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20화 (220/268)

< 220화 - 유일한 방법 >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다운의 입이 열린채로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못했다.

‘대체 누가?’

‘왜?’

‘뭐가 부족해서?’

‘혹시 모르고 했나?’

‘그러기에는 내가 항상 약이나 먹을건 조심하라고 얘기했었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맨프레드는 충격을 받았을 다운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다운의 입이 다시 열리기까지를 기다려주었다. 곧이어 열린채로 있었던 탓에 살짝은 마른 목소리가 다운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 누굽니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주전이 아닌 벤치멤버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다운의 기도는 이번에도 통하지 않았다.

[패트릭 비어스.]

“Fuck!”

이름을 듣는 순간 욕설이 절로 나왔다.

“죄송해요 롭.”

[괜찮네. 이해해.]

“언제 나왔죠?”

[이틀 전 테스트에서야.]

이틀 전이라면 애슬레틱스와의 홈 3연전 중 두 번째 시리즈 날이다.

그리고 다운이 알기로 그 전날에도, 그리고 어제도 비어스는 도핑테스트를 했었다. 3일 내내 오줌이랑 피를 뽑아간다면서 투덜거렸던 것이 기억이 났다.

“시리즈 내내 테스트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다른 날에도 양성반응이 나왔나요?”

[맞아. 세 번 검사했더라고. 근데 조금 이상한게 두 번째 날에는 극소량이 검출됐는데 첫 번째 날과 세 번째 날에는 클린해. 심지어 다른 약물도 아니고 암페타민이었거든.]

“그건 좀 희한하네요.”

최근 도핑테스트에서 걸리는 경우는 대부분 이뇨제다. 이뇨제는 약물 성분을 오줌으로 빠르게 배출하는데 도움을 주는데다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먹을 일이 없는 약물이다. 그러다보니 이뇨제가 검출되면 100이면 100 금지약물을 복용했다고 보면된다.

그런것에 반해 암페타민은 조금 애매하다. 암페타민 같은 경우는 흔히 ADHD의 치료제로 잘 알려져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는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기력 향상에 아예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단서를 지참해서 사무국에 승인을 요청할 시에는 어지간하면 통과가 되는 약물이기도 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세 번째 날에 왜 클린하죠? 이뇨제도 안나온거죠?”

[안나왔어.]

암페타민의 경우 복용 후 30분 정도부터 약효가 돌기 시작해서 4시간 정도의 지속력을 가진다. 그리고 14시간 정도의 생물학적 반감기를 가지며, 10mg기준 피에서는 복용 이후 46시간, 오줌에서는 72시간까지도 검출되곤 한다. 그런데 첫 날과 셋째 날에는 검출되지 않고, 둘째 날에만 검출된다? 그렇다는건 두 가지를 의심해볼 수 있다.

일단 첫 번째 둘째 날에 복용해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시간안에 약물을 배출할 수 있는 이뇨제가 개발되었다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우선 암페타민, 많이들 사용하는 애더럴의 경우 효과 지속시간이 네 시간이다. 최근 개발된 것 중에서는 12시간의 지속시간을 가지는 암페타민도 생겼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셋째 날에 검출이 되어야만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뇨제가 검출되었을거다.

그렇다는건 두 번째 가능성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 신빙성을 얻게 된다.

“극소량의 약물을 의도치 않게 섭취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의도치 않은 경로로 어떻게든 섭취를 했겠지. 그래서 선수가 아닌 자네에게 먼저 연락을 한거고.]

보통 도핑테스트 결과가 나오면 선수와 그 에이전트에게 통보된다. 그리고 구단은 그에따른 징계이행을 집행하라는 통보를 받게된다. 그 시점이 바로 구단이 선수가 도핑테스트에 걸렸다는걸 알게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오늘 다운은 그 통보를 맨프레드에게 먼저 받았다.

[아무리 극소량이라고는 하지만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이상 징계는 이행해야해.]

“이해합니다.”

[발표는 언제로 할건가?]

“내일 곧바로 발표하고 징계수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다행인 점은 시즌 전 논의했던

1회 적발 : 반 시즌 정지

2회 적발 : 한 시즌 정지

3회 적발 : 영구제명

여기서 1단계를 아예 없애고 2단계부터 가자는 의견이 선수협의 반대로 인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지금부터 징계를 받으면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비어스가 로스터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에 이뇨제나 다른 경기력 향상 약물이 검출되었다면, 혹은 세 번째 날에도 양성반응이 나왔다면 모를까, 상황상 이번 건은 비어스의 부주의로 인해서 일어나게 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운은 그를 트레이드하거나 배제하는 대신 그를 복귀시키고, 기회를 줄 생각도 있었다.

‘물론 그냥은 안되지.’

어찌됐건 이제 비어스의 커리어에는 약물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되었다. 이 상황을 최대한으로 써먹어야한다. 그러면서도 비어스에게 향할 화살의 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이미지 메이킹도 해줘야했다. 그러기위해서는 지금부터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롭. 아직 패트릭한테는 전달안했다고 했죠?”

[아직은. 왜? 미뤄줄까?]

“아뇨. 오늘 저녁에 당장 연락해주세요.”

[그러도록하지.]

“미리 말해줘서 고마워요 롭. 이번 건은 빚졌네요.”

[그 빚, 다음에 받아가도록하지.]

전화를 끊은 다운은 곧바로 브래넌에게 연락했다.

[무슨일이야?]

“미안한데 케빈이랑 함께 우리 집으로 와줄 수 있어?”

[하······. 또 이 몸이 필요한 일인건가?]

“중요한 일이거든. 그래서 두 사람이 꼭 필요해. 조나도 부를 생각이야.”

언제나 자신이 저렇게 자뻑하는 말을 하면 받아주었던 다운이 전혀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심각하게 말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브래넌이 조용히 답했다.

[금방 갈게. 케빈은 못올수도 있어.]

“둘째 딸이 생겨서 집에 있고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팀을 위해서 꼭 나와야한다고 말해줘. 아니면 내가 전화할까?”

마이어는 브래넌의 옆옆집이다. 그래서 브래넌에게 부탁한 것이기도 했다.

[아냐. 내가 데려갈게.]

“고마워. 곧 보자.”

곧이어 다운은 파인트에게도 전화해서 집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안 그래도 다운이 해준 스테이크 먹고싶었는데. 가면 하나 구워주나요?]

“두 개도 구워줄게.”

[딱 기다려요.]

세 사람을 호출한 다운은 그제서야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갈때와는 다르게 심각한 표정의 다운을 본 글라이드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다운은 맨프레드와 했던 대화들과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처음에는 도핑 양성이라는 말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는지 얼굴이 시뻘개졌던 글라이드도, 둘째 날에만 검출되었다는 이상한 결과와 그에따른 다운의 생각까지 듣고서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멍청한 짓을 한 비어스에 대한 안타까움에 호통을 쳤다.

“저런 멍청한 놈!”

한숨을 크게 쉰 글라이드가 다운에게 물었다.

“배리, 마이어, 조나까지 불렀다고?”

“네. 빠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징계이행을 약속한 내일은 라커룸 분위기가 작살이 날거니까요.”

젊은 팀의 장점은 분위기를 타면 무섭다는 것이다. 지금 레이스의 시즌 초반 분위기가 바로 그랬다. 흐름을 탄 젊은 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세를 가진 팀 말이다.

하지만 젊은 팀의 단점 역시 분위기를 잘 탄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을 계기로 팀의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하면 젊은 선수들은 그런 분위기에 휘말려서 경기력이 나락으로 가버린다. 그리고 젊은 선수들은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팀 성적이 작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베테랑들이 분위기를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다운은 그것보다 하나를 더 계획하고 있었다.

“실수는 분명해요. 하지만 패트릭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패트릭은 본보기가 되어야해요. 우리 팀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약물을 복용하면 안된다는것에 대한 본보기가요.”

***

다음날 오전.

레이스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전날밤 자신의 양성반응을 알게된 비어스는 아침 일찍 구단으로 와서 도핑테스트에 걸렸음을 구단에 알렸다.

“패트릭! 네가 약물을······!”

“다운, 아니 단장님!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정말 저는 안했어요!”

“그럼 도핑 테스트가 잘못나온거겠네? 도핑 테스트를 한 사람들에게 명예훼손하고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를 진행하면 되겠어? 그렇지? 그 사람들이 잘못 테스트한것일테니까?”

“그······ 건 아니래요. 저도 물어봤는데 세 번을 테스트했는데 모두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그럼 네가 약을 한게 맞잖아!”

“검출이 되긴 했지만 제가 한건 정말로 아니에요! 만약에 정말로 약물을 하려고 했다면 애더럴 같은 집중력 향상 약물이 아니라 스테로이드계열을 썼겠죠! 거기다가 도핑테스트를 3일이나 연속으로 하는데 약을 할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라고요 전!”

“후우······.”

다운은 숨을 깊게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입을 꾹 닫고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비어스 역시 억울함을 호소하긴 했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 죄인처럼 다운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다운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애더럴이 네 입으로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예상이 돼?”

“네! 첫 날 경기를 마치고 간만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밥을 먹었거든요. 그런데 그 날 열 살 난 저희 조카가 스프를 만들었거든요.”

“그러니 조카가 그 스프에 네 경력을 작살낼 애더럴을 넣었다?”

“저희 조카는 주의력 결핍 장애로 애더럴을 처방받고 있어요. 그리고 항상 약을 먹기 싫어하죠. 어제 저녁에 다그치니까 울면서 자기가 먹는 약을 거기에 넣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미량의 애더럴이 비어스에게서 검출되었는지, 그리고 셋째 날에는 왜 검출되지 않았는지가 모두 설명된다. 하지만 다운은 이해했다는 티를 티끌만큼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다운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패트릭.”

“네.”

“난 우리 선수를 항상 믿어주려고 해. 여자와 만나서 떡을 치다가 무릎에 부상을 입고 나한테 와서 ‘넘어져서 찧었어요.’라고 말해도 난 항상 그 말을 믿을거란 말이야. 네가 뒤로 자빠진 다음날 나한테 와서 ‘어제 넘어져서 코가 깨졌어요.’라고 해도 난 그 말을 믿기 위해 최선을 다할거야.”

다운의 말에 비어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하지만 약은 달라 패트릭. 약쟁이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쟁이에 기만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더럽힌 범죄자니까.”

냉기가 풀풀 날리는 차가운 다운의 말에 비어스가 얼어붙었다.

“네가 지금 하는 해명이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알고있겠지?”

“······네.”

약쟁이들이 하는 뻔한 변명이라고 생각할거다. ‘난 몰랐다.’ ‘억울하다.’ 모든 약쟁이들이 하는 말이 그랬으니까.

“난 절대로 우리 팀에 약쟁이를 남겨놓고 싶은 생각이 없어. 우리처럼 유망주들을 키워서 써먹는 팀에게 약쟁이는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거든.”

“전······.”

“그게!”

다운의 강렬한 눈빛에 비어스가 입을 닫았다.

“정말로 억울한 일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야. 하. 지. 만.”

의도적으로 단어를 끊어말한 다운이 고개를 들어 비어스와 눈을 맞췄다.

“구단의 진정한 주인은 팬이지. 앞으로 86경기가 진행될 동안에 팬들을 설득해. 네가 억울한 이유와 그 상황을 입증하는거야. 그리고 네 징계가 끝나기 일 주일 전부터 레이스 팬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할거다. 널 우리 구단에 둘지 말지를 결정할 투표를.”

다운은 비어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최선을 다해 팬들을 설득해 봐. 그게 네가 이 구단에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220화 - 유일한 방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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