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
이번 건에 있어서 비어스는 솔직히 억울할만도 했다. 그래서 다운은 그를 용서해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팬들은 똑똑하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익명에 기댄 공격성은 더 강해졌다. 비어스가 아무리 억울하다 하더라도 믿어주지 않는 팬들은 존재할거다.
‘다른 구단과는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해.’
결국 구단은 이미지 메이킹 사업이다. 이제 막 새 구장으로 옮겨서 좋은 성적과 이미지를 얻기 시작한 이 때에 도핑테스트에 적발된 선수를 도와주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운은 조금 냉정하지만 비어스의 운명을 팬들의 손에 맡긴 것이다.
“구단의 행사에 자신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팬들은 구단에 더 많은 애정을 느낄겁니다. 이전까지 다른 구단에는 자신이 돈을 낸다고해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특히나 이번처럼 사건사고에 관한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약물 선수를 다시 받아주며 감싸줬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단호하게 대처한 구단이라는 이미지는 확실히 도움이 될겁니다.”
“그런데 단장님. 만약 받아주지 말자는 투표가 나오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그렇게되면 저희가 너무 손해아닐까요?”
팬들의 투표가 ‘받아주면 안된다!’로 기울게 된다면 다운은 무조건 비어스를 보내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팬들과의 약속을 어긴게 되어버리니까. 그 상황이면 다른 구단들은 옳다구나! 하며 달려들 것이다. 어떻게든 비어스를 보내야하는 다운이기 때문에 그 가격이 상당히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모든 구단들이 담합이라도 해서 트레이드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방출해야할 수도 있었다.
“괜찮아요. 패트릭에게 강하게 나가긴 했지만, 구단주님도 그렇고, 저도 패트릭이 의도적으로 약을 한건 아니라는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구단주님이 따로 패트릭과 그 에이전트를 불러서 팬들을 설득하는데 도움을 줄 예정이에요. 브래드.”
“저도 홍보팀과 대기하고 있다가 패트릭 측에서 내보내는 기사가 나올때마다 커뮤니티 내에서 적절히 분위기를 몰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심슨이다.
“투표에 관한 사실은 바로 발표할겁니까?”
“홍보해야죠. 투표에 관한 발표가 늦어질수록 저희가 하는 대응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질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비어스를 노리는 다른 팀들이 투표에 참가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러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비어스는 아직 어리고 이번 시즌 초반 잘나가던 선수다. 게다가 야구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도핑적발이 의도적인게 아니라는 것 역시 알 것이다. 그렇다는건 비어스가 트레이드 대상 및 방출 대상에 오르게된다면 웃음지을 구단이 한두곳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투표 대상을 한정시키는걸로 하죠. 어차피 투표는 저희 앱에서 이루어질테니까, 가입한지 1년이 지나지 않은 팬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겁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새로운 구장으로 옮기면서 새로이 생긴 팬들도 꽤 있을텐데요? 차라리 5월 이후 가입자는 빼는게 어떨까요?”
“그렇게하면 역차별 논란이 생길수도 있어요. 그리고 솔직히 타 구단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투표권을 가진 팬들을 매수하는 방법도 있겠죠. 일단은 오늘 이후로 가입하는 팬들에 대해서는 따로 마킹만 해두세요.”
“알겠습니다. 발표는 언제할까요?”
“12시에 하세요. 그리고 당장 불스에 전화해서 메이슨 올리세요. 이왕이면 오늘 경기에 참석할 수 있게 맞추세요.”
“알겠습니다.”
12시면 앞으로 대략 30분 정도 남았다.
“그럼 마무리하고 점심들 먹으러 가세요. 저는 잠깐 라커룸 좀 갔다올게요.”
홈 경기에서 선수들의 출근은 12시까지.
12시에 출근해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운동을 시작하는 루틴이었다. 그래서 지금쯤 내려가면 일찍 온 선수들을 비롯해서 몇몇 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었다.
라커룸에 내려가자 아니나다를까 일찍 도착한 선수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비어스를 볼 수 있었다.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가 출근할때마다 팀의 분위기를 망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다운은 그가 곧바로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서 에이전트에게 달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선수단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기본은 된 놈이야.’
팬들의 용서를 받는건 징계가 모두 철회된 뒤에 일어날 일이지만, 선수단에게 빠르게 사과할 시간은 오늘밖에 없었다. 그걸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운이 생각하기에 비어스의 대처는 올바른 것이었다.
게다가 비어스는 여기에서 ‘억울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반응 역시 그리 날이 선 반응은 아니었다.
“괜찮아 패트릭. 난 널 믿어.”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더 주의했어야하는데······.”
“힘내라 팻.”
“감사합니다.”
모든 선수들이 출근을 마치고 모이자 비어스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 번 사과한 뒤 라커룸을 떠났다.
“부주의로 인해서 이런 문제를 일으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솔직히 안일한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먹는 음식에서 무슨 문제가 있겠어?’이런 생각 말이죠. 이번 일을 계기로 저를 포함해서 저희 가족들은 항상 한 번 더 조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부디 한 번 더 조심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함께할 수는 없지만 같이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에도 레이스가, 그리고 우리 선수단이 잘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비어스가 떠난 뒤 라커룸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어스를 이해하기는 했지만, 팀에서 잘하고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도핑테스트 양성이 나왔고, 그로 인해서 한순간에 전력이 반감되는걸 지켜보는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어스가 어떻게 약물을 섭취하게 되었는지는 여기 모인 모든 선수단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는걸 알기에 선수들의 마음은 더 착잡했다.
“단장님. 패트릭은 어떻게 됩니까?”
브래넌이 라커룸의 고요를 깼다.
“오늘부터 징계에 들어간다.”
“그리고 복귀합니까?”
“복귀 일주일 전부터 팬들에게 투표를할거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거취가 결정되겠지.”
“하지만 고의가 아니었는데요.”
“고의가 아니었지만 도핑에는 걸렸지. 애도 아니고 프로선수에게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아. 프로라면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야.”
“그럼 아예 도와주지 않을겁니까?”
“아니. 만약 고의로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든 패트릭이 다시 이 야구라는 무대에 발을 들일 수 없도록 만들었을거다. 하지만 우리 프런트에서도 패트릭이 고의로 그런게 아니라는건 믿어. 그래서 패트릭이 팬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야.”
“들었냐 얘들아? 단장님도 팻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신단다! 그러니 우리는 팻의 일에는 신경을 조금 꺼두자. 우리 단장님 성격 알잖아?”
브래넌의 말에 파인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단장님은 한다면 하는 성격이지. 아마 팻은 별 탈없이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복귀할 수 있을거야. 그러니 우리는 팻이 준 교훈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면 돼.”
브래넌과 파인트를 비롯한 베테랑들이 전날 밤 이야기한대로 선수들의 분위기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수들은 그런 베테랑들 덕분에 마음을 다잡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다운된 분위기는 쉽사리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
- 아······. 결국 오늘 경기도 지고맙니다.
- 이게 이렇게 되나요?
- 리키 더지가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오리올스 타선을 막아냈지만, 베이커가 홈런을 허용하면서 결국 1대 0으로 패배를 기록하고 맙니다.
- 이렇게 되면 7연패네요.
- 이거 정말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아요! 레이스는 어떻게든 반전의 여지를 만들어내야합니다!
중계진의 분위기가 침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레이스 구단주실의 분위기도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또 졌네.”
“분위기가 생각보다 안살아나네요.”
“이러면 비어스 사건 이후로 몇 패지?”
“5승 11패죠. 그리고 최근 7연패고요.”
물론 비어스의 사건이 모든 일의 근원은 아니었다. 저 기간동안에 파인트가 목에 담이 걸리면서 로테이션을 두 번 걸렀고, 찰리 제프리스가 손가락 물집으로 인해서 일주일간 등판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타자들의 타격 사이클이 떨어진 것 역시 한 몫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팀의 분위기가 다운되어있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요즘에는 저 꼬맹이 빼고는 볼만한게 없어.”
글라이드가 관중들에게 다가가 마무리 인사를 하고있는 스탠하우스를 가리켰다.
“메이슨이 빼어나기는 하죠.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트레이드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요.”
스탠하우스는 지난 번의 9일간의 체험학습이 도움이 되었는지, 이번에 올라와서는 확실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16경기, 53타석, 45타수, 14안타, 4볼넷, 3삼진, 5도루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 적응을 1단계는 끝냈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야하는데······.”
단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정도밖에는 없었다. 로스터 내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거나, 혹은 트레이드를 하거나. 하지만 다운은 트레이드를 할 생각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지금은 일시적인 폼이에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시 돌아올겁니다.”
“문제는 그 돌파구가 일어날 특이점이 오질 않는다는거잖아. 아냐?”
“후우······. 그래도 내일부터는 로열스 원정 3연전이 있을 예정이니까 그때 반등을 노려봐야죠.”
아직 레이스는 동부지구 제일 위에 군림하고 있고, 로열스는 약하다고 평가받는 중부지구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있는 팀이다. 심지어 로열스는 메이저리그를 통틀어서도 가장 낮은 승률을 기록하면서 올 시즌 단독 꼴지를 내달리고 있었다. 레이스 입장에서는 슬럼프에서 탈출하기 가장 좋은 보약같은 팀을 만나게 된 것이다.
“거기 가서도 지면 문제가 심각해져 알지?”
보약같은 팀을 만나게 된 장점은 팀 전체를 장악한 슬럼프를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거다. 하지만 이에따른 단점도 있었다. 만약 지게 된다면 슬럼프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길어지게 될거라는 단점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단점은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
따아아악!
- 아······. 에디슨 포레스트 결국 3점을 더 내줍니다. 점수는 6대 2. 로열스가 리드를 확실히하는 홈런을 때려냅니다.
- 아마 6회를 끝내는게 포레스트의 미션이었을텐데요. 이렇게 되면 빠르게 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에는 패착이 됐네요.
- 레이스로도 어쩔 수 없었을겁니다. 내일 경기를 위해서 불펜을 최대한 아낄 필요가 있었거든요.
- 너클즈가 결국에는 이번 경기에 나오질 못하나보네요.
- 하필이면 디딤발을 접질리는 바람에 로테이션을 거르게 되었죠. 그래서 내일은 오랜만에 불펜데이를 가동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불펜을 아껴야하니까 6회까지는 먹어주길 바랬던거죠. 하지만 그 선택이 결국에는 피가되어 돌아왔습니다.
< 211화 -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