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짐 싸 >
“어떤······?”
다운의 말에 캐시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마이어가······.”
“마이어가?”
최근 마이어는 주전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기가 이미 기울어진 6회 이후라던가, 수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경기에서는 상대적으로 수비력이 부족한 비어스나 루이스를 대신해서 들어가곤 했다. 게다가 작전수행에도 능해서 좌타 대타로도 꽤나 쏠쏠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다가 베테랑으로 팀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도 분담하고 있었다. 그가 빠지게 된다면 로스터를 운용하는데 상당히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다운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하는 모습을 본 캐시가 슬며시 웃었다.
“요즘 정말 정신이 없으시긴 한 모양이네.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모르다니.”
“네?”
“마이어 말이야.”
캐시는 엄지를 입으로 가져가 쪽쪽빨았다.
“아!”
“이제서야 생각난 모양이네.”
그러고보니 마이어의 와이프가 임신을 하고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벌써 출산일이에요?”
“예정일이 3일 뒤란다.”
메이저리거들은 최소 1일, 최대 열흘의 출산휴가를 쓸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이 출산휴가는 최대 3일이었다. 하지만 출산시기라는건 종잡을 수 없는 것. 워낙에 변화무쌍하다보니 예정일 전후 하루만 가지고는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저 멀리 원정이라도 가있는 경우에는 이동에만 하루를 소모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지난 노사협약에서 ‘적어도 원정 9연전까지는 빠질 수 있게 해주자.’라는 명목에서 휴식일을 포함해서 총 10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칙이 바뀌게 되었다.
“이거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요.”
“그런 것 같았어. 평소라면 일 주일 전부터 물어봤을텐데 아직까지 너한테서 말이 없었다고 하더라고.”
“어제 경기 때문에 너무 정신이 팔려있었어요. 지금이라도 챙겨줘야겠네요.”
그나저나 그렇게 되면 로스터에 한 자리가 비게된다.
“리타. 거스 좀 다시 불러줄래?”
잠시 후 거스가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다.
“뭐야? 무슨 일 있습니까?”
“마이어요.”
마이어라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 거스가 이내 무릎을 쳤다.
“아! 출산휴가겠군요!”
“마이어를 대신해서 원정 9연전 동안 쓸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해요.”
“필요한 친구는?”
거스가 돋보기를 꺼내 코에 얹으며 물었다.
“어차피 올릴 친구들은 정해져있지 않아?”
“뭐 비슷하게 정해져있기는 하지. 외야수로 보는거 아냐?”
“아냐. 어차피 외야 한 자리는 브라이언으로 채울 수 있잖아.”
현대야구에서 슈퍼 유틸리티는 이래서 중요하다. 로스터를 운용할 수 있는 폭이 달라진다.
“잘하는 친구로 추천해줘. 아니면 기회를 한 번 줘봤으면 좋겠는 놈으로다가.”
“그게 좋겠네요. 지금이야 상관없지만, 나중에는 정말 부상으로 누군가가 빠졌을때를 대비해서 빅리그 경험을 시켜놓으면 괜찮을 애들을 올려보죠.”
“굳이 꼽자면 네 명 정도 생각해볼 수 있겠군요. 우선은 내야 콜업 1순위인 데이튼 레이몬드.”
언제나 불리는 이름이다.
“스위치 히터로 좌우완을 가리지 않고 다 잘칩니다. 올 시즌 벌써 3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타격에 물도 올랐죠. 출루율도 좋습니다. 다만 이번 겨울에 벌크업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수비력이 조금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퍼스트 스텝은 좋은데 몸이 조금 둔해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트리플 A에서는 3루로만 쓰고 있습니다.”
“일단은 패스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단장님은?”
“저도 패스요.”
타선이 약한것도 아니고 충분히 강하다. 다른 팀에서는 모르겠지만, 수비를 중시하는 레이스의 특성상 그를 올려서 써먹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다운은 그를 머릿속에 저장해놓았다.
‘공격력이 뛰어난 스위치히터 3루수는 트레이드 카드로 가치가 있지.’
“다음은 로렌 앳킨슨입니다.”
앳킨슨이라면 프리시즌때 꽤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친구다.
“프리시즌부터 시작한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정도로 외야수비도 이제 곧잘봅니다. 제가 평가하기로 메이저리그 평균 정도의 수비는 포수를 제외한 어떤 포지션에서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거스가 그 정도로 평가했다면 정확한거겠죠. 중요한건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조와 비교했을 때 어떤 장점이 있는가겠죠.”
현재 서브로 들어가있는 조 블랜튼은 슈퍼 유틸리티맨인 브라이언 앤더슨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을 같은 유형으로 볼 수는 없었다.
앤더슨은 우투우타로 내야에서는 평균 이상인 55점 정도, 외야에서는 평균인 50점 정도의 수비를 보여주고, 타격에서도 50점과 파워 40점 정도를 줄 수 있는 준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블랜튼은 우투좌타로 포수 55점, 3루 55점, 나머지 내야 45점, 코너 외야 55점, 중견수 50점 정도로 평가할 수 있는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사시에는 포수를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블랜튼은 그다지 중용되는 편은 아니었다. 바로 그가 타격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하고는 다르게 컨택과 선구안이 좋습니다. 지난 겨울 타격폼을 바꾼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바꼈는데?”
“넌 알지 않아?”
“나야 모르지. 내가 본 건 프리시즌때의 모습 뿐이니까 그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게뭐야. 코치들은 알고있으려나?”
“쯧쯧!”
혀를 찬 거스가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 시즌까지는 파워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선수 중 하나였지. 그런데 파워를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컨택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타격폼으로 아예 경로를 수정했어. 지금은 보면 완전 오픈스탠스잖아? 지난시즌까지는 완전히 웅크리고 최대한 닫아놓은 포즈였어.”
“그리고 다른 장점은요?”
“다리가 빠르고 작전수행능력이 좋습니다. 빠른 발을 이용한 수비도 좋고요. 특히 타구판단이 기가막히게 빠릅니다. 아마도 짧은 신장을 커버하기 위해서 스타트를 빠르게 해오던 것이 버릇이 된 모양이더라고요.”
“거스가 평가하기에 몇 점을 줄 수 있죠?”
“내야는 55점. 2루수로는 60점까지 줄 수 있습니다. 코너 외야는 50점, 그리고 중견수로는 40점을 줄 수 있겠네요. 다만 시간이 지나면 외야수비도 점점 늘겁니다.”
“생각보다 중견수 수비가 박하네요.”
“출장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박할 수 밖에요.”
그의 설명에 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슨이 있으니까요.”
각 레벨을 터트리고 올라온 스탠하우스는 올 시즌을 트리플 A에서 시작했다.
“11경기 출장해서 42타수 20안타, 4홈런, 8도루, 6볼넷을 기록중입니다.”
이번 시즌 BA 랭킹 1위, 탬파 팜 랭킹 1위를 마크한 선수다운 미친 성적이다.
“미쳤군······.”
워낙에 바빠서 그의 성적을 확인하지 못했던 다운역시 입을 떡 벌렸다.
“스피드도 좋습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80점을 줄 수 있습니다.”
“80점도 모자라지.”
이미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그가 뛰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캐시다.
“우타자가 4초 안에 1루까지 가는 건 쉬운일이 아니거든.”
그 정도면 좌타자가 1루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속도일 것이다.
“개막 시리즈 예비로스터에 들어갔다고 자만하지는 않던가요?”
“전혀요. 워크에식이나 성격적인 측면에서도 문제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개막전 예비로스터에 들어갔던게 동기부여를 강하게 줬는지 엄청나게 훈련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모든 플레이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이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전혀 문제될게 없어보이는군.”
“꼭 그런것 만은 아니야. 예전의 마이어를 보는듯한 그런 느낌이 나거든.”
거스의 말에 다운이 물었다.
“예전의 마이어라면······.”
“타구를 향해 미친듯이 몸을 날리던 시절의 마이어말이죠.”
자신이 양키스에 있던 시절 안타성 타구를 몇 십개나 훔쳤던 마이어의 수비가 떠올랐다.
“부상위험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조금은 자제시킬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여하튼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중견수로는 65점을, 코너외야수로는 60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명을 마친 거스는 네 번째 선수의 이름을 올리려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네 번째는······.”
말을 잇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거스는 다운과 캐시의 눈이 맞는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가는 것 역시 볼 수 있었다.
“······ 필요없겠군요?”
거스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슨 한 번 써보죠.”
“저도 그 놈이 어떻게 뛰는지 한 번 보고싶네요.”
***
따아아악!
- 타구가 쭉쭉 뻗습니다!
텅!
타구가 담장에 마주치는 소리에 이어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쾅!
- 타구는 담장을 직격합니다. 그리고 공을 쫓던 중견수가 그대로 담장과 부딪칩니다! 그 사이 스탠하우스는 1루를 돌아 2루로! 2루를 돌아 3루까지 뜁니다! 그리고 3루에서! 세잎! 세잎! 스탠하우스의 역전 2타점 3루타! 7회 말! 6점차를 따라잡아 드디어 더램 불스가 경기를 뒤집습니다!
역전타를 친 주인공, 스탠하우스는 거친숨을 몰아쉬며 환히 웃었다.
“어땠어요 코치?”
코치는 스탠하우스가 넘겨주는 보호장비들을 받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고였지.”
“에이~ 그런거 물어보는거 아닌거 알잖아요.”
스탠하우스는 항상 이랬다. 뭔가 플레이를 하고나면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원했다.
“헤이 키드. 내가 항상 말했잖아. 그런건 경기 후에 하자고.”
“하지만 그런걸 알아야 다음 타석에서 나아지죠!”
“그건 저기 더그아웃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적어도 내가보는 주루는 완벽했어.”
“그거면 됐어요 코치.”
주먹을 마주친 스탠하우스가 주루용 보호장갑을 손에 끼우려는 순간 코치가 그의 팔을 잡았다.
“교체 사인이다 메이슨.”
“네? 교체요?”
6점을 주고도 7점을 따낸 불스의 오늘 공격력을 생각한다면 한타석은 더 들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아직 멀쩡하다.
“저 전혀 안지쳤는데요? 완전 괜찮아요.”
“알아. 그렇게 사인보냈는데도 들어오라네. 아마 다른 선수를 테스트해볼 생각인 것 같아.”
“어쩔 수 없죠.”
모든 선수들은 기회를 얻고 자신을 선보일 자격이 있다. 그게 바로 메이저리그에 올릴 선수를 찾는 마이너리그의 의의였다.
“고생했다.”
코치의 말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또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고생했어!”
“나이스 메이슨!”
“메이슨이 살린기회 이어가자고! 아자아자!”
스탠하우스는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해준 뒤 감독의 옆으로 갔다. 그러자 감독이 한 쪽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불만있어?”
불만은 없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3루타를 쳤지만 더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었던 전 타석의 아쉬움을 이번에는 날려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감독의 저런 말을 듣는 순간 불만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스탠하우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있자 감독은 더그아웃 뒤를 가리켰다.
“없으면 라커룸에나 들어가.”
“네.”
무미건조한 감독의 말에 스탠하우스가 불퉁하게 답했다.
‘내가 가라면 못갈줄 아나?’
평소라면 경기가 끝날때까지 라커룸에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경기하는것만 지켜봐도 공부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한 스탠하우스는 오늘만큼은 그냥 라커룸에 들어가서 먼저 퇴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을 삐죽 내밀고 더그아웃 뒤로 나오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그를 반겼다. 바로 더램 불스의 단장이었다.
“자네 경기중에 어딜가나?”
근엄한 그의 말에 스탠하우스는 당황했다.
“어······. 음······. 감독님이 퇴근하라고 해서요.”
다른 선수였다면 당당하게 말했겠지만, 한 번도 이렇게 일찍 퇴근했던 적이 없었던 스탠하우스라서 더더욱 당황한 것이다.
“흐음······.”
그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폰을 내밀었다.
“받아.”
뭔가 이상함 낌새를 챌만도 했지만 이미 단장에게 조기퇴근 길을 걸린(?) 스탠하우스의 머리는 그런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스탠하우스는 단장이 내미는 폰을 받아들었다.
“메이슨 스탠하우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소리.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문장이 흘러나왔다.
[짐 싸.]
“네?”
[웰컴 투 빅리그라고 메이슨.]
< 217화 - 짐 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