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돌발상황 발생이다 >
한국에 있는 열흘간 다운은 진성찬의 가족들의 이사 준비와, 잔디 개보수, 대놓고 관심을 표했던 한국 유망주들을 만나는 등의 일을 하면서 정신없이 보냈다. 한국에서 해야할 모든 일을 끝낸 다운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구장으로 향했다.
다운이 프런트에 출현하자 리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단장님 집에 안가셨어요?”
다운의 한국 출장은 18일부터 29일까지였다. 오늘 도착하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당연히 집에서 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다운이 그것도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출근을 했으니 놀랄 수 밖에.(물론 뒤에 있는 프레슬리는 죽상이었다.)
“회의 소집해줘 리타.”
“파트장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회의를 소집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파트장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간단하게 회의 하나만 합시다.”
최근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미국 진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특히나 글로벌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VTS와 같은 아이돌로 인해서 그 진출이 가속화되었다. 탬파베이 지역에서도 코리안타운은 없지만 그래도 중심부에서는 심심찮게 한국어 간판을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이 기회를 틈타 미국 시장에 진출을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기업들 중에서도 한국 시장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기업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마존닷컴이 그 예시 중 하나다.
아마존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쇼핑업체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한국에만 있는 팡팡이 미사일 배송을 앞세워 한국 온라인 쇼핑계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팡팡이 아니더라도 늦어도 이틀이면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아마존의 그 느린 배송을 감안하고서라도 이용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마존은 한국 시장에 들어가기보다는 인터넷 쇼핑업체와 손을 잡고 전략적 제휴를 하는데 그치고 있었다. 그마저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볼 수 없는 정도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해외 기업들이 유독 한국 진출에 실패하는 이유에는 관세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없다던가, 이미 한국기업이 알을 제대로 박아놔서 들어갈 틈이 없다던가 하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름값이 떨어진다는 것도 분명 한몫할거야.”
사람들은 대부분 쓰던 것을 그대로 쓰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써봐서 장단점을 아니까.”
“그래도 나한테는 이 브랜드가 제일 맞더라.”
“이제와서 다른 제품을 배우기에는 너무 귀찮아서.”
이런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제품 말고 다른 경쟁력있는 제품을 알지 못해서.”
라는 이유로 쓰던 제품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광고방법은 계속해서 제품 명을 때려박아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 이닝마다 중계진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언급해주는 곳이 바로 구장 명. 네이밍 라이트는 그런 기업들에게는 완벽한 홍보 수단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야구팀의 네이밍 라이트를 얻었지.”
다운은 이 네이밍 라이트를 바로 판매할 생각이었다.
“브래드?”
다운에게 호명된 심슨은 곧바로 화면을 띄웠다.
“저희가 리스트업한 판매 대상은 총 세 군데입니다.”
코스트코 홀 세일
아마존닷컴
디즈니
“원래는 이외에도 일본 기업이라던가 중국의 기업도 리스트에는 올려놨습니다. 하지만 시호크스가 시민구단이 되기 이전의 모기업에 대한 악감정이라던가,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매 감정 등으로 인해서 일본 기업은 리스크가 큰 관계로 제외했습니다. 중국 기업의 경우에는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가진 불신 때문에 잘못하면 저희 이미지까지 하락할 우려가 있어서 뺐고요.”
“잘했어요.”
다운은 마저 설명하라는 듯 손을 굴렸다. 사인을 받은 심슨이 멈췄던 설명을 이어갔다.
“우선 코스트코 홀 세일부터 보시죠. 코스트코는 한국에서는 그 적수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한국에 있는 양재점이 상하이 점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전 세계 지점 매출 1위였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코스트코 사랑은 엄청나죠. 코스트코 측에서도 그런 한국을 아주 신경써주는 편이고요. 하지만 최근 Z마트 트레이더스 등의 토종 창고형 마트들이 연회비 무료를 슬로건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보통을 통해서 들은바에 의하면 코스트코에서도 떨어진 시장점유율을 의식했는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던 매장을 지방으로도 더욱 확장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특히나 그 중심에는 한국 내 제 2의 도시로 알려진 부산이 있고요. 지난 해 부산 권역인 김해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고, 5년 내에 부산에 추가적으로 두 개의 매장을 더 오픈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직 야구장의 네이밍 라이트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있겠네요.”
“친분있는 라인을 통해서 슬쩍 운을 띄워봤는데 안그래도 이번에 네이밍 라이트를 구매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그 사이에서 쏙 빼먹은거군요.”
“그쪽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그렇죠 뭐.”
어찌됐건 팔아먹기 아주 좋은 상대라는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존은? 거긴 인터넷 쇼핑몰 인수하면서 잘 되가는거 아니었어?”
“그렇게까지 잘 되어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마존이 한국 기업과 손을 잡고 들어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마존에서도 제휴하던 기업을 인수한 뒤 공격적으로 한국시장에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마지막은 디즈니다.
“디즈니는 사실 앞선 두 기업에 비해서 크게 의사를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부에 있는 지인에 의하면······.”
대체 심슨은 내부 지인을 몇 명이나 알고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레이스에서 최강자는 심슨이 아닐까?
“디즈니, 정확히는 마블 스튜디오 쪽에서 한국시장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한국에서 마블하면 끔뻑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거든요.”
“그렇다고해서 디즈니가 네이밍 라이트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원래라면 원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한국에서 추진중이던 디즈니랜드가 물건너가버린 상황이라 마블 시네마틱 랜드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그것도 부산에?”
다운의 말에 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히는 부산과 붙어있는 양산쪽에 지어진다고 합니다. 마블 시네마틱 랜드 부지의 구매는 모두 끝났고, 시의 승인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발표는 아직 안났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결정이 끝나고 담당자까지 모두 정해졌다고 했습니다. 2028년 완공을 목표로 달린다고 하더군요.”
2028년이면 앞으로 4년이다. 레이스가 네이밍 라이트를 가지는 5년 안에 완공이 되니, 구장 이름으로 관심과 기대를 계속해서 끌어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것이다.
“그러면 이쪽은 우리가 나서서 제안을 해봐야하는건가요?”
“네. 이 부분은 시호크스 측과도 이야기를 나눠봐야하긴 하지만, 만약 마블 쪽에 네이밍 라이트를 팔게 된다면 마블 스토어를 구장 내, 혹은 근처에 넣는 식으로 추가적인 홍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그래도 낡은 사직구장을 마블 캐릭터들로 꾸밀수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특이한 유니폼으로 이벤트도 많이 하는 편인데, 협업해서 유니폼을 만들 수도 있겠네요.”
좋은 세일즈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건 분명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마블, 그리고 디즈니에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디즈니 쪽 지인을 통해서 이야기를 한 번 흘려보세요. 그러면 어떻게든 이야기가 나오겠죠.”
“알겠습니다. 코스트코와 아마존에도 똑같이 저희가 네이밍 라이트를 얻었다는걸 알리겠습니다.”
다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는걸로 하죠.”
아직까지 안건들이 남아있긴 했다. 하지만 오늘은 2023년의 마지막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한 해 내내 바쁜 가장들에게 마지막 주말만큼은 빠르게 집에 보내주고 싶었다.
“다들 퇴근하세요. 오후 한 시가 지나도 구장에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내일도 출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다운의 말에 순식간에 사무실에 있는 모든 직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리타가 단장실 문을 두드렸다.
“단장님. 퇴근 안하십니까?”
“나도 곧 해야지.”
저녁에 스테이시 로저스와 함께 글라이드의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거기에 늦지않게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시간 안에는 퇴근해야했다.
“퇴근 전에 잠깐 해놓을게 있어서.”
“한국 출장 갔다가 집에도 안들리고 바로 구장 출근이라니. 어서 가서 쉬세요.”
“그럴게. 그러니 너도 얼른 퇴근해.”
오늘부터 토요일, 그리고 올 해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까지 스테이시와 함께 푹 쉬기 위해서 미리 일을 끝내두고 싶었다.
“오래 걸리시나요?”
“아니. 빠르게 끝나면 10분 정도, 늦어도 30분이면 끝날거야. 트레이드 이야기를 좀 할거라.”
“그럼 저도 단장님이랑 같이 퇴근하겠습니다.”
뭐 어차피 오래 걸릴 것도 아니고, 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로열스의 무어한테 전화 좀 연결해줘.”
“알겠습니다.”
로열스의 트레버 이스트우드를 영입한 다음에 깔끔하게 집에 가는 것. 그리고 글라이드에게 스테이시를 소개시켜주고, 주말을 꽁냥대며 보내는 것.
그게 바로 다운의 연말 계획이었다.
“2번으로 연결했습니다.”
“땡큐.”
전화를 받아들자 로열스의 사장인 데이튼 무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행복한 연말되게나.]
“데이튼도요. 혹시 뭐 다른 일로 바쁘신 건 아니었죠?”
[다행히 곧 딸 애 남자친구와 함께 식사약속이 있다는 것만 빼면 다른 바쁜 일은 없었어.]
“혹시 총들고 계신건 아니죠?”
[안타깝게도 처음 만난건 아니라서. 뭐, 이런 이야기 하려고 전화한건 아닐테고. 누굴 원해?]
이번 시즌 로열스의 트레이드 블럭에 올라와 있는 선수는 총 네 명. 이스트우드는 그들 중 하나였다.
“이스트우드를 원합니다. 그 대가로 프란시스 에스코바를 넘겨드리죠. 2년 남은 중견수를 넘겨주고 애슬레틱스의 미래라고 평가받던 에스코바와 교환한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요 데이튼?”
다운은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딜을 그대로 꺼냈다. 이 정도 딜이라면 무어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수락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다운이 생각했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되겠는데 다운.]
무어의 답에 다운의 미간에 골이 생겼다.
“데이튼. 너무 욕심을 부리는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내가 더 많은 대가를 원해서 그러는걸로 착각한 모양인데, 그런게 아냐.]
“그럼?”
[이스트우드는 막 세 시간 전에 에인절스로 넘어갔어.]
돌발상황 발생이다.
< 181화 - 돌발상황 발생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