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88화 (188/268)

< 188화 - 전쟁을 치르러 가볼까? >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리자 안쪽에서 글라이드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키도 있는 놈이 벨은 무슨! 그냥 들어와!”

해가 지나도 한결같은 글라이드의 태도에 다운은 피식 웃으며 스페어 키를 꺼내들었다.

“레이디 퍼스트.”

“고마워요.”

스테이시가 다운이 잡고 있는 문을 생글생글 웃으며 통과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고기 굽는 냄새가 확 풍겨왔다.

“크~ 고기굽는 향기!”

다운이 코를 킁킁거리자 글라이드의 호통이 날아왔다.

“빨리 와서 식기 세팅해! 스테이시 양은 앉아서 쉬고 있어요.”

다운에게는 호랑이 같은 글라이드였지만, 스테이시에게는 한없이 물렀다.

“아니에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가방과 겉옷을 벗어둔 스테이시가 도우려고 하자 다운은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앉아있는게 도와주는거야. 어스틴은 자기 주방에 누가 들어오는걸 싫어하거든.”

“자기는?”

“나야 뭐가 어디있는지 다 아니까. 그리고 어스틴의 동선을 방해하지는 않거든. 손님은 앉아서 기다리고 계시죠.”

스테이시에게 싱긋 웃어준 다운이 글라이드의 뒤에 섰다. 6개짜리 렌지에서 다섯 개나 되는 팬이 동시에 조리되고 있었다.

“우리밖에 없는거 아니었어요?”

“오늘 메뉴는 좀 특별하거든. 다 똑같은 부위지만 나라가 달라.”

글라이드의 집게놀림에 고기가 하나씩 뒤집어졌다.

“이건 미국산, 이건 호주산, 얘는 한국 한우, 이건 일본산 와규. 그리고 얘는 호지스네 농장에서 나온 고기.”

호지스는 다운이 어릴때 글라이드 부부와 함께 여름 휴양을 가곤했던 목장 일가였다.

“호지스 목장요?”

그 당시의 목장주였던 글렌 호지스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나서는 하나 있는 아들이 목장을 잇지 않겠다고 하면서 목장을 정리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목장 정리한거 아니었어요?”

“메기가 계속해서 목장을 붙들고 있었던 모양이야. 월터는 분명 목장에 돌아올 거라면서.”

호지스 가의 외동아들인 월터는 선생님이었다.

“월터가 자기는 애들 가르치는 일이 좋다고 하지 않았어요? 텍사스에서 선생님하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걔가 있던 팀버뷰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어.”

“아······. 혹시 다쳤대요?”

“다행히 부상은 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사망자도 없었고. 근데 충격이 컸던 모양이더라고.”

“가르치던 학생이 저질렀을테니 그럴만도하죠.”

다운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선수 하나가 미쳐가지고 라커룸에 들어와서 총을 갈긴 상황이나 다름없을거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부상 여부에 관계없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목장을 이어받아서 소하고 말을 길렀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 고기는 월터가 자신하는 소에서 나온 고기고. 메기가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글라이드의 얼굴에 부러움의 감정이 스쳐지나가는걸 본 다운이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자랑거리 하나 만들어드려야 쓰겠네.”

다운의 너스레에 글라이드가 눈을 부라리며 속삭였다.

“그런거 다 필요없으니까 넌 결혼부터 해! 얼마 전에 맥스랑 만났는데 걔도 제발 좀 결혼하라고 하더라.”

맥스라면 아마 스테이시의 할아버지를 말하는 것일거다.

“집이라도 합치던가. 같이 살아야 뭔가 일어나기라도 하지.”

“아직은 힘들어요. 스테이시가 블루제이스에 들어간지 1시즌밖에 안됐는데 벌써 직장을 옮길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다운은 장난스레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도 여기서 잘릴지도 모르는 목숨이라······. 아마 여기서 잘리고 블루제이스 단장으로 가게되면 그때쯤 결혼하지 않을까요?”

다운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글라이드가 눈을 흘겼다.

“말을 해도 꼭······. 넌 인마, 먹을거 없을 줄 알아! 당장 나가!”

물론 다운이 글라이드의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었다.

“음~”

“맛있지?”

“메기가 자랑할만 하네요. 육즙도 풍부하고 씹는맛도 좋아요.”

“스테이시 양은 어떤 고기가 제일 나은 것 같아요?”

“음······. 저는 와규나 한우가 좋은 것 같아요.”

“씹는 맛 보다는 살살 녹는 지방 맛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구만! 다음에는 내가 그 부위로다가 준비해줄게요. 블루제이스에서 한 시즌 일해보니 어때요? 힘들지는 않아요?”

“전혀요. 원래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결국 마케팅하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지 하는 일은 같아서 적응하기 편했어요.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만 빼면 좋은 것 같아요.”

“블루제이스는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는가보네. 내가 맥스 그놈한테 이야기해둘테니까 우리 구단으로 오는건 어때요? 우리 프런트는 로테이션으로 주 2회 휴식은 무조건 챙겨주는데.”

“정말요?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네요. 저희 할아버지는······.”

스테이시와 대화를 하는 내내 글라이드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즐거워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다운의 입꼬리 역시 말아올라가서 내려오질 않았다.

‘나중에 진지하게 이야기 해봐야겠네.’

스테이시와의 관계도 좋았고, 글라이드가 저렇게 즐거워하는걸보니 타이밍만 맞다면 빠르게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뒤 스테이시는 다운과 글라이드를 뒷마당으로 밀어냈다.

“맛있는걸 얻어먹었으니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

“아니 그래도 정리는 같이 해야······.”

“두 분 다 바쁠 시기잖아요. 블루제이스 소속인 제가 있으면 할 이야기도 못할텐데 그런 꼴은 못보죠. 저는 다운이 일하는 모습이 좋은거거든요.”

다운에게 웃으며 윙크를 한 스테이시가 엉거주춤 서 있는 두 사람을 다시금 밀었다.

“자 빨리 나가세요! 저는 정리만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게요. 그리고 내일 아침은 저희 집에서 드시는거에요! 제가 내일 아침거리 다 준비해왔거든요.”

두 사람을 배려하는 그녀의 말에 글라이드의 얼굴에 팔불출 아빠와 같은 웃음이 피어났다.

“내일 아침 같이 먹으려면 일찍 자야겠구만! 맥주 한 캔 들고 나와.”

글라이드가 먼저 뒷마당으로 나갔다. 글라이드의 말을 들었는지 스테이시는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서 다운에게 건넸다.

“자기도 일찍들어와.”

“피곤하면 먼저 자고있어.”

다운의 말에 그녀가 무슨말이냐는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잘 생각이었어?”

“그래? 흐흐흐!”

다운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남긴 뒤 뒷마당으로 나갔다.

“여기요.”

치익-탁!

시원한 소리와 함께 거품이 흘러나왔다.

“특이한 사항들 있어?”

“뭐 평소보다 트레이드 제안이 많은 것 정도죠.”

프런트에게 있어서 스프링 트레이닝은 시즌 전 마지막 조정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어느덧 3월 3주차에 들어서서 마지막 주차만 남겨두고 있는 지금, 각자의 약점을 메우기 위한 구단들의 제안은 치열했다.

“누굴 노리는데?”

“누구겠어요.”

“역시 리킨가?”

“리키가 제일 핫하죠. 근데 에릭이랑 에디슨도 상당히 관심을 많이 받고 있어요.”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두고 있어서 레이스를 떠날 것임이 거의 확실하게 여겨지고 있는 더지는 많은 구단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레이스에 와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슈어홀츠와, 올 시즌에는 5선발에서 시작할 포레스트 역시 상당히 인기있었다.

“둘 다 4년차지?”

“네.”

“연장제안은 안할거고.”

“아마도요. 두 사람의 에이전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고요.”

슈어홀츠와 포레스트는 둘 다 다른 구단에 가면 충분히 3선발 이상을 맡을 수 있는 재목이다. 하지만 레이스에는 파인트, 더지, 그리고 진성찬이 있다.

그러다보니 레이스에서 두 사람은 아무리 잘해봐야 하위 로테이션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 더지가 트레이드로 나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레이스가 그들에게 제안할 금액은 하위 로테이션 급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레이스에는 수많은 선발 유망주들이 있었다. 올 시즌은 불펜에서 시작할 비니 맥그리프는 자리만 있으면 선발로 충분히 뛸 수 있는 재목이고, 언제든지 이닝을 먹을 준비가 되어있는 너클즈도 대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당장 콜업해도 손색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은 22년 1라운더 알렉스 알마다 역시 준비를 마친 상황이다.

레이스 입장에서는 두 사람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트레이드 할 생각이야?”

“적당한 제안이 오면 에릭이나 에디슨. 둘 중 한 명 정도는 해볼까도 생각중이에요.”

다른 시즌이었으면 모르지만, 올 시즌은 승부를 거는 시즌. 트레이드 가치는 둘째치고 우승을 노리는 상황에서 더지를 보내는건 미친놈도 안할 짓이다.

“그러면 에릭을 보내겠네?”

“아마도요.”

슈어홀츠는 강속구와 함께 강력한 구위를 가진 선발이다. 하지만 제구력이 엄청나게 좋은 편은 아니라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이 꽤 있었다.

그에 비해 포레스트는 적당한 구위와 적당한 구속, 적당한 제구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비록 2선발 정도까지 클 수 있는 잠재력을 다 터트리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성장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평가를 여전히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괜찮은 제안이 오면 에릭을 보내고 너클즈를 스타팅으로 넣어볼 생각이에요. 사무엘도 너클볼 캐칭이 엄청 늘었고, 제시도 라인업에 들어와 있으니까요.”

“알렉스는? 1루에 잘 적응했어?”

“생각보다 잘 적응했어요. 덕분에 덕이 상당히 불이 붙었어요. 올 시즌에는 절대 플래툰이 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훈련하더라고요.”

“그게 경쟁의 순기능이지.”

“추가적으로 세드릭도 좋은 제안이 오면 보낼 생각이에요.”

“노리는 팀은 있나보네.”

“우리 예상보다 크지는 못했지만, 아직 서비스타임이 짱짱하게 남은 수비력 괜찮은 내야수니까요. 보내주고 데이튼이나 애드리안한테 기회를 줄 때가 됐죠.”

“난 개인적으로 데이튼이 더 좋아.”

“어스틴은 스위치 히터면 다 좋아하잖아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팀 스위치 히터들이 잘하니까 좋아하는 것 뿐이야.”

“하긴 사무엘이랑, 네이트 둘 다 잘치긴 하죠.”

“그나저나 오늘 개막전 선발 정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선발은 던지기 전에 최소 4일의 회복기간은 주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개막전 선발이 정해져야할 타이밍이었다.

“정해졌어요.”

“조나랑 성찬 둘 중에서 고민하더니. 누구 골랐어?”

다운은 캐시와 거스, 미키와 머리를 싸매고 개막전 선발에 대해 고민했다. 파인트는 여전히 최강의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진성찬은 한국에서 황제로 군림하던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었다.

더지?

더지도 떨어지지는 않지만 두 사람에 비해서는 내부평가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두 시간에 걸친 고민 끝에 네 사람은 한 사람의 이름을 만장일치로 뽑았다.

“성찬이가 맡기로 했어요.”

“오! 결국?”

“네. 개막시리즈가 한국에서 열리는 특수한 상황이라는걸 감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적어도 부산에서만큼은 진성찬이 황제였으니까요. 부산 팬들을 첫날부터 우리 편으로 만들고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수가 없었어요. 거기에다가 개막시리즈 마치면 3일간의 이동일 및 휴식일이 주어지니까 첫 턴에만 진성찬-조나-리키 순으로 로테이션을 돌거에요.”

“두 번째부터는 그대로 가고?”

“네.”

개막 선발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글라이드는 남은 맥주를 원샷한 뒤 기지개를 켰다.

“흐으으으! 개막전이 기다려지는구만!”

자리에서 일어난 글라이드가 빨리 일어나라는 듯 다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들어가자.”

“좋죠.”

다운도 글라이드의 뒤를 따라 일어났다.

“내일 아침에 몇시에 넘어오실거에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는 또 뭔가가 마음에 안드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 너 제정신이냐?”

“네?”

“피트한테 내일 오전 반차처리하라고 연락해놓을테니까, 점심이나 만나서 먹자. 알겠어?”

하여간 노친네 눈치는······.

하지만 그런 배려를 거절할 다운이 아니었다.

“내일 점심에 봐요 그럼.”

“좋은 밤 보내라.”

“어스틴도요.”

글라이드의 집에서 나온 다운은 평소와는 다르게 불이켜져있는 집 2층을 비장하게 바라보았다.

“자 그럼 전쟁을 치르러 가볼까?”

< 188화 - 전쟁을 치르러 가볼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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