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패스트볼이라면서! >
다운에게 콜업 전화를 받자마자 스탠하우스의 손에는 비행기 티켓이 쥐어졌다.
“에휴······. 홈 12연전에서 써먹을 친구를 이렇게 쏙 빼가는구만.”
아무래도 불스 단장의 표정이 좋지않았던 것은 티켓파워가 있는 스탠하우스가 빠지게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공항으로 가면 돼.”
“제 물품은······.”
“알아서 정리해서 보내줄테니 걱정하지 마.”
“글러브나 다른 물품은······.”
“이미 클러비들이 다 챙겨놨어. 자넨 몸만 가면 돼.”
이미 모든 것들이 준비가 끝나있었다.
“자 어서 가라고!”
얼렁뚱땅 비행기에 올라 보스턴에 도착한 스탠하우스는 다운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단장님?”
자신이 기다릴줄은 몰랐는지 스탠하우스는 눈을 땡그랗게 떴다.
“너 만나서 다시 나온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 비행기가 도착한 뒤 30분 뒤에 네 도착 스케줄이 잡혀있었으니까.”
오해의 여지를 없앤 다운이 뒤를 가리켰다.
“짐은 저 친구한테 맡기고 가자고.”
다운은 기다리고 있던 클러비에게 짐을 넘기고는 스탠하우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짐은······.”
“구단 짐을 전부 실은 버스로 갈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도착한지 아직 30분 밖에 안되어서 그쪽도 짐을 옮기고 있거든. 그리고 넌 특별대우로 택시를 타고 가는거지.”
사실 특별대우가 아니라 말해줄 것들이 있어서 그런거지만 좋은게 좋은거랄까. 택시에 올라탄 다운은 장난기를 싹 지우고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들었어?”
“아뇨.”
“너한테 주어진 시간은 총 9일이야. 정확히는 이번 레드삭스, 화이트삭스, 트윈스 원정까지만 동행할거야. 네가 올라온 건 마이어가 출산휴가로 9일을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거든.”
“아, 그래서······.”
스탠하우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아쉬움이 스쳐지나갔다.
“아쉬운건 이해해.”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뭘. 내가 너였어도 아쉬웠을거야. 콜업됐다고해서 올라왔는데 9일짜리 시한부였으니까 아쉽지 않을리가 있나. 하지만 그건 알아둬. 나에게는 수많은 옵션이 있었고 그 옵션들 중에서 너를 선택한거야. 그만큼 네가 추후에 우리 팀의 미래가 되어서 활약할거라는걸 믿고있다는거지. 그러니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지마.”
“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최대한 내 눈을 사로잡아봐.’ 혹은 ‘날 만족시켜봐.’라는 말이 나와야하는게 아닌가? 그런 스탠하우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다운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너에게 그렇게 많은 기회는 가지 않을거야. 정말 많아봐야 20이닝 정도겠지. 그 안에 뭔가를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그러려고 노력하지 마. 나는, 그리고 우리 스카우트 진은 널 선택한 우리들의 눈을 믿어. 그러니 네가 지금 당장에 못하더라도 크게 신경쓰지는 않을거야. 코칭스태프들도 마찬가지로 너에게 기대는 하지 않을거야. 당장 주전급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위해서 경험을 채워주려고 널 선택한 것 뿐이거든. 그러니 네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어. 부담갖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해. 그리고 많은 것을 배워서 내려가도록 해. 그리고 마이너리그에 다시 내려가서 내가 다시 널 부를때까지 배운 것들을 모두 소화해오는게 이번에 내가 널 부른 이유야. 알겠지? 절대 무리하지 마. 다치지 말고 9일동안 네가 배울 수 있는 것들, 그리고 훔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가져가. 할 수 있겠어?”
다운의 말에 이번 9일간의 목표가 확실히 정해졌는지 아쉬움이 물들어있었던 스탠하우스의 눈에는 굳은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좋아. 한 번 잘 해보자. 그럼 일단은 이거 받고.”
다운은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설마······.”
마이너리거들은 받지도 못하고, 메이저리거들이 원정때마다 받는다는 바로 그 전설의 봉투!
“밀머니인가요?”
“맞아. 이번 원정 9연전짜리 돈이 다 들어있으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잘 쓰도록 해. ”
“잘 챙기겠습니다!”
“그리고 에이전트가 아마 따로 설명해줄테지만, 그래도 한 번 설명해줄게. 오늘부터 넌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등록된거야. 그래서 최저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 최저연봉은 원래 월급이 들어오던 날 추가되어서 들어올 예정이야. 그리고 서비스타임은······.”
머리가 뱅뱅 돌 것 같은 이야기를 귀에 박아넣은 스탠하우스는 호텔에 도착해서야 다운의 마수를 벗어날 수 있었다.
“네 방은 611호야. 헤이 스프!”
다운은 키를 건네며 누군가를 불렀다.
“메이슨?”
스프링 트레이닝 내내 붙어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사람의 목소리다.
“스프!”
“젠장할! 너마저 스프라니!”
스프라우트가 아마도 멘토 역할로 붙은 모양이다.
“짐 풀고 나와. 보스턴에서 유명한 곳에서 외야진 모여서 점심먹기로 했거든.”
“꼬맹이 손 꼭 잡고 다녀라.”
“아이 아이 캡틴!”
***
스프링 트레이닝과 예비스쿼드로 팀에 합류했던 경험 덕분인지 스탠하우스는 팀에 별다른 거부감없이 녹아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었다.
따아아아악!
스프라우트가 휘두른 배트가 굉음을 내뿜으며 타구를 멀리멀리 날렸다.
“갔나?”
“갔지 저건!”
“간다! 간다!”
“예에에에에! 스프! 그거야!”
“저 자식은 힘도 안주는것 같은데 무슨 타구가 빨랫줄처럼 날아가!”
스프라우트가 쓰리런 홈런을 치고 돌아오자 기록 확인용 패드에 그의 성적이 업데이트 되었다.
패트릭 비어스
0.367/0.379/0.653, 3홈런, ops 1.032
알렉스 스프라우트
0.396/0.419/0.854, 5홈런, ops 1.274
마르코 루이스
0.367/0.527/0.776, 3홈런, ops 1.303
시즌 초반의 얼마 안되는 표본을 바탕으로 한 성적이기는 하지만, 주전 외야수 3인방의 성적은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었다.
‘불스에서 내가 낸 성적은 이 성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자신보다 나이많은 선수들이 대부분인 트리플 A에서도 자신은 잘하는 존재였다. 계속해서 자신을 채찍질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잘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거다. 하지만 한 단계 높은 메이저리그에 와서 비슷하거나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저 세 명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자 다운이 했던 이야기가 다시금 머리에 떠올랐다.
‘단장님이 말한대로 난 당장 뭔가를 잘할 순 없을거야. 그러니 성적에는 신경쓰지말고 경험과 배움에 의의를 두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세 명의 외야수들에게서 느껴졌던 거리감이 다시금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걸 하자.’
스탠하우스는 자리에 앉아있는 대신 방금 좋은 타구를 날린 스프라우트에게 다가갔다.
“스프. 혹시 시간 있어요?”
“아니. 하지만 네가 드링크 한 잔을 가져오면 생길지도 모르지.”
“앉아있어요.”
스탠하우스는 곧장 뒤로 가서 한 잔 가득 스포츠드링크를 담아왔다.
“방금 타격할 때 어떤 생각으로 들어갔어요?”
“크~ 방금? 나는 타격할 때 분석을 많이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저기 위에 올라온 투수가 몸 쪽에 가까운 볼을 한 번 던진 다음에는 75%이상의 확률로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던진다는걸 알고 있었지.”
“그래서 슬라이더를 노리고 들어간거에요?”
“맞아. 일단 몸 쪽 공을 던지게 만들어야하니까 일부러 초구에는 타석에 바짝 붙어섰어. 보통 그럴때 배터리는 타자를 한 발 물러서게 만들기 위해서 몸 쪽 공을 던지잖아.”
“일부러 몸 쪽 공을 던질 상황을 만든거네요.”
“맞아.”
“그렇게하면 공을 맞을 수도 있잖아요.”
“하하! 당연히 내 엉덩이를 내줄 생각도 하고 있었지. 큰 부상만 아니라면야 등판이나 엉덩이는 얼마든지 내줄 수 있어. 내가 해결하지 않더라도 뒤에 있는 마르코가 주자들을 불러들여줄테니까.”
마이너리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신뢰였다. 그곳에서는 모두 자신이 잘하길 바라고, 어떻게든 뛰어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곳이니까 이런 신뢰가 있기 힘들었다.
“몸에 맞는 공이 되어도 좋고. 내가 원하던대로 몸 쪽 깊은 곳으로 들어오면 더 좋고. 그렇게 상황을 만든 다음에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정확히 맞추는 것에 집중했지.”
“힘은요?”
“크게 싣지 않았어. 체구가 커진 이후로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충분한 힘이 타구에 질린다는걸 알았거든. 너도 비슷하지 않아?”
“저는 그래도 힘을 좀 실어야해요.”
“아직 어리니까 더 클 수 있을거야. 벌크업도 아직 덜했잖아. 아냐?”
“맞아요. 다음 시즌에는 더 키워볼 생각이에요.”
“그러면 빅리그에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정확하게 타구를 맞추는데 집중해. 큰 타구도 필요없어. 최대한 많은 공을 보고, 네 존 안에 들어온 공을 맞추는거야. 그러면 나중에 너에게 도움이 될거야.”
“고마워요 스프.”
“그러면 한 잔 더.”
“넵!”
스탠하우스는 매 이닝마다 좋은 결과를 낸 타자들에게 들러붙었다. 그렇게 하고 있던 스탠하우스에게 머지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6회 말 수비가 끝나고 클리닝 타임이 찾아왔을 때 캐시 감독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스프라우트를 불렀다.
“헤이 스프.”
“네 보스.”
“오늘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그만 들어와 쉬는건 어때?”
이미 경기는 11대 2로 상당히 기울어 있는 상황이었다. 원정 경기장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9점이라는 큰 점수차는 루키가 부담없이 데뷔전을 치르기에 딱 적절한 조건이었다.
스프라우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글러브를 벗었다.
“안그래도 곧바로 타석에 들어가려니 피곤했는데 잘됐네요.”
“메이슨!”
“넵!”
“장비 챙겨서 타석에 들어가.”
7회 초는 스프라우트의 타순인 2번부터 시작한다. 그 말은 곧 7회의 시작을 자신이 연다는 것이었다.
“부담갖지 말고, 최대한 메이저리거의 공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해. 알아들었지 메이슨?”
“네 보스!”
“못 쳐도 되니까 네 스윙을 하고 돌아와. 어차피 죽어도 너 혼자 죽는거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데뷔 타석에 마음이 순풍순풍해지기 시작했다.
“메이슨. 내 배트 써. 오늘 쓰리런에 2루타, 안타까지 때려낸 배트야. 너에게도 좋은 기운을 줄거야.”
“고마워요 스프.”
스프라우트의 배트를 받아든 스탠하우스가 더그아웃을 나서려는데 브래넌이 슬며시 다가왔다.
“뭔가 쳐야할까 고민될때는 그냥 패스트볼이다. 패스트볼을 노려.”
타석에 들어섰다. 타석에 들어서자 아니나다를까 레드삭스의 포수가 루키 기죽이기를 시전했다.
“어이. 잠깐 땜빵으로 올라왔다며? 그러면 그냥 공이나 보고 가라.”
이럴 때 브래넌이 가르쳐준 스킬이 있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뜬금없는 인사에 포수의 눈썹이 휘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인사야.”
“네. 안녕하세요.”
“너······.”
“안녕하세요.”
“아니······.”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하······.”
무슨 말을 해도 인사만 돌아오자 포수는 결국 말을 거는걸 그만뒀다. 아무 생각 없이 인사를 하는 와중에 스탠하우스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 투수는 공격적으로 승부하는 타입.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강하게 뿌리는 투수로 제구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니까 지켜볼 것.’
분석팀의 분석은 정확했다.
“볼.”
“볼.”
“스트라이크.”
“볼.”
3볼 1스트라이크. 투수는 무조건 하나의 공을 집어넣어야하는, 타자에게는 공 하나의 여유가 더 있는 카운트다.
‘풀스윙 한 번 해보자. 그렇다면 뭘 노리지?’
그 때 브래넌의 말이 생각났다.
“뭔가 쳐야할까 고민될때는 그냥 패스트볼이다. 패스트볼을 노려.”
마음을 정하자 머리가 맑아졌다.
레드삭스의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고 다섯 번째 공을 뿌렸다.
슈우우웅!
빠르게 홈플레이트를 향해 오던 공이 바깥쪽을 향해서 대각선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패스트볼 타이밍에 이미 출발한 스탠하우스의 배트는 회수할 수가 없었다.
‘패스트볼 노리라면서요오오오오!’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배트를 컨트롤 한 덕분일까?
딱!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스탠하우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1루를 향해 내달렸다.
“으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악!
< 218화 - 패스트볼이라면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