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마! >
“몇 경기나 걸었습니까?”
“20경기요.”
20경기라
애매하기 그지없는 경기 수였다.
“그래서 단장님도 고민하신거였네요.”
“맞아요.”
정말로 올드먼이 그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극복했다는 전제 하에 10달러라는 조건은 혹할 정도로 좋은 조건이다. 물론 마이너리그에 있을때만 해당하는 거겠지만.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고 로스터의 한 자리에 들게 되면 최저연봉인 300만 달러는 보장해줘야한다.
하지만 걸리는건 20경기 출장보장 조건이다.
시즌을 보내다보면 부상자를 비롯해서 전력에서 이탈하는 선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주 이탈하게 되는 햄스트링이나 손가락 타박상, 혹은 골절상,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의 회복기간은 2주에서 6주까지다.
“정확히 그 선을 노린거겠죠?”
“아마도 그럴겁니다.”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기는 생각보다 많고, 또 그렇다고 보장경기가 많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수준의 경기 수다.
“혹시 마이너리그 강등을 거부하는거 아닙니까?”
메이저리그 서비스타임이 5년 이상 되는 올드먼에게는 자동적으로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주어진 상태였다. 이런 선수를 내려보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지명할당 처리를 해야만 한다.
“계약서 상에 마이너 행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넣겠다더라고요.”
물론 이렇게 선수가 동의한다면 마이너행에는 아무 걸림돌이 없어지게된다.
“그럼 단장님이 원하는대로 마이너에서도 얼마든지 교보재로 써먹을 수 있다는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한 번 살펴보려고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죠?”
“저희에게 시간은 있습니까?”
“최대한 빠르게 결정해달라는 말은 했지만, 다른 구단들에게 이미 한번 싹 다 거절당한 뒤인것 같더라고요.”
“그렇겠죠. 좋게 말해서 교보재인거지, 만약 클린하지 못하다면 어린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겠죠. 그리고 그런 선수는 단장님이 좋아할 스타일은 아니니까요. 일단은 그의 사생활이 클린한지 사설탐정을 이용해서 알아보죠. 그리고 지금 혹시 경기력을 위해 뛰고 있는 팀이 있답니까? 보라스가 도와준다면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을 것 같은데.”
“맞아요.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는 중이랍니다. 조니?”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로벨이 울상을 지었다.
“스카우트 그냥 하나 보내면 안돼?”
어린 보석을 골라내는 맛으로 이 일을 하고있는 로벨에게 지금 이 시기는 1분 1초가 소중했다. 그런데 늙다리를 보러 가라니!
“그럼 미키를 보내야겠네. 술이랑 마약은 끊었다던데 여성편력은 좀 고쳤으려······.”
“내가 갈게. 파트장님이 그런 곳을 돌아다니면 안되지.”
순식간에 태세를 바꾸는 그를 보고는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그럼 조니가 가는걸로 하자고.”
***
이번 홈 3연전은 블루제이스와 치뤄진다.
파랑새는 평소와는 다르게 한 사람을 물고 탬파로 날아왔다.
“너무했네요.”
“그치? 다운이 너무한거지? 내가 너무 예민한거 아니지?”
“그럼요~ 분명 다운은 어스틴이 돌아오면 곧바로 이야기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전화로 말했던거죠. 아무것도 들은게 없다고 하셔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알아요?”
“거 봐! 좀 잘해봐라 이놈아!”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좀 용서해주세요.”
“저, 저거 봐! 저게 잘못했다는 놈의 태도냐?”
“그러게요. 나중에 저랑 싸우고 나서도 저러는거 아닌가 몰라요.”
“분명히 그럴게다! 지금부터 버릇을 고쳐놔야돼!”
한동안 두 사람에게 갈굼당한 다운은 식사가 끝나고서야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스테이시는 이제 옮기는거냐?”
“네. 한 달 정도 인수인계를 하고, 그거 끝나면 곧바로 그만두고 넘어오기로 했어요.”
“잘했다 잘했어. 그 영감한테 말하길 잘했구만!”
원래는 단장 측에서 스테이시의 퇴사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반적인 사원도 아니고, 시즌 준비를 겨울부터 함께해온 파트장 하나가 사라지게되면 프런트의 분위기 자체가 어수선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시즌이 끝날때까지로 퇴사를 미뤄달라면서 사직서를 받아주질 않았다.
하지만 그 상황을 들은 글라이드가 어제 바로 블루제이스 구단주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스테이시의 퇴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오면 어디서 일할 예정이냐?”
“스테이시가 원래 일하던 파트가 마케팅이잖아요. 그래서 브래드랑 이야기해봤어요.”
“브래드는 뭐라던?”
“두 팔 들고 환영한다더라고요.”
로저스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파트장에 이어 블루제이스 마케팅 파트장(고작 반년도 안됐지만)까지 했던 사람이 온다고 하면 보통은 경계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심슨은 경계따윈 하지 않았다.
“정말입니까? 언제온답니까? 바로 투입시켜주시는거죠?”
“보통은 이런 경우에 자리를 지키려고 하지 않나요?”
“그건 보통의 경우죠. 근데 우리 구단이 어디 보통입니까? 구단주님은 물론이고 단장님까지 마케팅할 거리를 끊이질 않고 주는데 머리라 쥐어 터져나갈 것 같다고요. 최근에 저희 팀원들 보셨습니까?”
“어······ 보기야 했죠?”
보통 진한 다크서클을 달고 좀비마냥 돌아다니는 직원들을 확인해보면 대부분 마케팅 팀이었다.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직원이 있으면 마케팅 팀이다.’라는 이야기가 괜히 직원들 사이에서 돌고있는게 아니었다.
“다들 죽어나갑니다. 진짜로요! 물론 좋아서 하는 놈들이 대부분인데다가 행사 끝나면 보너스가 나오니 큰 불만은 없습니다만, 인원 충원! 진짜 꼭 좀 해주십쇼! 어떻게든!”
“그럼 부 파트장으로 들어가도 별 상관없겠네요?”
“파트장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이 웃었다.
“하핫! 진짜 파트장을 준다던?”
“네. 근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일단은 일반 직원으로 입사시킬 생각이에요. 당장에는 책임감있는 업무를 맡는것 보다는 시키는 것 위주로 하면서 몸관리를 잘하는게 더 중요할 것 같아서요. 본인은 물론 상관없다고는 하는데······.”
“저는 정말 상관없어요. 근데 임신은 저에게도 다운에게도 처음있는 일이다보니까 이왕이면 무조건 조심하고 푹 쉬자고 해서······.”
“그게 맞는 선택인 것 같다 아가. 그러니 일단은 저 놈이 말한대로 하자꾸나.”
“네.”
아무래도 이제 글라이드의 양아들 자리는 스테이시에게 넘어간 것 같다.
“쩝.”
***
레이스를 비롯한 양키스, 레드삭스, 오리올스까지 총 네 팀이 우승경쟁을 위해 달리는 가운데, 블루제이스만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리빌딩을 담당하고 있는 최약팀이었다. 그 말은 곧 레이스가 어렵지 않게 승수를 쌓아올릴 수 있는 좋은 제물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 브래넌! 브래넌이 때린 공이! 담장을 넘어 저 밖으로! 배리 브래넌의 시즌 3호 홈런입니다!
- 외야에 있는 홈런 판넬의 끝 숫자가 바뀌었습니다! 587호! 이제 600홈런까지 남은 홈런은 13개입니다!
- 배리라면 가능할겁니다! 지금의 저 기세를 보세요! 저게 어디 은퇴를 앞둔 선수의 스윙입니까?
1차전은 브래넌의 선제 쓰리런을 앞세워 17대 2라는 엄청난 점수차로 승리했다.
그리고 양 팀의 1선발이 맞붙는 2차전.
블루제이스가 아무리 약한 팀이라고는 하지만, 1선발만큼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다른 팀의 1선발에 비해서 손색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경기는 서로 점수를 내주지 않으며 5회까지 흘러갔다.
하지만 거기까지 막아내는데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해서였을까?
마르코 루이스가 블루제이스의 1선발이 던진 94번째 공을 그대로 우측 담장 너머로 날려버린 것이다.
- 마르코오오오오 루이스! 홈 팬들 앞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홈런입니다!
- 0의 균형이 5회 말에 드디어 깨집니다!
- 이렇게되면 레이스는 훨씬 편해졌죠. 파인트는 아직까지 54개의 공밖에 던지질 않았거든요.
- 그나저나 루이스의 스윙은 진짜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간결하면서도 필요한 힘을 전부 싣는 아름다운 스윙이죠.
해설들이 루이스의 스윙에 감탄하고 있을 때, 프런트는 다른 것에 감탄하고 있었다.
“고작 두 경기째인데 관중들이 엄청 빠르게 적응하네요.”
“그러게. 나도 이렇게 빠르게 적응할 줄은 몰랐는데.”
그들이 감탄하는 것은 바로 관중들의 응원이었다.
팡팡~팡 팡! 팡! 마르코 루이스!
팡팡~팡 팡! 팡! 마르코 루이스!
어제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새로운 응원문화. 다운을 비롯한 프런트는 자신있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게 잘 받아들여질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이건 E-티켓과는 또 결이 다른 문제니까.’
E-티켓과 그를 이용한 출입관리는 모바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현대 시대에 결국에는 이루어질 일이었다. 다운은 그저 조금 빠르게 그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고, 그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거부감 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응원문화는 달랐다.
메이저리그 팬들의 대부분은 노령화되었다. 레이스 역시 이를 피해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E-티켓을 통해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레이스 팬들의 분포는 아래와 같았다.
10대 이하 5%
20대 23%
30대 20%
40대 16%
50대 이상 36%
탬파를 비롯한 플로리다 주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보이는 현상이 여기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노년의 백인과 젊은 히스패닉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40대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고 2030들과 50대 이상이 많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레이스 프런트가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은 저기 있는 2030들이 흥이 많은 히스패닉 계열의 어린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야구를 어려서부터 놀이로 배웠고, 응원 역시 흥이 넘치게 응원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거스와 러셀이 이런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그 이유 역시 합당했다. 50대 이상의 팬들 대부분은 백인이고, 이런 백인 팬들은 ‘야구장에서 관람할때는 즐기되 시끄럽지 않게.’라고 생각하며 박수가 응원의 끝인 경우가 많았다. 포스트시즌 경기라던가 뭔가가 걸린 경기라면 모를까, 일상적인 경기에서는 정말 시끄럽게 응원해봤자 손피리를 부는 정도가 끝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응원문화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틀간 글라이드 파크에 모인 팬들은 기다란 막대풍선을 들고 앞에서 바람을 잡아주는 직원들을 따라 신나게 응원을 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네요.”
“응원도구 사용법에 관한 영상들 조회수가 높을때부터 알아봤어요! 거기다가 개막전에서 시호크스 팬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이런 관심도를 더 높였다고 생각해요. 도구 사용법 말고도 최근에 조회수가 가장 높거든요.”
조회수가 높다는 것이 어떤걸 의미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에서 드러났다.
- 네이트 리드가 긴데요? 그린이 견제구를 던집니다! 네이트!
촤아아악!
- 세잎이네요.
-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
여기서는 들어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소리가 글라이드 파크에 울려퍼졌다. 25000명이 동시에 타이밍을 맞춰 지르는 소리에 상대 투수인 그린은 순간적으로 놀라서 공을 떨어트렸다. 그러자 관중들은 더 기세를 올려 소리치기 시작했다.
마!
부산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애스트로스 선수들이 기를 못쓰는 것이 꽤나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푸하핫! 저 사람들은 ‘마!’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쓰는걸까?”
“상관없지 않아요?”
“전혀 상관없지.”
선수들에게는 진성찬이 알려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팬들이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을 선수들은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내일 경기에서도 이렇게 시끌벅적하면 성찬이가 좋아하겠네.”
< 213화 - 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