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살아있는 교보재 >
구단주실로 끌려간 다운은 그대로 한 시간을 내리 혼났다. 글라이드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아니 어떻게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가 있어?”
“진짜 말하려고 했어요! 근데 어스틴이 출장 가있어서······.”
“어제 돌아온거 알고 있었잖아.”
“그야 그렇지만 저도 오늘 도착하자마자 출근해서······.”
“너만 출근했냐?”
“그리고 다른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네가 아빠가 되는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지?”
“······어스틴 그거 구단주가 하기에는 위험한 발언 아니에요?”
“닥쳐.”
“넵!”
지은 죄가 있기에 다운은 꼬리를 말았다.
“결혼은?”
“해야죠. 다음 토론토 원정때 찾아뵙고 인사드리기로 했어요.”
“그래. 그 영감이랑도 미리 이야기해놓을테니 인사만 잘 드리고 와라.”
어찌어찌 글라이드의 잔소리를 버텨낸 다운은 녹초가 되어서 회의실로 돌아왔다.
“이야~ 단장님. 어떻게 구단주님한테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 전하는걸 깜박할 수가 있습니까?”
이들도 글라이드가 얼마나 다운의 아이를, 그리고 손자를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분명 어제 비행기에서만해도 이야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스테이시한테도 그렇게 말했고요.”
“그래서 들켰군요.”
“맞아요.”
다운이 말한줄 알고 스테이시는 문안인사겸 글라이드에게 전화했다가 임신사실을 말하게 된 것이었다.
“뭐 어찌됐건 까먹은 제 잘못이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럼 다시 회의를 이어나갈 차례다.
“우선 아까 들은것부터 정리할게요. 거스. 은퇴를 원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요.”
“단장님!”
미키가 즉각 반발했지만 다운은 손을 들어올려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거스 말대로 거스는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성인이죠. 그리고 구단주님을 옆에서 지금까지 봐왔기에 거스가 어떤 마음인지도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당장에 미키가 거스의 모든 업무를 맡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봐요. 그러니 미키는 이번 드래프트까지만 스카우트 파트장의 업무를 맡고 이후부터는 보조 팜 디렉터로 일하도록 하세요. 기한은 다음시즌까지입니다.”
“단장님!”
이번에는 거스의 반발이었다.
“미키가 스카우트 팀 내에서는 실적과 실력으로 인정을 받고 있죠. 하지만 팜 디렉터로 가도 똑같을까요?”
다운의 질문에 거스는 답하지 못했다. 그도 내부에서 분명히 잡음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도 실력적으로는 미키가 최고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부에서는 말이 나올거라는 말이죠. 그래서 그 말을 막아주고, 미키가 실력을 보여주고 그쪽 파트를 장악할 동안 방파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거스가 아니면 누가 그 역할을 하겠어요?”
구구절절 옳은 다운의 말에 거스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년까지만 하도록 하죠.”
“드래프트 이후 공석이 된 스카우트 파트장 자리는 조니가 맡을겁니다. 이의 있으신분?”
로벨의 실력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의가 있을리가 없었다.
“좋아요. 그럼 이 문제는 이렇게 남겨두도록 하고······.”
아까 못다한 질문을 로벨에게 할 차례였다.
“원래는 조니한테만 살짝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이야기해야겠네요.”
다운은 선수 하나의 이름을 말했다.
“올리버 올드먼.”
그의 이름이 다운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거기 있던 파트장들의 얼굴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올드먼요? 그 친구 아직 야구한답니까?”
“그러게요 어디 감옥에 쳐박혀있거나 뒷골목에 있을 줄 알았는데요.”
“그래도 그건 너무하지. 그래도 야구는 그만뒀을 줄 알았는데 아직 하고 있긴 한가보네요.”
애증이 섞인 반응들. 한 번도 레이스에서 뛰지 않았던 선수였기에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다. 팀에서 뛴 적도 없는 선수에 대한 애증이라니. 하지만 올리버 올드먼이라는 선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2007년 메이저리그 데뷔
데뷔 시즌 신인왕 1위
2년차 MVP 1위
3년차 MVP 3위
4년차 MVP 1위
누가봐도 억소리가 나올만큼 찬란한 커리어다.
“솔직히 그 놈이 데뷔했을때는 메이저리그에 다시 없을 굉장한 선수가 나타난 줄 알았죠.”
전국구 인기구단인 컵스의 유격수로 데뷔해 엄청난 영광들을 손에 거머 쥔 올리버 올드먼은 4년차까지만해도 엄청난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었다. 빠른 발, 넓은 수비범위, 강한 어깨, 좋은 타격, 유격수치고는 적당한 파워까지. 1년 뒤 드래프트 된 마이크 토켈슨이 외야에서 5툴 플레이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을 때, 그는 내야에서 ‘5툴 플레이어란 이런 것이다!’라는걸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모든 유격수 유망주들의 롤모델이라고 불리는 앤드류 켈리조차도 ‘유격수 플레이에서의 롤 모델은 올리버 올드먼이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스토리도 좋았다.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버텨내고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인간승리의 표본과도 같은 친구였으니까.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힘들었던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준 올드먼은 금세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성공까지 달려나간 올드먼을 보고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일들이 있으면 나쁜 일들이 찾아오는 법.
5년차 시즌. 부상과 함께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십자인대 부상이 아니었다면 괜찮았으려나?”
시작은 십자인대 부상이었다.
더블 플레이를 막기 위한 상대 주자의 깊은 태클에 왼쪽 무릎이 그대로 돌아가면서 인대가 파열되어버린 것이었다. 일반적인 십자인대 부상은 경기장에 복귀하기까지 2년 정도가 걸린다. 게다가 복귀하더라도 예전만큼의 수비범위나 빠른 발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워낙에 그의 실력이 좋았기에 줄어든 범위로도 평균적인 유격수 정도의 수비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워낙에 워크에식도 좋고, 멘탈도 좋았던 올드먼이기에 다들 그렇게 기대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컵스에서도 그의 부상을 틈타, 당시로서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던 7년 1억 5000만 달러라는 금액의 계약을 안겨준 것이고.
하지만 고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십자인대 수술을 마친 다음 달.
“급성 심근경색이셨습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주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올드먼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성실하고 멘탈이 강했던 올드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남아있는건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를 달고사는 문신투성이의 한 폐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알코올과 마약이 회복에 도움이 될 리는 만무했다. 매일 바뀌는 여자는 오히려 마음속의 공허함만 늘릴 뿐이었다. 하지만 가진 재능이 있어서인지 모든 재활을 마치고 3루수로 복귀한 올드먼은 나름 준수한 활약을 해주었다. 복귀 이후에도 5년간은 컵스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평가받으며 주전으로 뛰었다.
하지만 부상과 술, 마약은 그의 실력을 점점 앗아갔다. 실력이 떨어지고 부진이 이어지자 올드먼은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 올리버 올드먼 술집에서 난동.
- 올드먼 동료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 캐시너 “올드먼이 있는 한 절대로 컵스와 재계약하지 않겠다.”
올드먼은 하필 팀의 최고 유망주이자 기대주인 선수에게 펀치를 날렸고, 그는 올드먼이 있는 한 절대 컵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 컵스 올드먼 방출
방출이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올드먼을 원하는 팀은 아직 남아있었다. 하지만 올드먼은 자신을 받아준 레즈에서도 동료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실력도 점점 떨어지고, 팀원에게 폭력까지 휘두르는 선수를 원하는 구단은 이제 미국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올드먼은 일본으로, 그리고 한국으로까지 나갔다. 바로 지난 시즌까지 그는 한국에서 용병선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장님이 절대 좋아할 타입은 아닌데요.”
다운이 좋아하는건 어리고 유망한 선수다. 혹은 굉장한 실력이 있는 베테랑이거나 말이다. 아무리봐도 36살의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내야수는 다운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었다.
“스캇 말에 따르면 약은 물론이고 술도 끊었다더라고요.”
거기에 로벨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심지어 실력도 꽤 좋아. 한국에서 뛰는 4시즌 동안 평균 0.323의 타율에 통산 204홈런을 때렸으니까. 만약 그게 올드먼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4살 정도만 더 어렸다면 무조건 너한테 추천했을거야. 어쩐지 올 시즌은 계약 연장을 안하고 돌아왔다더니 이러려고 그랬던거구나.”
“결국 단장님이 좋아하는 선수는 아니란 말이네.”
“전혀 아니죠.”
다운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스와 함께 손을 잡고 그의 영입을 타진했던 모양이더라고요. 하지만 실패해서 저한테까지 온거고요.”
“그런 선수인데도 단장님이 그의 영입을 고려하는 이유는 뭡니까?”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알 것 같네요.”
“마케팅적 측면이겠죠.”
만약에
정말 만약에 왕년의 그 올드먼이 커리어의 마무리를 위해서 메이저리그에 돌아온다면? 그것도 술과 마약에서 클린한 상태로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를 알고있는 올드 팬들은 그를 보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정말 클린하다는 확신이 있어도 리스크가 남아있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하죠. 첫 번째 이유는 대중들에게나 통하는 이유였거든요.”
“두 번째 이유가 뭡니까?”
“만약 정말로 올드먼이 그 모든것을 극복했다면, 우리 선수들에게 좋은 교보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고난과 슬럼프, 실패는 처음 겪어본 사람이 극복하기는 힘든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을 해본 사람, 그런 베테랑들이 필요한 것이다. 올드먼은 온갖 고난을 겪은 살아있는 교보재나 다름없었다.
“부상, 술, 마약, 여자, 소중한 사람의 죽음, 슬럼프, 해외진출, 팀원간의 다툼, 술과 마약을 극복하는 법, 다시 실력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야하는지까지. 대체 올드먼이 겪어보지 못한 문제가 뭐가 있을까요?”
만약 정신머리만 제대로 돌아와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아직까지 요령이 없는 어린 선수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인간이었다. 파트장들도 그의 활용성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다음 스프링 트레이닝까지만 잡아두더라도 분명 유망주들에게 도움이 될테죠.”
“특히나 우리 유망주들 중에서는 시호크스로 진출해야하는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그런 친구들도 조언을 구할겁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우리 주전급 어린 선수들에게는 큰 부상이나 슬럼프가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은 없죠. 분명 그를 영입하면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그는 모든걸 직접 겪어본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에이전트가 보라스 아닙니까?”
평소의 보라스라면 말도 안되는 조건들을 제안할 것이다. 이번에도 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말도 안되는걸 요구했어요.”
그건 바로
“월급으로 10달러를 요구했어요.”
“네?”
그 보라스가 월급 10달러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
다들 어안이 벙벙하고 있을 때, 다운이 말을 이었다.
“거기에다가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출장 보장조건을 걸었어요.”
< 212화 - 살아있는 교보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