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다운이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을 주자마자 이틀이 채 지나기 전에 아마존의 담당자가 탬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존의 동북아 담당자인 웨인 파머입니다.”
말이 동북아지, 중국에는 알리바바가, 일본 시장에서는 아마존재팬이 따로 있었다. 결국 한국 시장 담당자라는 말이다. 아마존 내부에서 가장 안나가는 지역의 담당자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뚝뚝 묻어나왔다.
“다운 정입니다. 들어오시죠. 마실건 어떤걸러 준비해드릴까요?”
그의 피곤해보이는 눈으로 추측해보았을 때, 그는 분명 커피를 시킬 것이다.
“아메리카노 샷 4개 넣어서 주실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요. 리타 난 항상 먹던 차로.”
주문을 받은 리타가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할 때, 다운이 깜박했다는듯이 그녀를 불렀다.
“아, 그리고 리타. 다음 스케줄이 몇시지?”
“4시에 있습니다.”
“오늘 끝낼 수 있겠네. 오케이.”
지금이 두 시니까 두 시간 뒤에 다음 약속이 있는 것이다. 리타가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확인한 다운이 그에게 물었다.
“마실것이 들어오면 시작할까요?”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 그 전에는 한국에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다운은 그에게 숨돌릴 시간을 조금이라도 주고싶은 마음에 제안을 했다. 하지만 파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아뇨.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거든요. 이미 너무 시간을 많이 소비했습니다. 사직야구장의 네이밍 라이트가 풀린다는 소식을 제가 언제 들었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한 10월 쯤 듣지 않았을까요?”
“6월에 들었습니다. 물론 구단 관계자가 아니라 다른 루트로 듣긴 했지만, 이미 시호크스 내부에서는 6월부터 구장의 네이밍 라이트를 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6월쯤 다른 루트라면 아마 부산 시와 연관된 루트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때 곧바로 움직여서 본사에 돌아와서 사직야구장의 네이밍 라이트를 샀을 때의 장점에 대해 설득하고, 연계된 사업방안을 짜냈죠. 모든것을 준비해놓았습니다. 시호크스에서 네이밍 라이트를 판다는 것만 딱 알리면 바로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뒀죠. 그런데 그 권한을 누가 낚아채갔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낚아챘다는 표현은 듣기 좋지 않네요. 저희는 시호크스와의 제휴과정에서 정당하게 구장의 네이밍 라이트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경로로 정보를 입수한 그쪽과는 전혀 다르게, 구단의 총 관리자인 단장과의 독대를 통해서 알아내고, 따낸 사실이죠. 엄연히 말하자면 그쪽에서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키고 있었던거겠죠. 뭐 좋게 말하자면 미리 준비를 열심히 한거겠지만요.”
“현대 사회에서 정보를 빠르게 얻는 것도 능력입니다. 정보는 곧 힘이자 돈이죠. 그걸 모르시는 분은 아니실텐데 김칫국이라고 하니까 조금 기분이 좋지 않군요.”
“현대 사회라······. 자유 경쟁이 허용되는 시장 상황에서 낚아챘다는 말을 사용하시는 분이라 정보가 힘이자 돈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어떻게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기 위한 파머와, 그걸 막기위한 다운의 치열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절대 갑의 위치는 다운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머는 이미 한 번의 제안을 보낸 상황. 만약 다운이 이 제안에 만족했다면, 파머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운은 ‘협상’이라는 단어를 꺼내 그를 불렀다. 이 말은 곧 더 많은 돈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파머는 어떻게든 다운이 돈을 올리지 못하게 막아야했다.
다운은 그와 반대로 어떻게든 금액을 낮추려는 그의 저항을 무력화해야했고.
‘사직을 제외한 다른 구단에서는 이미 네이밍 라이트 계약을 맺고 있거나, 계획이 없는 팀들이야. 시호크스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아마존은 우리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어.’
‘어차피 이 정도의 금액을 투자할 곳은 우리 아마존밖에 없어. 코스트코 놈들이 제안해봐야 얼마나 제안했겠어. 제발 적당히 먹고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정도는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수위높은 신경전이 아무렇지 않게 오갈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과도한 신경전은 서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달칵
두 사람의 신경전이 과열될 수도 있는 그 타이밍에 리타가 음료를 들고 들어왔다. 적당한 타이밍에 리타가 들어와준 덕분에 두 사람의 신경전이 끊겼다.
리타로 인해 신경전이 끊긴 틈을 타서 다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건 확실한데, 지금와서 신경전을 더 이어나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커피 한 모금 딱 드시고, 슬슬 진짜 협상에 들어가시죠.”
파머도 신경전을 길게 끌 생각은 없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한숨을 돌린 두 사람은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물꼬를 튼 건 파머였다.
“이렇게 저희를 부르신걸로 봐서, 저희가 제안했던 금액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희 측에서 올려드릴 수 있는 금액은 50만 달러가 한계입니다. 그 이상 투자하기가 쉽지 않아요. 솔직히 그 이상이면 메이저리그 주요 구단의 네이밍 라이트를 사오는게 훨씬 낫다는거 아시잖습니까."
최근 맺어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주요 네이밍 라이트 계약들을 살펴보면 1000만 달러 언저리에서 이루어졌다. 그것도 10년, 20년짜리 계약을 하면서 말이다.
그에 비하면 레이스가 가진 사직야구장의 네이밍 라이트에는 이미 850만 달러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이 제안된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원래 시호크스에 제안할 금액보다 이미 올라간 금액입니다. 원래 저희는 시호크스에게 400만 달러를 제안하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10년 계약으로 말이죠.”
해가 가면 갈수록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같은 값이면 10년 뒤의 1달러는 오늘의 1달러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들이 네이밍 라이트 계약을 할 때 계약기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는 것이고.
아마존이 한국 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그 시작이 아니었다면 아마존에서도 절대로 한국 시장에 이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레이스가 중간에 들어오면서 금액이 두 배로 이미 올랐어요. 저희 측에서도 50만 달러 이상은 더 드리기 힘듭니다.”
파머는 단호하게 말한 뒤 슬며시 눈을 돌려 다운의 얼굴을 살폈다.
‘진짜 1000만 달러 가야하나······.’
다운에게 이렇게 말해놓긴 했지만, 원래 시호크스에 제안할 예정이었던 금액은 10년간 최대 연 500만 달러였다.
“코스트코에서도 뛰어들었다고합니다. 10년간 투자할 금액을 딱 반으로 줄인다고 생각하고, 5년간 1000만 달러 투자합시다!”
힘겹게 대표를 쫓아다니며 설득을 한 끝에 얻은 것이 바로 연 1000만 달러. 그런데 눈치를 보아하니 두 시간 뒤에 코스트코와의 약속이 잡혀있는 것 같았다.
‘코스트코에서도 이 정도 금액은 힘들겠지······?’
정보통을 통해 들은 정보에 의하면 코스트코에서 제안할 수 있는 최고액은 750만 달러였다.
‘우리가 최대 250만 달러를 더 투자하기는 하지만, 우리 쇼핑몰에서 티켓과 굿즈를 판매하면서 생기는 인지도를 생각하면 그 정도까지는 감안할만해.’
파머가 머릿속을 열심히 굴리며 다운을 살피고 있을 때, 다운 역시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넘어온 것 같은데?’
처음에 다운은 마치 다음 스케줄이 있는 것처럼 리타에게 물었다. 코스트코와의 약속은 물론이고 오후 4시에 있는 스케줄을 리타에게 다시 확인받아야할 정도로 다운은 멍청하지 않았다.
다운이 그녀를 불러 물어본 것은 파머에게 오후 4시에 새로운 약속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꺼낸 타이밍과 마지막으로 했던 말 역시 파머가 코스트코와의 만날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유도하기 위한 덫이었다.
그리고 눈치를 보아하니 파머는 자신이 깔아둔 덫에 착실히 걸려준 듯 했다.
‘이러면 이야기를 꺼내기가 쉬워지지.’
다운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파머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아무리 그래도 그 이상은······. 네? 하시겠다고요?”
파머는 다운이 한 번에 조건을 수락하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네. 수락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말씀하셨던 티켓과 시호크스 물품들 독점판매 부분에서도 허락을 받아놨습니다. 그럼 총 900만 달러가 되는거겠죠?”
“어······. 그렇죠?”
물론 다운은 이걸 그냥 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신 저희도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는 표현에 파머의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
“저희가 들어드릴 수 있는거겠죠?”
“물론이죠. 아마존에게는 식은죽 먹기나 다름없는 조건입니다.”
“저희 물건을 아마존, 그것도 21번가에서 독점으로 판매해주시죠. 그리고 그 판매 수익의 70%를 저희에게 주시는겁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단과의 제휴. 그 구단의 홈 구장에서의 개막전. 그리고 그 구단에서 가장 유명했던 선수와의 계약.
이 모든 것이 한데 맞물려진 상황이다. 인지도를 넓히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냄새가 솔솔나는 상황. 다운은 이 상황을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레이스가 직접 뛰어들기는 힘들었다. 해외배송은 물론이고, 레이스가 직접 판매까지 담당하기에는 신경쓸게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운은 아마존의 유통망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아마존이 판매와 유통을 맡아준다면 한국에서 레이스 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테니까.
아마존이 거절하면 어떡하냐고?
‘절대로 그럴 일 없지.’
아마존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세계 시장을 노린다는걸 알고 있을거다.
아직까지 해외로 판매할 수 있는 루트가 적어서, 대부분의 상품을 해외직구로 구매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아마존이라면 이 ‘독점 판매’ 물품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비록 레이스 한정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왜?
일단은 레이스에서 최근 파는 굿즈는 다른 구단에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퀄리티가 좋다. 그리고 종류도 다양하다. 미국 내에서도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이라고 다르진 않을거다.
레이스 한정 판매를 실적으로 사무국, 혹은 다른 구단들에게 보여줄 실적이 생긴다는 것도 컸다.
파머는 망해가는 동북아 지부장을 맡아서 일으키고 있을 정도로 유능하고, 아마존에서도 밀어주는 인재다. 그러니 당연히 이 정도 쯤은 생각할거다.
아니나다를까 생각을 정리한 파머가 입을 열었다.
“70%는 무리입니다. 이미 갖춰진 유통망에 배송료까지 생각하면 남는게 없어요. 60%는 어떻습니까?”
“대신 그토록 원하던 한국 내에서의 인지도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늘어나겠죠. 거기에다가 추가적인 수익을 얻는 건 물론이고요. 뭐 그래도 힘드실 것 같으면 가운데인 65%로 하죠.”
“65%.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파머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운은 그 손을 맞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184화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