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떠나는 이를 위한 선물 >
“트레이드 제안서 넘어왔나요?”
[네. 마르코 루이스를 받고 에릭 슈어홀츠, 세드릭 우드먼, 비니 맥그리프, 프란시스 에스코바까지 네 명을 넘기는 조건입니다. 다섯 명이 다섯 번 확인했습니다.]
“거스. 트레이드일 전에 에스코바 스케줄이 어떻게 되죠?”
평소라면 곧바로 트레이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의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전세계에 흩어져있었다. 지금 당장 트레이드한다고해서 마르코 루이스가 한국으로 달려와서 개막 시리즈를 뛰는건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시차적응도 제대로 못한 루이스보다는 적응을 마친 앤더슨이 훨씬 더 강력한 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이드 발표는 당장 하더라도 상관없지만 시행일 자체는 각 구단이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인 4월 3일 이후로 시행될 예정이었다.
[개막전에 유격수로 선발출장할 예정이었습니다.]
역시 성격적으로 다루기 힘든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잠재된 실력만큼은 지도자들조차 지나치기 힘든 모양이다.
[캔슬시킬까요?]
“네. 내츠 쪽에서는 곧바로 올려서 써볼 생각도 있는 것 같더군요. 트레이드 될 예정이라는걸 알려주고 선발명단에서 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그 빈 자리에 한 명 올려도 되겠습니까?]
“누굴 올리려고요?”
[메이슨을 한 번 올려보려고 합니다.]
레이스에 당장에 쓸만한 외야수가 없다는것은 곧 즉시전력으로 끌어다 쓸 수 있는 트리플 A에도 괜찮은 외야수가 없다는걸 뜻했다. 그리고 스탠하우스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발전하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선수였다. 그 정도의 성장세를 보이는 선수라면 트리플 A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메이슨에게 한 번 기회를 줘보는걸로 하죠. 곧바로 짐싸서 이동하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투수들이 빠진 자리는 어떻게 메우실 생각입니까?]
“알렉스하고 너클즈를 올릴 생각입니다.”
알렉스 알마다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예비스쿼드로 선수단과 동행 중이었다. 하지만 너클즈는 트리플 A에서 이번 시즌을 시작했다.
[한스가 울겠네요.]
한스는 트리플 A의 감독. 순식간에 주전 유격수와 선발 하나를 빼앗긴 상황이니 눈물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상황은 아닐거다.
“거스가 좋은 선수 올려서 좀 달래주세요. 부탁할게요.”
거스와의 통화를 종료한 다운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후우······. 이제 남은건 애들 불러서 말하는 것 뿐인가.”
시계를 보니 이제 두 시다. 아직 선수단이 올 예정시간까지는 다섯 시간이 남아있었다.
“일단은 애들한테 줄 걸 좀 마련하고······.”
떠나는 선수들을 위한 선물까지 준비하자 두 시간 정도가 남았다.
“후우~ 이제 잠깐만 눈 좀 붙일······.”
침대에 눕는 것과 동시에
“단장님! 단장님! 일어나셔야합니다!”
프레슬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빌어먹을······. 댄! 어떻게 네가 여기 있는거야? 너 지금 선수단이랑 있어야하는거 아냐?”
다운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침대에 몸을 던질때와는 다르게 암막커튼 사이로 비치던 햇빛은 보이질 않았고, 프레슬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명석한 다운의 뇌가 순간적으로 풀 가동했다.
‘해는 떨어졌고, 내 셔츠는 아까와는 다르게 주름이 졌다. 그 말은 곧 지금이 일곱시가 넘어간다는것!’
프레슬리는 자신의 업무를 다하고 자신에게 왔다는 말이었다.
모든 상황이 이해되자 다운은 미안한 표정으로 프레슬리에게 말했다.
“미안. 잠깐 잔다는게 너무 푹잤나보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을 줄이야.”
괜히 화를 내거나 얼머부리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증권회사에 있을 때 당해본 바로는 상당히 기분이 드럽다. 그래서 다운은 그 대신 곧바로 사과하는 것을 택했다. 다행히 프레슬리 역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비행기에서도 안주무시더니 피곤하셨나보네요. 어쩐지 전화도 안받으시더라고요.”
“전화도 했었어?”
폰을 보니 리타에게서 다섯 통, 프레슬리에게서 열 통의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선수들은?”
“완전 녹초가 됐어요. 씻고 레스토랑에 늦지 않게 오라고 말해놨습니다.”
“잘했어.”
다운의 칭찬에 프레슬리가 건조한 어투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난 뒤 눈을 반짝이며 방금과는 완전히 상반된 목소리로 다운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물었다.
“딜은 어떻게 됐습니까? 루이스 온답니까?”
프레슬리 역시 야구광이다. 그러다보니 마르코 루이스가 이 팀에 합류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다운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4월 3일에 우리 팀에 합류할거야.”
“와! 와! 와! 마르코 루이스가 우리 팀에! 그러면 최강 외야진 탄생하는거 아닙니까? 아,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비어스의 무게감이 조금 떨어지나? 아니지 스프라우트도 사실상 이번 시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첫 번째 시즌이니까······.”
다운은 셔츠를 벗어던지고 한층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잔뜩 흥분해서 중얼거리고 있는 프레슬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댄. 그만 중얼거리고 이리 와. 루이스가 오는것에 흥분한 것 까지는 좋은데, 우리 선수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야지.”
선수들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는 말에 프레슬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
다운이 항상 선수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전에 개개인을 불러서 트레이드 소식을 전해준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드릭부터 가자. 비니하고 에릭에게는 방에서 대기하고 있어달라고 전해줘.”
“네.”
선수단은 각각 1인 1실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다운이 그들에게 트레이드 소식을 조용히 건네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안에서 우드먼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운이야. 잠깐 시간 될까 세드릭?”
잠시 후 우드먼이 문을 열었다. 그는 다운이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온건지를 알고있는 눈치였다.
‘하긴 선수 본인이 이런데에는 가장 민감할테니까.’
특히나 자신의 자리에 확고한 주전선수가 들어와버린 우드먼은 더더욱 자신이 트레이드 될 것이라고 느꼈을 가능성이 컸다.
우드먼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덤덤하게 물었다.
“언제 가죠?”
다운도 그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며 앉았다.
“4월 3일.”
“어느 팀으로 가게 되는겁니까?”
“내츠. 루이스랑 트레이드 될 예정이야.”
“레이스는 강해지겠네요. 같이갈 친구들은 누구죠?”
“에릭이랑 비니.”
“젠장할! 투수들만 같이 가네!”
강하게 말하는 우드먼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혀있었다.
“섿······.”
다운은 검지를 입에 대고 뭔가를 말하려는 프레슬리를 막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크흡! 단장님! 저, 저도 샘처럼 되고 싶 크흡! 었어요!”
사무엘 비어만
우드먼의 트레이드 동기이자 레이스 내부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의 사내놈들이 멀리 떠나와서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서로밖에는 없었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날 트레이드 되어서 같이 성공해서 같이 남았다면 굉장히 즐거운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 명은 레이스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주목받는 특급 포수가 되어가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유격수에서 2루수로. 또 주전 2루수에서 백업 2루수가 되어버렸다. 그러는 동안에 장점이던 타격은 성장을 멈췄고, 지금에 있어서는 그저그런 타격을 가진 2루수가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비어만에게 질투나 부러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넌 열심히 잘해줬어. 다만 우리가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뿐이야.”
다정한 다운의 말에 다시 한 번 우드먼의 눈물샘이 터졌다. 다운은 그가 진정할때까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어느정도 우드먼이 진정한 것처럼 보이자 다운은 그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꺼냈다.
“지금까지는 네가 우리 선수이기 때문에 믿고 가만히 지켜봤어. 하지만 이제 우리 품을 떠나게 되었으니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네.”
원래 메이저리거들에게 먼저 다가가 조언하는 것은 금기시되어있었다. 메이저리거들의 자존심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도 했고, 구단 입장에서는 ‘알아서 살아남은 재능’을 써먹는게 훨씬 편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코칭 스태프라는 포지션이 다운과 선수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에 다운은 굳이 선수들에게 직접적으로 조언하는 귀찮은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구단의 선수가 될 선수라면 얼마든지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왜 안했냐고?
‘그야 귀찮으니까.’
선수의 장단점을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는 것은 굉장히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우드먼은, 그리고 곧 만나게 될 슈어홀츠는 다운이 레이스에 온 바로 그 해 겨울 데려온 원석들이다.
그들이 가진 재능의 빛에 이끌려서 데려온만큼, 다운은 그들에게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운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리고 혹여나 그들이 만개해서 레이스의 큰 적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2루 수비에서만큼은 사실 이제 건드릴게 없어.”
“쿨쩍! 거기 가면 유격수 아닌가요? 킁!”
“미안한데 에스코바 알지? 그 친구도 같이 넘어가.”
“젠장할······.”
우드먼 역시 에스코바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겉돌던 걸 본 사람 중 하나였다. 팀에 녹아들 생각이 없는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와 키스톤을 이루어야한다는 미래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여튼 네 문제는 타격이야. 마이너 시절에 보여주었던 파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컨택 역시 많이 죽었지. 적어도 2할 후반을 쳐줄거라고 기대했던 네가 2할 중반을 겨우 넘기고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하체랑 상체가 따로노는 느낌을 준다는거야. 네가 정말 마이너에서 잘 나가고 있을때는 이런 느낌이 안들었거든. 근데 요즘 네가 타격하는걸보면 아~주 미세하지만 계속해서 상하체의 타이밍이 어긋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이런 식으로요?”
“아니지 그것보다는 약간 이런 식으로······.”
“오히려 그게 제 느낌상에는 타이밍이 어긋나는 것 같은데요?”
“네가 두 시즌 동안 해오던 스윙이잖아. 몸은 이미 그 타이밍에 적응했어. 그러다보니 네가 느끼기에는 자연스럽고 편한 스윙으로 인식이 되는거지.”
“그러면 이렇게는 어떨까요?”
“오! 조금은 맞는 느낌이야. 그런데 당장 바꾸려고하면 내츠에서도 주전으로 뛰기는 힘들수도 있어.”
“그럼 시즌내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고쳐가야겠네요.”
“그러는걸 추천해. 아마 네가 이 어긋난 타이밍을 바로잡고, 스윙에 자신감을 찾게 된다면······.”
“아니 그러면 결국 스윙은 자신감이라는건가요?”
“그게 아니지. 스윙을 바꾸게 되면 처음에는 네 스윙을 믿기 힘들거아냐. 내 말은 네가 스윙에 익숙해지고 믿음을 가지고 자신있게 휘두를때가 되면······.”
어느덧 울적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두 사람은 스윙에 대한 열정적인 토론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프레슬리는 조용히 리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To. 리즈
밥 시간 30분만 미뤄줄 수 있나요?
아무래도 식사에는 늦을 것 같다.
< 193화 - 떠나는 이를 위한 선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