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MVP급 외야수는 어디로?(2) >
비행기에서 내린 선수단은 곧바로 공항에서 제공해주는 단체 휴게실로 들어갔다.
“으아아아아! 피곤하다!”
“어? 방금 나 뚜둑 소리 났는데? 허리 끊어진거 아냐?”
“그럼 너 서있지도 못해 인마!”
“알버트! 팔 좀 잡아줘봐!”
“당길까요?”
“그래. 으어어어어어! 시워언하다!”
여기저기서 오랜 비행으로 굳어있던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신음을 뱉어댔다.
“그러게 잠 좀 자지 그랬냐?”
“깨어있을 시간이라 잠이 안오는걸 어떡해요?”
“단장님. 우리 그냥 들어가서 자면 안됩니까? 너무 피곤한데······.”
애들처럼 징징대는 선수들을 향해 다운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밀 머니를 나눠주었다.
“절대 안돼.”
현재 한국 시간은 아침 10시를 조금 지난 상황이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지금이 전혀 아침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 그것도 탬파베이 지역이 있는 동부와는 13시간의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곧 선수들에게는 지금 이 시간이 저녁 9시가 조금 지난 시간처럼 느껴진다는 것과 같았다.
만약 선수들이 이대로 잠을 자게 된다면 추후에 있을 경기 때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지금부터 저녁 10시 전까지는 절대로 호텔에 들어갈 수 없다.
“댄. 클러비들 데리고 짐 다 옮겨놔.”
“알겠습니다!”
“케빈. 코칭스태프들을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우리는 부산에 먼저 가서 다시 한 번 경기장을 점검할 생각이야.”
“알겠습니다. 바로 비행기 수배해드릴게요. 뭐 그게 아니라도 기차로 두 시간 반이면 가지만요. 리타! 교통편 바로 알아봐줘. 그리고 우리가 계약한 호텔에 하루 먼저 묵을 수 있는 방 있으면 코칭스태프 인원에 맞춰서 예약해주고.”
“알겠습니다. 댄한테 말해서 코칭스태프 짐은 따로 분류하라고도 하겠습니다.”
“아! 큰일날 뻔 했네. 부탁할게!”
리타가 안왔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다들 모여! 지금부터 한국 일정 설명한다!”
다운의 말에 수학여행 온 아이들처럼 재잘대던 선수단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우선 여기서 나가서 곧바로 인터뷰가 예정되어있어.”
“선수단 전체가 하나요?”
“아니. 인터뷰에서는 나, 케빈, 배리, 조나, 네이트, 성찬까지 총 여섯 명이 참가할 예정이야.”
“다른 선수들은 그 사이에 뭐하나요?”
“인터뷰 전에 단체사진 한 방 찍어주고 여기에서 쉬고있으면 돼. 혹시 ‘나는 인터뷰를 정말 하고 싶다!’하는 사람 있나? 있으면 내 권한으로 넣어줄게.”
다운의 말에 다들 손사래를쳤다.
“절대 거절하겠습니다.”
“휴게실에서 쉬어야하는데 무슨 인터븁니까!”
“단장님! 혹시 ‘나는 인터뷰를 정말 하고싶지 않다!’하는 사람은 빼줍니까?”
“응 안돼.”
파인트의 농담에 다운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하루는 부산이 아니라 서울에서 지낼 예정이다.”
원래는 부산에 먼저 내려갈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11시 정도. 점심을 먹고나서부터 10시간 정도는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움직여야한다. 그래야 선수들이 지쳐서 곧바로 잠에 들테니까.
부산도 나쁘진 않지만 선수들을 굴릴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유명한 한국음식 집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점심을 먹고, 한국의 고궁들을 둘러볼거다. 그리고 서울 남쪽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3시간 정도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너희가 묵을 호텔은 한국 내에서도 제일 높은 호텔이다. 저녁은 그곳의 레스토랑에서 먹을 예정이고. 야경이 꽤 예쁘다고 하니까 기대해도 좋을거야.”
인천에서 서울로, 서울 중심부에서 북으로 갔다가 용인으로. 마지막에는 다시 서울의 중심부로 돌아오는, 어찌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동선이다.
하지만 동선이 이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많이 피곤한 선수들도 있을텐데, 버스 안에서 조금이라도 눈은 붙이게 해줘야지.’
푹 자면 시차를 못 맞출수도 있지만, 짧게 눈을 붙이지도 못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더 컨디션을 망칠 가능성도 있으니까. 정말 피곤하더라도 한 시간 정도는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선수들이 떠들어대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동선을 듣고 다운의 의도를 눈치챈 베테랑들이 손을 들었다.
“단장님! 혹시 귀마개 같은거 있습니까?”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댄과 리타가 구비하고 있으니까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지 찾아가도록 해. 그리고 차 멀미 하는 사람들도 미리 말하고. 멀미약도 구비중이니까. 길거리에서 군것질하는것까지는 안말린다. 다만 조심은 하도록 해. 뭐가 들어있을지 몰라.”
“Yes papa!”
“배리?”
“Yes! Sir!”
“참 내······. 궁금한 점 있는 사람?”
“책에서 봤는데 한국은 밤문화가 꽤 활발하고 안전하다고 들었는데 나가봐도 됩니까?”
“저녁 식사가 8시에 예정되어있는데 식사 이후에 힘이 남아돈다면 상관없어. 다만 댄이나 성찬, 그리고 나까지 세 명 중 하나는 무조건 끼워서 나가야 돼.”
다운과 댄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일이 생겨도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공인으로 몇 년간 있으면서 물의를 일으킨 적 없었던 진성찬이라면 문제가 생겨도 시간벌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좋아. 그럼 네이트 나는 이태원? 거기로 갈거야. 넌?”
“난 강남. 거기가 서울의 중심이라던데? 네이선 드레이크의 한국 데뷔에 완벽히 들어맞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 리키 너도 안 갈래?”
“나는 됐어. 그런 곳 보다는 한강을 따라 한 번 뛰고 싶은데.”
“오! 그거 좋다. 역시 투수에게 러닝만한건 없지! 같이 뛸까?”
“조나도요? 저야 환영이죠.”
벌써 세 파티로 나눠지는 선수들을 보니 괜히 세 명이나 갈 수 있다고 지정했나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올라왔다.
“그리고 너희도 다 알겠지만, 너희는 메이저리그와 야구의 세계화에 선봉에 선 얼굴들이다. 그러니 너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사인해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놈은 뒈진다. 알겠냐!”
“······ 배리가 죽인다니까 알아서들 하고. 그리고 사인이라고 하면 뭐라고 알아들으면 된다고?”
“Autograph입니다!”
사인은 한국에서나 통용되는 단어다. 혹여나 선수들이 못알아들을 경우도 대비해야했다.
“만약 정말로 상대의 영어가 부족하다. 그러면?”
“픽쳐? 찰칵찰칵?”
“손형민? 찰칵?”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교육은 진짜 잘 시킨 것 같다.
“단장님. 인터뷰 가실 시간입니다.”
어느새 돌아온 리타가 다운의 옆에 섰다.
“Boys! 젠틀하게 가자 오케이? 빠르게 하고 빨리 놀고 쉬러가는거다.”
“알겠습니다!”
휴게실에서는 애들처럼 행동하던 선수들은 밖에 나가자마자 태도를 싹 바꿨다.
“한 번에 딱 찍자!”
“좋아요! 그렇게 서주세요. 찍습니다! 아주 좋아요! 이번엔 주먹 쥐고 한 번!”
1분도 안되어서 단체 컷을 마무리한 선수들은 인터뷰하는 사람들만을 남기고 일사불란하게 휴게실로 사라졌다.
“댄. 애들 어디로 안 튀게 잘 관리해.”
“알겠습니다.”
프레슬리에게 선수단을 부탁한 다운은 안내하는 스태프의 뒤를 따라 인터뷰룸으로 향했다.
“뒤에 일정이 있기 때문에 인터뷰는 30분만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자님들께서는 너무 공격적이거나, 쓸모없는 질문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곧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거기 세 번째 줄 두 번째 분.”
“데일리스포츠의 한경찬입니다. 우선 정다운 단장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이번 메이저리그의 해외 개막전은······.”
인터뷰 초반에는 다운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대부분은 해외 개막전의 의의와 시호크스와의 협력관계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이번에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개막전은 메이저리그의 세계화에 있어서 커다란 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특히나 부산은 야구에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도시로······.”
“이번에 시호크스로 떠난 코너 재머는 대학 최고의 1루수로 평가받던 선수로, 당장 레이스의 사정상 콜업받기는 힘든 선수였죠. 재머 본인도 변화구에 상당한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이 부분에서의 발전도 필요했고요. 미국보다 변화구 구사율이 높은 한국 야구에서 변화구 대처 능력을 장착하고 돌아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다운에게 몇 가지 질문이 있은 뒤에는 감독과 선수들에게 질문이 돌아갔다.
“조나 파인트를 대신해서 진성찬을 선발로 결정하셨는데 의외의 결정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혹시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주,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도 두 사람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만큼 찬은 조나에게 크게 떨어지지 않는 실력의 소유자이니까요. 하지만 조나가 한국, 그것도 21 스트리트 파크에서만큼은 찬이 강할 것이라고 먼저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덕분에 마지막만큼은 아주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찬에게 한국에 가서 아주 비싼 음식을 대접받기로 했거든요.”
“제가 자주 가는 한우집에서 배가 터질때까지 먹일 생각입니다. 하하!”
“배리 브래넌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이번 시즌이 마지막 은퇴 시즌이라고 하는데, 기분이 어떠신지요?”
“평소와 크게 다를바 없습니다. 그저 600홈런을 때려내고야 말겠다는 생각 말고는 별로 하고 있는게 없거든요 하하하! 이왕이면 그 중 하나를 여기 한국에서 치고 갔으면 좋겠네요.”
“조나. 오늘 인터뷰가 끝나면 한국에서 투어를 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어디가 가장 기대되시나요?”
“저는 한국에 온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곳이 기대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곳은 한강 공원입니다. 리키가 그러는데 그곳에 가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몸도 풀 겸 그곳에 가서 가볍게 뛸 예정입니다.”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운동을 못하시면 어떡하죠?”
“하하! 그것도 나름 괜찮죠. 팬들이 있어야 저희 프로 선수들도 있는겁니다. 고작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는걸로 저희를 응원하는 팬이 되어주신다면 한 시간이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인 이유가 있을까요?”
“그 이상은 저도 자야하니까요? 하하!”
의례적인 질문과 답변이 진행되고 있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진성찬 선수. 개막전을 앞둔 각오를 들을 수 있을까요?”
진성찬과 함께 대답을 준비했던 질문이다. 가볍게 진성찬과 눈이 마주친 다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분이 아주 묘합니다. 소속팀이 바뀌었는데도 개막전 선발을, 그것도 사직. 아니지 21 스트리트 파크에서 하게 되었으니까요. 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저를 응원해주셨던 팬들 덕분에 이렇게 메이저리그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시작을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잘 던지겠습니다. 레이스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됐다.
진성찬의 저런 말을 듣고도 애스트로스를 응원할 부산 사람은 없을거다.
‘미안해요 제임스! 흐흐흐!’
인터뷰를 보고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클릭의 얼굴이 떠올라서 웃음이 자꾸만 새어나왔다.
흘러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을 때, 앞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제임스인가?’
혹시 클릭이 왔나 싶어서 슬쩍 눈을 깔아 폰을 확인했다.
From 빌 예이츠
런던에 도착해서 이제 인터뷰 끝났습니다.
선수들은 즐겁게 돌아다니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그럴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 191화 - MVP급 외야수는 어디로?(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