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11화 (211/268)

< 211화 - 아 맞다! >

“계약조건은 그대로 가져가는 대신, 결정권을 이번 시즌이 끝나고로 바꾸고 싶다고요?”

“맞아.”

“그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이야긴줄 알죠? 이런 가정을 해야해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시즌 도중에 루이스가 장기부상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우리가 얼마나 호구잡히는지는 알고 계신거죠?”

“알지.”

“좋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조건을 걸어도 되겠죠?”

“물론이지.”

이번에는 보라스가 숙이고 들어가야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보라스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다운의 조건을 들었다.

“우선 계약금을 줄이죠. 200만 달러 정도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300만 달러나 줄이는건······.”

“500만 달러 다 줄일거 예상하고 왔잖아요.”

하여간 재미없는 놈이다. 얼굴을 팍 찌푸린 보라스가 따졌다.

“그걸 예상한 놈이 200만 달러나 준다는건 무슨 의미야?”

“아까 말한대로 조건을 넣으려고요.”

다운은 계약서에 네 가지를 추가했다.

3할 타율, ops 0.850이상, 홈런 20개 이상

그리고 시즌 중 부상이나 시즌 종료 후 건강검진에서 이상소견이 없을 것.

“이 네 가지를 모두 달성할 시에만 저 조건을 유효하게 가져가겠습니다.”

“이건······.”

“너무 빡빡하다는 말은 하지마세요. 솔직히 저 조건은 이번 시즌 팬들을 더 구장으로 끌여들이기 위해서 우리도 무리를 조금 한 조건이니까요.”

루이스를 데려왔다. 거기에 장기계약까지 맺는다? 그것도 역대 최고액의?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저 선수가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다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작은 관심 하나하나도 소중한 레이스이기에 이 정도의 투자를 한 것이다. 이번 시즌도 루이스로 인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생각으로 말이다.

“지금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저희 측도 그만큼 손해를 보는거라고요. 그리고 루이스라면 이런 조건은 달성하기 어렵지 않잖아요. 그냥 전형적인 마르코 루이스를 한 시즌동안만 보여주면 끝나는 문제죠.”

“전화 한 통만 하고와도 될까?”

“얼마든지요.”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보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도록 하지.”

다운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게 웃지마. 다음 번에는 내가 이길테니까.”

“서로 좋자고 하는 계약에 이기고 지는게 어디있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봐요. 이번 계약도 스캇이 이긴거나 다름없잖아요.”

“젠장! 마무리가 이 모양이면 내가 진 느낌이잖아. 어째 네놈은 가면 갈 수록 능구렁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분명히 저번 계약때는 내가 쥐고 흔들었는데.””

“누굴 보고 배운게 많아서 말이죠.”

“그렇게 잘 배웠으면 내 밑에 오던가.”

“혹시 구단주 겸임 가능합니까?”

“꺼져.”

큰일났다.

보라스가 점점 귀여워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엮이면 귀찮은데······.”

다운의 중얼거림에 보라스가 되물었다.

“응?”

다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리키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고있나 싶어서요.”

“보낼거 아니었어?”

“적당한 합의점을 찾으면 데리고 있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요.”

“3000만 달러 못 넘지?”

“루이스 계약 무를까요?”

“됐네.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구만. 시기는?”

“대략 다음 시즌 마치고죠. 빠르면 다음 시즌 중반에 보낼 수도 있고요.”

가는건 어차피 보라스가 막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가기 전에 선택지는 미리 알려줄 수 있나?”

“만약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제안의 규모가 비슷하다면 알려드리는것 정도는 어렵지 않죠. 그 정도는 항상 해왔으니까요. 작별인사도 못하고 팀을 떠나는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요.”

“난 아직도 자네를 잘 모르겠어. 이성적인건지 감성적인건지······. 하나만 해, 하나만!”

“감성적인 계산주의자라고 불러주시죠.”

“흐음······.”

원래라면 여기서 ‘웃기지 마!’라는 등의 호통이 날아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다운의 웃음에 보라스는 이번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무슨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혹시말이야. 자네 선수 하나 받아줄 수 있나?”

***

에인절스 원정을 스윕하고 탬파로 돌아온 레이스는 홈 경기를 앞두고 휴식일을 맞았다. 물론 이 휴식일은 선수들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 레이스 프런트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한 직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스토어에 물품 채워놨어?”

“네! 어제 저녁에 채워뒀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봐.”

“넵!”

“넘버링 된 티셔츠 확인했어?”

“네. 빠진 넘버링이 없는지, 하나하나 다 확인해봤습니다.”

“비닐 뜯은건 아니지?”

“저희가 요구한대로 비닐 정면에서 넘버링을 확인할 수 있게 해놨더라고요.”

“잘했어.”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번 시리즈 마지막에 있을 진성찬의 퍼펙트게임 기념 홈 경기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다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신이 없네요.”

“이벤트가 코앞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성찬이네 가족들은요?”

“플로리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 오늘부터 4일간은 찬의 집에서 머물면서 탬파 주변을 돌아다닐거라더군요.”

“댄. 혹시 모르니까 네가 3일간은 붙어다니도록 해.”

프레슬리라면 경호는 물론이고 한국어, 영어가 모두 가능해서 진성찬과 구단 모두 안심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구단 차도 하나 내줄테니까 그걸로 다니고. 운전기사도 하나 붙여줄게.”

“미리 말은 해두실거죠?”

“물론이지. 브래드, 홍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지역 신문지는 물론이고 저희 경기 사이사이에도 계속해서 홍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날 경기 예매는 이미 모두 끝난 상황이다. 하지만 퍼펙트게임 기념 굿즈들을 비롯해서 100달러 이상의 모든 상품들이 이번 홈 시리즈 동안 진성찬의 백넘버인 11달러만큼 할인을 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진성찬이 요구했던대로 많은 종류의 응원도구들이 1달러, 혹은 11달러의 가격표를 달고 판매될 예정이었다.

“중간중간 홍보 영상에 시호크스 팬들이 응원하는 영상을 넣어서 어떤 식으로 응원을 해야하는지도 무의식적으로 집어넣고 있는 중입니다.”

“그건 정말 좋은 계획이었어요.”

아무리 팬들에게 응원도구를 줘도, 그들이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면 말짱 헛짓이다. 그래서 심슨은 시호크스 팬들이 어떤 방식으로 도구를 활용하는지를 여러개로 나누어서 광고에 집어넣었다.

“유튜브 쪽에서도 응원도구 별로 영상을 만들어서 올렸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이번 시리즈에는 기대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파인트 행사때 겪었던 그 문제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게이트 별로 번호를 나눴습니다.”

티켓 예매 순서대로 티셔츠에 있는 번호가 자동으로 배정된다. 그러다보니 지난 번 행사때는 시장통이 따로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스토어에서 티셔츠를 나눠주다보니 국가제창이 시작하기까지도 티셔츠를 수령하지 못한 사람들이 생겼던 것이다. 만약 다운이 빠르게 판단해서 자리로 셔츠를 배달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1회 초 많은 관중석들이 비어있는 모습을 봐야했을지도 몰랐다.

“저희에겐 출입할 수 있는 게이트가 총 10개가 있죠. 그래서 1번부터 2500번까지는 1번 게이트에, 2501번부터 5000번까지는 2번 게이트로 가는 식으로 입장을 나눌 생각입니다. 그리고 출입할 때 곧바로 티셔츠를 나눠주는거죠.”

“그렇게된다면 입장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출입구가 약간 막히는게 구장 내부가 막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좋은 생각이에요 피트.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네요.”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잠깐 쉬고 하시죠 단장님.”

적절하게 회의 타이밍을 끊어주는 클라인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다들 쉬고 담배도 한 대씩 태우고 10분 뒤에 봅시다.”

“옙!”

파트장들이 각자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러 가는 사이 남아있는 네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다운과 거스와 미키 부녀, 로벨이었다.

“너희는 쉬러 안가?”

“어차피 10분 뒤에 와야하는걸 굳이. 그 사이에 너랑 이야기를 조금 해야할 것 같아서.”

“잘됐네. 안그래도 나도 이야기할게 있었거든.”

다운의 말에 로벨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한테?”

“어. 이번 원정에서 보라스하고 만났잖아.”

“루이스 잡기로 했다며?”

“길어봤자 3년짜리긴 한데, 뭐 그렇게 되긴 했어. 아직 확정은 아냐.”

“크~ 드디어~! 내가 봤을 때, 루이스는 오래 갈거야. 일단 선구안이 미쳤잖아.”

다운이 연장계약을 제안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로벨 때문이었다. 유망주들을 보는 중에도 계속해서 전화를 와서는

[야! 루이스 데려왔는데 연장계약 할거냐? 할거지? 해야한다?]

라고 바람을 집어넣곤 했으니까. 물론 다운도 순순히 허락한 건 아니었다.

“걔 압박에 은근히 약한거 알지?”

보라스가 걱정했던 것은 다운 역시 알고있었다.

“만약 잡으려면 최고액의 계약을 안겨줘야할텐데 그 압박감을 못이겨낼 수도 있어.”

[물론 그렇긴하지. 근데 내가 봤을때는 많이 나아졌다고 봐. 커리어 로우시즌을 생각하면 압박에 약한 선수라고 생각할수도 있어. 하지만 과연 그런 선수가 최근까지 3할 20홈런을, 내츠의 그 썩어빠진 타선 가운데서 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신인때를 생각해봐. 그 당시에 포스트시즌 성적도 좋았어. 당장에는 약해보일수도 있지만 길어야 한 시즌 정도의 적응기만 지나면 충분히 제 몫은 해줄 선수야.]

결국 다운은 그의 달콤한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 연장계약을 안겨준 것이고.

“그나저나 할 이야기가 그건 아닐테고. 무슨 이야긴데?”

“너부터 말해.”

“아냐. 난 그냥 우리가 이번에 본 유망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어. 어차피 파트장들 다 모이면 회의 주제로 올라올 내용이잖아. 그때 입털면 돼. 근데 넌 개인적으로 우리한테 물어볼게 있었던거 아냐?”

“맞아.”

“그럼 네가 먼저 해.”

다운이 대답하기도 전에 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먼저해도 될까?”

“그럼요.”

거스는 잔잔하게 폭탄발언을 떨궜다.

“이번 시즌 마치고 은퇴를 하고싶네.”

“네?”

다운은 물론이고 미키는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눈이 땡그래졌다.

“아니 잠깐만요 단장님. 아빠! 나한테 의논도 안하고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하는 이유가 뭐에요?”

“내가 애냐? 너한테 모든 결정을 말할 이유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우린 가족이잖아요!”

“그 가족을 위한 결정이다. 미키 넌 선수보는 눈이 별로야.”

갑작스런 평가에 미키가 할 말을 잃었다.

“선수보는 눈은 조니 저 녀석 정도는 되어야 좋다고 할 수 있지. 그에 비해서 너는 선수보는 눈은 나 정도밖에 안돼.”

이는 로벨과 일하기 시작하면서 미키도 줄곧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그 말은 제가 스카우트 파트장으로는 알맞지 않다는건가요?”

“그래. 넌 스카우트 파트장으로는 재능이 없어. 너에게는 선수보는 눈보다는 선수들의 발전가능성이나 방향성을 잡는데 더 재능이 있거든.”

“그 말은······.”

“넌 스카우트 파트장보다는 팜 디렉터가 조금 더 어울려.”

그러니까 지금 거스는 미키를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내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 계속해서 체력이 딸리는걸 느끼고 있어. 내 나이가 몇이냐? 벌써 64살이야! 언제까지 내가 현장에서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냐?”

물론 팜 디렉터라고해서 마이너 구단들을 싸돌아다니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1년 12개월 중 8개월을 집 밖에서 나돌아다니는 스카우트 파트장보다는 훨씬 더 출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죽기전에 손주 좀 보고싶다.”

“네?”

“내 나이가 64살이라니까? 64!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냐?”

“아빠! 왜 그런 말을 해요!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지금이야 그렇지! 근데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다고! 나도 내 손주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그런 모습을 좀 보고싶단 말이다!”

미키가 황당한 표정으로 옆에 있던 조니를 바라봤다.

“자기. 아빠 좀 말······.”

그런데 로벨은 미키의 눈을 바라보는 대신 피했다. 마치 이 이야기를 알고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자기, 아니 조니 로벨. 너 이 이야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 아니 그게······.”

희한하게 조니 저 놈은 거짓말을 전혀 못한다.

“자기가 나랑 같이 워낙에 돌아다니니까······. 조금 안정적으로 출퇴근 하면 자기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아이도······.”

“죽고싶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

“허허허······.”

평화로운 한 가정의 모습을 보며 뭔가를 잊고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더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무엇인지 떠올랐다.

“정다우우우우우운! 이 자식 어디갔어! 당장 튀어나와아아아!”

분노한 구단주의 일갈을 듣고는 말이다.

“아 맞다!”

< 211화 - 아 맞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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