리고 7월 중순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성수기 중의 성수기다. 그러다보니 아쉽게도 만남을 오프시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국이라서 다행이야.”

한국에서는 결혼은 가족행사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결혼은 개인의 결정이 우선시되는 개인행사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결혼식 전날에 사위나 며느리, 그리고 상대 가족들을 처음 보곤 했다. 심한 경우에는 결혼식 당일에 소개받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상견례’자리가 아니라 스테이시가 자신의 부모님께 다운을 그저 소개시키는 자리일 뿐이었다.(그 와중에 할아버지 두 분이 끼어들긴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다운의 부모님이 없더라도 그렇게 실례되는 일은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다운을 좋게보고 있거든요.”

“할애비 쪽은 내가 맡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스테이시 가족과의 만남은 정말 편안한 자리였다. 특히나 스테이시의 어머니가 너무 좋아해주셨다.

“어유~ 진짜 마음이 놓인다 놓여. 난 우리 딸이 일하고 결혼해서 손주도 못 볼줄 알았거든. 거기다가 기도 세고 고집도 얼마나 센지······.”

“엄마!”

“하하! 저하고 있을때는 많이 다릅니다. 언제나 제 의견을 물어봐주고 제가 기죽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하는걸요.”

“세상에······. 누나가요? 다운. 나중에 혹시 누나의 본성에 대해 알고 싶으면······.”

“빌······?”

‘목숨이 두려우면 당장 그 입을 닥치거라.’라는 의미가 담긴 싸늘한 눈빛에 동생의 입이 닫혔다.

“난 결혼은 할 줄 알았다. 스테이시는 워낙에 예쁘니까.”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아버지. 하지만 잠시 후 그 기대도 깨졌다.

“근데 애를 낳을줄은 몰랐지. 내 딸이지만, 엄마로는 글쎄······.”

“아빠······.”

아무래도 가족들은 같은 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스테이시의 편을 들어줬다.

“우리 손녀가 어때서! 일도 잘하고, 똑 부러지고, 성격도 좋고!”

“할아버지. 누나 성격 안좋아요. 얼마나 정없고 칼같은데.”

“사업할때는 그런 칼같은 성격이 중요한거야! 그래야지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 있지!”

물론 다운의 측에도 그를 전담마크할 사람이 있었다.

“네 손녀만 최고냐? 다운은 물로보여? 어린나이에 동양인으로 에이전트로 성공했다가 양키스에서 써먹히고 버려졌는데도 얼마나 연락이 많이왔는줄 알아? 거기다가 의리도 있어! 레드삭스의 제안을 뿌리쳤다니까?”

레드삭스의 제안을 뿌리쳤던건 그냥 야구계에 혐오감이 한창 들때라서 그랬던것 뿐이다. 하지만 뭐 의리있는 이미지도 나쁘진 않다.

“거기다가 요리도 잘해, 돈도 잘······.”

벌지는 못한다. 지금도 뭐 거의 봉사활동 수준으로 일하고 있어서. 뭐 월급을 제외하고 글라이드가 투자로 재산을 열심히 불려주고 있으니 그게 월급같기는 한 느낌이다만.”

“크흠! 그리고 나 다음으로 레이스도 물려받을테니 어디가서 떨어지는 신랑감은 아니지!”

그리고 나서 아차싶었는지 한 마디를 덧붙이긴 했다.

“물론 월드시리즈에서 레이스를 우승시켜야하긴 하지만. 크흠!”

“내 손녀도 블루제이스에만 있었다면 구단주까지 갔을거라고!”

“구단주는 무슨, 아버지. 스테이시가 구단주를 했겠습니까? 그런 자리 말고 단장자리를 달라고 했을 애죠.”

“아, 그런가?”

“아빠! 할아버지!”

“얘는 좀. 조용히 하렴! 다운.”

“네 어머니.”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어? 스테이시가 그건 안가르쳐줘서.”

“아, 프로포즈는······.”

“다운! 그거 말하지마요! 나중에 내가 말할거야.”

“아하하······ 그렇다네요?”

“그거 말해주면서 또 엄마아빠 옛날 이야기 하나 털어가려고하는거지?”

“내가 누구한테 배웠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왁자지껄한 가 족같은 분위기에 다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앞으로도 자주봤으면 좋겠네.”

“토론토 올때마다 연락하고.”

“다운. 아까 말했지만 혹시 누나랑 싸우고나서 본성을 알고싶으시······. 악!”

마지막으로 스테이시의 할아버지가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레이스에서 잘리면 우리 블루제이스 단장으로······.”

“이 영감이 노망났나! 어딜 우리 애를 캐나다로 데려가려고!”

“월드시리즈 우승 못하면 잘린다며!”

“단장에서 잘리는거지! 자기 구단에서 잘리는 차기 구단주 봤어? 어?”

“아!”

생각해보니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해서 단장에서 잘리는거랑 구단을 물려받는거랑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걸 알게된 것 같기도하다.

***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는 평소와는 다르게 4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주요 행사

1일차 오전 - 사무국 주관 단장 회의

1일차 오후 - 드래프트(1, 2라운드)

2일차 오전 - 드래프트(10라운드까지)

2일차 오후 - 올스타 퓨처스 게임

3일차 오전 - 드래프트(나머지 라운드)

3일차 오후 - 홈런더비, 레전드 셀레브리티 소프트볼 게임

4일차 오전 - 팬 미팅 데이

4일차 오후 - 올스타 게임

다운은 그 스케줄의 시작을 알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아침 약속을 위해 나섰다. 바로 대런과 스칼렛과의 약속이었다.

“어제 로저스 가문이랑 만났다면서요? 어땠어요? 분위기가 이상하지는 않았어요?”

교제한지 반년 쯤 된 헬스 트레이너 여자친구랑 슬슬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아버지 눈치가 보여서 소개를 못시켜주고 있는 놈 답게 관심이 많았다. 그 인간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가문의 여식을 원할테니까.

“뭐 나쁘지 않았어. 너희 집안이랑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것 같더라.”

“하긴······. 거긴 로저스 할아버지부터가 약간 글라이드 구단주님이랑 느낌이 비슷하잖아요?”

“비슷하게 꼬장꼬장하면서도 묘하게 장난스러운 느낌이 있긴하지. 그래서 두 분이 친한게 아닐까?”

“에휴······. 우리 집안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힘내라.”

하여간 저놈도 참 힘들게 산다.

“내가 다운을 꼬시는거였는데~”

“다운이 안넘어갔을걸요?”

“그냥 아쉽다는거지.”

입맛을 다신 스칼렛이 앞에 놓인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런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희는 어떻게 하기로 정했어? 노선 확실히 정했어?”

그녀의 말에 대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 모르겠어요.”

현재 양키스는 레이스, 레드삭스, 오리올스에 이어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4위에 올라있었다.

“시즌 초반부터 선발진은 줄줄이 쓰러지고, 돌아오나 싶더니 또 이번엔 대체선발이 부상당하고, 타자들도 부진에 부진을 달리고 있고, 프랜차이즈 스타인 켈리는 재계약 안한다고 뻐팅기고 있고······.”

저 정도면 머리가 터지지 않은게 다행이다.

“앤드류는 왜 재계약 안한대?”

다운이 기억하기에 켈리는 양키스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돈 때문이래?”

“그건 아닌것 같아요. 앤드류가 돈에 연연하지 않는 스타일인건 알잖아요.”

“연연하지 않는건 아니지. 다만 벌고있는 돈에 대해서 만족하는 스타일이지.”

“자세한 이유를 물어봐도 그저 웃기만 하고 말해주지는 않아요. 다운이 나중에 한 번 이야기해봐주면 안돼요?”

그의 말에 다운이 씨익 웃었다.

“공짜로는 안되지.”

“젠장······. 뭘 원해요?”

“롭 맨브로스키에 관심이 있는데······.”

맨브로스키는 이번 시즌 양키스의 1루를 책임지고 있는 32살의 1루수였다. 지난 시즌에 엄청난 부진 끝에 브루어스에서 방출당했지만, 양키스와 단년 계약을 맺는 이번 시즌 0.265의 타율에 전반기에만 17개의 홈런을 때리면서 펄펄 날라다니고 있었다. 만약 레이스에 오게 된다면 극도로 부진하는 흘로첵을 대신해서 1루수 자리의 파괴력을 올려줄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이었다. 게다가 올 시즌 연봉도 고작해야 200만 달러. 그 중 절반은 이미 양키스에서 수령했으니 레이스가 책임져야 할 금액은 1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다운의 말에 대런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엿이나 먹어요 다운.”

“왜? 너희 시즌 포기한거 아냐?”

“아직 오리올스랑 세 경기, 레드삭스랑은 다섯 경기 차이밖에 안나거든요?”

“그리고 트레이드로 유망주를 벌어들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2주가 남았지.”

“2주면 아직 반등할 수 있다고요.”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내긴 했지만, 양키스가 원하는건 단발성 우승이 아니었다. 과거처럼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러다보니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운. 그러면 저희 지오반니 페레즈는 어때요?”

다운이 여기 세 명이 모인 자리에서 맨브로스키 이야기를 꺼낸 이유도 여기있었다. 디백스의 1루수인 페레즈도 꽤나 입맛당기는 친구였으니까. 트레이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분명히 스칼렛도 미끼를 물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운은 아무것도 모른다는듯 되물었다.

“페레즈를 판다고?”

페레즈는 풀타임 1년차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선수로 아직까지 4년 반을 더 쓸 수 있는 선수였다. 페레즈는 이번 시즌 0.277의 타율에 15홈런, 15도루를 기록하면서 호타준족형 1루수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의 나이.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는 디백스에서는 1루를 채울만한 선수가 마땅치 않아서 25세의 노망주였던 그를 그냥 올려서 썼을 뿐인데 저렇게 잘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활약은 그저 플루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다운이 보기에는 플루크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헤메고 있는 흘로첵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존이 명확하고 선구안이 좋았다. 흘로첵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브래넌 스타일이고, 페레즈는 다운그레이드 된 버전의 마르코 루이스 같은 느낌이었다. 저런 스타일은 자신의 눈을 믿고 정착하는 것이 오래걸리지, 쉽사리 몰락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물론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달랐다.

“페레즈는 너무 증명이 덜된거 아냐?”

다운의 입이 슬슬 시동을 걸었다.

< 231화 - 시동겁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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