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올스타전을 앞두고 >
“600호 홈런볼을 선뜻 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안넘겨주셨으면 배리 울었을걸?”
“무슨 소리야! 배리라면 주먹으로 뺏어왔을지······. 아 왜요!”
“헛소리말고 사인이나 해드려.”
레이스 선수단에게 둘러쌓여서 사인세례를 받은데다가 서머스가 운전하는 차로(서머스의 집이 하필 두 사람 근처였다) 귀가까지 해결된 두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그 중 한 사람은 심히 불편해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글라이드 파크를 떠났다.
“600호 홈런볼은 어쩌게?”
“저 커플이 원한대로 해야지.”
저 커플은 600호 홈런볼을 페퍼 여사님께 드리려고 했다.
“가시는 길 한 손에 쥐여드리려고.”
“600호 홈런볼이라고 적지는 말고. 나중에 도굴당할지도 몰라.”
“600호로는 어림도 없지 않을까? 700호였으면 가능성이 있었을텐데.”
농담을 농담으로 받은 브래넌에게 다운이 진지하게 물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기념비적인거잖아.”
하지만 브래넌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에게 기념비적인 홈런볼은 인생에 딱 세 개야.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때려낸 홈런볼, 내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 데뷔 첫 홈런볼, 그리고 내 커리어의 마지막으로 때려낸 홈런볼까지.”
“두 개는 네 진열장에서 본 것 같은데, 마지막 하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 않아?”
“그러니 네가 앞으로도 열심히 주워와야지. 어떤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잖아?”
브래넌의 말에 다운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거 빌어먹을 놈이네?”
“그걸 지금 알았어? 앞으로 열심히 하도록 해. 안그러면 핀스트라이프 모자 쓰고 명전 들어간다?”
“얼씨구? 확정적인것처럼 말하는데?”
“지금 은퇴해도 확정이야 자식아! 그러니까 알아 모셔!”
“네네. 그러도록 하죠.”
어깨를 으쓱이는 다운의 어깨를 툭툭 친 브래넌이 라커룸에 있는 짐을 들어올렸다.
“고맙다.”
다운의 귀에 분명하게 틀어박히는 소리. 다운은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다시 물었다.
“뭐라고?”
돌아온 것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운 브래넌의 뒷모습뿐이었다.
하여간 생긴거랑 다르게 부끄럼쟁이다.
***
7월 초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투표결과가 발표되었다.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C - 사무엘 비어만 - TBR
1B - 제이든 화이트 - TEX
2B - 로버트 거스리 - CLE
3B - 빈스 카브레라 - BOS
SS - 앤드류 켈리 - NYY
OF - 마이크 토켈슨 - LAA
OF - 마르코 루이스 - TBR
OF - 알렉스 스프라우트 - TBR
DH - 배리 브래넌 - TBR
레이스는 투표에서 무려 네 명의 선수가 1위를 차지하며 당당하게 올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을 제외하고도 제수스 로드리고, 알버트 서머스, 네이선 드레이크가 감독추천으로 초청을 받았다.
투표를 하지 않는 투수들 중에서는 조나 파인트, 진성찬, 리키 더지, 라일리 제이콥스, 찰리 제프리스가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레이스 역대 최고기록 아닙니까?”
투표 1위 네 명, 초청 세 명, 투수 다섯 명.
총 12명이나 올스타로 선정된 것이다.
“안그래도 구단주님 입이 귀까지 올라갔어요.”
“좋아하실만도 하죠. 저번에는 8명이나 됐다고 넘어가시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무려 12명 아닙니까!”
“발표되자마자 바로 뛰어가시더라고요.”
“보나마나 피규어 주문해야한다고 날아가셨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근데 정말로 스프가 올스타 투표에 올라갈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스프라우트는 직전투표까지 매리너스의 페르난도 로드리게스에게 4835표 차이로 뒤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주차에 로드리게스보다 딱 25표를 더 얻어내면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지난 주에 10홈런 몰아친게 컸죠.”
마지막 주에 7경기에서 10개의 홈런을 몰아치면서 총 3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아메리칸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선게 컸다. 그 결과는 명예로운 올스타로 돌아왔다.
“이번에 홈런 더비는 어떻게 한답니까?”
아메리칸리그 홈런 1위인 스프라우트를 포함해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으며 커리어 통산 600홈런을 달성한 브래넌, 19개로 아메리칸리그 2루수 홈런 1위에 올라있는 제수스 로드리고에게까지 홈런 더비 초청이 왔다.
“제수스는 거절한다고했어요. 그리고 스프와 배리는 참가할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로드리고는 올 시즌을 마치고 FA를 선언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페이스를 유지하는게 중요하지, 홈런더비에 나가서 파워를 뽐내는건 중요하지 않았다. 스프라우트는 그냥 때리라고 공을 주면 툭 갖다대기만해도 담장을 넘길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없이 참가하는 것 같았다. 브래넌의 경우는 원래 홈런더비는 참가하지 않는 주의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기 때문에 참가결정을 내렸다.
“그래서말인데 배리가 한 가지 요청을 했어요.”
브래넌이 요청한 건 특별한 건 아니었다. 자신이 홈런더비에서 때릴 공에 특수한 프린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올스타 기간동안에 만약 관중분들이 그 공을 가지고 레이스 헤드쿼터를 찾으면 자신의 사인 유니폼으로 교환해줄 수 있게 해달라더군요.”
“좋은 취지네요.”
“저도 그래서 바로 수락했습니다.”
“그럼 교환부스를 하나 마련해야겠네요. 사무국측과 협력해서 부스 하나 받아놓겠습니다.”
올스타전과 관련된 내용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스카우트 팀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인 드래프트였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일자가 6월에서 7월로 미뤄진 것은 이번시즌부터 소소하게 바뀐 메이저리그 규정 중 하나였다.
원래 열리던 6월은 아마추어 야구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컬리지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기간과 겹치곤 했다. 그러다보니 상위지명이 예상되는 드래프티는 월드시리즈와 드래프트 초청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물론 대부분의 선수들은 전자를 택했다. 아무리 지명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구단의 선택을 기다려야만 하는 입장이다. 정장을 걸치고 그런 곳에 있을 바에는 몇 년간 함께해온 동료들과 함께 컬리지 월드시리즈에 나가는 것이 훨씬 익사이팅했다. 게다가 그런 선수들은 워크에식이나 팀워크에서도 가산점을 받곤했으니 드래프트 초청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무국에서는 선수들이 더 편하게 참가할 수도 있고, 사람들의 관심도 조금이라도 모을 수 있는 7월을 선택한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도 7월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에 드래프트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우선 드래프티들을 조금 더 꼬실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대부분의 드래프티들은 드래프트 방송 초청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가서 1라운드에서 뽑히지 못하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말 1라운드가 확실할 경우나, 스튜디오가 근처에 있는 뉴저지 주 근처에 있는 선수들의 경우에만 초청을 수락하곤 했다.
하지만 올스타전이라면?
차기에 메이저리거가 되고싶은 선수 중에서 올스타전 티켓을 들고 흔들면 넘어오지 않을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거기다가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들과 만남까지 가질 수 있게 해준다면?
단언컨대 그 초대를 거절할 수 있는 꼬맹이는 없을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드래프트가 끝난 뒤, 올스타전에 앞서서 이 자리에 초청을 수락한 1라운더들은 관중들 앞에서 자신을 뽑아준 팀의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시구와 시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예정이었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설 수 있다는 점은 어린 선수들에게는 추가적으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장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드래프트는 6월에서 7월로, 그것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중으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구단들도 선수들을 확인할 시간을 한 달 더 벌 수 있게 되었다.
“데니스 윈터스는 어땠어요?”
윈터스는 레이스가 주시하고 있었던 대학 타자로, 파워는 뛰어나지 않지만 컨택이 굉장히 뛰어나서 대학 2년간의 통산 타율이 5할에 육박하는 선수였다. 게다가 중견수라는 포지션에 맞는 빠른 발과 넓은 수비 커버리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투수에 집중하기로 했지만, 현 시점에서 눈에 띌만한 외야수가 없는 레이스 팜에서는 꽤 노려볼만한 선수였다. 게다가 탬파 로컬 보이다보니 1라운드 픽으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별롭니다. 이번에 컬리지 월드시리즈에서 약점이 너무 적나라하게 밝혀졌어요.”
“변화구 대처를 아예 못하던데? 그동안은 어떻게 커버친거야?”
“느린 변화구에만 대처를 못해요. 패스트볼 계열 변화구들은 대부분 기가막히게 치거든요. 근데 80마일 이하의 변화구에는 이상하리만치 반응을 못하더라고요.”
“정확히는 95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뿌리는 투구가 던지는 80마일 이하 변화구에 반응을 못해. 지금까지 만나왔던 투수들이 대부분 패스트볼, 슬라이더 투피치 투수였어. 많아봤자 체인지업이나 던지는 놈들이었지.”
슬라이더는 보통 80마일 후반대, 95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들의 체인지업은 80마일 초반대다. 95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들은 보통 이 세 개의 구종 내에서 논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런데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최대 97마일과 함께 70마일 후반대의 커브를 던지는 투수가 나타났다. 불모지라고 불리는 이번 드래프트 최대어 중 하나인 올리 젠슨이 말이다.
“그저 경험치가 없어서 그런거 아냐?”
“아냐. 그런거라고 하기에는 아예 갈피를 못 잡는 느낌이었어. 눈과 손의 협응력이 좋아서 보고 때리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놈이 고작 20마일 차이에 허덕대면 어쩌자는건지······.”
로벨이 저런 평가를 내렸다면 더 이상 의논할 가치가 없었다.
“그럼 패스하고 투수들에 대해서 이야기나 해보자.”
“뭐 투수들은 똑같지. 우리 픽까지 올 수 있는 투수들 중에서 괜찮은 애들은 잭 브론슨, 카를로스 세스페데스, 넬슨 에르난데스 정도지.”
브론슨은 고졸 우완투수로 최대 100마일의 공을 뿌릴 수 있는 투수다. 최대 100마일의 공을 비롯해서 92마일짜리 슬라이더와 85마일짜리 커브도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182cm에 불과한 그의 사이즈 때문에 드래프트 하위 픽으로 예상되는 선수였다.
세스페데스는 브론슨과는 완벽하게 반대였다. 고졸 좌완으로 197cm에 95kg이라는 당당한 근육질의 체구를 가지고 있는 그는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90마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투수 키우는 노하우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육성팀과 스카우트 팀의 분석 결과, 딜리버리를 개선하면 최소 2마일, 최대 5마일까지의 구속상승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리포트가 올라왔었다.
마지막으로 에르난데스 같은 경우는 쿠바에서 이주해온 이주민 2세였다. 고졸 우완으로 최고 97마일의 공을 뿌릴 수 있는 그의 단점은 변화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다른 변화구의 구사라던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에르난데스는 변화구를 아예 구사할 줄 몰랐다. 아직 야구를 시작한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규경기에서 보크도 네 번이나 기록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이해도는 없지만, 발전가능성만큼은 레이스가 뽑을 가능성이 있는 드래프티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선수였다.
심드렁하게 세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로벨의 표정에서 다운은 뭔가를 읽었다.
“빨리 말해.”
다운의 말에 로벨이 시치미를 뗐다.
“뭘?”
“너 지금 누구 하나 마음에 두고 있는 놈 있잖아. 누구야?”
< 229화 - 올스타전을 앞두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