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부산가오리(3) >
- 네이선 드레이크가 때린 공이! 공이! 공이! 담장으으으을! 넘어갑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드레이크의 선제 솔로포!
- 이야~ 정말 드레이크는 대단하네요. 최근 메이저리그의 추세는 사실 홈런보다는 OPS위주의 역동적인 공격으로 바뀌고 있거든요.
- 그게 홈런과 큰 차이가 있나요?
- 있죠.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이 유행하게 된 계기는 강력한 시프트 때문입니다. 당겨치자니 시프트에 걸리고, 시프트를 뚫자고 밀어치기에는 스윙이 틀어지게되죠. 그렇다고 시프트가 없는쪽으로 번트를 대면 욕을 들어먹습니다. 그래서 사무국이 칼을 빼들고 과도한 시프트를 전면 금지한거죠.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홈런강점기에 비해서 최근에는 장타를 때려낼 수 있는 선수와 출루 후 도루가 가능한 선수들, 혹은 컨택능력이 좋은 선수들의 가치가 오르게 된거죠. 그런데 드레이크를 보세요. 그 모든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출루면 출루, 타격이면 타격, 거기다가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파워까지! 저 선수는 레이스의 보배입니다 보배!
해설이 극찬을 하는 사이 드레이크가 홈을 밟고 들어왔다.
- 이렇게 되면 케빈 트로이가 상당히 힘들어지겠는데요.
- 시작부터 좋지 않아요. 드레이크에 이어서 로드리고도 넘어야 하거든요. 로드리고가 비록 지난 시즌에는 부상으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데뷔 이후 5년 연속으로 30홈런 이상을 때려낸 거포거든요.
- 제 개인적으로는 쿠어스의 영향 때문에 저평가 된 선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동의합니다. 쿠어스가 아니더라도 로드리고는 충분히 위협적인 타자였습니다. 다만 부상이력에 FA 직전시즌을 망쳤다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죠. 계약사항에 따르면 이번 시즌이 끝나면 옵트아웃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어떻게든 좋은 활약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겠네요.
- 이를 박박 갈고 있을겁니다.
그들의 말대로 로드리고는 이번 시즌을 위해 이를 갈고 나왔다.
‘동료들도 좋고, 컨디션도 좋아. 이보다 더 좋은 시즌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거기다가 주변에는 자신을 큰 소리로 응원하는 23000여명의 관중들이 있었다.
로오드리고! 로오드리고!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심장을 뜨겁게 달궜지만, 로드리고는 의식적으로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드레이크한테 초구로 98마일을 던졌다가 홈런을 맞았다. 그러면 트로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거야.’
첫 번째는 내 공을 믿고 다시 한 번 머리를 들이밀고 싸워보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마음이 진정되고 제구가 잡힐때까지 코너에 걸치는 공을 던지며 간을 보는것.
전력분석과 함께 분석을 하긴 했지만, 트로이는 애초에 애스트로스에서만 있었다. 그래서 로키스 출신인 자신과 붙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성향을 잘 모른다.
‘하지만 포수는 다르지.’
케빈 트로이라는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뒤에 앉아있는 매니 가르시아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로키스에서 3년이나 같이 생활했던 사이니까.
‘매니라면 분명히 간을 보는걸 택할거야.’
최근 수많은 팀에서는 포수가 사인을 내는 대신, 더그아웃에서 사인을 내곤 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더그아웃에서 내는 사인을 불신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뭐 그 정도의 실력이 있으니까 거부할 수도 있는거지만.
여튼 가르시아의 성향이라면 분명히 내야로 굴릴 수 있는 곳으로 투구를 요구할거다.
‘제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인코스를 요구하기에는 부담이 클거야. 그러니 아웃코스로 멀어져가는 체인지업이나, 싱커를 요구하겠지.’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간단하다.
‘최대한 투구수를 늘리면서 몰리는 공을 놓치지 않는 것.’
“볼.”
“볼.”
예상했던대로 볼 두 개가 바깥쪽으로 떨어지며 흘러나갔다. 그리고 지금쯤 하나 오겠지 하는 순간
따악!
“파울.”
로드리고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고, 타구는 파울이 됐다.
“아······. 타이밍 조금만 빨랐으면 됐는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는 로드리고가 일부러 타이밍을 늦춘 것이었다.
‘가볍게 갖다맞추는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트로이의 멘탈을 흔들 수 없다.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존으로 들어가면 후두려 맞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줘야했다. 그래야지 트로이에게 스트라이크 존이 더 좁게 느껴질테니까.
“볼.”
따악!
따악!
따악!
볼 하나를 지켜본 로드리고는 또 다시 자신을 잡으러 들어온 공 세 개를 파울로 만들었다. 전부 타이밍은 빠르거나 늦었지만, 정확히 배럴에 맞으면서 솔리드 히트가 된 타구들이었다.
“아~ 오늘 스윙 느낌은 좋은데 이상하게 타이밍이 안맞네. 매니. 가운데로 좋은 공 하나만 줘봐요.”
“엿먹어 제수스.”
“아 거 참 너무하네.”
이미 멘탈이 30%쯤 날아간 것으로 보이는 트로이는 결국 로드리고에게 또 하나의 볼을 던졌다.
“베이스 온 볼스.”
- 로드리고가 여덟 구째에서 볼넷을 얻어 걸어나갑니다.
- 트로이의 표정이 좋지 않네요.
- 이게 안타보다 훨씬 좋지 않습니다. 안타는 그래도 존 안으로 공을 집어넣었다는거거든요. 하지만 트로이는 지금 존 안으로 공을 집어넣지를 못하고 있어요. 가르시아가 마운드로 올라갑니다. 아마 저들도 이대로 가다가는 게임이 망한다는걸 알고 있을겁니다.
마운드에 올라간 가르시아는 미트로 입을 가리고 트로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헤이 케빈.”
여기서 ‘오늘 공 좋아.’라던가 ‘네 공이나 수비를 믿고 던져!’라는 등의 발언을 하는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미 오늘 98마일짜리 첫 공을 던지면서 평소보다 훨씬 오버페이스라는 점을 보여준 투수에게 저런 말을 했다가는 자멸하기 일쑤다.
이럴때는 경기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텐션을 살짝 낮춰줘야했다.
“코리안 바베큐 잘하는 집 알아뒀어. 오늘 마치고 갈건데 너도 갈거지? 너 고기 좋아하잖아.”
“소에요 돼지에요?”
“돼지. 그 집은 돼지가 훨씬 맛있대. 물론 소고기도 알아뒀어. 거긴 내일 가려고.”
“내일도 같이 가는거죠?”
“당연하지. 엄청나다고 들었으니까 너도 기대해둬.”
가르시아는 미트로 트로이의 엉덩이를 툭 치고는 다시 홈플레이트로 내려갔다.
- 주자 1루인 상황에서 알렉스 스프라우트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스프라우트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애스트로스 배터리의 선택은 그와 맞붙는 대신, 견제구를 던지는 것이었다.
촤아아악!
“세잎!”
- 벌써 세 번째 견제구죠?
- 로드리고는 도루 능력이 있는 선수긴 합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저렇게 견재구를 연속해서 던져야 할 정도는 아니죠. 리드도 그렇게 벌리지 않았고요. 그럼에도 저렇게 견제구를 연발하는 이유는 트로이의 텐션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서인것 같네요.
세 번이나 로드리고에게 견제구를 던진 트로이는 그제서야 스프라우트에게 첫 번째 공을 뿌렸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공을 견제하는데 썼기 때문일까?
스프라우트에게 던진 슬라이더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밋밋하게 들어갔다. 스프라우트는 자신에게 오는 슬라이더를 향해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힘이 별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 가벼운 스윙이었지만, 공과 맞닿은 그 순간 풀스윙에 버금가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따아아아아악!
- 스프라우트가 때린 공이 멀리! 높이! 그리고오오오오오! 담장 너머로 넘어갑니다!
와아아아아아아!
- 점수는 3대 0! 시작부터 리드를 벌리는 스프라우트의 투런포! 레이스의 타선이 무섭습니다!
-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스프라우트의 타격이 심상치 않았죠. 그리고 오늘 스윙을 보니 완벽하게 지금의 키에 적응한 모양샙니다. 지금도 보시면 아주 가볍게 스윙을 하고있죠? 예전만큼 스윙을 하지 않아도 공이 쭉쭉 뻗어나간다는걸 이제 알아차린겁니다!
- 그를 3번에 배치한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 이번 시즌의 스프라우트는 정말 기대해볼 이유가 충분 한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트로이가 문제네요.
- 투수코치가 올라와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아마도 불펜이 어깨를 풀 시간을 주려고 하는 것 같죠?
- 맞습니다. 1회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할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겁니다. 거기다가 다음 타자가 누굽니까? 배리 브래넌이잖아요. 벤치에서도 주의를 줄 수 밖에 없는 선수입니다.
투수코치가 다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브래넌이 타석에 들어섰다.
‘가볍게 치자. 가볍게.’
브래넌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많은 선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트로이가 더 기분이 나빠할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불펜이 준비할 시간을 버는게 최우선 목표다.’
그렇다는건 투구수가 늘어나고 승부가 길어지면 웃는건 저쪽이라는 말이다. 승부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다음 투수가 몸을 풀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테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타이밍에 가볍게 안타를 때리면 된다.
하지만 가르시아 역시 포수 자리에서 잔뼈가 굵은 놈.
‘기회는 한 번이다.’
아마도 저쪽에서는 볼질도 마다하지 않고, 존 바깥을 집중적으로 노릴거다. 배트를 짧게 쥐는 것을 들키게 되면 눈치를 챈 가르시아가 곧바로 그에 맞춰서 빠르게 존 안쪽을 공략해올거다.
브래넌은 트로이의 오른쪽 발이 와인드업을 하기 위해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는 순간 느슨하게 쥐고 있던 배트를 손가락 두 마디만큼 짧게 잡았다.
슈우우웅!
살짝 존 밖으로 떨어지는 공이었지만, 브래넌은 무릎을 굽히면서 아주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강력한 타구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3루수 키를 넘기는 2루타가 나왔다.
- 브래넌이 2루에! 2루까지! 들어갑니다!
- 아 좋지 않습니다. 지금 점수는 3점을 내줬지만, 아직 1회초. 애스트로스도 따라갈 수 있는 여력이 충분히 있는 팀이거든요. 1회부터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브래넌이 득점권에 들어가면서 급해졌어요. 원래는 트로이를 조금이라도 끌 생각이었겠지만, 만약 애스트로스가 이 경기를 조금이라도 잡고싶은 마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교체해야합니다.
애스트로스 벤치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곧바로 감독이 마운드를 올라왔다.
- 결국 케빈 트로이가 단 한 명의 선수도 잡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 바뀐 투수는 앤드류 루고입니다. 애스트로스의 2년차 좌완 투수로 올 시즌 5선발을 맡기로 되어있는 투수죠?
- 이야~ 이게 또 이렇게 되는군요. 원래 5선발인 루고는 지금 등판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해외 개막전이라는 점 때문에 변수가 생긴거죠. 개막 시리즈를 치르고 돌아가는 팀들은 시차에 따라 적게는 2일, 많게는 3일까지도 휴식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4, 5선발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 다시 1선발부터 로테이션을 시작할 수 있다는거죠.
- 어차피 선발 등판일이 밀리는 것이 확정적이기 때문에 불펜을 대신해서 부담없이 5선발을 롱릴리프로 마운드에 올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 그렇습니다. 해외 개막전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보기드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트로이의 뒤를 이어 등판한 루고는 브래넌이 홈까지 들어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1실점만으로 1회를 무사히 막아내면서 레이스 타선의 흐름을 끊어내는데에는 성공했다.
- 길었던 레이스의 공격이 이렇게 끝납니다.
- 애스트로스도 이제 반격의 봉화를 올려야죠! 비록 4실점을 하기는 했지만, 이제 고작 1회 초가 끝난거거든요. 아직 애스트로스에게는 아홉 번의 공격 찬스가 남아있습니다! 벌써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 레이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더그아웃 분위기가 엄청나게 좋은 것 같은데, 벌써부터 끝난 게임처럼 생각하면 안됩니다!
1회부터 4점을 벌어들인 레이스의 더그아웃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야! 끝내준다 끝내줘! 홈런 때리니까 관중들 환호성 지르는거 들었어? 나 지금 약 한 것 같은 기분이야!”
“네이트. 네 홈런보다 내 홈런때 훨씬 함성 컸어 이 자식아.”
“내가 관중들 목을 풀게 만들어준거지. 내가 3번에서 홈런 때렸으면 환호성 훨씬 컸을걸?”
티격태격대는 두 사람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선수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올라와 있었다.
“Boys! 이제 공격 이야기는 접어두고 집중해서 수비하고 오는거다! 알겠냐?”
“Yes! Boss!”
선수들이 힘차게 소리지르는 그 순간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방송이 울렸다.
- 지금부터 그라운드의 모든 불이 꺼질 예정이오니 이동하시는 관중 여러분들은 휴대폰을 꺼내서 손전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헤이 댄. 뭐라고 하는거야?”
통역을 위해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더그아웃에 출입하게 된 프레슬리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불이 꺼질테니까 관중보고 휴대폰을 꺼내서 손전등을 켜라는데요?”
“뭐? 예고 정전이야 뭐야?”
선수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예고했던대로 모든 불이 꺼졌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선수단과는 다르게 관중들은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아는 모양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한 번의 환호성이 들린 뒤 전광판에 띄워지는 글자에 맞춰 관중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쿵! 쿵! 짝!
쿵! 쿵! 짝!
쿵! 쿵! 짝!
그리고 어느순간 그 비트가 누군가의 이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진! 성! 찬!
진! 성! 찬!
진! 성! 찬!
관중들의 부름과 함께 진성찬이 나오는 불펜 입구에 스포트라이트가 딱 비췄다. 진성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21 스트리트 파크가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함성소리로 가득찼다.
< 198화 - 부산가오리(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