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 올스타전을 앞두고(2) >
못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든 로벨이 화면에 누군가의 리포트를 띄웠다.
“알렉시 파로. 고졸이고 좌완이야.”
“저번 리포트에서는 없었던 친군데?”
“그야 이번에 추가된 놈이니까.”
지난번 리포트와는 2주의 텀이 있었다. 그 사이에 새로이 추가됐다는 말이다. 계속하라는 다운의 손짓에 로벨이 설명을 이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3마일, 선발로 던질때 평균적인 구속은 90~91마일 정도야.”
“확 눈에 띌 정도는 아니네.”
“그랬다면 우리한테까지 순번이 절대 안왔겠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레이더에 없었던거고.”
“이름을 보니까 프랑스 계열인 것 같은데?”
“맞아. 퀘벡 출신이야.”
“캐나다 퀘벡?”
“어.”
불과 2주전까지만해도 레이더에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푸에르토리코, 캐나다 국적이어야한다. 캐나다도 스카우트 팀의 커버 범위안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캐나다를 담당하는 대부분의 스카우트들은 서부에 위치한 밴쿠버를 중심으로 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위주로 돌아본다. 다른 주에 비해서 야구의 인기가 있는 편이다보니 해당 지역에서 나온 선수들의 경쟁력이 좋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서 퀘벡은 정말로 쓸만한 선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아마추어 풀이 받는 평가가 뉴저지 주와 비슷한 수준이니, 퀘벡주가 받는 평가는 그보다 훨씬 이하라는 뜻이었다.
“퀘벡 출신이 조니 로벨의 눈길을 뺏었다고?”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퀘벡 출신의 메이저리거는 단 29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만큼 퀘벡 주의 아마추어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엄청나게 특출나지 않다면 주목을 받기조차 힘들다는 것이었다.
“어떤 점이 눈길을 끌었을까?”
당장 투구영상에서 특별한 점은 보이질 않는다. 정말로 특이한 점이라면 그 학교의 수비들이 엄청나게 못한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퀘벡에서 엄청난 뉴스가 나왔어. 22대 1이라는 엄청난 점수차로 패배한 경기였지.”
“콜드였겠네.”
“맞아.”
“저 투수가 그 경기에서 던졌을거고, 거기서 몇 실점을 했지?”
“17점을 내줬어.”
로벨의 말에 듣고있던 파트장들의 얼굴에 흥미가 올라왔다. 다들 로벨이 그런 엄청난 패전투수를 추천할 것 같지는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책점은?”
거스의 말에 로벨이 씨익 웃었다.
“0점요.”
자책점이 0점이라는건 모두 수비의 실책이었다는 것이다.
“굉장한데? 그 상황에서 던질 수 있다고?”
자신의 탓도 아닌데 마운드에서 17점이나 내주고 내려와야한다?
그런 상황이라면 투수가 마운드에서 글러브를 던지고 내려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주목한것도 그 점이야. 17점이나 내주는 동안 자책점은 0점. 게다가 3이닝을 93구로 끊고 내려왔어. 그러면서 팀원들에게 화를 내기는 커녕 계속해서 파이팅을 외쳤어. 게다가 덤덤하게 던지는 공은 제구조차 흔들리지 않았어.”
“마인드가 미친건가?”
그 정도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로봇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알아봤더니 꽤 사연이 기구했어. 원래는 우완이었는데, 교통사고로 팔을 다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지. 바로 오른팔에는 힘줄이 붙어있지 않다는 것.”
“무슨 디키냐?”
심지어 둘 다 캐나다 출신이다.
“실제로 디키가 너클볼을 전수해줄 수 있다며 연락도 왔다는데, 파로는 다른걸 택했지. 바로 좌완으로의 전환했어.”
“왼팔에는 힘줄이 있었나보네.”
“오른팔에만 없었대. 토미존을 하더라도 양 다리에 있는걸 쓸 수는 있다는거지.”
잔인한 말일수도 있지만, 드래프트 하는 입장에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1년만에 마운드에 설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는데 문제는 그걸 고등학교에서는 결격사유로 본거지. 당시에는 최고구속이 73마일밖에 안나왔거든.”
학교 야구부는 그저 학생들이 웃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공간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학교도 있겠지만, 적어도 프로를 노리는 학생들이 있는 야구부는 재활하는 선수를, 그것도 우완에서 좌완으로 완벽히 전환한 선수를 스카웃할만큼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야구부의 성적이 곧 학교의 이미지와 경쟁력이었으니까.
“야구 팀이 허약한 곳으로 진학할 수 밖에 없었던 파로는 1년의 시간을 더 보내고나서야 최고 80마일 중반대의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어. 문제는 그 팀이 더럽게 약했다는거지.”
“실책이 17개라니. 그 정도면 프로지망하는 애들은 없겠네.”
“없었지. 다들 취미로 야구 조금 하는 수준이었대. 대부분의 포지션은 아이스하키 팀에 있는 친구들이 파로의 부탁에 나와서 채워준거래. 그래서 파로 역시 별다른 말을 안한거고. 프로를 지망하는 자신의 입장을 저 애들한테 똑같이 대입할 수는 없었다는거야.”
“어린 나이에 성숙했네.”
“그만한 역경은 겪었으니까. 여하튼 지난 시즌에 나한테 꽤 눈도장을 찍었단 말이지. 그런데 걔가 이번 시즌에는 그런 기록적인 뉴스는 안내보내고 아주 평범하게 패배해서 떨어졌다더라고.”
“호오?”
평범하게 져서 떨어졌다는건 곧 팀의 수준이 올랐고, 파로의 수준 역시 올랐다는 것을 뜻했다. 영상에서 봤던것처럼 투구폼이 평범한 좌완은 80마일 중반의 패스트볼로는 수많은 고교야구 타자들의 배트를 회피할 수 없다. 아마 최고 93마일로 구속이 오른것이 큰 몫을 차지했을거다.
“지난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10cm정도 키가 자라면서 구속이 93마일까지 올라왔어. 그러면서도 제구력은 잃지 않았더라. 손끝의 감각도 꽤 좋아. 배운지 얼마 안된 슬라이더도 완벽하게 제구해내고 있고, 커브나 체인지업도 곧잘 던지더라.”
“그럼에도 네 보고서에 없었던 이유는?”
“걔는 대학갈줄 알았지. 거기다 걔 아이스하키 팀 에이스야. 걔 데리고가려고 나온 대학 스카우트들이 줄을 섰다고. 심지어 프로 스카우트들도 보러 온다더라. 그런 상황에서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렸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로벨의 말에 가만히 듣고있던 클라인이 한 마디했다.
“미친놈인가?”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는 전 국민적으로 인기있는 스포츠다.
야구?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가 재미없다고 까는 사람은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도시전설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 스포츠를 버리고 야구로 온다? 캐나다인이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우린 미친놈을 좋아하죠. 장점 말해봐.”
“만약 야구에만 전념했다면 1라운더 급 잠재력은 가지고 있어.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겨울에는 아이스하키 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시느라 발전이 생각보다 느렸어. 그럼에도 좌완으로 최고 95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도록 성장했다는건 인정할만한 재능이라는거지. 투구폼은 깔끔하고 제구도 좋아. 무엇보다 높게 평가하는건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고 자기 공을 존 안으로 욱여넣을 수 있는 그 멘탈과 배포. 난 진짜 크다고 본다.”
당연한 이야기다. 모든 프로스포츠, 아니 세상에 모든 일에 흔들리지 않는 멘탈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멘탈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을때의 회복이라던가, 성공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당장에 레이스 팜만 봐도 그렇다. 상위권 픽이라고 생각하고 데려왔던 코너 재머는 한국에서 뛰고 있는다. 그런데 그보다 늦게 뽑고 평가도 떨어지던 스탠하우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뛰고 있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멘탈이 강인하다는건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요소다.
“단점은?”
“디셉션. 아까 영상에서 봤겠지만, 투구폼은 엄청 예쁘고 깔끔해. 적어도 투구폼으로 인한 부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유연한 폼이지. 하지만 그런만큼 디셉션이 너무 안좋아. 개인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17실점을 했던 그 경기에서도 디셉션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 이번 시즌에도 바뀐건 없는데, 그저 공이 조금 더 압도적이게 되어서 그 단점이 눈에 띄지 않은거야.”
“디셉션 부분을 건들게 되면 전체적인 투구밸런스가 흐트러질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나?”
“맞아요. 그 부분도 단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잘 건들면 좋아질 가능성이 눈에 띄게 보이는 놈이지만, 하나라도 잘못건들면 나락을 갈 위험성도 존재하죠. 무엇보다 이 친구는 원래 좌완이 아니었잖아요?”
원래 오른손잡이인 우완이 투구폼을 바꿀 때에는 이질감을 빠르게 지울 수 있다. 어차피 오른팔을 가동하던 그 범위 내에서 투구폼을 조정하는거니까. 하지만 오른손잡이인 좌완이라면 투구폼을 바꿀 때 이질감을 지우는데 시간이 조금 더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좋았던 투구밸런스를 완벽하게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육성팀이라면 큰 혼란없이 디셉션까지 추가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로벨의 도발적인 말에 거스가 코웃음을 쳤다.
“저놈보다 더 심한 놈도 고쳐봤어. 본인이 할 마음만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로벨은 거스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했다.
“거스가 저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거스?”
다운의 말에 거스가 영상을 이리저리 돌렸다.
“이 친구 유연하지?”
“꽤 유연해요. 우리 측정 기준으로 A 정도는 되더라고요.”
“그러면 디셉션을 추가하는건 큰 문제가 없는것 같은데? 저 상태에서 초기에 팔만 더 뒤로 빼면 돼.”
“그러면 부상 위험도가 증가하지 않을까요? 가리는게 유효해질 정도로 팔을 뒤로 빼면 위험할수도 있는데?”
“우리 팀 기준으로 유연성이 A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게다가 지금 키가 몇이지?”
“지난 주 측정 기준으로 188cm죠.”
“1년 전 영상도 있지?”
“바로 전 파일 클릭하면 돼요.”
또 한동안 영상을 돌려보던 거스가 화면을 두 번 캡쳐했다.
“1년 새에 10cm가 컸는데도 릴리즈 포인트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폼을 유지하는 능력도 뛰어나네요. 자기 몸을 컨트롤해서 적용하는 능력이 꽤 좋은 것 같습니다. 디셉션을 위해서 폼을 조금 바꾸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겠네요. 그리고 큰 키에 비해서 근육량도 부족한 것 같은데, 벌크업을 조금 더 하면 구속이 2~3마일까지는 더 오를 가능성도 있어보이네요.”
“앞선 세 명에 비해서는 어때보여요?”
“솔직히 말해서 브론슨보다는 나아보입니다.”
“브론슨은 사이즈가 좀 걸리긴 하지.”
“분명 몇 년 안있다가 부상당할것 같은데.”
다운 역시 같은 평가였다. 물론 모든 선수에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강속구 투수는 사이즈가 중요하다는데 한 표를 던졌다.
“하지만 세스페데스나 에르난데스보다 좋다는 이야기는 못하겠네요.”
어차피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다. 드래프트 장이란 예측불허의 장소였으니까.
“조니. 이 세 명 정보 다시 한 번 취합하고, 상위권 픽들에 대한 정보도 놓지 마.”
“예스 마스터!”
그렇게 올스타 브레이크가 다가왔다.
< 230화 - 올스타전을 앞두고(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