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적발자가 나왔어 >
원정 9연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
7승 2패를 하며 동부지구 1위를 내달리는 팀 답게 떠들썩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였다. 거기다가 오늘부로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될 스탠하우스의 송별파티를 해준다는 명목하에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다.
“하여간 시끄럽기는.”
“하하 케빈도 그렇게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잖아요.”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캐시는 웃고있었다.
“날 세우면서 서로 편가르는 팀을 맡아본 적 있나?”
“제가 전에 일했던 곳이 어디인지 까먹으셨어요?”
다운이 칼질을 해대던 양키스에서는 호랑이가 사라지자 수많은 여우들이 나타났었다. 그래서 팀원들끼리의 파벌을 만들고 그 파벌들이 수도 없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한 번은 다른 파벌에 속한 뒷 타자를 엿먹이기 위해서 일부러 3루에서 주자가 넘어진 적도 있을 정도였다. 언론에서는 실수라며 웃어댔지만, 야구계에 속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저것이 파벌싸움에 의한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지옥같았는데 진짜······.”
“고생했네. 뭐 그때고 겪어봤겠지만, 그런 팀보다는 이렇게 흥이 넘치는 팀이 훨씬 낫지. 안그래?”
“맞아요. 그나저나 메이슨은 꽤 괜찮았죠?”
첫 타석을 내야안타로 신고한 스탠하우스는 원정 9연전 동안에도 종종 모습을 비추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심지어 한 경기에서는 선발출장하는 기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9경기 동안 스탠하우스가 기록한 성적은 15타석 13타수 3안타 1볼넷 1희생번트 2도루.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인상적인 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다운은 물론이고 캐시 감독의 평가는 좋았다.
“괜찮았지. 우선 첫 타석부터 좋았어.”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분명 어깨나 팔이 나오기 시작한 타이밍은 패스트볼이었단 말이죠. 그런데도 손목의 힘으로 배트를 늦춰서 슬라이더를 맞춰냈어요. 정타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건 아예 슬라이더를 배제하고 있어서 일어난 일이었어요.”
“아마 배리가 패스트볼만 노리라고 했을거야. 하지만 여기서 경험부족이 드러나긴하지. 직전의 공이 볼이되긴 했어도 높은 곳에 형성된 패스트볼이었잖아. 아무리 스트라이크를 잡고싶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또 한 번 패스트볼로 승부를 걸기에는 부담스러웠을거야. 결국 저쪽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 슬라이더 혹은 40점짜리 제구가 불안한 체인지업이지.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었다면 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를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다음 공으로 존에 걸치려고 하는 슬라이더가 들어올거라는걸 알 수 있었을텐데.”
“그런 경험을 쌓으라고 올린거잖아요. 그런면에서 정말 잘해줬죠. 무엇보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그 타석에서도 치자마자 1루까지 전력으로 달렸잖아요. 4초 안나왔다면서요?”
“3.93초였어. 우타석에서 그런 스피드라니······. 미친 놈이야.”
“거기다가 이어진 타석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뛰었고요. 덕분에 3루타도 한 번 나왔었죠. 마지막 경기에서 볼넷을 얻은것도 꽤 고무적인 일이었죠.”
“한 타석, 한 타석 들어갈때마다 점점 발전하는게 눈에 보여. 저 놈은 괴물이야. 솔직한 마음으로는 계속해서 기회를 주면서 성장하는걸 지켜보고싶어.”
“하지만 그럴 순 없죠.”
“없지.”
당장에 스탠하우스가 아니라도 팀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이 기회는 마이어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기회다. 마이어가 돌아오면 지금 받는 기회는 반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마이어는 타석에서도 경험이 많고, 작전수행에도 능했다. 게다가 수비도 스탠하우스보다는 한 단계 위다. 어느모로 보더라도 스탠하우스가 기회를 받기에는 쉽지 않았다.
“저 나잇대 선수에게는 벤치를 달구고 있는것 보다는 한 경기라도 많이 뛰는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니까요. 9일간 경험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만해도 충분히 더 많이 성장할거에요. 외야에 빈자리가 생기면 최우선으로 올리는걸로 하려는데 그건 괜찮죠?”
“물론이지. 언제든 환영이야.”
“어서 우리 구단에 올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
“같은 생각이에요.”
그런데 이때까지만해도 두 사람은 몰랐다.
스탠하우스가 올라올 날이 머지않았음을 말이다.
***
4월이 지나고 5월이 어느덧 절반이 지나가는 시기. 다운은 탬파로 완전히 내려온 스테이시와 함께 글라이드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로저스가에는 언제 가기로 했냐?”
“올스타 브레이크에 가기로 했어요.”
“너무 늦는거 아냐?”
“그쪽도 스케줄이 있다보니 서로 타이밍 맞추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나마 양 측이 쉬는 주간이 그때뿐이었어요. 거기다가 이번 스케줄 미친거 아시잖아요.”
오늘 쉬고나면 31일동안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31연전이 이어지게 되어있었다. 그것도 홈과 원정을 오가면서 말이다!
“롭한테 연락해서 일정 짠 놈 누구냐고 내놓으라고 연락해봤는데 절대 안가르쳐주더라고요.”
“아마 목숨이 위태로워질게 뻔히 보이니까 그런게 아닐까요?”
“그렇겠지. 다운 저 놈이 진심으로 화내는걸 내가 딱 한 번 본 적이 있거든?”
“양키스에서 잘렸을때요?”
“아냐. 그게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닐때였는데······.”
“어스티인?”
다운이 말을 길게 늘이자 글라이드가 양 손바닥을 들어올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물론 그러면서 스테이시에게 윙크를 날리는 것을 잊지않았다.
“나중에 저 놈 없을 때 이야기하자고.”
“내일 점심식사 이후에 티타임이나 가질까요?”
“좋지.”
“······ 다 들려요.”
“어이쿠! 귀도 좋아라.”
“그리고 내일 홈 경기라서 저도 있거든요?”
“그럼 저 놈 원정 보내고 다시 만나자.”
“그럴까요?”
과장된 글라이드와 스테이시의 몸짓에 결국 다운은 피식 웃고말았다.
“근데 로저스가는 바쁠 이유가 그다지 없잖아.”
여기서 잠깐 AL 동부지구 순위표를 짚고 넘어가자.
1위 - 탬파베이 레이스(28-10)
2위 - 보스턴 레드삭스(20-17)
3위 - 볼티모어 오리올스(20-18)
4위 - 뉴욕 양키스(17-19)
5위 - 토론토 블루제이스(10-28)
리빌딩을 선언한 블루제이스는 당연히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오히려 지금이 제일 바쁠 시기죠. 드래프트를 앞두고 유망주들 크로스체크하러 전국을 돌아다녀야하니까요.”
“근데 넌 왜 안바쁘냐?”
“올 시즌은 바쁠래야 바쁠수가 없거든요.”
올 시즌은 최근 5년 중에서 가장 드래프티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나마 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는 10여명의 선수들도 작년이었다면 2라운더 급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블루제이스는 지난 시즌에도 하위권을 기록했기에 상위픽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저들 중에서 최선의 선수를 고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레이스가 가진 픽은 중하위권. 절대로 저 상위권에 속하는 10여명의 선수들을 가질 수 없었다.
“조니도 이번 드래프트는 답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눈에 띄는 놈이 안보인대요. 요즘은 그래서 간혹 번뜩이는 내년, 혹은 후내년에 나올 드래프티들을 보는게 더 재밌다더라고요.”
“네가 봐도 그렇냐?”
“적어도 지금까지 올라온 리포트만 봐서는 그래요. 그래서 그냥 이번에는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유망주를 뽑을까 생각중이에요.”
스카우트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주제는 혼돈의 카오스인 동부지구 순위표로 넘어가게 되었다. AL 동부지구의 순위표에서는 예년과는 다르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레드삭스는 몇 년간의 리빌딩이 꽤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죠. 타선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지만 투수진이 강력하죠.”
선발 마운드는 레이스가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불펜은 레드삭스가 훨씬 강하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레드삭스가 투수진의 힘을 빌어 올라왔다고 한다면 오리올스는 반대죠.”
“그 미친 앙헬로스 가문이 드디어 힘을 보는 모양이야.”
오리올스의 투수진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강하다고 할 수 없었다. 1선발이 레이스의 4선발 정도의 수준이니까. 레이스 1, 2, 3 선발이 타 팀 에이스급이라는 건 감안해도 강하다는 수식어는 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타선이 미쳤다.
레이스에서 넘어간 록하트를 주축으로 한 오리올스 타선은 대략 40경기를 치른 지금 팀 홈런 55개로 메이저리그 1위에 올라 있었다. 1번 타자부터 벤치에 앉아있는 네 명의 선수들까지 모두 한 방이 있는 타자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올 시즌 최소 1개의 홈런을 모두 기록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저 쪽 선수들 사이에서는 ‘홈런을 못치면 쓰레기!’라는 농담까지 돌고 있을 정도였다.
“찰리도 쟤네 만나면 긴장된다네요.”
올 시즌 아직 자책점이 단 한 점도 없는 레이스의 수문장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오리올스의 타선은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가장 큰 이변인 양키스.
“양키스가 저 순위에 있다는게 이상하네요.”
양키스의 추락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누가와도 저건 어떻게 하지 못했을거야.”
글라이드의 말이 맞았다.
4월 3일 - 1선발 제이콥 레드먼드 3회 강판 이후 토미존 수술 확정
4월 9일 - 마무리 패트릭 그린 타구를 손에 맞아 검지와 중지 골절(2개월)
4월 18일 - 3선발 빈센트 벨라스케스 사타구니 부상으로 아웃(6주 예상)
4월 24일 - 대체선발 제인 맨스필드 햄스트링 부상 아웃(6주~8주 예상)
5월 5일 - 2선발 아미르 곤잘레스 등 근육 미세파열 아웃(2~4주 예상)
세상 그 누가와도 양키스 투수진에 일어난 재앙은 막을 수가 없었다.
“대런은 뭐라고 안하디?”
“죽을 맛이라고 하죠. 저보고 제발 선발 좀 팔아주면 안되냐고 하던데요?”
하지만 다운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당장에 양키스 팜 중에서 끌릴만한 선수도 없을 뿐더러, 올 시즌 월드시리즈 제패를 노리는 레이스의 입장에서는 양키스가 되살아나게 된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저런 재앙이 레이스에게도 닥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당연히 거절했지?”
“딱 잘라서 거절했죠. 그러니까 다음 저주 타겟은 레이스라고 하고 전화 끊던데요?”
악담도 그런 악담이 없었다.
“어릴때부터 대놓고 욕하는 건 교양없는 짓이라고 교육을 받아왔을텐데. 얼마나 힘들면······.”
“다음에 대런을 보면 어깨나 토닥거려주세요.”
“그래야겠구만.”
그렇게 세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 다운의 폰이 울렸다.
“롭?”
커미셔너인 맨프레드의 전화다.
“잠시만요. 이야기 좀 하고 계세요.”
“그럼 아까 이야기를 마저 할까요 어스틴?”
“문 반쯤 열어놓고 나갔다 올거야.”
뒷마당으로 나온 다운은 맨프레드의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무슨일이에요 롭.”
지금 시각은 저녁 8시. 야구계에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맨프레드를 비롯해 사무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9 to 5를 고수하곤 했다. 그가 있는 곳은 탬파와 타임라인이 비슷하니만큼 이미 그는 퇴근해 있을 것이었다. 이런 시간에 그가 전화왔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자네 팀에서 도핑 테스트 적발자가 나왔어.]
< 219화 - 적발자가 나왔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