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최대 베팅 가겠습니다 >
보라스와의 만남은 에인절스와의 경기가 있는 첫 날 점심에 이루어졌다. 보라스가 예약한 레스토랑은 점심임에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너무 일찍 만나는거 아닙니까? 그냥 경기 보면서 이야기하면 될텐데.”
“경기장에서는 맛있는걸 대접해줄 수가 없지않나. 그래도 나한테 많은 돈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사람인데말이야. 편히 앉아.”
다운은 자리에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실망하셔서 저한테 계산서를 떠넘기는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노노 걱정마. 여기는 아예 선불이거든. 이미 계산은 내가 다 했어. 추가적으로 주류를 주문하면 더 들어가기는 한다만, 자네 원정에서는 술 안하는 편이잖아.”
은근슬쩍 자신의 정보력을 뽐내는 보라스.
“아 뭐 딱히 그런건 아니에요. 필요하다면 마실 때도 있고, 방에 들어가서 맥주 한 캔 정도는 하거든요. 가끔은 브랜디 한 잔 하고 잘때도 있고요.”
“그래? 그러면 내가 기억해 뒀다가 좋은 거 하나 보내주도록하지. 물론 우리사이의 이야기가 잘 됐을때의 이야기지만.”
“그건 너무 각박한거 아닙니까? 우리가 그래도 얽혀있는 딜이 몇 갠데.”
진성찬, 더지 거기에 오늘 협상의 대상인 루이스까지 얽혀있었다.
“우선 주문부터 하자고. 저기 있는 저 아가씨가 팁을 받고싶어서 근질근질 한 것 같거든.”
“여기 뭐가 괜찮죠?”
“음······. 내 입에는 다 괜찮았는데.”
“나름 미식가인 스캇이 다 괜찮았다면 뭐 믿어볼만 하겠네요.”
“어떤 메뉴를 먹어도 후회는 안할거야.”
두 사람은 각자 원하는 메뉴를 시킨 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간단히 에피타이저로 이야기나 할까?”
“좋죠. 리키 이야기면 충분할 것 같은데.”
“내 생각하고 같구만.”
록하트가 떠난 뒤 더지는 어느정도 팀에 남고싶다는 의사를 표했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인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지는 팀에 남고싶어하죠.”
“그런 마음이 큰 만큼 확실한 대우를 원하기도 하지.”
“그래서 이번에 잘 챙겨드렸잖아요.”
더지는 이번 시즌 4년차. 즉 연봉조정 대상자가 되었다.
“우린 1500만 달러를 원했어.”
“원했지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금액이었죠.”
레이스의 최초 제안은 700만 달러. 하지만 보라스의 최초 제안은 1500만 달러였다. 무려 두 배가 차이나는 상황. 그 상황에서 다운은 못이기는 척 1115만 달러까지 맞춰주었다. 더지의 활약상을 봐서는 그 정도 투자를 해도 무리는 없었다. 게다가 추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연장계약까지 생각한다면 조금 양보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막 연봉조정 1년차에 들어간 투수에게 너무 많은 돈을 부을수는 없었기에 맞춰진 금액이었다.
“그래서 다음 시즌은 맞춰주겠다는건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이 소모적인 논쟁을 매 년 하고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그러면 6년차까지 한 방에 계약을 하자?”
“이왕이면 더 긴 계약을 원하는데······. 리키 생각은 어때요?”
“금액만 만족스럽다면야 좋다고 하겠지.”
“제가 듣기로는 자존심만 세워준다면 남을 생각이 있다던데요.”
“그 자존심이 에이스의 상징인 3000만 달러라면? 레이스는 들어줄 생각이 있나?”
“리키가 조나보다 잘하진 않을텐데요.”
“그야 조나 파인트는 자네 때문에 일부러 디스카운트를 많이 해준거잖나. 2년을 쉬고 돌아온 선수가 그렇게 잘할거라고 믿었던 사람은 자네밖에 없었으니까 말이야. 리키는 달라. 리키가 잘할거라고 생각하는 팀은 레이스 말고도 엄청나게 많거든.”
“설마 탬퍼링한건 아니겠죠?”
“그걸 지금 찔러보는거라고 물어보는건 아니겠지?”
“아니면 아닌거지 왜 반응이 격하실까?”
“그야 자네가 말도 안되는 걸로 물고 늘어지려고 하니까 그런거지.”
“3000만 달러는 말이 되고요?”
두 사람 사이에서 끝없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두 사람 모두 약속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주문하신 음료 먼저 나왔습니다.”
차가운 음료로 과열된 분위기를 쿨다운시킨 두 사람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FA 2년까지 포함해서 4년 6000만 달러. 거기에 매 년 달성이 가능한 수준의 500만 달러 상당의 옵션. 어떻습니까?”
매 년 2000만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보라스는 이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다.
“2년 4000만 달러.”
“FA기간도 포함하지 않고 그런 딜은 드릴 수 없죠. 3년 6000만 달러 보장에 팀 옵션으로 1년 2000만 달러짜리 옵션 하나 줘요.”
“안돼. 그렇게 되면 적어도 조나보다는 많이 줘야해.”
“저희가 그래야할 이유는요?”
“리키는 어리고 발전 가능성도 아직 남아있지. 거기다가 팀옵션을 앞선 연봉이랑 똑같이 하는 양아치같은 짓은 어디서 배운거야?”
“눈 앞에 있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양아치같은 짓을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걸 배우게 되더라고요.”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꼭 멀리하도록 하게.”
능청을 떠는 보라스를 보며 다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년 1800만 달러에 매 년 옵션 300만 달러. 여기에 팀 옵션 1년 2500만 달러.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종 제안이에요.”
더지의 전성기 일부를 묶어놓을 수도 있으면서, 2500만 달러짜리 팀옵션이 포함된 계약. 당장 레이스에게 2500만 달러짜리 팀옵션은 레이스에게는 계륵과도 같은 옵션이다. 하지만 이를 계속해서 집어넣는 이유가 있었다.
‘리키를 트레이드하게 된다면 이는 그의 몸값을 더 높일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어.’
다운은 비어만이나 드레이크와는 다르게 더지를 끝까지 안고갈 생각이 없었다.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다.
다운은 이 말을 신봉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끔가다가 30대를 넘어서도 더 잘 던지는 괴물같은 놈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투수들의 전성기는 20대까지라고 생각했다. 30대를 넘어가면 연륜은 쌓이지만, 구속은 떨어진다. 구속이 떨어지면 에이스급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젊은 선발진에게 에이스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보통 일어나는 일이었다.
‘간혹가다가 일어나는 일이 모든 투수에게 일어날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지.’
레이스는 투수 팜이 나쁜 것도 아니고, 투수를 잘 못 키우는 구단도 아니었다. 당장에는 우승권 경쟁을 위해서 더지를 3년 정도 잡고 있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지에게 묶여있는 것 보다는 새로운 투수를 계속해서 키워나가는 것이 구단에게는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3년 차 시즌에서 각을 본 다음에 대형 구단에 팔거나 FA로 풀어버리는거지.’
양키스나 다저스와 같은 대형 구단에게 2500만 달러는 에이스의 연봉치고는 오히려 싼 금액이니까. 이 조항이 트레이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라스도 모르지는 않았다.
“대신 트레이드 거부권은 없는거지?”
“10개 구단 정도는 넣어드릴 수 있어요.”
“어차피 없는거나 다름없는 조건 아냐? 굳이······.”
선수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10개나 15개를 받아가는 이유는 월드시리즈 우승권, 혹은 우승을 위한 투자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하위권 구단들을 거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구단들이 1000만 달러짜리 팀옵션도 아니고, 2500만 달러짜리 옵션을 무리없이 발동시킬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구단들은 더지를 제 값주고는 데려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다운이라면 상위권 구단에게 더지를 팔아야 할것인데······.
‘아니야. 저 놈이라면 하위권 구단에 더지를 팔 수도 있어.’
문득 든 생각에 보라스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좋아. 10개 구단 거부권까지 챙기는걸로 하지. 이대로 리키에게 우선 전하도록 할게.”
“이왕이면 오늘 경기 끝나고로 부탁드려요.”
더지의 선발등판일이 오늘이다. 다운은 외부의 요인이 더지의 경기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더지가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보라스도 같았기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더지의 딜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을 때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왔다.
“마르코 딜은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해보자고. 이 건에 있어서는 첫 미팅인데, 한 번에 이야기가 끝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보라스는 더지의 계약을 할때와는 다르게 확실히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더지의 경우에는 레이스와의 연장을 강력히 원한다는 것을 양 측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수준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다르다.
그는 이제 막 레이스에 합류했고, 합류한 뒤의 페이스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레이스의 강력한 타선 덕분에 내셔널스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우산효과를 톡톡히 노리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개인성적은 수직상승중이었다.
“장기계약할때 원하는 금액 아웃라인이 어떻게 됩니까?”
다운의 질문에 보라스는 고민의 여지도 없이 말했다.
“적어도 토켈슨 이상.”
예상대로다. 마이크 토켈슨의 계약규모는 북미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대 금액인 4억 2650만 달러. 그보다 많은 금액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듣기에는 내츠의 5억 달러도 거절했다더니 생각보다 허들이 낮네요?”
다운의 떠보는듯한 말에 보라스가 피식 웃었다.
“대신 기간이 길잖나. 거기다가 러너놈들 속을 자네도 모르진 않을텐데?”
“뭐 듣기야 했죠.”
실없는 소리를 하며 음식을 집어먹는 와중에도 다운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4억 3000만 달러 수준의 계약이라고 봤을 때 15년으로 계산해도 연 2800만 달러가 나가게 돼.’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계약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높은 금액이다. 거기다가 공격이 안되더라도 수비에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해주는 비어만이나 드레이크와는 다르게, 루이스의 수비력은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어떻게든 공격이 안되기 시작하면 팀에는 필요없는 존재로 전락할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루이스가 원하는 계약 햇수는 어느정도죠?”
“최대한 오래지 뭐. 자기 말로는 40세 까지는 야구하고 싶다던데?”
넉넉잡아 17년짜리 계약으로 한다고 쳐도 연 2500만 달러 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할 수 없는 계약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플랜 B로 가야되겠네.’
플랜 A가 연장계약 간을 보는 것이었다면 플랜 B는 더지에게 했던 것과 같은, 레이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적극적으로 노리는 기간에 그를 써먹는 계약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최대 베팅 가겠습니다.”
운을 띄운 다운이 조건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조건을 들은 보라스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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