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 We want YOU for 27th player >
“아! 이거 개막 시리즈에서 열렸던 경기에서 진성찬 선수의 입장 치어였죠?”
“맞아요. 아시네요?”
“말했잖아요. 저 레이스 영상은 다 찾아본다니까요? 거기다가 이건 공식 채널에서도 ‘소름돋는 응원이란 이런 것!’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었잖아요.”
놀라운 점은 페니가 아니라 페퍼 여사님 역시 이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소름돋는 광경이었지······. 내 평생 그런 응원은 처음 봤어.”
“여사님도 아세요?”
“물론이지! 나는 거기 초청도 받아서 갔는걸!”
“아!”
역시 개국공신이라그런지 레이스가 챙겨주는 스케일이 남달랐다.
쿵! 쿵! 짝!
쿵! 쿵! 짝!
진! 성! 찬!
진! 성! 찬!
발구름 소리는 어느새 오늘 경기의 주인공, 지금 마운드에 오르며 사방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듯이 환히 웃고 있는 바로 저 남자. 오늘 경기를 책임지는 바로 그 선수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감사하다는 듯이 모자를 벗어 사방으로 들어올린 뒤 마운드에 올랐다.
자신감 있는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첫 타자를 상대로 그는 볼넷을 내줬다.
“아, 혹시나하는 퍼펙트 게임은 물건너갔네요.”
“그게 그렇게 쉬울리가 없죠. 그래도 멘탈은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들은 마운드에 있는 진성찬이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에 있었기에 진성찬이 웃으며 비어만을 향해 내가 잘못 던졌다는 듯 가슴을 짚는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멘탈이 엄청 강한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엄청 욕을 먹어서 단련됐다던데요. 근데 주자가 나갔으면 그거 할 수 있겠네요?”
페니의 말에 대니가 씨익 웃었다.
“‘마!’ 응원요?”
“제레미 예거는 도루 시도를 자주하는 선수니까 아마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
- 아마 블루제이스 벤치에서는 도루를 시도하라고 할겁니다. 진성찬처럼 언더에 가까운 사이드 암은 견제나 퀵모션이 다른 유형에 비해 약한 편이니까요. 뭐 그게 아니더라도 진성찬 같은 유형의 투수들도 견제구를 던질때는 빠르게 던지기 위해 오버나 사이드로 던지곤 하잖아요?
- 언더로 견제구를 던지는 선수는 저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 같네요.
- 견제구를 던지는 매커니즘은 그가 평소에 투구할때와는 다를겁니다. 만약 그가 견제구를 던지게 만들어 그의 밸런스를 조금이라도 흐트러트릴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블루제이스 입장에서는 이득이죠.
- 예거처럼 스피드가 빠른 선수라 더더욱 걸어볼만한 수겠네요.
- 그렇습니다. 예거는 스피드에서 60점을 받은 선수입니다. 그리고 데뷔 시즌은 지난 해에도 도루를 38번 시도해서 34개를 성공시켰죠.
- 도루 센스가 굉장히 좋네요.
- 그렇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겁니다. 찬은 사이드 치고는 퀵모션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메이저리그보다 스몰볼을 추구하는 한국에 있다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견제도 상당히 좋거든요. 게다가 포수가 누굽니까. 바로 비어만 아니겠습니까?
- 비어만의 어깨는 정말 대단하죠. 그렇다면 벤치에서는 찬을 흔들어보라고 하는 정도에서 그치겠네요.
- 아마도 그럴겁니다.
벤치의 사인을 받은 예거는 리드를 평소보다 반 발자국 더 벌렸다. 정확히 한 발을 벌리기 위해 무게중심을 2루쪽으로 옮기는 바로 그 순간 어떻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성찬의 오른발이 투구판에서 들어올려졌다.
“Dammmmm!”
예거는 젖먹던 힘을 다해서 1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땅에 몸이 부딪히는 충격과 베이스가 손 끝에 닫는 감각으로 인해서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몸에 대져있는 글러브는 아웃 콜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품고 1루심을 슬며시 들어올려봤다.
“레프리?”
예거의 간절한 물음에 1루심이 양 쪽으로 팔을 벌렸다.
“세잎!”
예거는 한숨을 쉬고는 왼손을 베이스에 대고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런데 그 순간
마!
마!
마!
장담컨대 저런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다. 적의가 담겨있는 25000명의 함성이라니! 화들짝 놀란 예거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베이스에 대어져 있던 그의 손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선발 1루수로 출전한 윌슨의 눈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 넘어지는 예거! 윌슨이 재빨리 공을 든 손으로 예거를 태그합니다!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예거가 다시 1루를 향해 발을 뻗었지만 윌슨의 공이 예거의 몸에 먼저 닿았다. 결과는 당연히 아웃.
- 윌슨이 예거를 아웃시킵니다!
- 이야~ 윌슨! 역시 베테랑 답습니다! 찬에게 공을 던지려고 몸을 반쯤 돌린 상황에서도 예거의 행동에서 눈을 떼지 않았어요! 지금 다시보기 보이시죠? 예거는 어리석게도 타임을 요청하는걸 잊고 그대로 일어났어요! 안일했던거죠.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겁니다. 팬들의 견제를 말이죠.
- 타임이 선언되기 전까지는 언제 어느상황에서나 인플레이라는 것을 잊지않고 있는거죠! 이게 바로 베테랑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죠!
- 덕은 이런 점을 보고 배워야합니다. 아, 이미 더그아웃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네요!
흘로첵은 마치 윌슨의 센스있는 플레이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제 경기에서도 저런 팬들의 견제가 나오지 않았나요?
- 이번 시리즈 내내 시행되기는 했죠. 하지만 화요일 시리즈 첫 날에는 17583명, 수요일인 어제는 19402명이 관중석을 채웠습니다.
- 수요일은 언제나 가장 힘든 하루니까요.
- 그렇습니다. 게다가 양일 동안 오신 관중분들은 어떤 식으로 응원을 해야할지를 아예 몰랐던 분들도 계시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목소리도 작고 자신감이 없었죠. 게다가 어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목소리가 선수들의 플레이를 방해할까봐 조심스럽다.’라고 말하신 팬들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투수들은 예민한 생물이잖습니까?
- 그렇죠. 조금만 틀어져도 그 날 투구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게 투수들이죠.
- 그러다보니까 팬들도 조심한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우선 25000석이 전부 들어차있습니다. 인원부터가 다르죠. 거기다가 이미 지난 이틀간 경기장에 오셨던 팬들은 견제응원을 해본 경험도 있죠. 마지막으로 찬은 공개적으로 ‘조용한 홈 구장은 싫다! 한껏 즐기고 떠들어 달라!’라고 말했던 선수죠. 그러니 관중들이 마음놓고 떠들어댈 수 있는거죠!
- 그나저나 멋지네요. 윌슨도 플레이를 정말 잘했지만, 결국 이 아웃은 팬들이 만들어낸거 아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25000명의 레이스 팬분들이 내뿜는 기세와 외침! 이것이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낸겁니다!
- 정말로 경기장의 26번째 선수가 되어주신거군요!
- 지금은 26인 로스터니까 27번째 선수가 맞는 표현 아닐까요?
- 하하하! 그렇게 되겠군요!
프런트 직원들과 함께 경기를 보고있던 다운이 심슨을 불렀다.
“브래드. 저 말 좋네요.”
“경기장의 27번째 선수 말입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경기장의 27번째 선수! 바로 팬 여러분입니다! 선수들이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는것처럼 여러분들도 최선을 다해 응원해주십시오!’라는 프레이즈를 걸면서 팬들의 응원을 더 촉구할 수도 있겠네요. 팀원들이랑 조금 더 의논해서 발전시켜보겠습니다.”
심슨은 한 마디만 하면 굳이 추가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
“그나저나 저 치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뭐라고 하네요.”
블루제이스의 감독이 나와서 심판에게 항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지난 이틀동안에도 바뀌지 않았던게 이제와서 바뀔리는 없겠죠.”
물론 그때와 상황이 다르긴 하다. 지난 이틀간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관중들의 함성이 경기장에 있는 선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니까.
하지만 심판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블루제이스에게도 공문이 갔지 않습니까?”
“갔겠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올해 초 레이스와 애스트로스의 경기를 본 뒤 모든 구단에게 공문을 날렸다. 길고 상투적인 말들이 잔뜩 달려있는 전형적인 공문이었다. 그걸 요약해보자면
- 관중들의 응원을 적극 장려한다.
- 응원소리로 인해서 플레이에 지장이 있다는 헛소리는 금지. 지장이 있는 선수는 귀마개를 껴라
- 다만 선수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빛이나 레이저류를 이용하는 팬들은 즉각 퇴출한다.
팬이 줄어가는 현재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야구장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그리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이 그것을 분출할 수 있는 구멍이 되어줘야한다는 것이 사무국의 판단이었다. 구단들과 선수협 역시 그것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블루제이스의 감독이 저러는 것은
“쇼네요.”
“보여주기식 쇼지.”
이대로 주눅들 수는 없으니 심판에게 한 번 항의하고 선수들에게 전의를 불태우라고 할 예정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잘 된다면 과연 블루제이스가 저렇게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에 틀어박혀 있을까?
따아아악!
- 마르코 루이스의 타구가 쭉쭉! 그리고 펜스를 때립니다! 3루에 있던 로드리고, 2루에 있는 드레이크가 홈으로! 들어옵니다! 루이스는 2루에 안착!
따아아아아악!
- 배리 브래넌의 타구가 멀리! 높이! 그리고! 담장으으으으으을! 넘어갑니다! 배리 브래넌의 시즌 4호 홈런! 배리가 600홈런까지의 거리를 또 한 걸음 좁힙니다!
- 이야! 이거 배리! 다음 시즌도 해야하는거 아닙니까?
레이스의 타자들은 열심히 블루제이스의 투수들을 때려눕혔다.
후우우웅!
파아아앙!
- 몸 쪽을 기가막히게 파고드는 찬의 93마일짜리 싱커에 배트가 헛돕니다!
- 저게 무슨 싱컵니까! 좌완이 던지는 슬라이더라고 해도 믿겠어요! 저런 싱커에 우타자 바깥쪽으로 부메랑처럼 휘어나가는 슬라이더까지! 찬은 올 시즌 레이스 최고의 계약이 될겁니다!
- 하하! 루이스가 들으면 서운해하겠네요.
- 루이스는 트레이드잖습니까? 하하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할 당시처럼 엄청난 구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성찬은 상대 타자들을 손쉽게 넉아웃 시켰다.
“오늘은 확실히 체력을 안배하는 것 같죠?”
“그래보이네요. 아까 불펜피칭할때 컨디션은 무척 좋았거든요.”
블루제이스 타선 자체가 워낙에 약하다보니 진성찬도 평소보다 한 단계 기어를 낮춰서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득점권에 주자가 가면 피치를 확 끌어올려서 실점만큼은 막아냈다.
“확실히 똑똑한 투수네요.”
“성찬이가 있을 동안에 저런 점을 좀 배워야할텐데.”
진성찬을 꼬셔서 더 적극적으로 어린 투수들에게 조언하라고 말해줘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팬들.
마! 마! 마!
짝짝짝짝짝! 배~~리 브래넌!
짝짝짝짝짝! 비어~만 히! 트!
짝짝짝짝짝! 스~트라잌 아웃!
교보재 때문에 그런가?
‘왜 한국식 응원처럼 들리지?’
이상하게 팬들의 응원이 한국식 영어처럼 들렸다.
“뭐 즐기고 계시니 된건가?”
특히나 회의실 창문에서 바로 아래열에 있는 저 사람. 이름도 모르는 팬이지만 처음에는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렵사리 예매는 성공했지만, 경기장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그라운드와 가장 먼 곳에 있다보니 제대로 경기가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나마 글라이드 파크에 있는 대형 전광판과 여러 각도에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된 다섯 개의 추가적인 전광판이 아니었다면 선수들의 표정조차도 보지 못했을 것이니 기분이 좋지않을만도 했다.
그러다보니 응원도 적극적으로 할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주변 사람들이 다들 하니까 따라하는 정도였다. 그랬던 사람이 경기가 끝나가는 지금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카를.”
“네.”
“촬영팀 애들 데리고나가서 돌아가시는 관중들한테 오늘 경기가 어땠는지, 응원을 하고나서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인터뷰 따와. 적어도 10명 이상이야.”
“옛썰!”
냄새가 난다.
평균 관중 수를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영상의 냄새가 말이다.
< 215화 - We want YOU for 27th player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