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26화 (226/268)

< 226화 - 그녀를 위해서 >

트윈스와의 홈 2차전이 열리는 날 아침.

삐비비비비빅!

다운의 업무용 폰이 울렸다.

“자기. 전화와.”

“음······. 몇 시야?”

“내가 곧 출근해야할 시간?”

스테이시의 출근시간은 10시까지. 그렇다는건 지금 시간은

“8시 쯤?”

“땡! 8시 10분. 어서 받아요! 눈 뜨시고!”

경기 종료 후 첫 홈런을 때린 스탠하우스를 축하해주는 조촐한 파티(라고는 하지만 거진 식사자리에 케잌만 자르는 것이 전부였다)를 한 뒤 집에 돌아온 것이 새벽 한 시였다.

그리고 또 바로 잤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다운은 스테이시와 함께 곧 다가올 부모님 인사와 결혼식 관련 이야기로 새벽 세 시까지 잡혀있었다. 만약 시즌 중 단장의 정식 출근시간이 점심시간 이후인 2시(물론 다운은 그보다 항상 일찍 출근하곤 했다)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스케줄이다. 스테이시는 어떻게 저렇게 쌩쌩하냐고? 당연히 5시에 퇴근해서 미리 조금 자놨으니까 쌩쌩한거다.

무거운 눈꺼풀을 결국 들어올리지 못한 다운은 손을 더듬어 전화를 받았다.

“레이스 단장 다운입니다.”

[단장님!]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어 카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다음 말에 다운의 눈이 번쩍 떠졌다.

[페퍼 여사님이 돌아가셨답니다!]

“뭐?”

***

12시가 되어갈 무렵 올랜도에 있는 페퍼 여사님의 집은 오늘따라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후우······.”

“배리 괜찮겠어?”

“괜찮아. 암.”

브래넌은 그녀와 함께 밥을 먹은 이후로 꾸준히 그녀를 초대해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렇게 정을 많이 드렸는데 이렇게 떠나시다니. 마치 또 한 번 어머니를 잃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가자.”

“집에 사람은 있대?”

“마이애미에 있는 아들이 와있어. 이미 오기 전에 들리겠다고 연락도 했고.”

“그래.”

다운과 브래넌은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갔다.

찌르르르!

지난 번 영상 촬영을 할 때 들었던 그 초인종 소리에 두 사람의 마음이 같이 울렸다. 잠시 후 페퍼 여사님을 닮은 남자가 눈이 붉어진 채 문을 열고 나왔다.

“아까 연락드렸던 레이스 단장 정다운입니다.”

“아, 네.”

“그리고 이쪽은······.”

“배리!”

“필립!”

이미 두 사람은 아는 사이인지 서로를 껴안고 다시 펑펑 울었다.

“여보. 들어가자 일단. 응? 단장님도 들어오세요.”

페퍼 여사님의 며느리가 아니었다면 문 밖에 계속해서 서있을 뻔 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서로를 껴안고 오열하던 두 남정네들이 진정했는지 이야기를 이었다.

“여사님이랑 만날때, 필립도 온 적이 있거든. 그래서 가족끼리도 몇 차례 만났었어.”

“그럼 아까 아들 이야기할때는 왜 모르는 척 했어?”

“모르는 척이 아니라 그런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여사님 죽음에 내가 관여한 것 같은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단 말이야.”

어제 홈런볼을 잡은게 무리가 됐던 게 아닐까?

혹시 나처럼 심장에 무리가 갔나?

아니면 그 후에 너무 환호해서 그랬던건가?

이어지는 생각들이 브래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필립은 그 마음을 안다는 듯이 브래넌의 어깨를 감쌌다.

“아니야 배리. 네 탓이 아니야. 어머니는 정말 편하게 돌아가셨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페퍼 여사님은 주무시는 도중에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꿈을 꾸고 계셨는지 웃는 얼굴을 하고 잠든 모습 그대로 계셨다고 했다.

“어제 밤에도 나한테 전화와서 생애 처음으로 홈런볼을 잡았는데 그게 네 공이라는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꼭 그 공을 글러브랑 같이 당신과 함께 관에 넣어달라고······. 흑!”

“크흡!”

다시 두 사람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두 사람을 놔두고 다운은 며느리에게 말을 걸었다.

“발견은 누가 했습니까?”

“옆집 아이요.”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매일 아침 페퍼 여사님이 기르는 개들을 산책시켜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웃집 아이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 그녀에게 개들을 건네주던 페퍼 여사님이 오늘따라 나오질 않자 이상한 마음에 911에 신고한 것이었다.

강도를 당했다면 그것대로 문제고, 몸이 좋지 않아서 벨 소리를 듣고도 나오질 못하시는거라면 911의 도움이 필요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많이 놀랐겠네요.”

“네. 지금은 진정했다고 하는데 많이 놀랐을거에요 아마.”

그 사이 다시 진정한 두 사람 덕에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다.

“참배랑 추모식은?”

“이번 주 중에 진행하려고. 그래야 너도 올 수 있을거 아냐.”

다행히 이번 주는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 이어서 레드삭스와의 홈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또 다시 원정 스케줄이 시작된다.

“고마워 필립. 장례 비용은? 충분해?”

“충분해. 어머니께서 자신의 장례에 쓰실 비용은 다 모아두셨거든. 대신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좀 부탁해도 될까?”

“얼마든지. 내가 영광이지.”

감정적인 부분에서 이야기를 모두 마쳤으니 이제는 조금은 현실적이고, 비지니스 적인 이야기를 할 때였다.

“필립. 저는 여사님과 레이스 사이에 있는 연결고리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혹시나 기분이 상하는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우선 저희 구단주인 어스틴 글라이드님께서는 창단 이후부터 레이스를 줄곧 응원해온 친구로서 여사님을 기리는 의미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 그 순간까지’ 여사님이 항상 앉으시던 그 자리를 비워두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들으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겁니다.”

“뭘요. 어차피 여사님이라면 계속해서 시즌패스를 달성해서 시즌권을 항상 타내셨을텐데요.”

“하하! 어머니라면 그랬겠죠.”

“그리고 오늘 경기 전광판에서 여사님을 추모하는 행사를 잠깐 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사실 이런 추모에는 허락이 필요없기는 했다. 적당히 이름과 연도만 쓰고 추모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다운은 그런 형식적인 추모 대신 여사님의 생전 모습이 담겨있는 영상들을 틀고 추모하기를 원했다.

“어머니 꿈이 레이스 전광판에 나오는거였을걸요? 얼마든지 트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희 레이스에서 여사님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여사님 이름으로 기부하려고 하는데 혹시 어디로 해드리면 좋을까요?”

“어머니가 항상 기부하던 고아원이 있는데, 그쪽으로 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 모든 것들은 레이스 나름의 홍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오랜 팬에게 이렇게 진심이다!”라는 것을 뽐내듯 보여주는 홍보처럼 보일 수 있기에 다운은 필립이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필립은 그렇게 나쁘게 보지는 않았는지 흔쾌히 다운의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오늘 경기 혹시 올 수 있어?”

“어머니 추모한다면서. 가야지. 어차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건 별로 없어.”

친척들과 페퍼 여사님이 속해있던 사회 단체와 친구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것 말고는 그가 할 일은 없었다.

“그럼 꼭 와줘.”

“하지만 티켓이······.”

“인원만 말씀해주신다면 저희 측에서 페퍼 여사님이 앉으셨던 자리 옆으로 해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레이스에서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사님이 가지고 있었던 시즌권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저랑 제 와이프. 두 자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구장에 도착하셔서 여기 제 명함으로 전화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다운의 명함을 받아든 필립에게 브래넌이 말했다.

“헤이 필립. 이따가 구장에서 보자고.”

***

- 오늘은 경기에 앞서 추모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경기 시작에 앞서서 창단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중계영상에서 잡힌 그녀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흘러나왔다.

- 그렇습니다. 레이스 창단 이후부터 쭈욱 시즌권을 구매하며 레이스를 응원해주신 안나 페퍼 여사님께서 오늘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레이스 유튜브 팬들에게는 그랜마 레이스로도 잘 알려져 계신 분이죠.

- 어제 경기에서 브래넌의 598호 홈런볼을 잡기도 하셨죠.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쉽게 믿어지지가 않네요.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영상을 보세요. 저게 어제입니다. 심지어 어제 저희가 그 모습을 보면서 홈런볼을 잡은 주인공은 바로 안나 페퍼!라고 소리도 질렀었죠.

검은 띠를 왼팔에 착용한 선수들이 영상이 끝날때까지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추모했다. 모든 영상이 끝나자 경기장에 들어찬 관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 그랜마 레이스의 자리는 글라이드 구단주님이 특별히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 그날까지’ 오직 페퍼 여사님을 위해서 비워놓겠다고 하셨습니다.

- 구단주님도 레이스 창단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시즌권을 보유했었던 사람이죠.

- 그렇습니다. 이례적으로 구단주님이 오늘 경기 전 인터뷰를 하셨는데요 “내가 안나였다면 레이스의 월드시리즈 우승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즌권을 구매했을거다. 난 오랜 그녀의 동료로서 그녀가 가장 원했던 바를 들어줬을 뿐이다.”라고 말하셨죠.

- 페퍼 여사님의 자리에는 매일 그 날의 유니폼에 맞춰서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 걸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부디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 레이스와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녀의 좌석 옆으로는 오늘 그녀의 추모경기를 참관하기 위해서 아들 내외가 자리했습니다.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 자 그럼 오늘 라인업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1번 타자 - 네이선 드레이크 - SS

2번 타자 - 알렉스 스프라우트 - RF

3번 타자 - 배리 브래넌 - DH

4번 타자 - 마르코 루이스 - LF

5번 타자 - 알버트 서머스 - 3B

6번 타자 - 제수스 로드리고 - 2B

7번 타자 - 사무엘 비어만 - C

8번 타자 - 덕 흘로첵 - 1B

9번 타자 - 메이슨 스탠하우스 - CF

- 오늘 라인업이 어제랑은 상당히 다르죠?

- 그렇습니다. 스탠하우스가 중견수로, 그리고 스프라우트가 우익수로 빠졌습니다. 그리고 합류 이후 계속해서 3번을 치고 있었던 마르코 루이스가 4번으로 밀려났고, 계속해서 4번에 배치되었던 스프라우트가 2번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3번에는 배리 브래넌이 들어갔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로 보십니까?

- 글쎄요.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꽤 의미있는 변화라고 봅니다. 네이트는 워낙에 1번에서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으니까 논외로 치고, 스프라우트는 그 타격과 파워에 가려져서 그렇지 스피드도 좋은 선수입니다. 도루를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빠른 발에 선구안도 좋아서 출루율 역시 장담할 수 있는 선수고요. 그리고 루이스는 발이 빠른 편이 아니지만,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이 모두 좋은 선수죠. 그 중간에 이번 시즌 무시무시한 한 방을 보여주고 있는 배리 브래넌을 넣는겁니다. 배리를 피해도 루이스를 상대해야하니 그를 그냥 넘길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거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예상입니다.

하지만 브래넌이 전진배치된 이유는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 226화 - 그녀를 위해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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