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부산가오리(5) >
1회부터 강판된 상대 선발
1회만에 상대 타선을 삼진 3개로 돌려세운 우리 팀 선발
홈 팬(?)들의 열렬한 환호
세 가지 요소는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 또 다시 삼진! 삼진! 삼진! 이번 이닝도 KKK를 기록하면서 단 한 명의 애스트로스 타자들의 출루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아니 진성찬선수 오늘 완전히 각오를 하고 나온 모양입니다! 지금 7회를 마쳤 벌써 탈삼진이 19개에요! 범타가 고작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투구수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지금 투구수는 75개! 이닝당 10개가 살짝 넘는 투구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 물론 애스트로스 선수들이 이곳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한 몫 할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진성찬 선수의 활약이 너무 뛰어납니다! 진성찬 선수가 스프링 트레이닝을 건너뛰고 여기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똑같이 스프링 트레이닝 스케줄 소화하고, 똑같이 시차적응까지 마쳤거든요! 다른 선수들과 조건이 다르지는 않다는거죠!
- 오늘 부산의 팬들에게 정말 큰 선물을 주기 위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진성찬 선수! 대단합니다!
엄청난 진성찬의 활약과는 대조적으로 관중석은 오히려 초반보다 조용했다.
- 그런데 관중들이 이번에는 환호성을 지르지 않는군요.
- 아마도 ‘그 기록’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성찬은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투구수도 아직 여유가 있는 상황. 어느모로 보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 진성찬 선수는 지금 이 경기장의 그 누구보다 집중하고 있을겁니다. 그런 진성찬 선수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지 않겠다는 관중분들의 마음이죠.
- 저희도 함께 그 마음을 이어받아서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고 있겠습니다!
8회 초, 레이스의 공격때에는 다시 관중들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따아아악!
- 브래넌이 친 타구가 타구가! 좌측담장! 좌측담장! 좌측담장으으으을! 넘어갑니다! 배리 브래넌! 시즌 1호! 그리고 통산 585번째 홈런을! 여기! 부산의 21 스트리트 파크 개막전에서 터트립니다!
- 저기 보세요! 저기 저 외국인 여사님이 응원 판넬을 지우고 있어요!
카메라에는 페퍼 여사님이 환하게 웃으며 [D-16]이라는 글자에서 6을 5로 갈고는 흔드는 모습이 잡혔다.
- 600홈런까지 이제 15개 남았다는 뜻이죠?
- 그렇습니다! 거기에다가 홈런 하나만 더 때려낸다면, 프랭크 로빈을 따라잡고 커리어 통산 홈런 공동 10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 저 홈런볼을 가진 팬은 정말 엄청난 영광이 되겠군요!
- 제가 만약 저기 있었다면 기를 쓰고서라도 저 공을 가지려고 했을겁니다. 배리 브래넌의 커리어 역사의 한 축을 가지게 되는거니까요!
홈런볼을 잡은 사람도 그 것을 아는지 공을 쥐고는 미친듯이 날뛰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보안팀 두 명이 다가갔다.
- 이번 시리즈에서 만약 자신이 홈런을 친다면 홈런볼을 잡은 사람에게 경기 후 개인적으로 만나 사진을 찍을 기회와 사인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었죠. 아마 그 약속 때문에 모셔가는 것 같네요.
- 정말 부럽네요! 여하튼, 배리 브래넌의 솔로포로 경기는 7대 0! 레이스가 완전히 승기를 굳히고 있습니다!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에에에~
부산 가~~오리~ 부산 가~~ 오리~ 너는 정녕 나를! 잊었냐~~
빠빠라 빠라바~ 빠빠라 빠라바~ 빠빠라 빠!빠!빠!
- 관중분들도 신이 난 모양이네요. 조용하던 21 스트리트 파크가 다시금 노래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 부산 가오리라고 개사를 했군요 하하!
- 메이저리그만 해설하는 해설위원님께서는 아실지 모르겠는데, 사실 저 곡은 공식적으로 응원가로 쓰면 안되는 곡입니다.
- 아, 그렇습니까?
- 네. 아직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전광판에도 박자조차 맞춰주질 않죠?
- 그렇다면 지금 저 박자는······.
- 모두 팬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박을 맞춰서 불러주시고 계신 거라는 말이죠!
- 정말 레이스 선수들에게는 진귀한 경험이겠어요.
- 그렇습니다. 물론 저 부산 가오리라는 말을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더그아웃에서도 같은 설명을 열심히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부산 가오리라는게 부산 Rays라는 말이란거야.”
“댄.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지 마! 그냥 저 노래는 우리 부산 사람들이 응원하는 팀보고 힘을 내라고, 그리고 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불러주는거라고! 그만큼 우리 팀이 지금 부산 야구 팬들에게 마음에 든다는, 잘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야. 그러니 그냥 듣고 즐기면 돼!”
“음이 어떻게 되더라? 부산 케이오뤼?”
“가오리.”
“카오리.”
“일본 이름 같은데? 가쉽 할때 가 가!”
“가!”
“가오리.”
“개오뤼.”
“그래. 일취월장했네.”
계속해서 개오뤼를 중얼거리는 드레이크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준 진성찬은 프레슬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근데 댄. 너는 가오리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아?”
“어? 그야 난 한국어를 배웠으니까. 레이스가 한국어로 무슨 단어인지는 알아둬야하잖아.”
“아하!”
그런 식으로 변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좋네 좋아. 완벽히 우리가 예상했던대로 들어맞고 있어.”
VIP 관람실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다운이었다. 다운은 시호크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응원가가 부산갈매기라는 것을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사 과정에서 ‘응원단이 주도할 수 없음.’이라던가, 팬들이 마음을 모아서 한마음 한뜻으로 부르지 않는 이상에는 공식적으로 쓸 수 없다는 것까지 파악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곡이 필요해.”
“맞습니다. 부산을 우리 레이스의 진출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는 부산 팬들 사이에 확실히 각인될 뭔가가 필요합니다.”
“만약 부산 팬들이 자진해서 이 곡을 우리 팀에게 불러준다면 게임 끝이죠.”
그리고 나온 결론.
“굳이 자진해서 불러줄때까지 기다려야하나?”
이 바닥에서 도가 튼 심슨이 마케팅 팀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제목 : 레이스 경기 때 부산 가오리 부를사람?
내용 : 이번에 부산에서 레이스하고 애스트로스 경기가 열리잖아? 난 개인적으로 레이스를 응원할 생각이야. 우리 시호크스하고 연계된 구단이기도 하고, 탬파라는 도시가 우리 부산처럼 해안도시라는 점. 그리고 한동안 꼴지에서 멤돌았던 팀이라는 점 등에서 꽤 동질감을 느끼고 있거든. 거기다가 구단 색도 비슷하잖아? 뭐 엄밀히 말하자면 창원에 있는 그 구단 색이랑 더 비슷하긴 하지만, 태클은 안받을게. 거기다가 우리 팀의 레전드! 진성찬 선수가 거기 있잖아!(사실 이 이유가 끝인 것 같긴 해.)
여튼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레이스 경기 당일에 레이스를 응원할 부산 팬들이 99%라고 봐. 그래서 든 생각이 있어.
레이스를 우리 팀 응원할때처럼 해주는게 어떨까?
메이저리그 경기를 많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만큼 응원문화가 저기는 활발하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가 응원으로 뿅가게 만들어주는거지. 예를들면 우리가 항상 8~9회에 부르는 부산갈매기 있잖아. 그걸 부산가오리로 개사해서 부르는거야.
그러면 얼마나 장관이겠어?
내가 그날 북을 들고 갈 예정이거든? 그리고 확성기도 들고갈거니까 내가 시작하면 따라 시작하면 돼. 중요한건 부산 ‘가오리’라고 말해야한다는거야. 알겠지?
혹시 같이 할 사람들 있어?
한국 최대 시호크스 팬사이트와, 최대 야구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은 순식간에 ‘참가함’ 혹은 ‘가오리 확인’ 같은 댓글로 뒤덮였다. ‘진성찬이 개막전 선발로 등판한다!’라는 소식이 빠르게 발표된 이후에는 참가자가 훨씬 더 많이 늘게 되었다.
다운은 신민국 단장에게 ‘북 치면서 응원을 주도해줄 사람’과 바람잡이들의 섭외를 부탁했다. 게다가 경기를 지켜보며 있는 스태프들과 경비들 역시 한패였다. 그들에게도 주도자가 응원을 시작하면 반박자 빠르게 ‘부산가오리’를 외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사를 알리는 미션이 주어졌다.
그 결과가 바로 저것이었다.
“역시 스포츠는 마케팅이야.”
레이스가 올 시즌 치뤄야하는 우승, 그리고 와일드카드 레이스는 1승 1승이 소중하다.
크게 돈이 들지 않는, 현지와 잘 맞는 마케팅 아이디어 하나로 이 시리즈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있을까? 아마 경기 초반에 격분해서 나간 클릭 단장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게 프런트라면 프런트답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포팅을 잘했어야지.”
솔직히 이번 경기에서 질만한 구석은 보이질 않았다. 남은건 이 승리를 어떻게 활용할지다.
우우웅!
심슨의 전화다.
“끝났어요?”
[네. 이미 현지 언론사들도 모두 퍼펙트게임, 노히터, 아쉽게 실패했을때를 상정해서 모든 기사를 써놓고 있더군요. 거기에다가 조금 저희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써달라고 부탁을 해놨습니다. 그리고 그 건에 대해서는 구단주님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요? 구단주님이 허락해주실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답해주실줄은 몰랐네요.”
[이 또한 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지불하시겠답니다.]
“역시 화끈하셔. 일단은 경기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요. 지금은 집중해야죠.”
[알겠습니다. 저희도 탬파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다운이 전화를 하는 동안 8회 초 레이스의 공격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떠들썩하던 관중석이 다시 조용해졌다.
마운드로 향하던 진성찬은 고요해진 관중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사직은 이러면 안돼.”
시호크스의 홈 관중석은 2017시즌 한국 야구 역사에 길이남을 22연패를 할 당시에도 이렇게 조용했던 적이 없었다. 물론 그 당시의 함성 90% 이상은 욕이었지만.
어쨌거나 진성찬은 이렇게 조용한 경기장 분위기를 원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이 퍼펙트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내가 퍼펙트를 하길 바란다면 더 열심히 응원해줘야지!’
팬들의 응원.
좁은 한국 땅,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 열심히 함성을 질러주는 팬들의 응원. 그것이 언제나 진성찬이 힘을 내서 공을 던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마운드에 올라선 진성찬은 글러브를 잠시 벗었다. 그리고 오른손은 쫙펴고, 왼손은 엄지를 쥔 채 양 팔을 치켜올렸다. 진성찬의 돌발행동에 해설들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 저, 저게 뭐죠?
- 육! 남은 아웃카운트가 여섯 개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양 손을 귀에 대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 어······.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는건가요?
- 그런······ 것 같은데요?
진성찬의 생각을 눈치챈 관중들이 서서히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진! 성! 찬!
진! 성! 찬!
진성찬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이 웃으며 글러브를 왼손에 꼈다. 진성찬이 글러브를 끼고 연습구를 모두 던졌을 때 쯤에는 브래넌이 홈런을 쳤을때와 같은 수준의 응원이 구장을 뒤덮었다.
- 이야~ 역시 진성찬 선수. 멘탈이 남달라요. 분명 본인이 퍼펙트를 하고 있다는걸 알고 있을거란 말이죠.
- 자기가 던진 모든 경기 모든 구종을 어떤 이유로 던졌는지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는 선수잖아요.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경기도 놓치지 않고 기록한 책이 서재 한 쪽을 다 채우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 모를리가 없죠.
- 그만큼 팬들의 응원이 힘이 된다는거겠죠?
- 맞습니다.
팬들이 응원이 구장을 가득 메우자 힘이 조금은 빠져있던 팔에 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진성찬 선수 초구를 던집니다!
파아아앙!
- 다시 98마일이 찍혔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 이게 팬들의 응원이 불러온 힘이죠!
- 그렇습니다! 구속을 확인한 팬들이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올라온 팬들의 목소리는 9회 말이 되어서도 멈추질 않았다.
- 이제는 정말 마지막 한 걸음만이 남았습니다!
- 2볼 2스트라이크. 9회말 투 아웃! 이제 정말 딱 하나의 아웃카운트만 잡아내면 됩니다! 진성찬 선수!
- 이제 111구째! 조금만 더 힘을 내길 바랍니다!
진! 성! 찬!
진! 성! 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입꼬리를 올린 진성찬이 마지막 타자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따악!
강하게 당겨친 타구가 2유간으로 튀어나갔다.
- 로드리고가 다이브!
촤아아악!
로드리고가 몸을 날렸다. 타구를 향해 손을 쭉 뻗는 순간 로드리고는 글러브에 공이 들어왔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2루로 다이브 한 자신이 직접 1루에 공을 던지려면 몸을 일으킨 다음에 틀어서 역동작으로 송구를 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정확도도 떨어질 뿐더러, 발이 빠른 타자주자를 잡기에는 무리다.
그 순간 엎드려 있던 로드리고와 달려오던 드레이크의 눈이 맞았다.
- 로드리고가 엎드린 채로 글러브 토스! 드레이크가 맨손으로! 맨손으로 1루로! 1루로!
로드리고가 토스한 공을 맨손으로 받아낸 드레이크는 곧바로 강하게 1루를 향해 송구했다.
“못잡으면 뒈진다 더어어억!”
살벌한 말과 동시에 더 살벌한 포구음이 울려퍼졌다.
파아아아앙!
그 순간 진성찬의 커리어에 한 줄이 추가되었다.
- 2024. 03. 30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퍼펙트게임 달성
< 200화 - 부산가오리(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