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잘했어 짜식아! >
“후우······.”
연락을 받기도 전인데 머리가 아프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서초파출소에서 연락이 온건지 짐작조차 안간다.
다운은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일이 있는 줄 모르는 상황에서 레이스 단장이라고 밝히는 것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운은 가장 무난한 반응을 선택했다.
“여보세요?”
[아 네. 서초파출소 순경 이철호입니다. 혹시 탬파베이 레이스 단장 정다운님 맞으신가요?]
“맞습니다.”
이미 자신의 직책을 알고 있는걸로 보아하니 이제는 그냥 말을 해도 될 것 같다.
“근데 경찰서에서 무슨 일로······. 혹시 우리 애들이 사고라도 쳤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성추행을 했다는 신고를 받고 들어와서······.]
순경의 말에 옆에서 구수한 사투리가 터져나왔다.
[아니 이 보소! 성추행 같은거 안했다니까? 네이트는 저 자식이 성추행 하던걸 막은거라니까? cctv 봤잖아!]
[봤죠. 봤는데 다른 사람에게 가려서 보이질 않아요. 그리고 중요한건 여자분이 없잖습니까!]
골치아픈 일에 휘말렸다.
“하······. 제가 가겠습니다.”
[빨리 좀 와주세요. 다들 흥분하셔가지고 사실 조금 무섭거든요.]
전화를 끊은 다운에게 파인트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 있대?”
“강남쪽에 일 터졌대. 네이트가 성추행범으로 몰렸나봐.”
“네이트가? 말도 안돼. 그 자식이 얼마나 여자들 앞에서 젠틀하려고 노력하는데. 거기다가 나름 순애파잖아.”
“거기다가 엄청난 팔불출 공처가지.”
드레이크는 약혼자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첫사랑이라나 뭐라나. 지금은 약혼녀가 대학생활을 하고 있기에 결혼을 미루고 있지만, 대학생활이 끝나는 1년 뒤에는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라고 했다.
“크리스티나였나 이름이?”
“맞아. 걔가 다른 여자랑 말하는것도 싫어해서 엄청 거리두는 편이잖아.”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레이크는 여자 팬들에게 인기가 많으면서도 사진을 찍을때도, 사인을 해줄때도
“아하하! 약혼녀가 싫어해서 죄송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찍을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며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그래서 구장에 자주 오는 레이스 팬들 사이에서는 ‘여자라면 드레이크에게 팬 서비스를 받을때 거리를 둬라.’라고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걸 저 사람들은 모른다는거지. 네이트의 의도도 그게 아니었고. 상황을 확실히는 모르지만, 성추행 당하는 놈을 막았는데, 되려 성추행으로 신고를 당한 모양이야. 일단 애들 데리고 조용히 들어가. 최대한 다른 사람 건들지 말고. 누가 넘어져도 무시하고 넘어가.”
한강변에서 벗어난 다운은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리타. 변호사가 혹시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네이트 에이전트에 연락해서 수배해줘.”
[알겠습니다.]
파출소에 들어가자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있는 선수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단장님!”
“네이트는?”
“저 쪽 방에요.”
진성찬이 가리킨 곳을 흘끗 본 다운이 다시 눈을 돌렸다.
“성찬아. 너는 애들 데리고 들어가 있어라.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저희 진술이라던가 목격 같은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진술 다 했잖아. 근데 너희도 정확한건 모른다며. 거기다 이미 시간이 열한시야. 슬슬 자야지 컨디션 맞출 수 있어. 심지어 넌 개막전 선발이잖아. 술 많이 마셨어?”
“아뇨. 그냥 맥주 500짜리 한잔씩 마시면서 이야기했죠. 그리고 2차 가려는데 일 터진거에요.”
“그래도 술은 들어갔네. 술 들어간 상황에서 흥분하면 사고날수도 있어. 그러니 일단 들어가.”
구구절절 옳은 말에 진성찬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해결하고 오이소.”
“노력해봐야지.”
드레이크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모두 자리를 떴다. 흥분한 선수들을 모두 돌려보낸 다운은 그제서야 드레이크 옆으로 다가갔다.
“정다운씨?”
“네. 네이트는 어디있죠?”
“이쪽으로 오시죠.”
순경은 다운을 안내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양 측 의견이 엇갈려서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는 상황이라 서로 다른 방에 넣어뒀습니다. 구금 뭐 이런건 아니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운은 대답 대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괜찮아?”
“네.”
드레이크도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여자분을 성추행하던 놈을 막았을 뿐인데, 제가 되려 성추행 신고를 당할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아! 세드릭 고별파티 하려다가 이게 무슨 일이야! 다들 분위기 엉망이었죠?”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었어. 그저 화가 나있었을 뿐이지. 그리고 누구라도 그 상황이었으면 화가 났을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드레이크의 어깨를 두드려준 다운이 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상황을 볼 수 있을까요? 아까 들어보니 cctv영상이 있는 것 같은데.”
“바로 틀어드리겠습니다.”
영상에서는 소리따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붐비는 술집인데 소리가 들린다해도 쓸모없었겠지만.
영상 내용은 간단했다.
드레이크가 어떤 남자에게 다가가 뭔가 말했고 그리고 그 남자가 드레이크의 손을 탁 치는 모습만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여자분은 빠져나가셨네요.”
“흔히들 있는 일이죠.”
저 여자가 진술만 해준다면 모든것이 해결되는데 말이다. 상대 남자도 여자가 튀었다는걸 보고는 곧바로 ‘성추행을 한 건 내가 아니라 이 놈이다!’를 시전한 모양이다.
“정다운씨가 오는 동안에 저쪽에서 합의를 요구했었습니다.”
분명 메이저리거라는걸 검색해서 확인한 뒤 돈을 뜯어내겠다는 생각을 했을거다. 다운은 그런 개수작에 넘어가줄 생각이 없었다.
“합의 안한다고 전해주세요.”
***
다운이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경찰서를 나온 진성찬과 선수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까 cctv에서 본 그 여자 있잖아. 내가 본 것 같거든?”
서머스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 말하지 그랬어?”
“아니 거기가 워낙에 어두웠잖아. 그런데 저 옷을 보니까 기억난거야. 바로 저 옷을 입은 여자가 내가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여자들한테 뛰어왔었어. 그리고 나서 너희 일터져서 곧바로 달려간거고.”
“그러면 일행이 있다는거잖아? 또 기억나는거 없어?”
“음······. 걔들 중 한 명 생일파티라고 했어. 그리고 무슨 이별파티? 그런것도 겸한다던데······. 아! 룸! 룸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서머스의 말에 진성찬이 눈을 빛냈다.
“그렇다는건 룸을 잡고 놀고 있었다는건데······. 파티라면······. 몇 살 정도로 보였지?”
“몰라 동양인 나이 어려워.”
“하긴······. 보통 파티라면 생일파티나 무슨 기념 파티를 말했을텐데. 잠깐.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강남에 있는 클럽에서 룸은 비싸다. 무슨 파티인지는 모르지만, 파티를 위해 룸을 빌렸다는건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였다. 사건이 터진지 30분 정도가 지난 이 시점.
드레이크가 나서기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저항도 못했던걸로 봐서 소심한 성격의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주로 나서서 클럽같은델 가자고 하는 스타일도 아니지. 그 여자애들이랑 분위기는 어땠어?”
“엄청 좋았지. 일만 안터졌으면 걔네 그룹 다 데리고와서 같이 놀았을수도 있어. 영어도 적당히 할 줄 알고, 딱 한 시간만 있다가 들어가야하니까 부담갖지 말고 놀자고 했었거든.”
보통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나 눈치를 많이 보곤한다. 거기다가 생일 파티와 친구의 이별파티라고 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빠져나가기는 힘들다. 아마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남아있던 친구들의 눈치를 봤을게 분명했다.
“그럼 아직까지 그 여자애들 그룹이 방에 남아있지 않을까?”
합리적인 추론을 끝낸 진성찬이 서머스를 잡았다.
“너희는 먼저 택시타고 호텔에 가있어.”
“찬 너는?”
“난 알버트랑 같이 그 여자들 좀 찾아봐야겠어. 내가 생각해봤을 때, 아직까지 그 클럽에 남아있을것 같거든. 그 여자만 찾으면 네이트는 프리잖아.”
“헤이 찬. 너랑 알버트가 그렇게 돌아다니는데 지금 우리보고 호텔에 가서 발 닦고 자라는거야? 우리는 형제나 다름없다고!”
“맞아. 너만 네이트한테 빚을 지우는걸 보고있을수는 없지! 가면 같이 간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선수들이 물러서지 않을 것 같자 진성찬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바로 따라와!”
다행히 그들이 있던 클럽은 여기서 걸어서 5분 거리다. 진성찬과 선수들이 뛰기 시작하자 3분도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cctv에서 본 얼굴 기억하지? 여기 있다가 그분들이 나가는 걸 보면 웃으면서 잡고있는거야 알겠지?”
“우리가 들어가서 찾는게 아니라?”
“너희가 저기 들어가서 사람을 찾는것보다 내 지인을 통해서 찾는게 훨씬 효율적이고 빨라. 너희 팬서비스도 돌아가면서 해라.”
선수들을 앞에 포진시켜둔 진성찬은 서머스와 함께 문지기에게 다가갔다.
“찬우야.”
“형님. 아까 가셨던 일은······.”
“아까 도망가셨던 여성분이 룸 잡고있을 확률이 높아서 그런데 잠깐만 확인할 수 있을까?”
“바로 현석이형 부를게요. 아아! 현석이형님! 진성찬 형님이 찾으십니다!”
[곧바로 갈게. 내려보내줘.]
진성찬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제발 있어라. 제발!”
***
파출소 안, 다운과 드레이크는 저쪽 방을 다녀온 변호사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쪽에서 하는 말은 똑같습니다. 3억만 주면 못본척 합의해준다는군요.”
“미쳤답니까?”
“저도 똑같이 말해줬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이 성추행했다는 증거가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저쪽에서도 드레이크가 성추행을 했다는 증거는 없거든요. 그래서 무혐의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는 말은 했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이트는 개막전은 물론이고 이번 시리즈 자체를 못뛰게 되겠죠. 그것 뿐만이 아니라, 한국 팬들에게 드레이크는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가 무혐의를 받은 사람이 될테고요.”
“절대 안되요! 그렇게 되면 티나가 절······. 아, 안돼!”
“아, 약혼녀가 있거든요. 성추행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파혼을 당할수도 있을겁니다. 아마 네이트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삶이 망가지겠죠. 그리고 저희는 절대 그 꼴은 못봅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그 여성분이 와서 증언을 해주신다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무혐의는 가능하지만, 누명을 벗는건 불가능합······.”
그리고 그때 그들이 있는 방문이 벌컥 열렸다.
쾅!
“행님!”
진성찬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아니, 너······.”
‘호텔에 들어가라니까 왜 여기 있는거야!’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자분이 나타났다. 어딜봐도 아까 cctv에서 봤던 바로 그 여자분이었다.
“······인마! 잘했어 짜식아!”
< 195화 - 잘했어 짜식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