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14화 (214/268)

< 214화 - 쿵쿵짝 >

진성찬의 퍼펙트게임 기념 경기는 레이스 팬이라면 누구나 보길 원하는 경기였다. 레이스 내부적으로도 수많은 이벤트들을 하기도 했지만, 파인트에 이어서 레이스 역사상 두 번째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해낸 선수의 첫 번째 홈 경기다. 이런 경기를 놓치고 싶어하는 야구 팬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레이스 프런트 직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경기 못보겠지?”

“아마도······? 다른 부서는 몰라도 우리 운영팀은 스탠바이 아닐까?”

“하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가 제일 먼저 뛰어나가야하니까······.”

이런 직원들의 마음을 알아챈 다운은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원하는 직원들은 오늘 대회의실에서 경기 관람을 하도록 하세요. 운영팀 같이 스탠바이가 필수적인 팀들도 대회의실 대기를 허락하겠습니다.”

다운의 허가에 운영팀을 비롯해서 스탠바이를 해야하는 팀의 직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사고 터지면······.”

“절대로 터질 일 없게 하겠습니다!”

“저희만 믿으십쇼 단장님!”

의욕이 넘치는 직원들을 보고 피식 웃는 다운은 단장실로 들어갔다.

“리타. 피트랑 브래드, 앤디 좀 불러줘. 아, 그리고 너도 들어오고.”

“네.”

잠시 후 리타가 세 사람과 함께 단장실에 들어왔다.

“성찬이 가족들은?”

“잠시 후 한 시에 구장에 오실 예정입니다. 안내는 댄과 진성찬 선수가 직접 맡을 예정입니다.”

“결국 자기가 한대?”

등판일에 예민해지는 선발투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운은 진성찬에게 굳이 직접 그들을 안내할 필요는 없다고 전해줬었다. 하지만 진성찬이 어디 그런걸로 흔들릴 멘탈인가?

“네.”

“보나마나 그런걸로 흔들려서 털릴거였으면 뭘 해도 털린다고 했겠지.”

“뭐 그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식당으로 안내해서 선수들이 먹는 식단이나 밥 대접해드리고 안내하라고 전달해.”

“댄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부탁할게.”

리타는 프레슬리에게 전달하기 위해 단장실을 나갔다.

“오늘 준비는 다 됐어요?”

“일단 할 수 있는 준비는 최대한으로 해놨습니다. 마케팅 파트와 협력해서 일찍 올 수 있는 분들은 최대한 일찍 오시라고 이야기해놨습니다.”

아무리 게이트 별로 인원을 나눴다고는 하지만, 2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순간에 들이닥치게되면 게이트는 터져나갈게 분명했다. 아마 엄청나게 혼잡해지겠지. 그래서 클라인과 심슨은 꾀를 냈다.

“선수단에게 말해서 미리 오시는분들이 지루하지 않으시도록 팬서비스를 조금 더 일찍, 그리고 길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훈련할 때 볼거리를 조금 더 만들어달라고도 했고요.”

“우리 선수단이라면 당연히 수락했겠죠?”

“너무 흔쾌히 수락했죠.”

네 사람의 얼굴에는 팬들을 생각하는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있다는 자부심이 떠올랐다.

“나중에 원정에서 좋은거라도 사먹여야겠네요. 앤디. 스토어 쪽은 어떻게 준비해놨어요?”

“오늘 판매량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니폼 섹션을 줄였습니다.”

이번 경기에는 기념품으로 모든 입장객들에게 티셔츠를 나눠준다. 게다가 이번 시리즈 내내 적용되는 할인으로 이미 팔릴 유니폼은 거의 다 팔렸다는 내부평가가 있었다.

“그 대신에 버블헤드와 오늘만 판매하는 한정판 응원도구들을 비치해놨습니다.”

“또 컬렉터들이 눈에 불을켜고 달려들겠네요.”

“솔직히 우리만큼 한정판 활용을 자주하는 팀은 없는 것 같네요.”

“그게 오히려 좋은거죠. 개인적으로는 메이저리그도 축구처럼 매 년 조금씩 유니폼을 바꿔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은근히 유니폼의 디자인이 주는 구매욕구가 상당하거든요. 아쉽게도 메이저리그 유니폼은 거의 바뀌질 않지만요.”

“그래? 난 우리 유니폼이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러셀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를 침몰시키는데에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오랫동안 봐오던 유니폼이니까 그렇게 보이는거지. 그리고 매 년 바뀐다고 생각해봐. 그걸 팬들이 내버려둘까?”

“매 년 유니폼 디자인을 바꾸게되면 올드 유니폼의 가치가 오를테고, 또 매 년 새로운 유니폼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그러면 구단의 재정이······.”

어느새 머릿속에서 계산을 마쳤는지 러셀이 눈을 빛냈다.

“단장님. 저희 매 년 유니폼을 바꾸는건 어떻습니까? 네? 색만 비슷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방금까지 우리 유니폼이 정말 괜찮다고 했던 사람 어디 갔어요?”

“그 사람 탬파 만에 가라앉았답니다.”

뻔뻔한 러셀의 반응에 다운과 심슨이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도록하죠. 기본 유니폼은 어떻게 못하겠지만······.”

메이저리그 규정에서 기본적으로 홈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구단의 로고와 대표 색이 들어갈 수 있고, 원정 유니폼은 홈 유니폼에서 바탕색이 회색으로 바뀌게 된다.

홈 유니폼 바탕이 흰색계열 이어야한다는 명확한 규정을 제외하고는 사실 별다른 강제적인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양키스나 필리스 등등 처럼 줄무늬를 넣기도 하고, 자이언츠처럼 크림색을 쓰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에 따르면 홈은 흰색, 원정은 회색계열이어야 하기에 이 부분만큼은 다운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얼트 유니폼들은 저희 입맛대로 고칠 수 있으니까 한 번 생각해보자고요.”

만약 메이저리그에서 유색 바탕의 유니폼을 봤다면 그건 대부분 얼터니티브 유니폼, 혹은 서드 유니폼이라고 불리는 유니폼들일 것이다. 그 외에는 특별한 날 입는 이벤트 유니폼이거나 말이다. 그런 유니폼들은 구단의 고유 색을 포함하고 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구단 입맛대로 바꿀 수 있었다.(물론 너무 이상하면 사무국에서 승인을 내주지 않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올 시즌에 어디 끼워넣어볼만한 곳 없나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흐흐흐!”

“2층 출입구는 확실히 막았죠?”

“네.”

이런저런 내용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점심먹고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운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심슨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 카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다운의 질문에 심슨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웃었다.

“아마 사람들은 미쳐날뛸겁니다. 그리고 우리 레이스의 또 다른 자산이 되겠죠.”

***

레이스에서 일찍부터 관중들을 받아들인 덕분에 3시부터 입장할 수 있다는 연락은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5시부터 몰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이유는 더워서다. 4월이라고는 하지만, 탬파의 햇빛은 따갑다. 특히나 오늘처럼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글라이드 파크가 개폐식 돔으로 지어져서 에어컨을 틀 수는 있다. 하지만 에어컨을 가동하는 날은 비가 내리거나, 더위가 만연한 여름일 때 뿐. 오늘 같은 봄에는 가동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는 오늘이 목요일, 즉 평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중들은 일을 마치고 나서야 입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힘겨운 예약경쟁을 뚫고 오늘 티켓을 얻어낸 대니도 그 중 하나였다.

“이버시티에 있으니까 진짜 편하네. 만약 트로피카나 필드로 가야했으면 정말······.”

아마 다리 위에서 경기가 시작하는걸 지켜봐야하지 않았을까?

“어디보자 난 1번 게이트로 가야하니까······.”

대니의 번호는 2403번. 정문으로 알려진 1번 게이트에서 입장할 수 있었다. 다행히 지나오면서 마주친 다른 게이트들과는 다르게 1번 게이트는 대기줄이 거의 없었다.

“티켓 찍어주세요.”

삑!

QR코드가 찍히는 소리와 함께 스태프가 큰 소리로 외쳤다.

“2403번이요!”

“Two, four, zero, three!”

“맞습니다! 저쪽에 있는 스태프에게 가시면 됩니다. E-티켓은 그대로 켜놓으세요.”

뒤에 있던 스태프에게 가자 그는 다시 한 번 티켓을 요구했다.

“어디보자. 2403번 대니 피츠님 맞으시죠?”

“네.”

그러면서 그는 대니를 데리고 옆에 있는 테이블 하나로 가서 2403이 박혀있는 작은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지금 제 앞에 열어서 내용물이 모두 들어있는지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바로요?”

“네. 한정판 티셔츠, 선수들의 사인이 랜덤으로 들어있는 유니폼, 레이스 슬리퍼, 휴대용 선풍기, 그리고 진성찬 선수가 쏘는 맥주 한 잔 무료 쿠폰이 들어있습니다.”

이제서야 대니는 왜 이 줄이 이렇게 길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엄청 철저히 검사하네요.”

“지난번이랑 다르게 품목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자기가 받은 컷이 마음에 안든다고 다른 번호 부르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신청하신 사이즈가 맞는지도 확인하셔야하고요.”

“아하!”

하여간 진상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사이즈도 L사이즈로 맞고······. 이 사인은······.”

“알버트 서머스네요.”

“아······. 어쩐지 본 적 있는 것 같더니!”

서머스의 사인이 있는 유니폼은 이미 집에 있었다.

“덕 사인이었으면 내야 전원 모으는건데!”

아쉽지만 랜덤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뭐죠?”

딱봐도 카드크기의 뭔가가 봉지에 쌓여있었다.

“탑스와 협업해서 만든 진성찬 선수 퍼펙트 게임 기념 카드라더라고요.”

탑스 야구카드라는 말에 대니의 눈이 반짝였다. 대니의 집에도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야구카드 컬렉션이 있었다.

“오~! 그럼 25000장이나 뿌려지는거네요?”

“정확히 25000장만 만들어진거죠. 그리고 그 중에서 11장은 각도에 따라 움직이는 홀로그램이 입혀져 있대요.”

“홀리 쉣! 정말요?”

컬렉터의 혼이 울고 있었다.

‘제발 내 카드가 홀로그램이길!’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걸 까볼 시간이 없었다.

째릿!

뒤에 또 다른 사람이 굿즈들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저는 문제없이 다 있는 것 같네요. 무료 쿠폰은 그냥 쓰면 되나요?”

“네. 비어보이나 비어걸에게 제시하시면 바로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다가 수령했다는 서명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즐거운 관람 되세요!”

서명까지 마친 대니는 그제서야 구장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니는 한정판 티셔츠는 가방에 고이 두고, 가져온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일단은 거길 가야지!”

글라이드 파크에 온 사람이라면 무조건 들러야하는 곳! 바로 2층의 푸드코트다. 다행히 오늘만큼은 레이스에서 혼잡을 예상했는지 푸드코트쪽 출입구는 막아놨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널널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번에 먹은거 말고······.”

글라이드 파크가 자랑하는 푸드코트에서 먹을것을 잔뜩 산 대니는 배정된 자리로 행했다.

“잠시만요! 잠시만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힘겹게 인파를 뚫고 지나온 끝에 드디어 자신의 자리가 나왔다.

“호호 먹을거 잠깐 들어줄게요 편히 앉아요.”

옆자리에 있는 노파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은 대니는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 어?”

옆에 앉은 노파의 얼굴은 아주 익숙했다. 바로 유튜브에서 자주 보였던 페퍼 여사님이었다.

“페퍼 여사님?”

“호호? 날 알아요?”

“그럼요! 여사님이 얼마나 유명한데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비어있던 왼쪽자리 역시 채워졌다.

‘우와!’

그것도 엄청난 미인으로 말이다. 그녀도 자리로 오면서 페퍼 여사님을 봤는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머! 페퍼 여사님 아니세요?”

“호호 맞아요!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날 알아보시네! 여기 있는 이 총각도 날 알아봤거든.”

자신에게 시선이 오자 대니가 손을 내밀었다.

“대니입니다.”

“페니에요.”

인사를 한 그녀가 다시 페퍼 여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레이스 유튜브를 자주 보거든요. 그런데 딱 거기서 여사님이 나오셨죠.”

“아가씨도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요?”

“저는 알버트 서머스요!”

그런데 그녀가 순간 울상을 지었다.

“그런데 오늘 랜덤 사인 유니폼에서 흘로첵이 나왔어요. 내심 서머스였으면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운이 따르는 날 같았다.

“저랑 바꾸실래요? 저한테 서머스 사인 유니폼이 있거든요.”

“정말요?”

순간 화색을 띄운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도 괜찮으세요?”

“물론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네요. 저는 집에 올 시즌 서머스에게 받은 사인 유니폼이 있거든요. 흘로첵것만 채우면 내야 사인을 다 받는거라서요.”

거기다 이런 미녀의 웃음이라니. 얼마든지 바꿔줄 수 있었다.

“그럼······.”

가방에서 유니폼을 꺼낸 그녀가 단숨에 유니폼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머스의 사인이 그려져있는 유니폼을 쓰다듬었다.

“헤헤!”

“진짜 좋아하시나봐요?”

“네! 원래 디트로이트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딱 제가 회사에서 잘리고 플로리다로 온 그 시기에 서머스도 타이거스에서 레이스로 왔어요. 저랑 비슷한 처지라 더 신경도 쓰이고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배리가 최고야.”

단호한 페퍼 여사님의 말에 두 사람이 미소지었다.

“배리는 언제나 최고죠. 그래도 오늘만큼은 저 남자가 최고 아닐까요?”

장내 아나운서가 크게 소리쳤다.

- 오늘의 선발 투수! 진성찬이 입장합니다!

“발 두 번에 박수 한 번입니다!”

그의 입장과 함께 부산에서 울려퍼졌던 바로 그 소리가 글라이드 파크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쿵! 쿵! 짝!

쿵! 쿵! 짝!

< 214화 - 쿵쿵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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