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 백넘버 플리즈(3) >
- 좌중간으로 살짝 떠서 날아가는 공! 스프라우트가 쫓아갑니다! 스프라우트 다이브으으으······. 잡아냈습니다! 알렉스 스프라우트가 슈퍼맨처럼 날아서 좌중간에 떨어지는 공을 잡아냅니다! 알렉스 스프라우트의 슈퍼캐치!
- 이렇게 레이스가 애스트로스와의 3연전을 스윕하게됩니다!
- 정말 대단한 3연전이었죠?
- 그렇습니다. 눈 앞에서 메이저리거들이 뛰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부터가 엄청났죠. 관중분들도그 점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매일같이 찾아와주신게 아닐까합니다. 그럼 중계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저희는 3일 휴식을 한 뒤, 메이저리그가 돌아오는 수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부산에서의 개막 3연전은 레이스의 싹쓸이로 끝이났다.
“진정한 우리의 홈에서 다시 만납시다.”
클릭이 악당이나 내뱉을법한 말을 한 뒤 씨익씨익 거리면서 사라졌지만, 그걸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지구에 속해있는 애스트로스와는 시즌 도합 여섯 경기를 치른다. 레이스는 그 중에서 원정 3연전을 이번에 치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남은 경기는 홈 3연전 뿐. 클릭이 말한것처럼 ‘진정한 저들의 홈’에서 경기가 치뤄지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했다. 뭐 정말 두 팀이 다 잘 풀린다면 포스트시즌에서도 만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탬파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왁자지껄했다. 시즌 시작을 3연승으로 거두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진성찬의 딸이 애교를 부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도 있었다.
“콜 미 엉클 알버트.”
“엉클 알버트!”
“그렇지 잘한다! 우리 딸이랑도 잘 지내겠는데?”
“비켜봐 알! 헤이 미나.”
“미나가 아니라 민아야.”
서머스의 말에 진민아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짐짓 화난 얼굴로 말했다.
“마이 네임 이스 민아 진!”
“오케이 민아. 마이 네임 이즈 알렉스 스프라우트.”
“알렉······. 스프? 엉클 수프!”
민아는 길고 긴 스프라우트의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었는지 가장 익숙한 스프라는 단어를 붙여서 그를 불렀다.
“푸하하! 네 별명은 이제부터 스프다!”
“안그래도 알렉스랑 이름 겹쳐서 맨날 헷갈렸는데 잘됐네. 그치 스프?”
“젠장할······. 화를 낼 수도 없고 이거 참······.”
스프라우트도 낭패라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귀여운 민아가 지어준 별명이 그렇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엉클 스프.”
“엉클 스프!”
“어구어구 귀여워! 찬! 네 딸 너 안닮았다!”
“우리 민아가 날 닮았으면 큰일났지! 예쁜 우리 와이프 닮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그치 여보? 여보 여기 퍼스트 클래스라서 완전 좋아.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못먹는 것들도 많다니까?”
“흥!”
진성찬은 아직까지도 그의 와이프에게 강남에 가서 여자랑 합석해서 놀려고 했다는 것을 용서받지 못하고 있었다.
“허락받았다고하지 않았어?”
“허락은 받았지. 그런데 여자들이랑 합석은 안하는 조건이었나봐.”
“속였네.”
“혼날만하지.”
주변의 자신이 편이 없다는걸 깨달은 진성찬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지나가던 다운에게 SOS를 쳤다. 다운은 곧바로 패드에
[식사 거부권 5번]
라고 썼다.
진성찬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는걸 포착한 다운은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겠다는 모션을 취했다.
“자, 잠깐! 행님!”
진성찬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으니 도와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 하실말씀 있다고 했잖아요.”
그의 말에 다운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아 맞다. 제수씨한테 할 말이 있었어요.”
“저한테요?”
“네. 성찬이가 이번에 퍼펙트 게임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잖아요. 그래서 우리 구단주님이랑 이야기하는데, 그 원동력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응원하러 와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거든요.”
“그래요?”
그녀의 눈은 마치 ‘기자회견장에서도 우리는 거론도 안한 놈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한 팀의 단장인 다운이 하는 말이니 조금 의심스럽지만 믿어보겠다는듯이 끝이 살짝 올라가있었다.
“네. 그래서 구단주님께서 포상을 하기로 했는데요, 성찬이가 ‘미국에서도 최대한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으려면 가족들이 좋은 곳에서 안전하게 사는게 기본적으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딱 말한거죠.”
“그 말을 진성찬 저 놈이 했다고요?”
“아 물론 제가 통역해서 전달했지만, 의미는 같았어요. 그래서 구단주님이 포상을 내렸죠.”
다운은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조작하고 있던 패드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직 집 안골랐죠?”
“네. 일단은 호텔에서 좀 지내면서 보러다니려고요.”
“구단주님께서 100만 달러 이내에서 집을 구매해서 선물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어머 정말요?”
“네. 성찬이가 말 안했나요?”
“네! 아니 당신은 그런것도 말 안하고 뭐했어?”
“하하! 아니 그게 행님이 리스트 짜서 주신다고 했거든. 그래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아이가.”
“으휴! 하여간!”
“하하! 너무 뭐라하지 마세요. 성찬아. 너한테 준 패드 있지?”
“네 행님.”
“거기다가 방금 우리 직원들이 제일 괜찮은 매물들만 픽업해놓은 리스트 쫙 보내놨거든. 한 100개 정도 돼. 그러니 제수씨랑 찬찬히 훑어봐. 알겠지?”
어느새 그녀의 눈은 자신들이 살 새로운 집을 골라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네 행님! 고맙습니다!”
진성찬에게 손을 휘저어준 다운은 민아와 놀고있던 비어스의 어깨를 툭툭 쳤다.
“패트릭. 이야기 좀 하자.”
비어스는 순순히 다운을 따라 나왔다.
“혹시 저도······.”
비어스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봤다. 다운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트레이드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트레이드가 아니라는 말에 비어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그럼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별건 아니고, 배리한테 듣기로는 네가 백넘버를 바꿀 생각이 있다고 해서.”
“아, 생각중이었어요. 배리가 47번을 달고 기량이 만개하고, 그 뒤로는 27번을 달면서 꾸준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배리의 뒤를 잇고싶다는거지?”
“뭐 그런 장황한 건 아니지만, 배리의 번호를 받고싶은건 맞아요. 배리도 저한테 자신 다음으로 마지막 27번을 다는 선수는 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배리 브래넌이라는 리빙 레전드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운지 비어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배리가 말을 잘 해놨네.’
이 정도까지 말해놨으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에 어려움을 없을 것 같다.
“그럼 이번 시즌 47번을 달고 다음 시즌부터 27번으로 바꾸면 되겠네. 때마침 47번은 비어있으니까.”
“그럴까하는데, 괜찮을까요?”
시즌 도중에 번호를 바꾸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 트레이드가 일어나게되면 그에 따른 변동은 사무국에서 이해해주는 편이었다.
“사무국에서도 허락해줄거야.”
“제가 걱정하는건 팬들인데······.”
이미 올 시즌 비어스의 백넘버가 박힌 유니폼을 구입한 팬들이 있을 것이다. 비어스는 그런 팬들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마. 그건 해결해줄 수 있으니까.”
“어떻게요?”
“보통은 백넘버를 양보해주면 감사의 표시로 시계를 선물하거나, 해당 선수가 원하는걸 들어주는 편이야. 루이스랑 이야기 해봤을 때, 그는 너에게 시계나 자동차 같은 것 중에서 필요한 것이 있냐 물었었거든.”
“둘 다 그다지 필요는 없는 것들이네요.”
비어스는 스마트워치를 항상 차고다닌다. 그런 그에게 명품 시계는 쓸모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차 역시 마찬가지. 그가 비록 루이스보다 많이 받지는 못하고는 있다만, 올 시즌 770만 달러를 수령하고 있는 꽤 돈 잘버는 선수에 속했다.
이런 선수들이 세금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고가의 자동차를 사는 것이었다. 자동차는 비용처리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고로 당연히 그가 원하는 차 정도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부모님이 쓰실 수 있는 픽업트럭 하나 정도는 필요할 것 같긴하네요.”
“그럼 픽업트럭 하나에,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올 시즌 네 유니폼을 구입한 팬들에게 무료로 새로운 번호가 박힌 유니폼을 뿌리게 해주는거지. 어때?”
다운이 제안한 해결책에 비어스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고맙다.”
“별말씀을요.”
비어스는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다운은 정말로 그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나중에 마르코가 오면 찐하게 생색내라고.”
“하하! 그러려고요. 이왕이면 밥도 비싼걸로 한 번 얻어먹을까요?”
“그것도 넣어줄게.”
다운은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비어스를 배웅했다.
‘양키스 시절을 생각하면 진짜······.’
비어버린 전임자의 번호를 갖겠다고 싸우는 놈들이 있지를 않나, 적당히 갭플레이어로 데려온 놈이 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신인급 선수의 번호를 일부러 뺏지를 않나. 고작 등번호로 인해서 별의 별 일들이 일어나는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러다보니 비어스처럼 순순히 자신의 번호를 양보하는 선수에게 감사할 수 밖에.
다운은 탬파로 돌아오자마자 보라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호는 해결됐나?]
역시 시간이 금인 스캇 보라스다운 단도직입적인 대화 스타일이다.
“부모님께 드릴 최신형 픽업트럭. 그리고 오프시즌부터 시작해서 계약 발표 전까지 패트릭 비어스라는 이름이 달려있는 유니폼을 구매한 팬에 한해서 새로운 등번호가 달린 유니폼으로 바꿔줄 것. 그리고 밥 한 끼 찐하게 쏘는 것. 이 세 가지면 들어주겠답니다.”
[당연히 그 기간동안에 구매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겠지?]
“물론이죠. 그리고 공식 스토어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마킹을 한 사람들도 포함되지 않을겁니다. 저희가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기간동안에 패트릭 유니폼을 구매한 사람은 총 58명이에요.”
스토어에서 파는 유니폼 한 벌당 1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니 5800달러면 해결된다는 말이다.
[그 정도면 마르코가 생각하고 있었던 금액이랑 얼추 비슷하겠구만. 그나저나 밥 한 끼 찐하게 쏘는거. 이게 조건이라고?]
“패트릭도 외야수니까요. 어차피 외야진들끼리 한끼 할거 아니었습니까?”
[그 한 끼는 당연히 배리 브래넌이 쏘는거 아냐?]
“연봉도 높은 선수가 그러면 욕먹어요.”
루이스의 올 시즌 연봉은 1850만 달러. 거의 200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수령하는 그는 레이스에 들어오면 단숨에 레이스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최고연봉자가 된다.
[그 정도 연봉이 많다고 생각하는건가?]
“슈퍼에이전트인 스캇에게 이 정도 연봉은 아무것도 아닌걸로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이제 막 새 집으로 이사해서 돈 좀 벌어보려는 저희 레이스 입장에서는 그 정도면 많은 연봉이죠.”
다운은 너스레를 떨며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보라스의 말에 다운은 그대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레이스는 우리 마르코랑 연장계약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 203화 - 백넘버 플리즈(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