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97화 (197/268)

< 197화 - 부산가오리(2) >

보통 경기를 할 때는 원정팀 선수들의 소개를 빠르게 넘어가고, 홈 선수들의 소개를 길게길게 하곤했다.

특히나 홈 개막전의 경우 홈 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까지도 하나하나 나와서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특수한 경우.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는 상황. 만약 내년에도 개막 시리즈를 여기서 하더라도 레이스와 애스트로스 선수들이 또 다시 온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양 팀 모두 한국, 그것도 부산의 팬들에게 시간을 들여 인사를 올렸다. 오늘 선발로 출장하는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들이 3루 더그아웃쪽 라인을 따라 일렬로 섰다.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반대로 1루 파울라인을 따라 일렬로 정렬했다.

- 원정팀 레이스부터 소개합니다!

- 우완투수 조나 파인트!

와아아아아!

- 좌완투수 리키 더지!

와아아아아!

레이스의 선수들을 하나하나 소개할때마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그 광경을 더그아웃에서 보고 있던 선수들이 소름이 돋는 듯 팔을 부볐다.

“미쳤다 진짜.”

“한국은 매번 이런거야?”

“메이저리그 팬들이랑 너무 다른데?”

메이저리그였다면 아무리 홈 개막전이라고 해도, 박수를 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열정적인 팬들을 보유한 필리스 정도나 시끌벅적할까?

레이스 팬들도 최근에는 소리를 조금 내주기는 했지만, 해봤자 ‘휘익!’하는 휘파람 소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 있는 팬들은 박수는 기본이고 환호성, 그리고 선수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팬들이 엄청 열정적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찬 말로는 부산 팬들이 유독 더 심하다잖아.”

“못할때는 저 환호성이 전부 욕이라던데?”

“찬은 대체 어떤 환경에서 던져온거야? 멘탈이 안좋을 수가 없겠는데?”

선수들이 하나씩 감상평을 하는 가운데 드레이크가 눈을 반짝이며 더그아웃 문에 기대어있던 다운에게 달려들었다.

“저렇게 열정적인 응원이라니! 단장님! 우리 팬들도 저렇게 시키면 안됩니까?”

“그게 시킨다고 되는건줄 알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린 다운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기획은 해볼게.”

“그거면 됩니다 흐흐! 우리 팬들의 환호성! 그 안에서 플레이하는 나! 상상만해도 흥분되네요 흐흐흐!”

항상 느끼는거지만, 드레이크는 야구장에만 들어오면 관종에 변태가 되는 것 같다.

- 이제부터 오늘 레이스의 선발 멤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 1루수! 더어어억! 흘로첵!

흘로첵! 흘로첵! 흘로첵!

어떻게 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관중들은 정확한 타이밍에 흘로첵의 이름을 연호했다. 처음에는 관중들의 기세에 압도당하는 듯 하던 흘로첵은 이내 미소를 띄우며 환호해주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뛰어나갔다.

“오~ 이제 짬 좀 찼다 이건가?”

“첫 시즌이었으면 분명히 벌벌 떨었을지도 몰라.”

“아니지. 덕이었으면 떠는 대신에 무표정으로 로봇처럼 걸었을걸? 쟤 맨날 긴장하면 그러잖아.”

- 2루수! 제수스으으으! 로드리고!

로드리고! 로드리고! 로드리고!

로드리고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흘로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환호성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감동받았다는듯이 가슴을 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진성찬에게 배운 손가락 하트를 사방으로 날리면서 달려나갔다.

“저거 좋네. 우리도 저렇게 하자.”

선수들이 한 명씩 더 나갈때마다 관중들은 더 큰 환호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드레이크가 나갔을 때, 그 환호성이 극에 달했다.

- 유격수! 네이서어어언! 드레이크!

와아아아아아!

드레이크! 드레이크! 드레이크!

쏟아지는 환호성을 받으며 드레이크가 더 하라는 듯이 귀에 손을 대며 걸어갔다. 그러자 관중들이 정말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성추행범을 잡아냈다는 것이 한국 팬들의 마음까지 끌어당긴 모양이었다.

드레이크 이후에는 환호성이 살짝 작아졌다. 하지만 마지막에 또 다시 그 정도의 환호성이 관중석에서 터져나왔다.

- 지명타자! 배리이이이! 브래넌!

와아아아아아아!

브래넌! 브래넌! 브래넌!

역시 은퇴시즌을 보내는 레이스 최고의 스타답게 글로벌하게 인기가 많았다.

“성찬이도 있었으면 환호성 많이 받았을텐데.”

아쉽게도 진성찬과 비어만은 불펜에서 어깨를 달구는 중이었다. 21 스트리트 파크의 불펜은 팬들이 보이는 곳이 아니라 건물 내에 있었기에 따로 소개는 되지 않았다.

- 이번에는 홈 팀 애스트로스를 소개하겠습니다! 1루수······.

애스트로스 선수들이 하나 둘 호명되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뭔가가 달랐다.

와아아!

바로 환호성의 크기. 분명 쉽게 볼 수 없는 메이저리거인 탓에 환호성은 보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원정팀이었던 레이스에 비해서는 한없이 작은 소리라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애스트로스 친구들 엄청 상처받았겠는데?”

표정이 일그러진 친구들이 몇몇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시호크스는 레이스의 제휴 구단이고, 드레이크는 성추행범을 잡으며 경기 전 이미지가 확 뛰어올랐다. 그 결과 관중석의 98%가 군청색으로 물들어있었고.

애스트로스의 선수들이 찬밥대접을 당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쪽 단장이 일을 안한 탓이지 어쩌겠어요?”

프레슬리가 씨익 웃으며 내민 주먹에 다운이 피식 웃으며 자신의 주먹을 갖다 맞췄다.

“VIP 좌석 놔뒀다고 하니까, 우리는 그쪽으로 이동하자.”

***

다운이 예상했듯이 애스트로스 더그아웃은 그야말로 장례식 분위기였다.

“아니 우리 홈 경기라며! 근데 이 분위기 뭐야? 완전히 레이스 홈이잖아?”

“제휴구단이라서 어쩔 수 없단다. 심지어 홈 이점도 거의 못누려.”

원래라면 홈 선수들을 조금 더 잘 소개해주고, 화려하게 소개한다. 하지만 이번 해외 개막전의 목적은 홈 팀만 주목받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이 주목받는게 목적이었기에 양 측에서 원하는 모든 것들이 허용되었다.

“저쪽 투수 등장때는 더할거다.”

레이스의 선수들에게도 저렇게 환호성을 보냈는데, 자신들의 간판스타였던 진성찬이 올라올때는 얼마나 미쳐 날뛰겠는가?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졌다.

“힘내자. 우리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잖아?”

사인훔치기 파동 당시 애스트로스에 있었던 선수는 오직 두 명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꼬리표는 계속해서 들러붙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뛰지 않았던 선수들에게도 ‘사인 훔치는 팀에서 뛰는 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다른 구단 선수들도 신경전을 할 때마다 “너네도 사인 훔치는거 배운거 아냐? 구단 컬러잖아. 안그래?”라고 했으며, 넷 상에서 팬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그래서 애스트로스는 미닛메이드 파크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도 야유를 받곤 했다. 그래서 선수들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 야유를 침묵으로 바꾸자. 할 수 있다 애스트로스!”

“가자!”

애스트로스 더그아웃이 그런 것 처럼 레이스의 더그아웃 역시 다른 이유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 이 정도의 환호성을 받으면서 경기를 치뤘던 적이 있었나?”

브래넌의 말에 다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No sir!”

“우리가 성적이 좋을때도, 나쁠때도 우리는 언제나 관중석의 빈 자리를 보며 경기를 했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할 때에도 평소 경기와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최근이야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23000명의 팬들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경기에서는 뛰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내가 양키스에서 있었을 때보다도 더 엄청난 응원이다! 이런 팬들 앞에서 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냐?”

“없습니다!”

선수들을 한 번 둘러본 브래넌이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팬들을 등에 업은 메이저리거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자!”

“Yes sir!”

***

- 이제 곧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여기 시호크스의 홈 구장인 21 스트리트 파크에서 시작됩니다!

- 해설위원님이랑 이렇게 새벽이나 아침이 아닌 저녁 시간대에 메이저리그 해설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 하하! 저도 기분이 정말 이상하네요. 그것도 메이저리거들과 같은 구장에서 이렇게 중계를 할 줄이야······.

- 그럼 감상은 접어두고 우선 애스트로스의 수비 라인업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애스트로스 선수들의 이름이 지나갔다.

- 애스트로스의 1선발인 케빈 트로이를 상대할 레이스의 라인업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번 타자 - SS - 네이선 드레이크

2번 타자 - 2B - 제수스 로드리고

3번 타자 - CF - 알렉스 스프라우트

4번 타자 - DH - 배리 브래넌

5번 타자 - C - 사무엘 비어만

6번 타자 - 1B - 덕 흘로첵

7번 타자 - LF - 패트릭 비어스

8번 타자 - 3B - 알버트 서머스

9번 타자 - RF - 케빈 마이어

- 개막전 라인업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늘 레이스의 라인업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해설위원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 특이하죠. 지난 시즌까지, 그리고 이번 시범경기에서도 마이어가 중견수를 맡았고 스프라우트는 우익수를 맡았거든요. 그리고 비어만에게 들어가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비어만은 시범경기에서 줄곧 6번을 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5번을 치던 서머스가 8번으로 내려가고 남은 선수들이 한 단계씩 당겨졌죠.

- 무슨 이유로 그랬을까요? 혹시 컨디션이 좋지 않은건 아닐까요?

-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다면 앤더슨이라던가 시범경기에서 악바리같은 경기력을 보여준 앳킨슨이 들어갔을겁니다. 우드먼도 3루를 충분히 볼 수 있고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 서머스가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건 아마도 서머스가 오늘 애스트로스 선발인 트로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 팀을 대표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한국의 팬들에게 소개는 해야하니까 타순을 낮춘거군요.

-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이거 서머스가 트로이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기대되는군요.

- 개인적으로는 서머스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보다는 트로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더 궁금합니다. 케빈 트로이가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선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막전 선발이라는 중책은 맡아본 적이 없는 선수거든요. 게다가 이건 홈에서 하는 개막전이 아니라 타지에서 하는 개막전이잖아요. 그 압박감이 평소의 개막전보다 배는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드레이크의 타석이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트로이가 드레이크를 잡으면 조금 더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거고, 그게 아니라면 초반에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말씀드리는 순간 트로이의 연습투구가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해설위원님이 주목하셨던 네이선 드레이크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드레이크! 드레이크! 드레이크!

- 이야~ 이거 관중석에 있는 팬들이 드레이크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어요. 드레이크 선수도 고맙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주고는 타석에 들어섭니다.

- 드레이크 선수가 서울에서 치한을 잡았다고하는데 그것 때문에 국내에서도 여성팬들이 상당히 많이 생겼죠.

- 잘생긴 선수에다가 실력도 좋으니 더 인기를 끌고있는 것 같습니다.

- 과연 드레이크의 한국에서의 첫 타석!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플레이 볼!”

심판의 시작소리와 함께 트로이가 이를 악 물고 공을 던졌다.

‘너희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주겠어!’

이런 생각에 힘이 들어가서일까?

트로이가 던진 공은 평소와는 다르게 98마일이라는, 단 한 번도 공식전에서 나온 적 없었던 구속을 뽐내며 들어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한 쪽이 올라가면 내려가는 쪽이 있기 마련이다.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트로이가 던진 98마일짜리 패스트볼은 미트가 있는 곳이 아니라 살짝 가운데로 몰려들어갔다.

그리고 이 공은 우타석에 들어선 드레이크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따아아아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관중석에 있는 98%의 팬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아아아아!”

“크다!”

“설마?”

높이, 그리고 멀리 솟은 공이

텅!

누군가가 뻗은 팝콘 통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관중석이 터져나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 197화 - 부산가오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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