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인사는 어떻게 했냐? >
- 찰리 제프리스 삼진!
- 이제는 레이스의 수호신이 된 제프리스가 또 다시 레이스의 승리를 지켜냅니다!
- 가디언스와의 홈 3연전을 위닝시리즈로 가져가면서 7승 2패를 기록! 지금까지 공동선두를 기록하고 있던 레드삭스가 오늘 패배하면서 레이스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단독 선두에 올라서게됩니다!
고작 9경기를 치뤘을 뿐이지만 단독선두에 올라서게 된 레이스. 에인절스 원정을 떠나는 비행기 내의 분위기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여느때처럼 한쪽에서는 밀머니를 건 포커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콜!”
“난 다이.”
“레이즈.”
“호오? 레이즈? 콜!”
다른 한쪽에서는 아버지들의 심각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요즘 올리브가 날 피해.”
“올리브가 몇 살이더라? 이제 14살쯤 되지 않았나?”
“맞아.”
“피할때 됐지 그럼. 그 나잇대의 여자애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잖아."
“우리 메기도 그럴 기미가 요즘 보여.”
“짐네 애도 그래요?”
“가끔은 타자들보다 우리 와이프랑 애 생각을 읽는게 더 어렵다니까?”
“가끔만 그런다니 다행이네. 나는 항상 모르겠더라.”
십대 여자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포커 판에서 빠진 루이스가 휘적휘적 걸어왔다.
“끼어도 되죠?”
루이스의 말에 서머스가 엄지를 치켜올리면서 웃었다.
“언제든지.”
“여긴 무슨 이야기 중이에요?”
“여심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를 하고 있달까?”
“여심은 무슨. 그냥 딸 가진 아빠들의 걱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
루이스를 불러들인 서머스는 아까의 고민이 다시 떠올랐는지 머리를 감싸쥐었다.
“으으으! 티나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죠? 만약에 티나가 그러면 저 진짜 우울해질 것 같은데요.”
“괜찮아 알버트. 아직 티나하고 너에게는 시간이 남아있잖아. 그리고 우리 부녀하고느 사이가 다르다고 할 수 있잖아. 넌 집에갈때마다 티나랑 놀아주지?”
“그야 우리 가족은 티나와 저 밖에는 없으니까요. 만약 프런트라던가 다른 가족들이 티나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제가 이렇게 마음편히 원정길을 돌아다닐수는 없었을거에요. 심지어 다운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
“티나의 교육은 프런트에서 맡아줄 수 있으니까, 탬파에 티나를 남기고 다니는게 불안하면 티나를 원정길에 동행해도 좋다고 했어요. 물론 초등학교 한정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 제안을 거절했었어?”
“티나는 지금까지 있던 친구를 모두 내버려두고 저를 따라서 탬파로 온 아이에요. 티나에게서 친구를 사귈 기회를 제가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되어서인지 서머스의 생각은 그 나잇대답지않게 깊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가족들은 티나를 좋아하거든.”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야. 집에가면 맨날 ‘티나 언니가 그러는거 아니랬어!’라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우리 애도 마찬가지야. 근데 캘은 티나를 조금 무서워하긴 해.”
“하하! 티나가 골목대장 기질이 강하긴 하죠. 제가 너무 심하지는 않게 하라고 할게요.”
“괜찮아. 그 나이는 그러고 노는거지 뭐.”
아버지들의 대화 속에서 루이스는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다들 같은 어린이집을 다녀요?”
“아, 넌 지금와서 모르겠구나. 애도 없지?”
“네.”
“알버트네 가정사는 알지?”
“귀에 딱지가 앉을정도로 들었죠. 딸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루이스가 질린 표정을 짓자 다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레이스에서는 애가 있는 놈들이 많거든. 그 중에서 가족들이 맡아줄 수 있는 가정도 있지만, 여기있는 알버트처럼 집에 맡아줄 사람이 없는 가정도 있어. 그런 사람들이 더 있을거라는 생각에 다운은 구장 내부에 직원들을 위한 어린이집과 그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직원들이라면 프런트 직원 포함인가요?”
“맞아. 요즘은 맞벌이 세대가 워낙에 많으니까. 구장에서 다른 어린이집에서 하듯이 기초적인 교육도 해주고, 퇴근할때까지 애들을 도맡아주는거지.”
“그러면 경기때까지 있어야하지 않나요?”
“지난 구장에서는 어차피 자리가 비니까 직원들이 애들을 데리고 남는 자리에서 경기를 보곤했지. 이번에 생긴 새 구장에서는 아예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어린이집을 만들고, 크게 창을 내서 그곳에서 애들이 경기를 볼 수 있게 만들어놨어. 경기 마칠때까지 원하는 애들은 잠을 잘 수도 있고, 놀 수도 있고, 아빠가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도 볼 수 있는거지. 덕분에 애들도 서로 친해지고, 선수 가족끼리도 더 돈독해질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어.”
“티나가 온 뒤로 생긴거니까 티나에게 고마워해야하는건가?”
“그것보다는 그런 생각을 해준 다운한테 고마워해야하는거 아냐?”
“아 그런가? 하하! 다운이야 워낙에 우리 뒤를 잘 봐주니까.”
“항상 ‘그게 단장이 하는 일이니까요!’라면서?”
“하하! 맞아! 딱 그 표정에 그 말투야!”
“그나저나 마르코 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넌 애도 없잖아?”
거기까지 말한 알버트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거이거 설마······.”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애도 없다는걸 선수들도 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에게 사실혼 관계인 동거인이 있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듣기로는 내셔널스를 담당하던 병원의 의사라던가.
그리고 그녀가 얼마 전에 탬파에 왔다갔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선수들의 기대어린 눈치에 루이스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축하해!”
“그럼 어떻게 되는거야? 미카엘라였나? 그 분이 여기로 오는건가?”
“그렇겠지! 탬파에도 병원은 많잖아! 페이만 맞으면 마르코랑 같이 있는게 낫지!”
“아니지 멍청이들아! 마르코는 여기 얼마나 있을지 모르잖아!”
루이스는 여기 있는 대부분의 선수들과는 다르게 이곳에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 이르면 내년에 떠날 수도 있고, 연장이 진행되지 않을 시 2년 뒤에는 이곳을 떠나게된다.
“그걸 생각하면 일단 애는 미카엘라가 데리고 있는게 낫지.”
“마르코가 우리 구단에 남을수도 있잖아요. 배리도 가고, 케빈도 내년에 은퇴한다고 했고, 짐도 곧 계약 만료잖아요? 그러면 페이롤이 조금 빌텐데.”
“알버트 벌써부터 나 보내는거냐? 내가 배리처럼 어디가 고장난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연장계약해서 5년은 더 뛸 수 있어!”
“난 이미 이루고싶은건 다 이뤄서. 다운이 연장계약을 제안해주기만하면 얼마든지 뛸 생각있어.”
“돈을 적게 줘도요?”
“그 이상을 다운에게 받았으니까. 한 번 정도는 져줘도 돼. 그리고 망하면 다운한테 따져야지. 너 때문에 돈 많이 못받았으니까 이제 노후도 책임지라고 말이야. 하하하!”
“하긴. 다운이 구단주가 될테니까 빈대붙어볼만도 하겠는데요?”
그들의 말에 루이스가 깜짝 놀랐다.
“다운이 구단주가 된다고요? 단장 아니었습니까?”
“단장이긴 하지. 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 구단주님이 구단을 넘기실 생각이라더라고. 뭐 그게 아니더라도 사실상 구단주님 아들과 다름없는 존재라서 어떻게든 물려주실거라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다운이 구단주가 되면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한 자리 달라고 해볼까?”
“배리는 이미 이야기됐다고 하던데요. 케빈은 아직 이야기 없어요?”
“에엑? 진짜? 잠깐만. 배리이이이!”
마이어가 포커판에 있는 브래넌에게로 뛰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포커판에 있던 비어만이 이쪽으로 휘적휘적 걸어왔다.
“벌써 끝났어?”
서머스의 말에 비어만이 어깨를 으쓱했다.
“많이 땄거든요. 튈 수 있을 때 튀어야죠.”
마이어가 난입한 지금이 아니라면 브래넌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찬 본 사람? 경기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에인절스 원정 첫 번째 경기 선발은 진성찬이다. 그래서 경기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지금 다운이랑 이야기하러갔어.”
“아하! 그럼 여기서 좀 기다려야겠네요.”
비어만은 포커판을 등지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는 사이에 그의 왼쪽 손목에서 여태껏 본 적 없었던 삐까뻔쩍한 시계가 반짝였다.
“샘. 잠깐 스톱. 그 손목의 영롱한 빛은 뭐지? 설마······.”
서머스의 말에 비어만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아~ 혹시 알아보셨나요? 아 이거 숨기려고 해도 잘 안되네. 혹시 들어는 보셨을라나 롤렉스라고?”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투수는 그 경기를 함께한 포수에게 롤렉스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전통에따라 비어만도 진성찬에게서 롤렉스를 선물받은 것이었다.
“샘한테 준 롤렉스 20만 달러(약 3억 원)라며? 너무 비싼거 사준거 아니야? 제수씨가 뭐라고 안했어?”
“안하긴요. 길길이 날뛰었죠. 아마 구단주님이 집 안해줬으면 사주지도 못했을걸요?”
퍼펙트를 안했다면 글라이드가 집을 사줄 생각도 안했을테니 훨씬 이득이긴 했다.
“더 싼걸로 사줘도 됐잖아.”
“뭐 그래도 되긴 하죠. 몇 만 달러짜리도 있긴 하니까요. 근데 퍼펙트 게임이란게 제가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샘이 그 경기에서 빠지는 공도 진짜 잘잡아준게 많거든요. 반대투구만해도 네 번이 있었고, 볼을 스트라이크로 프레이밍 해준것도 여섯 개나 있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좋은거 주고 싶었슴다.”
진성찬은 정말로 미련하나 없다는듯 시원한 표정이었다. 저런 여유는 아마도······.
“성찬아. 너 건물이 몇 개 있다고 했지?”
“부산에 10층짜리 하나밖에 없어요. FA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바로 미국에 와가지고······. 그래도 와이프가 서울에 13층짜리 상가건물 하나 가지고 있죠.”
“역시······.”
건물주의 여유는 남달랐다.
“그래서 행사가 어떻게 된다고요?”
다운이 진성찬을 부른건 롤렉스나 건물이야기를 하자고 그런게 아니었다. 진성찬에게 다음 홈 경기 행사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일단 그 날 수익의 1%는 네 이름으로 기부를 할 예정이야.”
“저희 부모님도 부르셨다면서요?”
“너 뿐만 아니라 제수씨 부모님도 불렀어.”
“장인어른이랑 장모님도요?”
“너희 부모님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그분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사위니까. 그리고 저번 식사에서 두 부부 사이도 나쁘지 않으시다면서?”
“처음에는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보다 더 사이 좋으십니다.”
“그래서 플로리다 여행 풀코스로 준비해뒀지. 내일 비행기로 출발하셔서 먼저 관광하고 계실거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냐. 어차피 네 분도 해주실 일이 있으니까. 너희 아버지께서 시구하고, 제수씨 아버님께서 시타를 해주시기로 했어. 부탁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시더라.”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드려야겠네요.”
“꼭 드려라. 그리고 행사에서는······.”
다운은 퍼펙트 게임 행사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후우~ 진짜 스케일이 우리나라랑 다르네요.”
“우리 구단이 이런 행사를 많이 하는거야. 구단주님이 개인적인 돈을 많이 쓰시거든.”
“그날 더 잘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퍼펙트 한 번 더 하는거 아냐? 그러면 진짜 역사에 길이 남을수도 있을텐데.”
“하하! 설마 그러겠어요?”
시원하게 웃은 진성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행님.”
“자, 잠깐만 성찬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성찬을 다운이 평소와는 다른, 어딘가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잡았다.
뭔가 말할 것이 있는데 말하기 힘든 그런 우물쭈물함이 다운에게서 느껴졌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는 사람이 머뭇거리는 모습에 진성찬은 다운이 먼저 입을 열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운의 뒷통수를 긁적이며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 처갓집에 인사갈 때 어떻게 했냐?”
< 206화 - 인사는 어떻게 했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