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시즌 예열 >
길고 길었던 스토브리그가 끝나고 드디어 새 시즌의 예열을 알리는 스프링 트레이닝이 다가왔다.
스프링 트레이닝의 목적은 비시즌 동안 떨어진 경기감각을 일깨우고, 한 시즌을 부상없이 잘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건 물론 선수들 본인이 자신의 몸을 잘 케어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프런트의 서포팅도 중요했다.
“자자! 다들 모여봅시다.”
출근과 동시에 다운은 파트장들을 향해 손짓했다.
“한국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다운은 시즌을 앞두고 한국을 다녀왔다. 사직, 아니 이제는 21스트리트 파크로 명칭이 바뀐 구장 잔디 리뉴얼 공사 결과를 포함해서 전반적인 준비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스프링 트레이닝의 첫 일주일을 놓치고 말았다.
“뭐 별 일이야 있었겠어요.”
“잔디는요?”
“클락의 실력이 어디 가겠어요? 지금 우리 구장 잔디만큼이나 완벽하게 되어있더라고요.”
다른 외부업체를 쓰는 대신 레이스 소속의 잔디 관리사를 데려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마 선수들도 관중석만 가려놓으면 거기가 글라이드 파크인지 21 스트리트 파크인지 구분도 못할걸요?”
“거의 홈처럼 만들어 놨나보군요.”
“이번 기회에 더그아웃도 리뉴얼을 해서 저희 글라이드 파크 더그아웃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놨어요.”
“어쩐지 그 조건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신다 싶더니······.”
시호크스의 신민국 단장은 추가적으로 라커룸과 더그아웃의 개보수까지도 요청했다. 그리고 다운은 흔쾌히 그들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어떻게든 선수단에게 더 익숙하고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다운은 원정 라커룸(개막전이 레이스의 원정으로 카운트되어 치뤄지기 때문에 레이스는 원정 라커룸을 써야한다)을 지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쓰고 있는 라커룸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 아마 레이스가 홈 팀으로 들어갔다면 글라이드 파크에 있는 라커룸과 동일하게 만들었을텐데 그보다 못한 원정 라커룸을 써야하기 때문에 샬럿 스포츠 파크의 라커룸과 비슷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따.
그리고 더그아웃 역시 글라이드 파크에 있는 더그아웃과 유사하게 만들어 놨다.
“최대한 홈에 있는것처럼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게 중요하니까요.”
만약 다른 시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은 레이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에 승부를 걸어보려는 시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막전 스타트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즌을 길고, 한 경기 한 경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하지만 시즌 초반의 기세는 무시할 수 없어.’
그것도 레이스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하는 팀이다. 분위기를 잘 타는 젊은 팀이기에 더더욱 시즌 스타트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한국 이야기는 이쯤 하고, 여기 이야기나 좀 합시다.”
지난 일주일간 서면으로 보고는 받았다. 하지만 직접 듣는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은······.”
모든 레이스 팬들과 프런트가 주목하고 있는 것.
“배리는 좀 어떻습니까?”
과연 배리 브래넌이 올 시즌 16개의 홈런을 더 때리고 은퇴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가 되었는지다.
“아주 좋아. 본인이 말하기로 이번보다 더 좋은 컨디션이었던 시즌은 없었다고 하더라고. 게다가 올 시즌은 아예 풀타임 지명타자로만 내보낼 생각이라 수비도 하지 않으니 무리를 안해서 그런지 더 컨디션이 좋은 것 같았어. 유일한 문제점은 수비를 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그 공백을 어떻게 본인이 케어하는지인데······.. 일단은 최대한 다양한 템포로 타석에 들어서게 하면서 본인만의 리듬을 찾게 도와주고는 있는데, 아직은 어색한 모양이더라고.”
“지난 시즌부터 풀타임 지명타자로 돌렸어야하는데······.”
지난 시즌에 들어가기 전에도 풀타임 지명타자로 쓸거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페리시치가 제대로 커주지 못했던 것과 주전급 외야수의 부재로 인한 공백때문에 어쩔 수 없이 브래넌을 좌익수로 많이 써먹었었다. 만약 지난 시즌 조금 더 풀타임 지명타자 경험을 시켜줬었더라면 조금 더 익숙했을텐데.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아 그리고 몸상태가 너무 좋아서 플레이에 힘이 넘치는 것도 조금은 걱정돼.”
“주치의 소견은 어떤가요?”
“검사상으로도 큰 문제는 없다고합니다. 다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과 같이 심장을 포함해 몸 전반적으로 일시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시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둘 다 자제시켜놓기는 했어. 본인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신경을 쓰는편이고. 하지만 알다시피 배리가 승부욕이 워낙에 강하잖아. 그래서 실전 경기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봐야할 것 같아.”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자고요.”
브래넌 다음으로 관심도가 높은 선수는 바로 이번 시즌 레이스 투수진의 유일한 FA영입인 진성찬이었다.
“진은 어때요?”
질문을 받은 캐시는 물론이고 거스와 미키의 얼굴에까지 흥분이 깃들기 시작했다.
“최고야.”
“올 시즌 모든 구단을 통틀어 최고의 영입이 될 수 있는 선수에요.”
“조나가 ‘이번 시즌에는 긴장 좀 해야겠는걸?’이라고 말한 걸 보면 끝난거 아냐?”
“그 정도로 좋아요?”
다운의 물음에 캐시가 흐뭇한 웃음을 띄웠다.
“생각보다 훨씬 좋아. 볼이 일단 너무 좋아. 구종도 다양하고 제구력도 괜찮은 편이야. 무엇보다 막혔을때 힘으로 윽박지르며 뚫을 수 있는 구위가 매력적이야.”
“그것보다 저는 투구폼이 더 매력적이라고 봅니다. 사이드에 가까운 언더투구로 디셉션이 너무 좋아요. 우리 타자들도 치기 까다롭다고 했잖아요. 특히나 우완 언더투수들 같은 경우는 좌타자한테 약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진은 좌타자에게도 강하죠.”
“발목으로 급격하게 꺾여 들어가는 슬라이더하고 높은 완성도의 체인지업까지 있으니 좌타자라고 쉽게 상대할수는 없지. 장담컨대 이번 시즌에 진을 처음보는 타자들은 첫 타석에서만큼은 절대로 진에게 안타를 뽑아낼 수 없을거야.”
세 사람이 모두 저렇게 고평가를 할 정도라니. 괜시리 기대가 됐다.
“투수조 훈련 언제 있죠?”
“진 불펜 피칭은 내일 있어. 그리고 모레에는 청백전에서 1이닝 정도 던져볼 예정이고.”
“적어둬야겠네요.”
폰에 메모를 해둔 다운은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다음으로 알아보고 싶었던 선수는 역시······.
“메이슨은 어때요?”
스탠하우스였다.
조니를 포함해서 미키, 거스, 그리고 자신의 마음까지 빼앗아갔던 바로 그 특급 유망주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진성찬에게는 흥분한 얼굴을 보였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흐뭇한 아빠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아. 수비는 물론이고 발도 빨라. 어깨는 당연히 좋고.”
“타격 이야기는 없네요?”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처음 상대하는 선수가 어떻게 좋은 타격을 하겠어? 그 부분에 있으서는 아직까지는 헤매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눈여겨볼만한 점은 있어. 바로 자기 스윙을 한다는거지.”
“호오······. 그래요?”
이 부분은 대단하다고 할만했다.
대부분의 마이너리거들이 메이저리그에 올라와서 가장 못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원래 하던 스윙을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짧은 기간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곤 했다.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 내려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런데 꿈에도 그리던 무대에서 메이저리거들의 공을 처음 상대하다보니 많은 선수들이 처음에는 공을 제대로 상대하질 못했다. 그러다보니 마이너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스윙을 하지 못하고 갖다 맞추는 스윙을 보여주곤 하는 것이다.
문제는 프런트와 감독은 그 선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콜업한게 아니라는거다. 자신의 스윙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는 절대로 메이저리거들의 공을 공략할 수 없다.
선수들도 스윙을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면 평가가 떨어질 것이고, 다시 올라올 가능성이 적어진다는걸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막상 상황이 다가오면 자신의 스윙을 하지 못하곤 한다.
그런데 이제 막 루키 시즌을 보낸 18살짜리 선수가 자기 스윙을 한다?
물론 그 루키 시즌도 다른 루키들처럼 루키리그에서만 보낸 놈이 아니긴 했다. 그럼에도 저렇게 자신의 스윙을 가져갈 줄 안다는 것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이번 시즌 잘 다듬으면 굉장한 놈이 될거야..”
“곧바로 쓰기는 힘들것 같던가요?”
“아무리 빨라도 올 시즌 후반기는 되어야 쓸만해질 것 같아.”
“그래도 꽤 빠르네요. 저는 다음 시즌 중반 이후쯤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미키역시 그를 눈여겨 봤었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수 본인의 향상심도 강하고, 가진 재능도 뛰어납니다. 만약 성장세가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장기계약을 하는 것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가가 짠 미키가 저런 말을 할 정도라니.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 부분은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한 번 생각해보자고.”
스탠하우스의 성장세가 생각보다 훨씬 좋다는 것은 분명 희소식이다. 하지만 그에게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기회를 준 이유는 백업 외야수로 쓸만한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지, 그의 미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백업 외야수로는 쓰기 힘들겠네요.”
“만약 쓸 수 있더라도 마이너에 두는 것이 더 낫습니다. 지금 메이슨에게 필요한건 메이저리그 경험이 아니라 경기를 꾸준히 나갈 수 있는 기회니까요.”
“백업외야수로 쓸만한 싹이 보이는 놈은 있나요?”
다행히 아예 없는건 아닌지 캐시와 파트장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로렌 그놈이 물건이더라고.”
“로렌 앳킨슨요?”
“그래.”
앳킨슨은 영화로 인해 인기를 얻었던 선수로, 영화 특수로 홍보효과도 누릴 겸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줘보자는 의미로 콜업해준 선수였다. 심지어 원래 포지션은 외야수가 아닌 유격수.
“발도 빠르고 수비범위도 넓어. 파워는 없지만 컨택도 좋고, 주루플레이도 좋아서 활용범위가 상당히 넓을 것 같아.”
“외야 수비에도 금방 적응했나보네요.”
“케빈이나 알렉스 급은 아니야. 하지만 브라이언 정도는 돼.”
마이어와 스프라우트는 중견수가 주 포지션인 선수들이고, 그 중에서도 수비력이 좋기로 유명한 선수들이다. 당연히 그들보다는 못할 수 밖에. 하지만 외야 수비도 평균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앤더슨과 비슷한 급이라는 점은 상당히 놀라웠다.
“정확히는 앤더슨보다 코너 외야 수비는 떨어지는데, 중견수 수비는 더 나아.”
원래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선수다. 그 정도만 되어도 땡큐다.
“프레드는 어때요?”
“이틀 전에 또 허벅지에 통증이 왔습니다. 일단 사흘 정도는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안타까움이 섞인 클라인의 대답에 다운이 아쉬운 얼굴을 했다.
“프레드도 참 안풀리네요.”
“운이 없는거죠.”
“그래도 이제 막 일주일 지난거니까 벌써부터 단정짓지 말고 최대한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보자고요.”
< 187화 - 시즌 예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