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그의 야망 >
[레이스가 큰 출혈을 한 걸로 봐서, 개인적으로는 계약연장을 염두에두고 데려온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판단이 틀렸던 모양이야.]
빌어먹을 보라스.
‘이래서 보라스 선수랑은 얽히고 싶지 않았는데······.’
쓴웃음을 속으로 삼킨 다운이 능청스레 물었다.
“아직 팀에 합류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연장계약을 논하는건 이른게 아닐까요?”
하지만 보라스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뭐 빠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늦는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그리고 우리 측에서는 마르코에 대한 레이스의 진심을 알아볼 수 있기도 하고 말이야.]
여기서 제안을 하지 않으면, 레이스는 루이스에게 계약연장을 진심으로 제안할 생각이 없다고 여길테다.
“물론 저희가 루이스를 고작 두 시즌 쓰자고 데려온건 아니죠. 하지만 제가 지금 막 귀국한 터라 당장에는 연장에 대한 제안을 계획하지는 못했네요. 아시다시피 제가 이번에 한국을 다녀와서말이죠. 트레이드도 거기서 일어난거고요. 조금만 여유를 주시죠.”
좀 기다려봐 이 양반아. 팀에 함류해서 어떻게 녹아들지도 모르는 선수한테 거액을 투자하라니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니야? 계약 제안할 생각은 있으니까 시간 좀 줘.
다운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보라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흐흐! 좋아. 어디보자······. 일주일 뒤에 에인절스 원정이 있구만. 그때 밥이나 먹자고. 어때?]
“그러도록하죠. 밥은 스캇이 사는거죠? 이번 겨울에 제 덕에 꽤 버신걸로 아는데요.”
[뭐 그 정도 쯤이야. 그럼 다음 주에 보자고.]
잠깐의 통화에 벌써부터 기가 다 빨린 기분이다.
“쉬기는 개뿔······.”
이제 막 공항에 도착한 오늘만큼은 조금 쉬려고 했더니, 틈을 주질 않는다. 글라이드파크에 도착한 다운을 보고는 다들 어리둥절했다.
“단장님?”
“오늘 쉰다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오전이다.
자신들은 출근해서 일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다운은 장거리 비행을 한 다음 시차적응도 해야하고, 여독으로 인해 몸도 피곤할 것이다. 그런데 곧바로 출근이라니.
“그렇게 됐어요. 파트장들 지금 2번 회의실로 모이세요.”
다운의 말에 파트장들이 곧바로 2번 회의실에 집합했다.
“미키는 없습니다.”
“알고있어요. 지금이 제일 바쁠 시기잖아요.”
미키와 로벨을 포함한 스카우트 팀은 드래프티들을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드래프트 전 거의 마지막 대회들이 여기저기서 열리다보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북미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브래드. 홍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소토가 22번을 달 것이라고 자료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스프라우트가 이미 자신의 유니폼을 산 팬들을 위해서 바뀐 번호가 마킹된 유니폼을 요구했다는 것도 흘렸습니다. 이 부분에서 시작은 클러비의 계정을 이용해서 첫 소스를 퍼트리고, 그걸 기자들이 캐치해서 기사화하는 식으로 홍보했습니다.”
“스프라우트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겠네요.”
구단이나 선수가 직접 나서서 ‘내가 팬을 위해 이랬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주변에 누군가가 ‘얘 일부러 이랬대! 대단하지 않아?’라고 해주는게 훨씬 공감하기도 쉽고, 좋은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었다.
“에이전트와도 공유했죠?”
“네. 감사를 표하더군요.”
“우리 구단에서 이렇게 신경쓰고 있고 케어를 잘해준다는 티를 냈으니, 이제 슬슬 저쪽이랑도 접촉을 해봐야겠네요.”
스프라우트는 올 시즌 4년차에 들어서면서 연봉조정대상에 들어갔다. 지난 시즌 레이스에서 많이 뛰지도 않았고, 부진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그리 많은 금액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최대한 받아도 450만 달러 정도가 한도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다운은 500만 달러를 맞춰줬다. 지금 50만 달러 높여주면서 양보를 해주면, 추후에 그 이상을 깎아낼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에이전시에서 요청하지 않아서 알아서 이미지 관리가 되는 방법으로 홍보까지 해줬다. 브레이브스에서는 받아본 적 없었던 호의에 스프라우트는 분명 만족하고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찬의 퍼펙트 게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러프는 나왔나요?”
“네. 찬의 다음 홈 첫 등판일인 4월 14일에 이벤트를 할 예정입니다.”
레이스는 오리올스 원정, 가디언스와 홈 경기를 치른 뒤, 에인절스 원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별다른 이슈없이 로테이션이 돌아간다면, 그 다음 배정된 블루제이스와의 홈 3연전에서 5, 1, 2번 선발이 등판할 것이다. 개막전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진성찬은 2선발이었기 때문에 블루제이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등판하게 될 것이다.
“지난 번 파인트의 퍼펙트때와 같이 그 날은 경기장에 오시는 모든 관중들에게 진성찬의 마지막 투구 모션을 25000프레임으로 나눈 티셔츠를 배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구단주님이 제작하신 넘버링 1번 피규어 증정식과 함께, 추가적으로 25개의 피규어가 행사에 참가한 팬들에게 무작위로 주어지게 될 예정입니다.”
“역대 25번째 퍼펙트 게임을 기념하기 위해서 25개로 제작한건가요?”
“역시 단장님은 바로 알아보시네요.”
“정확히는 26개가 제작됐겠죠. 구단주님이 0번이 넘버링 된 피규어를 가져가셨을테니.”
다운의 말에 심슨이 웃었다.
“그것도 정확하십니다.”
“하여간 그 양반 정말······.”
“조나의 퍼펙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모두 사비로 진행하신답니다.”
“······너무 사랑스럽다니까. 그렇지 않아요?”
어떤 챔피언이 생각나는 태세전환에 다들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행사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남은건 예산이다.
“오늘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건, 보라스 측에서 마르코 루이스의 연장계약에 대한 생각을 물어왔기 때문입니다.”
다운의 말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마르코 루이스랑 연장계약을 벌써 한다고요?”
“아직 한 경기도 뛰지 않았잖습니까? 우리 팀에서 어떻게 녹아들지도 모르고.”
“저도 똑같은 말을 했죠. 그래도 초안이라도 들어보길 원하더군요.”
모두의 눈이 러셀에게 돌아갔다.
“현재 저희가 가진 10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자들은 총 8명입니다. 우선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파인트. 5년 7500만 달러로 연봉은 1500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매 년 500만 달러의 옵션이 있습니다. 지난 해에도 모든 옵션을 달성해서 2000만 달러를 따냈죠.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올해에도 2000만 달러를 수령한다고 생각해야 할겁니다. 드레이크는 3년차인 올 시즌부터 1550만 달러를 수령하게 되었습니다. 비어만 역시 3년차인 올 시즌부터 1000만 달러를 수령하게 되죠. 더지는 올 시즌 1115만 달러를 수령하게 되고요. 브래넌 850만 달러의 기본 연봉에 300만 달러의 보너스가 매 년 있죠. 마지막 시즌이라고는 하지만, 150만 달러 정도의 보너스는 충분히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1000만 달러라고 봐야겠죠. 마이어 역시 아직 2년 2000만 달러의 계약이 남아있죠. 로드리고도 올 시즌은 1000만 달러를 수령합니다. 서머스도 모든 옵션을 채우면 1000만 달러를 수령하죠.”
여덟 명의 연봉을 합치면 총 9665만 달러.
“선수단 총 페이롤은?”
“추가적인 트레이드가 없다는 전제 하에, 그리고 루이스의 연봉을 제외하고 1억 4148만 달러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사치세 기준인 2억 5400만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이 금액은 레이스 역사상 최고의 페이롤이었다.
“확실히 23년부터 최저연봉이 300만 달러로 인상된게 크네요.”
“스폰서 패치하고 중계권 계약이 아니었으면 아마 저희 구단은 파산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단장님이 구단주님한테 매달려야 했겠죠.”
“새 구장을 못지었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결국에는 다들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다.
“계약연장을 위해 남은 예산이 얼마나 되죠?”
“저희 수익이 시즌 초 예상했던 것처럼 평균 20000명 이상의 팬들이 찾아와준다는 것을 전제로, 계약 연장에 쏟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4000만 달러 수준입니다. 정말로 쥐어짜서 말입니다.”
“지금 루이스의 연봉이 얼마지?”
“1850만 달러입니다.”
“드럽게 많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들 그가 그 정도의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 년 3할 20홈런 100볼넷을 해내는 23살의 선수다. 필연적으로 내년에는 2000만 달러가 넘어가는 연봉을 수령할것이다.
“배리가 은퇴하는거랑, 마이어와의 연장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면?”
“그러면 내년에는 1000만 달러 정도, 2년 뒤에는 2000만 달러의 여유가 생기겠군요.”
“로드리고까지 보낸다고 하면?”
“그러면 1000만 달러가 더 여유로워지겠죠. 하지만 그걸 다 투자하시면 안됩니다 단장님! 장기계약은 분명 구단에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지만, 너무 많아지면 선수단의 구성에 문제를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단장님 스프라우트나 비어스도 연장 생각중이지 않으셨습니까?”
“일단 확실한건 로드리고가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면 절대 우리 팀에 남지 않을겁니다. 남고싶다고 해도, 우리 측에서 거절하면 연장을 할 수 없고요.”
“에이전트와 친분이 있어서 이런 계약을 한거 아니었습니까?”
“그건 사적인 친분이고, 이건 비즈니스잖아요. 그걸 이해못할 친구도 아니고요.”
냉정한 말이지만, 팀에 덜 필요하다면 당연히 계약은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일단은 시간이 없는건 아니니 조금 더 생각해보는걸로 하죠. 그리고 루이스가 내츠와 연장계약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각자 루트로 조사를 좀 해주세요.”
내셔널스가 루이스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확실하다. 무려 15년 4억 6400만 달러짜리 계약을 거절한 선수를 무리해서까지 잡을 바에는, 유망주들을 모으면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더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케빈 크로스의 뒤를 밟겠다는 말을 했던 루이스가 팀을 떠난건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내셔널스는 역사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구단이었다. 그 이유는 내셔널스가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뒤를 잇는다는 명목을 가진 구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캐나다 팀이었던 엑스포스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로 이전했는데, 그걸 따라갈 팬들이 어디있겠는가. 대부분의 몬트리올 팬들은 응원하는 팀을 내셔널스가 아닌 블루제이스로 바꿨다.
그러다보니 내셔널스는 팬덤도 크지 않으며, 지역색도 약한 신생구단이나 다를바 없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내셔널스 최초의 스타이자, 원클럽맨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그게 바로 케빈 크로스였다.
그의 은퇴식에서 루이스는
“원클럽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로 은퇴할 수 있다는건 환상적인 일이다. 나도 언젠가는 케빈의 뒤를 잇고싶다.”
라는 말을 하며 내츠 팬들의 심장을 앗아갔다.
그랬던 그가 순식간에 마음을 바꿔서 4억 6500만 달러라는 북미 프로 스포츠 최고규모의 계약까지 거절했다.
“그땐 너무 어렸어요.”
라고 하기에는 고작 2년 전 일이고, 그는 아직도 어렸다.
“아시겠죠? 원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홈경기까지 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긁어오세요.”
< 204화 - 그의 야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