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경찰서에서 온 전화 >
다운의 앞에서 눈물을 훔쳤던 우드먼과는 다르게 슈어홀츠의 반응은 덤덤했다.
“단장님이 저한테 기회를 많이 주셨다는거 압니다. 하지만 프로라는게 결국 돈 아니겠습니까? 저는 재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고, 레이스는 저한테 일정 금액 이상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거 들었습니다.”
“맞아. 우리는 너한테 연 500만 달러 이상 투자할 생각이 없어. 하지만 내츠의 생각은 다를수도 있어.”
“똑같더라도 달라지게 만들겁니다. 내츠에는 고액연봉자가 많이 없으니 저한테 충분히 투자할 여력이 있으니까요.”
“성공하길 빌게.”
맥그리프의 반응은 또 슈어홀츠와는 달랐다.
“내츠에 가면 선발 기회가 있겠죠?”
“무조건 있을거야. 너도 내츠 선발진을 알잖아. 이건 너한테 기회야.”
“그럼 단장님. 마지막으로 떠나는 저한테 주실 조언같은건 없나요?”
“어······. 뭐 있기는 한데······.”
“그럼 가르쳐주세요! 잠시만요 녹음기 좀 켜도 되죠?”
맥그리프는 떠나기 전에 뭐라도 하나 더 얻어가지고 가려했다.
세 선수와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에는 이미 식사시간을 30분이나 지난 뒤였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괜히 식사에 늦어졌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녁에 나가서 더 먹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래도 밥은 거르면 안돼.”
다운이 생각했을 때, 밤에 나가는 선수들 치고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두 시간동안 레스토랑 전세를 냈지.’
지금이야 팬 문화가 많이 성숙했다고는 하지만, 메이저리거들. 그것도 한국에서 결코 자주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염치불구하고 달려들어 식사를 못하게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댄이 우리 두 명 식사는 30분 늦춰놨다고 했으니까 지금 올라가면 알맞을거야. 그러니 절대 굶지 말고 먹어. 알겠지? 무조건 먹어야한다. 엄청 맛있어 여기.”
“하하! 알겠어요.”
맥그리프와 함께 식당에 들어가자 선수단이 흥분해서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두 사람을 반겼다.
“세드릭! 세드릭!”
“홀츠! 홀츠!”
떠들어대는 선수들 사이로 파고들어보니 우드먼과 슈어홀츠가 손을 맞잡고는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다운은 프레슬리를 슬쩍 빼왔다.
“뭐하는거야 쟤네?”
“팔씨름이죠. 지금 1대 1이에요.”
“안 말리고 뭐했어? 레스토랑 직원들이 뭐라고 안해?”
프레슬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대신해 한 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레스토랑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비싼 레스토랑답게 아주 각을 잘 맞춰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누가 이길 것 같냐?”
“나는 우드먼.”
“에이 우드먼은 어깨 약하잖아. 그래도 투수진의 악력이라던가 팔이 더 강하지.”
“그런가?”
“야! 너네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컴플레인 들어오면 어떡할거야!”
“괜찮아 괜찮아. 다 외국인이잖아. 한국말 모를거야. 적당히 하자고 지훈아. 손님들 접시는 다 확인했지?”
“예 솊!”
“저거 끝나면 곧바로 디저트 나가자. 그리고 미뤄놨던 두 분 요리는 이제부터 나갈거니까 그거 서빙 준비하고.”
“예 솊!”
아마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는 모양인데, 미안하자미나 다운과 프레슬리는 다 알아듣고 있었다. 진성찬도 저어기서 입을 가리고 웃고있는걸 보면 저들의 대화를 들은게 틀림없었다.
“모르는 척 해주자.”
“그래도 조금은 눈치를 주는게 낫지 않을까요? 손님들이 한국어를 모를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건 너무 안일한 것 같은데요.”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잖아. 봐주잔고. 저거 시작 배리가 한거지?”
“뭐 분위기를 보아하니 시작 자체는 베테랑들이 한 것 같긴한데, 불붙인건 네이트랑 리키에요.”
트레이드는 결국 몇 년간 함께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다. 일 년에 가족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동료와 말이다.
자칫하면 침울해질지도 몰랐던 식사 분위기가 베테랑들 덕에 한껏 끌어올려졌다.
“으하하하!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가서도 잘하지! 우리 야수진이 이정도라고!”
“어이 에릭. 이번 시리즈에 등판 안하는걸로 결정났다고해서 편하게 놀다 갈 생각인가본데, 남은 기간동안에 러닝만 실컷하고 가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내츠에 있는 내 친구한테 연락해서 거기 생활 힘들게 만들어줘?”
“에헤이 조나! 그렇게 협박하면 안되지! 이건 순전히 실력적인 문제라고 실력! 우리 세드릭 실력이 에릭을 압도하······. 어? 어?”
쿵!
“그렇지 에릭! 에릭 네가 최고다!”
“제에에엔장! 내 밀 머니가!”
아무래도 정정해야할 것 같다.
“······ 식당 직원 중에 영어 능통한 사람 없겠지?”
“표정들을 보아하니 못알아들은 것 같네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유시간이 있을 예정이었다. 선수들은 일사불란하게 네 개의 파티로 나눠졌다.
“우리는 강남으로 간다! 세드릭 환송 파티해야지!”
드레이크를 포함해서 내야진 7명은 강남으로
“강남은 무슨! 이태원이 그렇게 놀기 좋다더라! 이태원 스캔들도 못봤냐? 나랑 같이 가면 한국을 다 경험할 수 있어! 내가 다 짜왔다니까?”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먼저 접한듯한 비어스를 포함한 10명은 이태원으로
“이미 많이 놀고 먹었잖아. 오늘 훈련 하나도 못했는데 그대로 있을거냐? 그러니 너희가 1선발까지 못올라오는거다. 조금이라도 실력을 늘리고 싶은 놈은 날 따라와라. 우리는 한강을 뛴다.”
훈련을 못해서 몸이 근질근질한 파인트를 포함한 투수진 5명은 한강으로
“난 쉴란다. 오늘 너무 많이 움직였어. 술이라도 마실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안되잖아. 그냥 남아있는 놈들이랑 적당히 대화하면서 쉬어야겠어.”
브래넌을 포함한 남은 사람들은 휴식을 택했다.
“다들 알겠지만, 술은 적당히 마셔라. 주정부리다가 난동으로 잡혀가면 안된다. 특히나 앞서 스프링 트레이닝때 교육했듯이 한국 같은 경우에는 정당방위의 폭이 굉장히 좁아. 그러니 누가 시비를 걸어와도 무시해. 그리고 언제나 여자는 조심하고. 알겠냐 이놈들아! 특히 너희 두 그룹!”
다운은 강남과 이태원 그룹을 가리켰다.
“너희는 진짜 사고치지 마라. 응?”
“술! 여자! 조심하겠습니다!”
거기에다가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라는 말까지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선수들도 다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인데다가, 오늘 하루 내내 돌아다닌 선수들이 늦게까지 돌아다닐 힘은 없을 것 같았기에 굳이 뒷 말은 붙이지 않았다.
“자 그럼 누가 어디에 갈지를 정해야하는데······.”
한국어가 가능해서 선수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운, 진성찬, 프레슬리까지 총 세 명이었다.
‘통역이 없는건 아니지만······.’
통역은 선수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들이 문제라도 일으켰을 때 수습도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 사회에 익숙한 진성찬이나, 다운이나 프레슬리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어야한다는 말이다.
“일단 숙소는 통역으로 충분하니까 통역을 쓰도록 해. 그리고 나머지 세 곳에서 나눠가도록 하자. 성찬이나 댄,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
다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성찬의 손이 올라왔다.
“행님! 저는 강남으로 가겠심다! 제가 애들이 원하는 물 좋은 곳이라던가, 아니믄 조용하게 놀 수 있는 곳이라든가 다 알고 있그든요. 아 와 그래 봅니까?”
“애도 있는 애가 그런델 안다고?”
“다 소싯적에 놀았던 곳이지예. 그리고 지금도 후배놈들이나 동기 놈들한테 연락하면 어디서 놀 수 있는지 다 정보 얻을 수 있어요. 저만 믿어주이소! 제가 이래뵈도 놀러다니면서 문제 한 번도 일으킨 적 없었던 놈 아니겠습니까?”
저 기대감에 빛나는 유부남의 눈을 봐라.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다.
“그, 그래. 성찬아 그럼 네가 강남가서 애들 잘 살펴줘라.”
“렛츠 고 마이 프렌즈! 저스트 팔로우 미!”
“고! 고!”
강남 팀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남은건 이태원 팀과 한강 팀.
다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람은 한강과 이태원 모두 많을거야. 하지만 이태원은 사람이 너무 많아. 게다가 대부분은 취한 사람들일거고. 그에 비해서 한강은 조금 더 널널하겠지. 지금 시간이라면 운동하는 사람도 많을거고, 취하더라도 맥주 한두캔 정도? 아니지. 아직은 조금 추우니까 맥주 마시는 사람보다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다.’
뭐 어차피 둘 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태원처럼 취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둘러싸이는 것과, 한강처럼 맨정신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둘러싸이는 것은 심적인 피로도 차이가 천지차이다.
“단장님 저는 그럼 한강으로······.”
다운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을 마주친 프레슬리가 잽싸게 한강을 고르려고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레이스에서 프레슬리는 절대적인 을의 위치에 있었다.
“그럼 댄 너는 이태원으로 가도록 해.”
“네?”
“저번에 이태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아니, 이태원 저번에 가봤는데······.”
“그럼 더 잘 안내할 수 있겠네. 나는 이태원을 안가봐서 너보다 안내하기 힘들 것 같거든. 부탁한다 댄.”
프레슬리가 울상을 지었지만, 다운의 마음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자! 그럼 이태원 팀도 출발해!”
“갑시다 댄!”
“단장니이이이임!”
비어스와 스프라우트가 울부짖는 프레슬리의 양팔을 잡고는 사라졌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 다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10분 뒤에 로비에서 보자.”
“네!”
잠시 후 다운에 이어 조나 파인트, 찰리 제프리스, 알렉스 알마다, 알렉스 윌슨, 로렌 앳킨슨이 차례로 내려왔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다보니 다들 후드가 달린 저지를 입고 나왔다.
“나이스 초이스.”
알아볼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한결 편해질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다.
“간다!”
파인트가 윌슨과 함께 스타트를 끊었다. 알마다와 앳킨슨이 헐레벌떡 뛰어가며 그들과 대열을 맞췄다.
“어? 너무 빠르신 것 같은데요? 단장님 페이스에 맞춰주시는······.”
알마다의 말에 파인트가 피식 웃었다.
“단장님을 걱정한다고? 너나 걱정해.”
잊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운은 선수출신이다. 그리고 산더미같은 업무에도 선수들이 출근해서 운동하는 시간에는 꼭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 시작은 선수들과 운동을 하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루틴처럼 되어서 매일 두 시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경지까지 올라왔다. 대학 선수 생활, 양키스 단장, 회사를 거쳐, 레이스에 오기까지 근 10년 가까이 그러다보니 다운의 체력은 어지간한 선수들 못지 않았다.
후드를 쓰고 있는데다가, 아직까지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한강변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예상했던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달려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다운은 편하게 선수들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잠깐 쉬자! 저기서 물 사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저는 게토레이요.”
“게토레이는 무슨. 코카콜라랑 계약했으면 파워에이드 먹어야지.”
편의점에서 물과 음료를 사온 다운이 하나씩 선수들에게 던졌다.
“아니 단장님 왜 이렇게 잘 뛰세요?”
“그야 매일 뛰었으니까.”
“넌 좀 노력해야겠다 알.”
“단장님한테도 체력으로 밀려서야 되겠어?”
알마다가 파인트와 윌슨에게 구박받고 있는 사이 다운은 옆에 있던 앳킨슨에게 고개를 돌렸다.
“로렌 넌 여기 말고 내야진들 모이는데 가는게 낫지 않았을까?”
“괜찮아요. 오늘은 세드릭 고별이니까 함께 얼마 있지 않았던 제가 끼는 것 보다는 오래 함께했던 선수들이 노는게 나을거에요. 그리고 저는 아직 보여준게 없잖아요. 후보라도 나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면 술보다는 땀을 빼는게 더 필요할겁니다.”
듣던대로 앳킨슨은 평소에도 매우 진중하고 배려심 깊은 성격이었다.
“찰리. 넌 우리 팀 어때?”
“아주 마음에 들어요.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 선수단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요.”
“다행이네.”
선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다운의 폰이 울렸다.
우웅
“잠깐만.”
지금 이 시간에 전화라니. 불길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프레슬리와 진성찬 두 사람의 번호는 아니었다.
발신자 - 서초파출소
“Fuck.”
< 194화 - 경찰서에서 온 전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