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MVP급 외야수는 어디로?(3)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면 곧바로 연락하고.”
다운은 마치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으로 프레슬리와 선수들을 먼저 보냈다.
“제발 사고치지 않아줬으면 좋겠는데······.”
트레이드 이야기야 어차피 전화로 하는 것이니 사실 다운이 함께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트레이드라는건 결국 함께하고 있던 동료가 떠나간다는 것. 이왕이면 선수들이 없는 곳에서 모든 논의를 끝내는 것이 다운이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배려 중 하나였다.
다운은 리타와 함께 택시를 잡았다.
“서울 리버티호텔로 가주세요.”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통화할 예정이니 라디오는 꺼주시고요.”
“물론입죠!”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까지 가게 된 기사는 만면에 미소를 띄운채 음소거를 했다. 차 안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다운은 곧바로 예이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이츠도 다운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통화연결음이 몇 번 들리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쪽도 끝났나보군요.]
“네. 이제야 끝났네요. 근데 지금 런던은 새벽 아닌가요?”
[선수단에서 도착하자마자 인터뷰를 하고 자는게 마음이 편하다고해서 이 시간에 인터뷰를 했죠.]
저런 스케줄은 단장이 정하는대로 움직이는 것이지, 선수단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나 시차를 맞춰야한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선수단은 인터뷰 대신에 무조건 침대로 향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제 시간에 잘 수 있도록 엄청나게 굴려댔어야하는게 정상이다.
‘그런데 선수단이 편하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이 새벽에 했다?’
초짜 단장이다보니 선수단에서도 휘두르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운은 그런 점을 알려주는 대신 웃으며 예이츠를 칭찬했다.
“선수들을 그 정도까지 생각해주시다니. 좋은 단장이 될 자질이 있으시군요.”
물론 예이츠도 머리가 있는만큼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칭찬 감사합니다.]
다만 여유는 없는게 확실해보였다.
‘만약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가짜로라도 웃었겠지.’
그 정도의 가면은 깔고 가는게 이 바닥이라는 걸 모를 정도의 멍청이를 저 자리에 앉혀놨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웃지 못하는 것은 현재 예이츠에게 전혀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 제안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셨나요?”
[생각해볼 시간이 충분해서 안해볼 수가 없었죠.]
하긴 스프링 트레이닝이 있는 플로리다에서 런던까지는 대략 8시간 정도 걸린다. 그 비행시간 동안에 참모진들과 함께 엄청난 토론을 나눴을거다.
“실례가 안된다면 결론을 바로 들을 수 있을까요?”
[거절하겠습니다.]
예이츠의 답은 예상했다시피 거절이었다.
“흐음······. 꽤나 자신있는 제안이었는데 말이죠. 그 거절이 혹시 완전한 거절인가요? 아니면 어느정도 수정본이 있는 카운터 오퍼가 있을 예정인가요?”
[제안. 제안을 하겠습니다.]
“듣고 있습니다.”
[세드릭 우드먼과 비니 맥그리프는 좋습니다. 하지만 에릭 슈어홀츠는 저희가 원하는 선수가 아닙니다. 대신에 에디슨 포레스트를 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방금의 말로 확실해졌다.
‘이 멍청이는 그저 주변에서 시키는대로 하고 있어.’
30개 구단의 단장들 중에서 그 누구도 트레이드를 할 때 즉전감을 놓’고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유망주들에 한해서야 연막전술로 ‘그 친구 정도면 괜찮겠네.’ 아니면 ‘얘 정도면 좋을 것 같네.’라는 표현을 쓰긴 한다만, 즉전감은 그야말로 즉시전력감. 이미 평가가 완료된 상황에서 확실한 호불호를 표하지 않는건 일을 두 번 하는 것과 같은 피로감을 서로에게 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즉전감을 원할 정도면 어느정도 그 선수에 대한 확신이 있는 상황일 터.
‘물론 여기에도 벗어나는 상황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예를들어 로또끼리의 교환이라던가 하는 상황 말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는 해당된지 않는다. 마르코 루이스는 최고의 선수였으니까. 저쪽에서도 확실한 패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확신이 없는 말투를 사용한다?
‘예이츠는 물론이고, 저쪽 프런트에서도 누가 더 좋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거야.’
아마 표가 반반정도로 갈렸겠지. 그러니 저렇게 갈팡질팡해대는거고.
‘이럴 때 또 쓸 수 있는 수법이 있지.’
다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일단은······.’
확인할게 남아있다.
“에스코바는 말씀안하셨는데, 에스코바는 괜찮은건가요?”
[에스코바요?]
잠깐의 침묵 뒤에 그가 다시 물었다.
[프란시스 에스코바 말하신건가요?]
그의 반문에 다운이 씨익 웃으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아! 조 블랜튼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딜에서 에스코바를 올려두고 있어서 말이죠.”
이 딜에서 추가로 제안했던 선수는 조 블랜튼이다. 다운은 그걸 까먹을 정도로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이유는 예이츠의 주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잠깐이지만 들렸다.’
‘에스코바요?’라고 한 뒤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소리가 말이다.
‘그럼 써먹을 수 있겠는데?’
그의 곁에 조언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생각해뒀던 계획을 실행할 차례다.
“블랜튼은 괜찮으신거죠?”
잠깐의 텀이 있은 뒤에 다시 예이츠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뇨. 저희는 블랜튼 대신에 에스코바를 원합니다.]
그의 말에 다운이 작게 주먹을 쥐었다.
‘걸렸네.’
그럴줄 알았다.
이쪽에서 에스코바를 매물로 올려놨다는걸 확인한 이상, 애슬레틱스의 최고 유망주 출신인 에스코바가 블랜튼보다는 더 먹음직스러웠겠지.
하지만 이는 함정카드였다.
‘에스코바에게는 엄청난 결함이 있지.’
물론 약을 했다거나, 부상을 숨겼다거나 하는 신체적인 결함은 아니었다. 에스코바에게 있는 결함은 바로 성격적인 문제였다.
원래 에스코바의 성격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활발하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아주 주도적인 선수라고 말이다. 하지만 레이스에 온 순간부터 그 평가는 뒤집어졌다.
애슬레틱스에서 성공과 찬사만을 받아오던 선수가 레이스에 와서는 데이튼 레이몬드라는 또 다른 유망주와 메이저리그도 아니고, 트리플 A에서 주전을 위해 싸워야만 했다. 심지어 메이저리그 내야 뎁스가 너무 탄탄해서 그 위로는 올라갈 수 있는 길 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 치 앞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에스코바가 둘러매고 있었던 속마음들이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플레이를 비난했다고 하더군요.”
“더그아웃에서 물품을 때려부셨다고 합니다.”
“숙취에 찌든채로 훈련장에 나타났답니다.”
결국 그는 점점 팀에서 멀어졌다. 그러면서 그의 콜업 역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기회가 오면 마음을 다잡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운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도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다른 유망주들, 심지어는 스탠하우스조차도 선수단에 녹아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에스코바만큼은 겉돌았다. 그 모습을 보고 결국 다운은 그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콜업되어서 올라와봤자 우리 팀에 도움은 안될 선수야.’
물론 가진 잠재력이나 실력이 아깝긴 했다. 캐시도 ‘내야에 구멍이 생기면 우선적으로 에스코바를 써보고 싶기는 해.’라는 평가를 했었으니까.
하지만 팀을 중요시하는 다운에게 실력은 둘째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건 ‘레이스’라는 한 팀에 얼마나 잘 녹아들어갈 수 있는지였다.
에스코바를 안고 있을 바에는 성격도 좋고 포지션을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블랜튼을 지키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흐음······.”
다운은 다음 트랩을 위해서 일부러 호흡을 길게 늘어트렸다. 저쪽에서도 긴장했는지 다운의 호흡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깊은 날숨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 다운은 다시 숨을 들이쉬고는 뱉었다.
“흐음······.”
뭔가 답이 흘러나와야 할 타이밍에 다운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자, 예이츠가 움직였다.
[아무래도 들어줄 수 없으신 것······.]
그리고 그 순간 다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러자 되려 당황한 것은 저쪽이었다.
[······ 같은. 네? 그렇게 하신다고요?]
“네. 에스코바 드리겠습니다.”
시원스레 대답한 다운은 곧이어 덫을 뿌리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 측에서는 다른 구단하고 비교도 되지 않을 제안을 해서 단번에 루이스를 얻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저희가 가능한 내에서의 최고의 즉전감을 제안했죠. 그런데 알아서 한 단계를 낮춰주셨으니, 유망주 쪽에서는 조금 양보해야죠 어쩌겠습니까? 하하!”
사실 뭐 예이츠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상관없었다. 아마 그는 이 말조차 그냥 듣고 있겠지.
하지만 예이츠의 옆에 있는 조언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을꺼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야구계에 박식한 사람이야.’
그러니 예이츠가 그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일터. 그렇다는건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운에 대한 두 가지의 소문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 다운의 선수 평가는 최상급이다.
2. 다운이 한 트레이드는 대부분 상호 윈-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달리 말해 다운은 상당히 밸런스를 중시하는 편이다.
이 두 가지를 떠올렸다면 저쪽에서는 지금까지 하고 있었던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 다운이 슈어홀츠를 더 높게 평가했네? 이러면 포레스트가 더 안좋은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슈어홀츠가 3선발을 맡고 있었잖아. 포레스트 추천한 놈 제대로 생각한거 맞아?”
“다운이 저렇게 말하는데 슈어홀츠를 데려오는게 더 낫지 않을까?”
수화기에서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걸 보아하니 마이크를 꺼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이런식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겠지.
‘그리고 누군가가 이야기하겠지.’
“그냥 지금이라도 둘 다 내놓으라고 하면 되는거 아냐?”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고, 끝이 없이 증식하곤 한다. 특히나 마르코 루이스라는 대체 불가능한 최상급 패를 쥐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1분 정도가 흐른 뒤, 오늘 통화에서 처음듣는 예이츠의 당당한 목소리가 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제안을 바꾸겠습니다. 에릭 슈어홀츠, 세드릭 우드먼, 비니 맥그리프, 프란시스 에스코바. 이 넷을 넘기면 군말하지 않고 루이스를 넘기죠.]
그의 당당한 요구를 듣고 있자니 웃음이 참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다운은 최대한 웃음을 참으며 준비한 대사를 뱉었다.
“자, 크흠!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판이 깔리면 분명 예이츠라면 그 말을 할거다.
[10분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마음이 거의 맞은 상황이라 그 정도면 충분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바로 저 말 말이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한 다운은 그제서야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 바보아냐?”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있던 리사 역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흡! 흡흡흡!”
한참을 웃어제낀 다운이 리사에게 물었다.
“몇 분 남았지?”
“4분 정도 남았습니다.”
“프란시스 실력은 진짜니까 뭐 저쪽에 나쁜 딜은 아닐꺼야 그치?”
“물론이죠.”
4분 뒤
다시 예이츠에게 전화를 건 다운은 최대한 다운된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단!”
이번에는 최대한의 경고를 담았다.
“다시 이따위로 조건을 바꾸면 내츠와는 절대 다시는 딜할 일이 없을거란걸 알아두시죠.”
[물론입니다. 곧바로 트레이드 신청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예이츠는 알까?
이쪽에서도 환하게 웃고있다는걸 말이다.
< 192화 - MVP급 외야수는 어디로?(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