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99화 (199/268)

< 199화 - 부산가오리(4) >

진! 성! 찬!

진! 성! 찬!

23000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박자로 소리를 치는 것을 들어본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런 광경은 메이저리거들도 본 적이 없었다.

발바닥부터 머리 끝까지 소름이 타고올라오는 흔치않은 경험을 양 팀은 물론이고, 심판진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

그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은 오직 진성찬 뿐이었다.

“어이 샘! 공 받아! 연습구 안던질거야?”

진성찬의 일갈에 넋이 반 쯤 나가있던 비어만이 미트를 고쳐꼈다.

‘찬은 매 번 이런 관중들 사이에서 경기를 했던건가?’

지금은 진성찬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이지만, 못던지는 날에는 한 목소리로 사방에서 비난이 날아온다고 했다.

“필리건? 그건 꼴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꼴리건이 뭐냐고? 시호크스가 맨날 꼴지 하던 시절이 있었거든. 그러니까 내가 신인일때였는데, 그때는 진짜 경기에 나가기만 하면 졌다고 보면 돼. 144경기 체제에서 100패 찍은 팀이 어디 흔하겠냐고. 그때 얻은 별명이 시꼴크스였지. 그래서 타 팀 팬들이 우리 팬들 비하할때나, 아니면 우리 팬들이 자조적으로 말할 때 쓰는 이야기가 꼴리건이지. 물론 나 때는 아니지만, 내가 어릴때 구장에 갈때만해도 우리 아버지가 소주 데꼬리 페트병을 구장에다가······. 안잡혀갔냐고? 에이~ 그 시절에는 다 던지고 그랬어. 하하! 지금? 지금은 안그러지. 대신 23000명이 일제히 욕하는건 들을 수 있지. 내가 3년차때였나? 2.2이닝 8실점하고 내려간 다음 날 출근하는길 내내 욕들어먹은 적도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다 추억이야······.”

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욕을 한다?

비어만의 눈이 차분한 얼굴의 진성찬에게로 향했다.

‘어쩌면 찬은 정말 엄청난 투수가 아닐까?’

비단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비어만뿐만이 아니었다.

“와······. 여기서 못하면 저 사람들이 다 야유한다는거잖아.”

“그걸 어떻게 견뎌? 지금도 떨리는데.”

“내 데뷔전보다 더 떨린다 야.”

레이스 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애스트로스 선수들도 압도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짜 우리 홈 아니네.”

“함성소리 봐라······.”

“저 함성을 조용하게 만들어주자!”

말은 강하게 하고 있지만, 주눅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타석에 나가는 1번 타자의 발걸음은 어딘지 모르게 딱딱해보였다.

- 진성찬이 지난 시즌 시호크스를 우승시키고 메이저리그로 떠날때만 하더라도, 저는 사직. 죄송합니다. 21 스트리트 파크에서 이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진성찬이 메이저리그 연착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경우의 수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제가 아는 그 어떤 야구 관계자들도 진성찬이 실패할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 저는 그런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수도권의 모 구단 단장님이 ‘진성찬은 다른 팀들에게 악몽이나 마찬가지다. 팬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듯이, 제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해서 돌아오지 않아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고 말이죠.

- 하하! 농담치고는 너무 진심이 가득 담겨있는 것 아닙니까?

- 이제는 메이저리거가 된 진성찬이 몸을 풀기 시작합니다! 진성찬의 강점에는 뭐가 있을까요?

- 진성찬의 최대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언더에 가까운 사이드암 투수로서 최고 98마일에 이르는 강속구를 뿌릴 수 있다는 점이죠.

- 최근에는 구속을 줄이지 않았습니까?

- 그건 제구를 위해 의도적으로 줄인겁니다. 지난 한국시리즈에서도 봤듯이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98마일짜리 공을 존 안으로 꽂아넣을 수 있는 선수가 바로 진성찬입니다. 거기다가 언더투수다보니 기본적으로 투구의 테일링이 좋습니다. 그냥 포심을 던지더라도 투심이나 싱커를 던진것처럼 우타자 기준 몸쪽, 좌타자에게는 바깥으로 휘어져나가는 무브먼트가 걸린다는거죠.

- 그런데 진성찬 선수는 싱커도 던지지 않나요?

- 맞습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투심을 던졌는데, 올 시즌부터는 투심이 아니라 싱커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공을 던진다고 했거든요. 인터뷰에 따르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같은 팀의 에이스인 조나 파인트에게 싱커 그립을 배워서 던져봤는데, 무브먼트와 느낌이 좋아서 올 시즌부터는 적극적으로 던져볼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 더 변화가 심하겠군요.

- 이론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시범경기에서도 새로운 싱커를 던진적이 없으니 뭐라고 평가하기가 애매하군요.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모두 플러스 등급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나 슬라이더는 시범경기부터 벌써 ‘올 시즌 최고의 마구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있죠.

- 올 시즌 최고의 마구를 던지는 바로 그 선수의 선발등판!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의 손짓에 애스트로스의 1번 타자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 호세 몰리뉴가 애스트로스의 1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섭니다.

- 몰리뉴는 2루수로 메이저리그 타격왕만 3차례, 그리고 리그 MVP도 달성한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죠. 비록 그 기록이 사인 훔치기 스캔들로 인해서 흠집이 나긴 했지만, 그의 컨택 능력이 최상급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 2019시즌부터 3년간 부진을 하기는 했었잖아요.

-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2년간은 또 그 부진을 털어내는 활약을 보여주면서 ‘아직 나 죽지 않았어!’라는걸 보여주고 있죠.

- 몰리뉴도 올 시즌 마치면 FA자격을 얻죠?

- 그렇습니다. 34세 시즌을 마치는 몰리뉴지만, 지난 2년 연속 2할 후반대의 타율에, 20홈런 이상을 때려냈기 때문에 올 시즌의 활약에 따라서 다시 한 번 FA계약을 맺을 수 있는 확률이 생기게 되는거죠.

- 말하는 사이 진성찬이 와인드업을 시작합니다!

진성찬이 특유의 동작으로 왼발로 땅을 긁었다. 살짝 들린 발이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반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뒤를 그대로 공을 들고 있는 오른손이 따라왔다.

진성찬의 오른손을 떠난 공은 쏜살같이 비어만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슈우우웅!

굉음을 뿌리면서 날아간 공은 다시 한 번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미트에 틀어박혔다.

파아아아앙!

와아아아아아아아!

- 98마일! 또 다시 98마일짜리 공이 이곳 부산에 나타났습니다!

- 몰리뉴도 꼼짝을 못하는군요.

- 그렇습니다. 원래 몰리뉴는 초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타자거든요. 최근 그런 성향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눈에 공이 들어오면 공을 때려내는 배드볼 히터에 가까운 선수이고 말이죠. 그런 선수가 배트를 내미는 것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진성찬을 아예 처음 만나다보니 공을 지켜보겠다는 마음도 어느정도는 있었겠지만, 그 부분을 제하고서라도 지금 진성찬의 저 공은 정말 끝내주네요!

- 진성찬도 그 부분을 아는지 씨익 웃고 있어요. 자신이 방금 던진 공이 아주 마음에 드나봅니다.

해설의 예상과는 달리 진성찬은 자신의 공이 마음에 들어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이거지! 이 환호성!’

솔직히 시범경기 내내 지루했다. 관중이 많이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시범경기다보니 페넌트레이스와 같은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역시도 조용할 터. 이런 함성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에 이곳에 돌아와서나 가능할 것이었다.

‘최소한 10년은 메이저리그에서 머물 생각이니까······.’

오늘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10년간은 이곳에서 이런 함성을 들을 일은 없을거다.

‘그러니 나는 오늘 절대로 질 수 없다!’

그게 사랑하는 부산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리였다. 다시 진성찬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덧씌워졌다. 그리고는 다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얼핏 봤는데 몰리뉴 점마 저거 얼었다.’

눈빛, 스탠스, 공을 던지는 초반에 움직이던 어깨까지. 투수의 직감에 따르면 몰리뉴는 분명히 초구를 때리기 위해 나왔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23000명의 엄청난 환호성 때문이었다.

‘다음 공만 스트라이크 잡으면······!’

때마침 비어만이 정확히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공을 사인으로 냈다.

고개를 끄덕여준 진성찬은 생각을 멈추고 다음 공을 던지기 위해 왼발을 지익 끌었다.

- 진성찬이 2구째를 던집니다!

후우웅!

몰리뉴의 배트가 진성찬이 던진 2구째를 막기 위해서 돌아나왔다. 하지만 초구와는 다르게 몸 쪽 아래로 쑥 떨어지는 공을 때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아앙!

와아아아아아!

- 크으~ 저게 바로 싱커군요!

- 굉장하네요. 지금 95마일이 찍혔거든요? 진성찬이 던지는 패스트볼 계열이 평균적으로 93마일 언저리에서 형성되는데, 지금 싱커도 그 정도로 형성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저 정도 변화각을 가진 싱커가 평균적으로 93마일에 최대 95마일이라······. 이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팀들의 고민이 늘어나겠는데요?

2구만에 스트라이크 두 개를 잡았다. 그렇다면 관중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외칠 수 있는 단어가 생긴다.

사암~ 구 삼진! 짜작~짝! 짝! 짝!

사암~ 구 삼진! 짜작~짝! 짝! 짝!

사방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 게다가 이번에는 진성찬이 와인드업을 하니까 북소리가 점점 리듬을 빨리하는 것까지 들린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두두두두두두두!

북소리가 고양감을 올려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진성찬의 커브에 ‘이건 볼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배트가 딸려나가버리고 말았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콜이 터져나오기 무섭게 사방에서 다시 한 번 함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진성찬! 진성찬! 진성찬!

몰리뉴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선을 제압한 다음부터 진성찬은 파죽지세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후우웅!

- 헛스윙! 진성찬의 슬라이더는 정말 마구 그 자체입니다! 톨리도가 결코 선구안이 좋지 않은 선수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지금 완벽하게 존 밖으로 나가는 공에 배트가 나와버렸습니다. 완전히 속았다는거죠!

파아아앙!

- 완벽하게 존에 걸친 백도어 슬라이더!

- 이야! 지난 시즌 아메리칸리그 좌익수 실버슬러거를 수상한 자비에르 알바레즈가 아예 휘둘러볼 생각도 못한 채 루킹 삼진을 당했어요!

- 아 근데 심판에게 뭐라고 말합니다.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죠?

- 손가락을 귀에 대는 것으로 보아하니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 이야기가 조금 격해지는걸로 보이는데요. 감독까지 달려나옵니다.

“댐잇!”

화를 내는 알바레즈를 밀어낸 감독이 심판에게 대신 다가갔다.

“헤이 톰! 여기 관중들 너무 시끄러운거 아닙니까? 선수들이 타격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답니다.”

톰이라고 불린 심판도 이해한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상황인지는 나도 알고있어. 하지만 이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냐. 알다시피 이건 이 나라의 응원문화고, 우리 메이저리그는 그 문화 속으로 파고들어가야하는 입장이라고. 자네들도 사무국에서 하는 말 들었을거 아냐. 응원문화가 우리랑 다르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그건 그렇지만, 이건 너무 편파적인 응원이잖습니까.”

“어쩔 수 없지. 진은 이곳을 연고로 하는 팀인 시호크스의 전설적인 선수로 떠받들여 지는 선수잖아. 그 부분을 자네들도 모르지는 않았을거 아냐. 그리고 나도 이런 응원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해해주는데, 다시 한 번 이런 항의가 들어오면 곧바로 퇴장이야. 자네들 홈으로 진행되는 경기기는 하지만, 세상 그 어느 경기장에서도 욕설이나 차별적 발언이 아닌 응원이 시끄럽다고 관중을 조용히 시키는 스포츠는 없다는걸 알아둬.”

조곤조곤한 톰의 말에 결국 애스트로스 감독과 선수단은 각자 수비위치로 조용히 향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위치로 향했지만, 하는 생각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오늘 경기 조졌네.’

< 199화 - 부산가오리(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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