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그녀를 위해서(3) >
브래넌의 배트가 야구공을 때리는 그 순간,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직감했다.
- 600홈런입니다! 600홈런입니다!
몇 초 뒤 하늘 높이 솟았던 공이 좌측 담장을 넘어서 관중석에 틀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조용했던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 오늘부로 메이저리그 역대 홈런 순위 10위까지 전부 60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로 채워졌습니다!
배~리 브래넌!
배~리 브래넌!
- 글라이드 파크는 온통 배리 브래넌의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 하하! 저기 저 사람 보세요! 들고있던 D-1 패널을 집어던졌습니다!
- 이제 필요없다 그거죠 하하하! 아, 그런데 배리는 생각보다 기쁘지 않은 모양입니다.
599홈런을 때릴때도 무심했던 브래넌의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 페퍼 여사님이 딱 오늘 경기까지만 보고 가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아마 배리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베이스를 돌면서 눈물을 훔친 브래넌은 홈을 밟은 뒤 가슴을 두 번 치고 페퍼 여사님의 비어있는 좌석을 향해 검지를 뻗었다.
- 보셨습니까? 제가 해냈습니다!
- 가슴이 뭉클하네요.
더그아웃에서도 기념비적인 600호 홈런을 때리고 돌아온 브래넌에게 격렬하게 환호하며 하이파이브를 날리는 대신 한 사람씩 다가가서 브래넌을 안아 토닥여줬다.
“수고했어요 배리.”
“멋진 홈런이었어요.”
“아마 여사님도 잘 보셨을거야.”
캐시 역시 그의 등을 토닥여주며 물었다.
“교체해줄까?”
감정적으로 북받쳐 있는 상황이면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이미 오늘 2타수 2안타 2홈런을 때려낸 브래넌이라면 그 역할을 다했다. 그가 교체된다 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브래넌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닙니다. 몸에 이상도 없는데 프로선수가 그냥 쉴 수는 없죠.”
캐시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 웃으며 밖을 가리켰다.
“그럼 팬분들에게 손이나 한 번 흔들어주고 와. 네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거다.”
보통 이런 역사적인 일을 했을때는 커튼콜을 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브래넌은 더그아웃 밖으로 살짝 몸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를 본 관중들이 다시 한 번 환호성을 퍼부었다.
와아아아아아!
관중석을 한 번 쭉 훑으며 손을 흔들어준 브래넌의 마지막 시선은 페퍼 여사님의 빈 자리에 내려앉았다.
‘보셨죠? 해냈습니다 제가.’
여사님의 남은 소원은 이제 하나일거다.
월드시리즈 우승.
‘내 마지막 시즌.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렇게 브래넌은 다짐했다.
***
브래넌이 홈런을 때리는 그 순간부터 다운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홈런볼 잡은사람 모셔와.”
저 홈런볼은 레이스는 물론이고 브래넌 개인에게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결코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게 놔둘수는 없었다.
잠시 후 브래넌의 600호 홈런볼을 잡은, 정확히는 주운 사람과 그 일행이 접객실로 모셔져왔다.
“난데없이 모셨는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스 단장인 다운입니다.”
다운의 정중한 인사에 600호 홈런볼의 주인공인 커플은 내밀어진 손을 맞잡으며 황송해했다.
“이게 바로 그 마이더스의 손······.”
“네?”
“아얏!”
이유모를 소리를 하는 남자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은 여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
“호호! 아무것도 아니에요! 페니입니다! 대니?”
“으으······. 대니입니다.”
남자는 꼬집힌 부위를 문지르며 쥐고있던 홈런볼을 내밀었다.
“이거 때문에 부르신거죠?”
“네. 그렇습니다. 저희에게 홈런볼을 넘겨주신다면 들어드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들어드리겠······.”
“괜찮아요. 그냥 드릴게요.”
“······습니, 네? 뭐라고요?”
순간 다운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그냥 드린다고요.”
벙쪄있는 다운을 향해 대니라는 남자가 이유를 설명했다.
“저희는 원래 시즌권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것도 저쪽에 있는 테이블석의 시즌권 말이죠.”
“그런데 왜 외야에······.”
아니다. 질문이 잘못됐다.
브래넌의 600홈런이 다가오면서 글라이드 파크에서 가장 인기있는 좌석은 외야석이 되었다. 아마 이들도 홈런볼을 노리기 위해서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야로 나가셨다는 건 홈런볼에 관심이 있어서 나가신거 아닙니까?”
“물론 그렇죠. 하지만 저희가 홈런볼을 잡으려고 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어요. 페퍼 여사님에게 그 공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페퍼 여사님과 어떤 관계신지······?”
이번 질문에는 여자가 답했다.
“지난번 찬의 퍼펙트게임 행사때 여사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거든요. 그때가 인연이 되어서 세 명이서 자주 앉았어요. 그때 이 남자에게 넘어갔죠.”
“여사님이 아니었다면 페니하고 대화할 건덕지도 없었을거에요. 여사님이 저흴 이어준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여사님한테 보답하고 싶었어요. 여사님은 다른 선물같은건 이미 집에 있다며 전혀 받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여사님께 이 홈런볼을 잡아서 선물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그걸 저희에게 주시는겁니까?”
“그야 여사님은 브래넌에게 이 공이 가길 원했을테니까요.”
“그게 여사님의 행복이자 기쁨 중 하나였거든요.”
다운은 두 사람의 마음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그럼 감사히 이 공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보답없이 그냥 받을 수는 없죠. 우선 원하시는 선수와 만나서 직접 사진찍과 사인을 받을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사인을 받을 유니폼과 사인볼 같은 것들도 저희 측에서 전부 제공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선수단 전원과도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구단주님께 말씀드려서 이번에 600홈런 기념 피규어가 새로 나왔거든요? 그것도 하나씩 챙겨드리도록하죠. 마지막으로 다음 시즌 시즌권 하나씩을 제 재량으로 선물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 시즌권요?”
“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자리에 우선권을 가질 수 있는 시즌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실 것 까지는······.”
“배리의 600호 홈런볼이 만약에 시중에 나갔더라면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을겁니다. 오히려 이 정도밖에 해드릴 수가 없다는 점이 죄송스럽네요. 우선은 이곳에서 경기를 즐기고 계시다가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먹을거나 마실것도 원하신다면 오늘에 한해서 무제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선수의 지인이나 오늘처럼 특별한 경우,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드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접객실에서는 경기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게다가 옆에 큰 TV도 있어서 중계화면도 잘 보인다. 경기를 관람하기에는 최적의 장소.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희는 이런 곳에서 경기를 보고싶지는 않아요.”
“맞아요. 이런 곳에서 소파에 편히 앉아서 경기를 볼 생각이었다면 집에서 중계를 봤겠죠. 저희는 저기서 소리치고 있는 저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경기를 보고 싶어요.”
자신과 프런트가 만들어낸 분위기를 한껏 즐겨주는 그들을 보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좋습니다. 원하시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경기가 마칠 때 쯤에 저희 직원이 다시 가서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주면 감사할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직접 만나길 원하시는 선수가 있을까요?”
다운의 말에 페니가 눈을 반짝였다.
“알버트 서머스요!”
아무래도 서머스의 광팬인 모양이다.
“다 만나뵙고싶긴한데, 그러면 너무 폐가 될 것 같아서······.”
“전혀 아닙니다. 다들 흔쾌히 수락할겁니다.”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있는 선수들이라면 브래넌을 위해서 이정도는 흔쾌히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다 기다리면 오늘 귀가가······.”
“저희가 모셔다 드릴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귀가까지 완벽하게 책임진다고하자 두 사람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그럼 선수단 전원에게 사인받고 사진도 찍을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그들을 보낸 다운은 곧바로 글라이드를 찾아갔다.
“어스틴. 피규어 두 개만 주세요.”
“응?”
“배리 600호 홈런볼 건져낸 사람한테 줘야해요.”
“근데 왜 두 개야?”
“커플이거든요. 페퍼 여사님이 이어준 커플이래요. 그래서 그 정도로 흔쾌히 넘긴거고요. 그래서 넘버링은 제일 낮은걸로 가져갈게요. 가져갑니다~”
“야 그거 6개만 제작한, 아니 그거 그래도 이벤트로 뿌릴······.”
“그 이벤트로 받아갔다고 생각하자고요!”
글라이드에게서 피규어 두 개를 강탈한 다운은 프레슬리를 불렀다.
“댄. 이거 포장 잘해줘. 그리고 스토어에 가서 우리 1군 선수들 마킹된 유니폼 싹 두 개씩 가져와. 사인볼용 공도 들고오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시즌권 다음시즌까지 연장해줘.”
“앤디한테 뭐라고 말할까요?”
“이벤트 지출? 알아서 말해.”
다운의 말에 프레슬리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아니 단장님······. 그렇게 말하면 앤디가······.”
“그런 것도 이제는 이겨낼 수 있어야지.”
근엄한 표정으로 프레슬리의 어깨를 툭툭 쳐준 다운은 순식간에 그와 멀어졌다.
“그럼 난 라커룸으로 가볼테니까 부탁한다!”
다운이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이,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어서 어느새 8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더그아웃 뒤의 문으로 가자 경기장 안의 팬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들린다. 하지만 다들 중구난방이다.
‘우리도 부산갈매기 같은 노래 하나 지정하거나 만들어야겠어.’
팬들이 합심해서 합창할 수 있는 노래가 하나 있다면 선수들에게는 더 큰 힘이, 상대팀에게는 압박감을, 그리고 팬들에게는 놀고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만들어질것이다.
‘올라가면 바로 카를한테 알아보라고 해야겠네.’
아마 카를은 일이 생겼다며 기뻐할것이다.
“행님 무슨 일이세요? 보스 불러드릴까요?”
언제 왔는지 진성찬이 옆에 들러붙었다.
“아냐. 분위기는 어때?”
“뭐 좋죠. 600홈런도 때렸고, 뭐 중간에 배리가 조금 울긴 했는데 괜찮아졌어요. 배리 불러드릴까요?”
“어. 잠시만 불러줘.”
잠시 후 진성찬이 배리와 함께 돌아왔다.
“홈런볼 잡은사람 찾았어.”
“그래? 넘겨준대?”
“흔쾌히 넘겨주신다더라.”
“그래?”
브래넌도 홈런볼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브래넌의 600호 홈런볼은 그 가치가 엄청나다. 현역 통산 홈런순위 2위에 올라있는 마이크 토켈슨이 이제 350개를 간신히 넘었다는걸 생각하면,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볼 수 없는 기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공을 넘겨준다니!
“여사님이랑도 꽤 친한 커플들이야. 여사님이 이어주신거라더라. 여사님한테 드리려고 했는데 만약 여사님이 그 공을 받았다면 너한테 꼭 줬을거라더라.”
“아······.”
다시 그녀 생각이 났는지 분위기가 먹먹해졌다. 다운은 그런 브래넌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운. 600호 홈런볼은 내가 가져도 될까?”
저런 기념비적인 홈런볼은 구단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는 경우도 잦았다. 물론 선수가 원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물론이지. 그 홈런볼은 네가 이루어낸 성과이자 네 몫이야. 네가 그 공을 팔아먹든, 쓰레기통에 버리든 우린 네 결정은 100% 지지해.”
“고마워.”
홀가분해진 브래넌의 표정을 보니 그렇게 말하길 잘한 것 같았다.
“별말씀을. 여튼 그 커플은 선수단 전원 사인받고 사진도 찍고싶으시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당장 애들한테 말해야겠다!”
브래넌은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옆에 있던 진성찬이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저렇게 안해도 다들 해줄텐데.”
“그게 찬의 매력이지. 그것말고 보상은?”
“구단주님한테 600홈런 피규어 두 개, 그리고 구단 차원에서 다음 시즌 시즌권 두 장.”
“그것만 받고 오케이 하신거야?”
“어.”
“만나서 잘해드려야겠네.”
“준비해놓을테니 경기 마치고 샤워끝나면 애들하고 와.”
“오케이.”
< 228화 - 그녀를 위해서(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