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군 >
다운의 제안을 받아든 보라스는 곧바로 루이스와 만났다.
“오늘 계약 이야기하고 오신다더니 잘 됐어요?”
루이스의 말에 보라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던 건, 아니 그 이상으로 얻어내긴 했어. 총액 4억 3200만 달러의 계약을 받았으니까. 거기다가 추가적으로 2년간은 4350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 역대 최고액 연봉 수령을 하는 선수라는 타이틀도 따냈고.”
“와우! 역시 스캇이네요. 근데 그 표정은 뭐에요?”
“그게 내가 제안해서 따낸 조건이 아니거든.”
“네?”
레이스가 최근의 새로운 중계권 계약과 이런저런 광고계약으로 인해서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건 루이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4350만 달러를 먼저 제안할 정도로 돈이 넘쳐나는 구단인가?’라고 물어본다면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 레이스에서 먼저 제안했다고요?”
“그래. 한 번 봐봐.”
2025-26년 - 연 4350만 달러
선수 옵트아웃 가능
2027-30년 - 연 3500만 달러
구단 옵트아웃 가능
2031-35년 - 연 2500만 달러
2036-38년 - 연 1500만 달러
2039-41년 - 연 1000만 달러
총액 4억 3200만 달러
“점점 금액이 줄어드는 계약이네요. 거기다가 구단 옵트아웃은 뭐에요? 설마 선수들처럼 구단도 옵트아웃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그 설마가 맞을걸?”
“결국 제 성적에 따라 구단에서 합법적으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맞아. 결국은 11년짜리 팀옵션이지.”
“스캇이 제일 싫어하는게 팀옵션 아니었어요?”
계약연장 여부가 온전히 구단에게 달려있어서 보라스가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조항이기에 보라스는 팀 옵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긴하지.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라.”
보라스는 계약 사항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했다.
“우선 3년 뒤에 FA 선언을 할 수 있다는것. 이게 우리에게는 더없을 이득이야. 나는 북미 프로스포츠 역대 최고 규모의 계약을 주도한 에이전트가 되는거고, 너는 역대 최고의 연봉을 받는 최초의 선수가 되는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26세 시즌에 다시 한 번 더 FA를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나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이 아닐수 없어.”
“저한테 좋은 점은요?”
“저 3년간 레이스는 다른 어떤 팀보다 우승에 근접한 팀이 될거라는것이지. 지금 레이스의 계약사항을 보면 적어도 앞으로 3년. 길면 5년 동안은 우승경쟁을 위해서 투자를 아끼지 않을거야. 그리고 난 뒤에는 리빌딩을 하던가, 리툴링을 하겠지. 내 생각에는 네가 남는다면 리툴링, 남지 않는다면 리빌딩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모로보나 네가 있는 동안에는 결국 투자를 할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야. 넌 우승을 위해서 투자를 머뭇거리지 않는 구단을 원했잖아.”
“맞아요.”
“적어도 네가 있는 동안에는 레이스는 그런 구단의 모습을 보여줄거야. 계약 6년차에 있는 구단 옵트아웃도 결국 길게보면 그런 의미라는거지.”
“우승을 위해 열심히 달린 다음 완전한 리빌딩으로 전환할 때를 위한 대비책 같은 느낌이네요.”
“맞아. 리빌딩을 선택하면 고액연봉자인 너와 계약을 해지하고, 그게 아니라 조금 더 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들면 너와 계약을 연장해서 끝까지 가겠다는거지.”
“혹시 구단이 판매되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나요?”
“전혀 글라이드는 구단을 아끼는 구단주고, 그가 죽고 난 뒤에는 다운에게 구단이 넘어갈거라는 의견이 절대다수야.”
“다운이 구단주로요? 그러면 선수들이 꽤 좋아하겠는데요? 선수단 사이에서 다운은 가끔 칼 같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평가받거든요.”
“선수들을 보는 눈도 좋고, 구단을 관리하는 능력 역시 양키스 시절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지.”
“그때는 완전 Down 정 아니었어요?”
“일반적인 대중이나 양키스 팬, 선수들 사이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아왔지. 하지만 야구계의 관리자 직급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구단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계속해서 받았어. 그래서 양키스를 나온 뒤에도 레드삭스나 컵스에서도 그에게 접촉을 했을 정도지.”
“결국 레이스의 미래는 안정적이라는거네요.”
“다운이 갑자기 미쳐버린다거나, 글라이드 그 양반이 다른 사람에게 구단을 넘기지 않는 이상에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근데 글라이드가 구단주 후계자들이 참석하는 모임에서 다운을 끌고다니는걸 보면 넘길 가능성이 다분해.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목이 탔는지 루이스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스캇이 보기에 어떻게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네가 원했던 조건은 세 가지였어. 우승을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는 구단, 이왕이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구단, 그리고 역대 최고액의 연봉. 이 중에서 두 가지만 만족시켜준다면 계약을 할 생각이 있다고 했지.”
“맞아요.”
우승은 마약과도 같아서 한 번 맛보니까 만족할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혼자 모든것을 해야했던 내셔널스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의 이 타선을 봐라. 괜찮은 수많은 선수들이 있다보니까 굳이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부담감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지자 야구가 잘된다. 마치 자신이 우승을 했던 데뷔시즌처럼 말이다. 그러기위해서는 구단들의 투자는 필수다.
게다가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왕이면 오래 한 자리에 머물 수 있는 구단이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상관없지만 그녀는 의사.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는건 그녀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그녀와 그로 인해 생길 가족들, 지금 자신의 가족들까지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 버는 돈도 충분하기는 하지만, 선수의 가치는 연봉으로 정해지는 법. 이왕이면 최고연봉을 한 번 찍어보고는 싶었다.
“현재까지 레이스의 제안은 이 세 가지를 다 만족할 수 있는 제안이야.”
“얼마 전에는 다저스라면서요.”
“그건 올 겨울 전이지.”
이번 겨울 다저스는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데려왔던 블레이크 해니건과 8년 2억 3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 연 평균 2875만 달러짜리의 대형 계약을 맺게 되면서 고연봉 계약 두 개가 만료되는 4년 뒤까지는 페이롤에 여유가 없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다저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레이스의 제안을 받은 뒤 옵트아웃을 선언하는게 최선이야.”
“양키스는요?”
양키스 역시 보라스가 말했던 구단 중 하나였다.
“양키스는 올 시즌을 죽쑤고 있지.”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양키스의 순위는 4위. 양키스가 자랑하던 선발진 중 세 명이 동시에 이탈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두 명은 토미존에 한 명은 데드암이야. 이미 많은 투자를 한 양키스는 이 세 명을 대체할 방법이 없어. 게다가 팀의 간판스타인 앤드류 켈리는 여전히 양키스와의 연장계약을 미루고 있고, 양키스 타선의 미래가 될거라고 생각했던 딘 데이먼은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십자인대 파열로 전력을 이탈했지. 아직까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양키스는 빠르면 올 시즌, 늦어도 다음 시즌에는 리빌딩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 소년가장은 네가 원하는 바가 아니잖아?”
“결국은 레이스의 제안을 받는게 최선이라는거네요.”
“적어도 너나 나나 손해볼 가능성은 없는 제안이라는거지. 하지만 이 제안에도 위험성은 있어.”
루이스는 경청하겠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네가 잘해야 돼. 이런말 하기는 뭐하지만, 넌 생각보다 주변에서 가해지는 압박에 약한 놈이야.”
객관적으로 봤을 때 루이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3년차 시즌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들은 다들 팀을 떠나고, 자신이 혼자 남게 된 첫 시즌이 자신의 커리어 로우 시즌이었으니까.
“그때와는 달라요. 이제는 어떻게 극복할지를 아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주변에 잘하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그게 문제야. 네 연봉의 25%정도를 수령하는 친구들이랑 같은 활약을 하면 네가 칭찬을 받을까 아니면 욕을 먹을까?”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최소한 넌 지금의 성적을 유지해야 해. 적어도 3/4/5 슬래시 라인에 20홈런 이상을 유지해야지 욕을 안 먹을 수 있는거야. 그리고 적어도 옵트아웃 전 시즌과 구단 옵트아웃 직전 시즌에는 좋은 활약을 보여줘야만 해. 그런 압박을 느끼면서 계속해서 해낼 수 있겠어?”
“해내야만 하는거죠?”
“계약을 한다면.”
“만약 계약을 안하면 트레이드되겠죠?”
“100%. 다운은 절대 손해보는 장사는 안해. 널 데려온 순간부터 이미 팔 계획까지는 세워놨을거야. 내 예상에는 마지막 시즌 트레이드 마감시간에 걸쳐서 팔려고 하겠지. 저 계약에서 트레이드 거부권을 넣지 않은것만해도 알 수 있잖아.”
“트레이드 거부권을 넣으면요?”
“넣을수야 있겠지. 하지만 구단 옵트아웃 전까지만 넣어줄거야. 그 이후에는 아무리 많아봤자 매 년 15개 구단 대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불가능할거야.”
루이스의 머릿속에 저울이 생겼다.
‘지금 이 구단이라면 좋긴 해.’
아직 함께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레이스 선수단의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내셔널스에 있었던 것처럼 선수들 사이의 알력다툼도 없고, 형제와도 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도 내셔널스는 이런 분위기였던 적이 단 한 번밖에 없었다. 바로 우승을 했던 그 시즌 말이다.
“아직 생각할 시간이 있죠?”
“있지.”
“만약 시간을 끌면 구단에서 계약조건을 바꾸지는 않을까요?”
“그럴수도 있지. 네가 지금은 잘하고 있지만, 이번 시즌은 아직 길어. 네가 못한다면 네 가치를 깎으려고 들거야.”
“그걸 방지할 방법은요?”
“다운이랑 딜을 하면 가능할거야. 원하는건 시즌 종료 후인가?”
“네. 만약 이번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 계약을 하는걸로 하고싶어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팀을 떠나고?”
“네.”
“이 조건을 그대로 하기 위해서는 뭔가 하나를 포기해야 해.”
“계약금 500만 달러를 포기하면요?”
계약금 500만 달러를 포기하게되면 계약총액은 4억 2700만 달러다. 마이크 토켈슨의 계약이 4억 2650만 달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더라도 최고액 계약은 넘어설 수 있다.
“가능할 것 같네. 그래도 되겠어?”
연봉과는 다르게 계약금은 일시불로 통장에 꽂히는 돈이다. 보통 선수들은 그 돈으로 새로운 구단에 간 뒤 집을 사는 등, 목돈이 들어가는 곳에 쓰곤 했다.
“네. 돈 모아둔 것도 있고, 당장에 급한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4350만 달러씩 들어오잖아요.”
“그럼 그걸로 한 번 딜을 걸어보도록하지. 최대한 지키려고는 하겠지만······.”
다운이라면 다 털어먹을지도 몰랐다.
“마음 단단히 먹고 가야겠구만.”
< 210화 -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