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 부산가오리 >
진성찬이 피해 여성분을 데려온 덕분에 드레이크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무고죄로 곧바로 고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절대로 합의는 하지 마세요. 만약 네이트가 개막전에 나가지 못했더라면 생기는 레이스의 잠재적 손실과, 그로 인해 떨어졌을 네이트의 이미지 손실까지 모두 감안해서 보상을 받아내세요. 참고로 이 모든 고소는······.”
“하나하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변호사와의 이야기를 끝낸 다운은 다시 드레이크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당시에는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에 안들어서······.”
사과를 받았음에도 드레이크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팬들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한 네이선 드레이크가 말이다.
“나였어도 화났을 것 같긴 해. 도와줬는데 진술은 커녕 그냥 줄행랑이라니. 그래놓고 친구들이랑 술마시고 놀고 있었다며?”
“무서웠던 거 잊으려고 술 마셨다는데 믿을수가 있어야지.”
다운은 영어로 속닥거리는 선수들 사이로 들어갔다.
“일도 다 해결됐으니까 다들 들어가서 자자. 내일 또 부산으로 움직여야 돼.”
“부산가면 맛있는 곳 많이 데려갈게. 내가 쏜다.”
“오오오오!”
“찬이 쏜대!”
“찬이 인정하는 맛집이라니! 크~ 기대되는구만!”
분위기를 띄우려는 선수들 사이에 있어서인지 드레이크는 어느덧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찬. 코리안 바베큐도 있겠죠?”
“당연하지! 혹시 한우라고 아냐?”
“소?”
“아냐. 그냥 소랑은 이 느낌이 달라요. 퓔링, 유남쌩? 미국산 소가 프라임이라면 한우는 투쁠이지.”
“뭐라는거야 이 사람이?”
“이 놈들아! 택시나 빨리 타! 여기서 택시 잡기도 힘들다.”
다시금 시끌벅적해진 선수들과 함께 호텔로 돌아온 다운은 글라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리타에게 모든 상황을 전해들은 글라이드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잘 해결됐어요. 성찬이가 피해여성을 다시 찾아서 데려왔거든요.”
[후우······. 다행이네.]
글라이드는 진심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레이스 광팬의 입장에서 드레이크라는 간판스타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 구단주의 입장에서도 초장기계약을 맺은 드레이크의 추락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글라이드는 어떻게든 이 일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놈은?]
“걸 수 있는 모든 죄목을 걸고넘어져서 하나하나 끌고가기로 했습니다.”
[잘했네.]
재판 하나에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형사가 12개월, 행정재판이 20개월 정도다. 이걸 죄목을 나눠서 하나하나 걸어버린다면?
드레이크에게 죄를 떠넘기려고 했던 저 자식은 적어도 3년은 재판에만 불려다녀야 할 것이다. 게다가 변호사 비용까지도 모두 청구할 생각이니 금전적으로도 타격이 크겠지.
[그런 놈은 본때를 보여줘야 돼.]
“맞아요.”
[애들 상태는 어때?]
“다행히 큰 타격은 없어요. 사실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해야하나?”
다운은 모든 일이 해결된 뒤의 친밀하던 선수단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지금까지 성찬이는 야수진들하고는 겉도는 느낌이 조금 있었잖아요?”
[그런 감이 있긴 했지.]
투수들 사이에서의 진성찬은 꽤 잘 녹아들어가 있는 편이었다. 특이한 각도에서 나오는 강속구와, 특유의 그립에서 나오는 각종 변화구들. 강속구 투수들 사이에서 항상 문제가 되곤 하는 제구력 부문과, 큰 경기에서 강한 멘탈까지. 그는 어린 투수들이 배우고 싶은 대부분의 것들을 경험해왔고,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투수였다.
그래서인지 파인트는 진성찬이 투구하는 것을 보자마자 그에게
“확실히 한 리그를 제패하고 온 투수는 다르네. 배울게 많겠어.”
라는 말을 했다.
파인트가 배울게 많다는 말을 했다는 것은 순식간에 투수들 사이에 퍼졌고, 진성찬은 파인트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어린 투수들의 멘토를 담당하게 되었다. 덕분에 영어가 쑥쑥늘었으니 진성찬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을거다.
이렇듯 투수들 사이에서는 꽤 잘 녹아들어가 있는 진성찬이지만, 야수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진성찬과 같은 땅볼유도를 적극적으로 하는 투수들은 내야수들과의 친분도 중요했다.
“그래야지 내 멘탈관리가 돼.”
야수들이 모든 타구를 막아낼 순 없다. 진성찬도 이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한 사람이 어쩌다가 한 번 타구를 놓친 것과, 사이가 서먹서먹하거나 대립하는 사람이 타구를 놓친 것은 투수에게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전자의 경우
“괜찮아! 나중에 네가 홈런 한 방 때려주면 되지.”
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그런 말조차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방금 다이빙했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공 같았는데······. 어제 나랑 말싸움했는데, 혹시 그것 때문에 일부러 그랬나?’
너무 극단적인 예시이긴하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이 투수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하면 제구가 흔들리고, 공이 몰리며, 경기를 내주게 되는 것이었다.
“내야진들의 입장도 이해는 가요.”
어린 선수가 많은 내야진들 입장에서는 분명 공이 좋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는 루키인 진성찬이 자신들보다 많은 돈을 받고, 고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아니꼬왔을 것이다. 심지어는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야구하다가 올걸.’이라는 말도 살짝 돌았다고 했다.
이를 알고있는 진성찬은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다운에게 와서
“내야진들이랑 친해질 자리 좀 만들어줘.”
라며 부탁했다.
레이스의 내야진은 어리고, 비슷한 기간을 팀에서 같이 있었으며, 저들끼리 친분이 상당히 굳건한 그룹이었다. 진성찬이 이런 그룹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운도 그를 드레이크와 붙인 것이었다.
‘눈빛을보고 진의를 의심하긴 했지만 뭐······.’
결국에는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진성찬의 공은 컸다. 그가 내야진의 리더인 드레이크를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것도 내야진이 모두 목격했다.
“이번 일 덕분에 내야진들도 성찬이랑 조금 더 가까워졌죠. 분명 이는 장기적으로 팀에 큰 도움이 될겁니다.”
[투수는 뒤를 믿을 수 있을때 더 좋은 공을 던지는 법이지.]
“그리고 또 하나 노리는게 있죠.”
다운은 폰에 저장해놨던 수많은 명함들 중 하나를 골랐다.
“이번일로 네이트의 이미지는 끝장나게 올라갈겁니다.”
***
다음날부터 한국의 수많은 뉴스 사이트들에 우후죽순처럼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치한을 잡아낸 외국인, 알고보니 메이저리거?
- 드레이크 “레이디에게 막대하는 남자를 보고 별다른 생각하지 않고 움직였다.”
- 레이스 팬이 꼽은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 1위에 오른 선수. 실생활도 똑같았다.
- 외국인에게 도움받고 자리를 피한 사람과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사람. 한국인의 시민의식 이대로 괜찮은가?
마지막에 뭔가 심오한 주제가 올라오긴 했지만, 지난 이틀동안 올라온 대부분은 치한을 잡아낸 드레이크에게 호의적인 기사들이었다.
덕분에 드레이크는 한우를 먹으러 갔던 그 식당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팬서비스를 해주고 나왔다고 한다.
“순조롭게 올라오고 있네요. 탬파는 어때요?”
[이쪽에서도 계속해서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아직 밤이라 확산이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다른 지역 쪽에서도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심슨의 말에 다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국에서는요?”
[사무국에서도 해가 밝으면 곧바로 기사를 띄워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운이 이번 기사로 노렸던 것은 한국에서의 인지도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은 미국 내에서의 인지도였다.
- 곤경에 빠진 여자를 구한 메이저리거.
이 얼마나 홍보하기도 좋고, 써먹기 좋은 소재란 말인가. 특히나 최근 몇 년간 메이저리거들의 성폭행 논란이라던가 포르노 논란이 10번 이상 터졌기 때문에(그 중 하나는 파인트였다) 더더욱 큰 이미지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무국에서도 그런 효과를 생각하고 곧바로 움직이기로 했을거다.
“우리도 나쁠건 없고.”
만약 드레이크가 장기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이미지 상승효과는 추후 레이스가 계약 연장을 협상할 때 암초로 가다왔을거다. 하지만 이미 연장계약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드레이크의 이미지 상승효과는 곧 레이스의 이미지와 매출이 상승하는데 도움만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 바닥은 이미지 장사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심슨은 그 장사를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어떻게하면 더 잘 써먹을 수 있을지 고민해놓겠습니다.]
“이왕이면 전국구 스타까지 올려보자고요.”
[발판은 마련할 수 있겠네요. 그럼 개막전 화이팅 하십쇼 단장님!]
심슨과의 전화를 끊은 다운은 선수들이 출전을 앞두고 있는 라커룸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까 팬서비스 할때 엄청 귀여운 애 있던데.”
“아서라 아서! 한국인이랑 연애하려고? 그런 일까지 당해놓고?”
“그게 아니라 귀여운 아기가 있었다고. 그 조막만한 손으로 공들고와서 ‘사인 플리즈!’라고 하는데······. 잠깐 근데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한거야?”
“네이트는 네가 아니라고 제수스.”
내야진은 오늘도 활기찼고
“오늘 보니까 구장 잔디 상태가 평소 내가 뛰던 때라는 많이 다르더라. 단장님이 바꿨다더니······.”
“그거 우리 새 구장 잔디랑 같게 바꾼거래. 오늘 여기 이 느낌을 기억해놓으면 나중에 찬이 선발등판할때도 도움이 될거야.”
“우리 구장도 저렇게 내야 상태가 좋은거야? 그러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땅으로 굴려도 되겠는데? 난 사실 오늘 땅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띄우는게 낫지 않을까 했거든.”
“그럴 필요 전혀 없어. 우리 내야만 믿고 던져 재키 찬.”
“그놈의 재키 찬은······. 언젠가는 재키 찬보다 내가 더 유명한 찬이 되어있을거거든?”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선발 포수면 선발 투수 자신감 좀 올려줘야 하는거 아냐 샘?”
“분.명.너.라.면.할.수.있.을.거.야.”
“······ 그게 더 기분 나쁜데?”
배터리는 평소처럼 사이가 좋다.
“배리 오늘 홈런 하나 칠 수 있겠어요?”
“한국 팬들한테 홈런볼 몇 개 주고 갈거라고 선언했잖아요.”
“아······. 너희가 그 말만 안했어도 오늘 치는건데. 하······. 이거 어쩔 수 없구만. 나를 대신해서 패트릭이랑 알렉스 너희가 하나씩만 치고 와. 알겠지?”
“아니 왜 갑자기 저희한테 할 일을 떠넘기시는거에요?”
“그야 너희가 부담을 줘서 내 심장에도 부담이 갔고, 오늘 홈런을 못 칠 것 같으니까 하는소리지! 너희만 아니었으면 그냥 홈런 쳤어!”
“하 정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외야진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타지에서 개막전을 한다는 긴장감 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경기장의 98%이상을 레이스의 군청색 유니폼이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까 팬서비스를 하러 나갔을 때 울려퍼지던 바로 그 소리.
- 레이스! 레이스! 레이스!
경기장 가득한 관중들이 애스트로스가 아닌 레이스만을 외쳐주는 상황. 아직까지 새 경기장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그곳보다 덜 하지는 않을 것 같은 이 엄청난 팬들의 열기에 힘을 받지 않을 메이저리거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경기 시작 10분 전입니다!”
스태프의 말과 함께 떠들썩하던 라커룸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선수들의 고개가 구석에 서있던 다운에게로 집중되었다.
“긴 말 안한다. 지금 여기 부산이 누구것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와라!”
“Go! Rays! Go!”
< 196화 - 부산가오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