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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MLB 단장-207화 (207/268)

< 207화 - 최고의 연습상대 >

다운의 폭탄발언에 진성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엑? 결혼하십니까? 드디어? 얼마 전에 오신 그 여자분이랑? 갑자기?”

3일 전 다운은 탬파에 온 스테이시와 함께 진성찬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다운은 잘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소개했었다.

“아니 그때 결혼 생각 있냐고 물었잖아요.”

“그랬지.”

“언젠가는 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 계획 없다면서요?”

“그야 스테이시는 이제 막 블루제이스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고, 나는 탬파에서 단장직을 하고 있으니까. 재계약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장은 둘 다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생각했지.”

“근데 갑자기 왜 상황이 바뀐거에요?”

“그게······.”

***

3일 전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다운은 스테이시를 조수석에 태우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 다행이다. 우리 선수랑 식사하는거니까 부담스러울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그쪽에서도 절 아는 사람 여자친구로 편하게 대해줘서 마음이 편했어요. 우리 구단은 베테랑이 몇 없다보니 스타병에 걸린 친구들이 몇몇 있거든요.”

“대니 왓슨이랑 그 패거리들이지?”

“네.”

“구단측에서 뭔가 조치를 취한건 없고? 나였으면 베테랑 몇 영입해서 눌러줬을텐데.”

“우리는 리빌딩에 들어가는 팀이니까 최대한 돈을 아끼고 싶나봐요.”

“지금 당장 몇 백만달러 아끼다가, 나중에 그 친구들이 끼칠 악영양이 몇 천만달러가 될 것 같은데······. 자기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보지 그래?”

“단장 측에서 절 어떻게 보는지 알잖아요.”

스테이시가 구단에서 받는 대우를 요약하자면 ‘구단주가 보낸 감시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들 그녀가 있는 마케팅팀을 은근히 배척하고 피하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특히나 구단주에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단장과 그의 측근들이 상당히 피하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그냥 일 관두고 탬파로 와서 빈둥거릴까요?”

그녀의 말에 다운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 나야 너무 좋지. 집에 돌아갔을 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데.”

다운은 17살에(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하게 된 이후로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맞아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양키스에서 잘리고 좀비처럼 회사에 출퇴근하던 시절, 옆집에 있었던 어스틴의 ‘퇴근했으면 빨리 와서 밥먹어! 그래야 맥주 한 캔 하지!’라는 말이 얼마나 나에게 위로가 되었는지 모를거야.”

“그건 우리집에서 기다리는 누군가가 아니라, 옆집에서 기다리는 누군가여서 그런거 아니에요?”

“하하! 그럴지도? 그래도 자기가 기다리고 있다면 이제는 칼퇴근을 노려볼지도 모르지.”

“좋아요.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고요. 집에 돌아오면 요리 초보가 연습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도 좋아요?”

“누구든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지. 그리고 어스틴이 자기가 혼자 요리하는걸 지켜보지는 않을걸? 내가 조금만 귓띔해주면 ‘뭐? 스테이시가 요리를 배운다고? 내가 가르쳐준다 그래!’라면서 웃으면서 달려올거야.”

“후훗! 진짜로 그럴 것 같네요. 그러면 집에 왔는데 내가 집을 엄청 어질러놨어요. 아예 청소도 안해놓고, 쓰레기도 버리지 않았다면요? 나 그래도 꽤 있는 집 자식이라 그런거 해본 적 없는데.”

“하하! 첫 번째. 나는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란걸 알아. 우리 집에 왔을 때도, 작년 블루제이스 원정 때도 언제나 자기는 더러운걸 못 보는 사람이었잖아. 내 차에서 내릴때도 그래. 항상 더러운 것이 있으면 치우지 않고는 못배기잖아. 그리고 두 번째, 정말로 당신이 청소를 못하겠다면 가정부를 고용하면 돼. 그 정도는 고용할 수 있는 돈은 있거든. 아니면 청소업체를 이용해도 되고. 당신이 올때마다 청소업체 부르거든.”

“진짜요?”

“진짜지. 그게 아니라면 일 년의 반을 밖에 있는 내가 어떻게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겠어.”

“어쩐지 올때마다 집이 너무 깨끗하더라고요. 음······. 그러면! 이건 어때요?”

스테이시의 ‘만약에 내가 탬파에 와서 다운과 함께 산다면?’을 전제로 한 질문들은 올랜도에 있는 다운에 집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귀찮을만도 했지만, 다운은 모든 질문에 진심과 사랑을 담아 답했다.

“집이 마음에 안들면 새로 지으면 되지 않을까? 지금 집이 싫은건 아니지만, 좋은것도 아니거든.”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던 집이라면서요?”

“뭐 그렇긴한데, 어릴적에는 우리 집보다는 어스틴네에 가서 노는 경우가 더 많았거든.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집은 맞벌이였어서. 그래서 추억은 어스틴 집에 더 많아. 나보다는 자기가 더 오랜시간 있어야 할 집인데 원한다면 새로 짓는것도 나쁘진 않지. 대신 딱 하나만 허락해줘.”

“어떤거요?”

“지하실을 내 아지트로 꾸밀 수 있게해줘. 그거면 돼.”

“대체 왜 남자들은 지하실을 아지트로 꾸미고 싶어하는거에요?”

“설명할수는 없지만, 그건 많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로망일거야.”

다운의 대답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은 스테이시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만약에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어떨 것 같아요?”

다운은 운전을 하느라 보지 못했지만, 스테이시의 얼굴은 다른 어떤 질문을 할 때보다도 긴장감이 돌고있었다.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다운의 말에 순간 스테이시가 굳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운의 말에 그녀의 입가가 올라갔다.

“아이가 생기면, 아니지. 당신이 임신을 하는 그 순간부터 일에 집중을 못할 것 같아. 원정은 어떻게 다니고, 또 경기장에는 어떻게 나와? 그렇게되면 아예 이버시티에 집 하나를 새로 구할까? 우리가 아까 이야기했던것처럼 집 새로 짓는 기간동안에 1년만 딱 이버시티에 사는거지. 그러면 우리 구단 협력 병원도 갈 수 있고, 나도 곧바로 퇴근할 수 있고. 자기도 나 보고싶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잖아.”

“원정은요?”

“원정때 보내려고 내가 댄을 엄청 굴려놨거든. 아······. 그래도 내가 가긴 해야겠지? 진짜 원정가기 싫어질 것 같은데? 단장도 출산일 전후에는 출산휴가 쓸 수 있나? 아직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라서 확인을 안해봤는데······. 나중에 어스틴이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면 물어봐야겠는데? 어스틴이라면 없는 규정도 만들어줄지도 몰라.”

“그러면 조금 일찍 물어봐야겠는데요?”

“응?”

다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스테이시를 흘끗 쳐다봤다. 그와 눈을 마주친 스테이시가 배에 손을 올리며 수줍게 웃었다. 그걸 본 다운의 고개가 전방과 스테이시를 빠르게 왔다갔다했다.

“진짜?”

“네.”

“정말?”

“그렇다니까요?”

“오 마이 갓! 스테이시!”

“다운! 핸들! 핸들!”

***

“그 날 세 명 죽일뻔 했어.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진짜.”

“하하! 원래 그런 이야기 들으면 멍해지죠. 특히나 행님은 결혼도 안한 상태 아닙니까?”

“미국은 한국하고 다르게 사실혼 관계라는게 있거든?”

“그래서 혼인신고 안할거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지. 근데 진짜 듣는순간 기쁘면서 멍해지고 아무 생각도 안들고. 그냥 좀 이상했어. 머리가 고장난 것 같았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불안한 기색은 안보였나보네요.”

“뭐 내가 경제력이 없는것도 아니고, 스테이시를 사랑하지 않는것도 아니니까 불안할게 뭐 있겠어. 아이가 생긴건 축복이지.”

“그렇게 말하셨어요?”

“어.”

“그건 진짜 잘하셨네요. 저도 속도위반해서 결혼한 친구 있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그러는데, 와이프가 자기한테 임신 이야기할때 엄청 불안했다고 하데요. ‘혹시 이 사람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지우자고 하면 어떡하지? 나랑 결혼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하면?’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고 합디다. 만약 친구가 아기 이야기 떠봤을때 기뻐하지 않았다면 지울 생각도 있었다캅니다. 그런데 행님이 그렇게 행복해하고 기쁘다는 말만 하셨다니까 형수님도 분명 안심하셨을낍니다.”

“그랬을까? 그랬다면 진짜 다행이다. 여튼 스테이시가 블루제이스를 그만두려면 할아버지랑 부모님한테 임신사실도 알리고, 인사도 드려야할거란 말이지.”

“만나는 건 아시고요?”

“알고는 있을거야. 어스틴이랑 스테이시네 할아버지가 우리 만나게 된 뒤로 자주 붙어다니거든. 근데 인사는 드린적 없었어. 스테이시랑 나랑 스케줄도 안맞고해서 틈이 없었거든.”

“지금도 없잖아요.”

“없는 시간이라도 내야지 어쩌겠어. 그래야지 스테이시도 편하게 탬파로 올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말인데, 넌 인사갈때 어떻게했냐?”

“근데 저한테 물어보셔도 됩니까? 한국 스타일이랑 미국 스타일 좀 다를 것 같은데.”

다운도 서로 스타일이 다를거란거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수많은 유부남들에게 물어볼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진성찬을 딱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 처갓집은 부잣집이 아니잖아.”

레이스 유부남들의 대부분은 학창시절 이어온 연애의 끝에 결혼까지 이어진 케이스였다. 부의 차이는 어느정도 있겠지만, 특출난 부잣집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진성찬의 아내는 한국 10대 기업에 들어가는 집안의 딸이었다. 그래서 다운은 조언을 구할 대상으로 진성찬을 고른 것이었다.

“부잣집도 똑같아요. 한국 재벌이랑 미국 재벌이랑 조금 다르긴 할텐데.”

“캐나다 재벌이야.”

“캐나다든 미국이든 한국이든 또옥 같아요. 당당하게 인사드리고 ‘딸 주십쇼!’ 하고 오시면 되는겁니다 네? 행님. 자신감! 자신감만 있으면 됩니다! 남자가 딱 약하고 비굴해보이는 순간 장인어른 머리에 ‘아, 이놈은 내 딸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할 놈이구나!’하는 생각이 딱 때려박히는겁니다. 그니까 행님! 떨지말고 자신있게! 왜 행님 그런거 잘한다입니까? 협상할때처럼, 협상 좋네. 협상! 장인어른이랑 협상하러 들어간다고 생각하십쇼. 평소에 행님이 선수들한테 미리 잘해주는 것 만큼만 하면 장인어른도 홀라당 넘어올낍니다.”

“자신감······. 그래 자신감······.”

주문처럼 되뇌인 다운은 진성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언 고맙다 성찬아. 아직까지 이 이야기는 선수단한테 하지말고. 알겠지?”

“행님이 먼저 말하시기 전까지는 입 싸악 닫고 있을게요.”

“그래. 별로 믿음은 안간다만, 믿도록 할게.”

“걱정마십쇼 행님! 저 임신 영어로 모릅니다.”

“그 단어 내가 허락할때까지는 배우지 마라.”

“넵! 그럼 가보겠슴다!”

진성찬은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올리고는 다시 선수단 속으로 사라졌다.

“자신감이라······. 협상하는 것처럼 자신있게!”

다행히도 이걸 연습해볼 수 있는 최고의 상대와의 만남이 곧 있을 예정이었다.

< 207화 - 최고의 연습상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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