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백넘버 플리즈 >
- 경기 종료! 경기 종료오! 퍼펙트! 진성찬이 퍼펙트게임을 바로 이곳! 이곳! 부산의 21 스트리트 파크에서! 해냅니다!
- 레이스 선수들이 모두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옵니다!
“차아아아안!”
“미쳤다아아아아!”
“퍼펙트 찬! 퍼펙트 찬!”
난리가 난 마운드와 마찬가지로 관중석 역시 난리가 났다.
“으아아아아 퍼펙트 게임이다!”
“오늘 오길 진짜 잘했다! 퍼펙트를 내 눈으로 볼 줄이야!”
“오늘 칼퇴 시켜주신 사장님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바로 그 퍼펙트게임이 사직에서 나타난거다. 그것도 메이저리그 경기를, 한국인 선발 투수가 해낸거다. 난리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상황이었다.
덕분에 경기 후 프레스룸은 기자들로 인해서 미어터져 나갔다.
“진성찬 선수! 오늘 퍼펙트 축하드립니다! 한국 프로 투수 사상 최초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신 소감! 부탁드립니다!”
“하하! 엄밀히 말하자면 이영훈 선배님이 먼저셨죠. 비록 2군 무대였긴 하지만, 한국 프로 투수 사상 최초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신건 맞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동양인 퍼펙트 게임 달성자라는 타이틀만 가져가겠습니다 선배님! 소감을 말하자면······ 기쁩니다. 당연히 기쁘죠. 저 같은 속물적인 야구선수는 기록 같은거에 엄청 신경쓰거든요. 여기에다가 최! 초! 딱지 딱~ 붙으면 끝납니다.”
“오늘 퍼펙트를 하실줄은 본인도 모르셨을텐데, 원래 오늘 목표는 어떤 것이었나요?”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 팀 1선발이자 에이스는 조나 파인트거든요. 그런데 제가 전에 있던 팀의 홈 구장이라는 이유로 그 친구가 저한테 개막전 선발을 양보해줬죠. 뭐 그거 말고도 이런저런 이유도 있었지만, 그 친구가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개막전 선발이라는 상징적인 날 등판하지는 못했을겁니다.”
누가 투머치토커 아니랄까봐 말이 길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진성찬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었으니까.
“······ 그래서 제 목표는 딱 하나였습니다. 조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대한 애스트로스 타자들을 막고 내려가자.”
“메이저리그 첫 경기라는 부담은 없었나요?”
“있었죠. 저도 사람인데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제 고향, 제 친정팀의 구장에서 오랫동안 절 응원해주셨던 분들이 가득한 이곳 부산에서 나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이 구장에 저만큼 익숙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거기다가 우리 부산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그게 정말 힘이 됐습니다.”
“8회에 시작할때 조용하다는 퍼포먼스를 보이셨잖아요? 혹시 응원을 듣기 위해서였나요?”
“네. 솔직히 투수 중에서 자기가 퍼펙트를 하고 있는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다들 알고는 있지만, 집중하느라 최대한 외면하려고 하는거죠. 하지만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가 잘 되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 아닙니다. 애초에 여기 부산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성격이어서도 안되죠. 떠들썩하면 더 신이나서 힘을 내는 선수가 바로 진성찬이라는 선수입니다. 그래서 조용하던 여러분들을 일깨워드린거고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팬분들의 응원 덕분에 제가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반까지는 압도적인 페이스로 삼진을 쌓아나가셨습니다.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인 한 경기 21탈삼진도 노려볼만한 기록이었는데요, 아쉽게도 19탈삼진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은 의식하지 않으셨나요?”
“솔직히 삼진을 잡고자 했으면 한두개는 더 했을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은 개막전이잖아요. 시즌의 첫 스타트를 좋게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에 경기 초반부터 조금 힘을 많이 줬습니다. 그래서 힘이 좀 빠졌죠. 앞선 타석에서 애스트로스 타자들을 잘 잡아내기는 했지만, 힘이 빠진 다음에 삼진을 잡으러 들어갔다가는 어떤 꼴이 될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맞춰잡기로 한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퍼펙트 게임 중이었잖아요. 최다 탈삼진 경기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퍼펙트는 정말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샘과 함께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는 쪽으로 투구 패턴을 짰습니다.”
이외에도 비어만과의 호흡이라던가, 내야 수비에 대해서라던가, 마지막 아웃카운트에서 키스톤콤비의 수비에 대해서 등등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모든 질문을 받아내고 나니 1시간이 지나있을 정도였다.
“이제 마지막 질문 받겠습니다.”
“탬파에서 보고계실 팬분들도 많을텐데요, 그분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탬파에 계신 레이스 팬 여러분. 방금 제가 말했듯이, 저는 홈 팬 여러분들이 시끄럽게 응원하시면 할수록 더 힘이 나는 선수입니다. 다른 선수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 경기만큼은 부디 실컷 떠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아, 물론 못하면 욕하셔도 됩니다. 이미 어릴때 부산에서 평생 먹을 욕은 다 들어먹었거든요 하하!”
한국에서 슈퍼스타로 군림하던 선수다운 여유로운 인터뷰였다.
‘내가 주문한 것도 그대로 이행했고.’
메이저리그 첫 경기, 그것도 개막전에서, 퍼펙트 게임까지 달성한 투수가 부탁했다.
“제발 내 경기에서 시끄럽게 응원해주세요!”
야구가 좋아서, 레이스와 같은 스몰마켓 팀이 좋아서 야구장에 오는 팬들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투수가 요청한 저 자그마한 부탁도 들어주지 못할까?
아니라고 본다.
구단까지 나서서 바람을 넣으면, 무조건 들어줄거다.
‘그렇게 되면 팬들이 떠들고 즐길 수 있는 구장이 되는데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거야.’
팬들이 떠들고 즐길 수 있는 구장이 되어야 즐길거리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이 눈을 한 번쯤을 돌려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꼬셔야지 장기적으로 사라져가는 팬층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뭐 추가적으로 수익도 늘고 말이다.
호텔로 돌아온 뒤에는 잔뜩 흥분한 광팬 노친네 하나를 상대해야했다.
[푸하하! 그런 인터뷰를 했단말이지! 좋아. 그럼 브래드와 이야기해서 커뮤니티 여론을 만들고 앤디와는 새롭게 팔만한 응원도구가 없나 알아봐야겠구만! 찬에게는 특별 피규어와 함께 축하금으로 10만 달러 지급을······. 아니지. 그 친구 아직까지 집 안샀지?]
“네. 이번에 가족들이 들어오면 정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성찬은 지금까지 탬파가 아니라 그 아래에 위치한 포트샬럿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가족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탬파로 다시 돌아가는 상황. 그의 가족들은 이번 개막시리즈가 끝날 때, 탬파로 향할 예정이었다.
“자기보다는 와이프와 아이가 훨씬 오래 있을 집이니까, 그들이 왔을 때 고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좋아. 그러면 50만 달러 내에서 원하는 집 하나를 고르라고 해. 내가 사준다고 하고. 더 좋은 집을 원한다면 거기다 보태줄 용의도 있다고 해.]
50만 달러면 탬파 시내에 있는 집을 살 수는 없다. 그런 집들은 보통 100만 달러 선이니까. 하지만 탬파 교외에 있는 집은 충분히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운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어스틴. 그냥 화끈하게 100만 달러 선에서 사줍시다. 연봉도 680만 달러에 120만 달러짜리 옵션, 다 합해봐야 800만 달러밖에 안나가는 선수잖아요. 다른 추가적인 보너스 옵션도 없는데, 구단주 된 입장에서 그 정도는 해주는게 어때요? 아무리 생각해도 성찬이가 교외보다는 이버시티 근처의 탬파 시내를 원할 것 같거든요. 한국의 정서상 한적한 시내보다는 그런 도심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다운이 설명을 덧붙였지만, 글라이드는 다운이 노리는 바가 뭔지 정확히 꿰고 있었다.
[너 밥먹으러 가기 편하려고 그러는거지?]
“윽!”
진성찬의 계약조건에는 ‘매 주 진성찬과 한 번 이상 밥을 먹어야한다.’라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만약 다운이 이 조항을 정당한 사유 없이 어기게 된다면, 진성찬 측에서는 이 조항을 들어 계약 파기를 요청해올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러지 않을 수도 있긴 하지만, 보라스가 진성찬이라는 좋은 상품을 가지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을 마다할리가 없었다.
“······ 뭐 그런 목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찬이가 당장 큰 돈이 없어보이기도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이 그렇듯이, 진성찬도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건물사는곳에 썼다. 그래서 그 건물들을 제외하고 가용할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았다.
최대 800만 달러를 받지 않냐고?
이건 연봉이다. 비 시즌을 제외한 9개월간 나눠서 지금되는 연봉 말이다. 계약금도 따로 없었고, 아직 개막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니, 그가 지금 당장 쥐고 있는 돈이라곤 원래 가지고 있는 돈에 2월과 3월에 들어온 월급밖에는 없을 것이었다.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100만 달러 전후일 것이다.
“100만 달러 투자로 마음을 조금 더 잡아놓을 수 있다면 이득 아니겠어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미래를 봤나봐?]
“뭐 시범경기를 보고 대략 예상하긴 했지만, 오늘 경기를 보니까 확실히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년 뒤에도 우리 팀이 계속해서 컨텐딩을 노릴거라면 무조건 데려가야하는 선수 중 하나에요.”
물론 중간에 부상이라던가, 다른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인저리 프론도 아니고, 검사상 건강한 선수를 대상으로 그런 예측까지 하면서 행동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 이번 한 번은 기분도 좋으니 속아주마.]
“성찬이가 기뻐하겠네요.”
[너도 기뻐하겠지.]
“하하······.”
[웃기는. 마르코 루이스는 언제 합류한다고 했지?]
글라이드는 탬파의 진성 팬답게 마르코 루이스가 합류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내츠에서는 시리즈 끝나고 곧바로 보낼 예정이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루이스가 한 경기만 늦춰달라고 요청했답니다.”
[팬들한테 인사를 하고 싶었나보네.]
“그렇겠죠. 그래서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루이스에게 나쁘게 보일 필요는 또 없으니까요.”
[연장계약 노리는거냐?]
“일단 찔러는 봐야죠. 그게 아니라면 내년 마감시한에는 내보내야겠지만.”
아직 두 시즌이 남아있는 선수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계약이 틀어지면 곧바로 팔아먹을 수가 있다. 그래서 다운도 아끼지 않고 투자를 한 것이었다.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잘하겠지. 흐흐! 어서 왔으면 좋겠구만. 구단 스토어에 가서 미리 마킹이나······.]
끌끌거리던 글라이드가 문득 웃음을 멈췄다.
[근데 잠시만. 루이스 번호가 22번 아니었나?]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이 한숨을 폭 쉬었다.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문제에요.”
< 201화 - 백넘버 플리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