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80화 (180/268)

< 180화 - 한국 출장(5) >

“이 선수가 대체 왜 우리 팀에 맞다는거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다고해서 우리가 못잡을거라는 마인드는 어디서 나온 마인드입니까? 어떻게든 파고들 틈을 만들어 오세요.”

“프랜차이즈라서 계약을 해야한다? 그런 어설픈 생각은 버리세요! 그 연봉 당신이 줍니까? 시에서 받아오는거잖아요? 팬들을 어떻게 끌어모으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미래를 보고 예산을 써야하는겁니다. 그게 아니면 시호크스에 미래는 없어요!”

시호크스 프런트 내에 있는 직원들에게 단 한 번도 순순히 yes를 외쳐준 적이 없던 신민국은 다운의 앞에서는 예스맨으로 전락해버렸다.

“제휴는 몇 년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적어도 두 턴을 돌려봐야 제휴가 성공적인지를 알 수 있을테니까 5년으로 하시죠.”

“5년! 어떤 조건이든 말만 해주세요!”

메이저리그 내에서 KBO팀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 기회를 놓칠 단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민국은 오히려 다운이 제안하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나서서 제안했다.

“구장 내에 중대형 매장 자리가 비는데, 거기에 레이스 매장이 들어서면 딱일 것 같네요!”

“시호크스 매장 자리 빼서 주시는건 아니죠?”

“외야에 광고 자리도 드릴까요?”

“아뇨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외야에 저희 구단 광고를 넣는다고 해서 효과가 있지는 않으니까요.”

“혹시나 더 필요한게 있으시면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주십쇼! 무조건 들어드리겠습니다!”

다운은 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무조건 수락한다고 하셨죠?”

다운의 눈빛에 신민국의 얼굴이 순간 살짝 굳었다.

“아하하.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을하기에 앞서 다운이 선수를 쳤다.

“그렇다면 잔디를 갈아주시죠. 아까 보니까 잔디가 영 엉망이더라고요.”

사전 답사를 갔다왔던 직원들이 사직야구장의 잔디가 좋지 않다는 말은 이미 했었다. 하지만 보고서는 실물을 전혀 담지 못하고 있었다.

“잔디는 고르게 되어있는 것처럼 되어있는데, 군데군데 움푹 들어간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잔디가 그대로 뜨는 곳도 있더군요. 아무리 오프시즌이라고해도, 이건 상태가 너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선수들의 부상위험도가 너무 높아요. 그리고 배수시설도 잘 안되어 있어서 올 시즌에만 물난리가 여러번 났었다면서요? 보니까 흙이 들어가 있는 곳들은 다 그때 망가진 것처럼 보이네요. 하는 김에 배수시설까지 한 번 더 정비합시다.”

“지난 겨울에 막 잔디 갈았는데······.”

이 정도 넓이의 구장이면 잔디를 한 번 가는데만 100만 달러 정도가 소모된다.

“거기에다가 배수시설까지면······.”

정확한 견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배는 들지 않을까싶다. 그러다보니 신민국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다운은 여기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전 세계 야구팬들이 주목하는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바로 여기 시호크스의 심장인 사직에서 열리는데 구장의 상태가 좋지 못해서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과연 구단 홍보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제휴를 맺고 홍보를 한다해도 시호크스는 ‘선수들의 안전과 플레이에 신경을쓰지 않는 구단’으로 낙인찍힐겁니다. 그렇게 되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구단에서 시호크스로 넘어가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줄어들겠죠? 저희도 싫다는 선수들을 강제로 넘길수는 없으니까요. 그걸 원하시는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다운은 이들을 자극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우천을 대비해서 서브 구장으로 창원공룡구장이 선정된건 아시죠?”

창원 공룡구장은 원래는 개방형 구장이었지만, 2020년 우승 기념으로 개폐형 돔을 추가로 설치했다. 물론 설계 당시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서 태풍이 올때와 같이 비바람이 강하게 불때에는 완벽하게 비를 막아줄 수는 없었지만, 경기를 할 수준까지는 막아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저야 진성찬 선수도 있고, 이렇게 제휴를 맺자는 이야기도 나와서 사직야구장에서 경기를 하고싶죠. 하지만 저희 구단주님이 또 선수들의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워낙에 철저하신 분이라······.”

“구장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어쩌면 그럴수도 있다는거죠. 구단주님의 입김은 사무국에도 충분히 닿으니까요.”

다운이 눈을 가늘게하고는 신민국과 눈을 맞췄다.

“혹시 창원 사우르스의 홈에서 저희가 경기하는거 보고 싶은건 아니죠?”

은근한 다운의 말에 신민국이 탁자를 내리쳤다.

쾅!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죠!”

부산경남권 라이벌인 사우르스에게 개막전 개최지를 빼앗긴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배수시설까지 모두 갈아엎는건 더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신민국이라고해서 사직의 잔디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매 년마다 잔디로 인해서 부상자가 최소 세 명은 나오는걸 단장인 그가 모를리가 없었다.

“선수들에게 더 좋은 잔디 위에서 뛰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라고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저희 예산이 허락하지 않아서······.”

기업처럼 굴러가는 메이저리그 구단과는 다르게, KBO에서는 시민구단, 혹은 기업구단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시호크스는 신민국이 온 3년째 시민구단으로 운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부산이 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은터라 시에서 예산이 꽤 많이 나오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기업의 지원을 받는 다른 구단들에 비해서는 모자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 해 정비했던 잔디를 다 갈아엎는건 힘들었다.

하지만 다운이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저희 측에서 150만 달러씩 매 년 드린다고 했죠? 그 중에서 첫 2년간에 들어가는 300만 달러를 대신해서 잔디 정비를 하는걸로 하죠. 저희가 시공업체와 구단 잔디 관리사까지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다운의 말에 신민국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한국에도 잔디관리사들이 있긴하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의 잔디관리법을 따라가기는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다. 게다가 배수시설까지 모두 갈아엎어준다면? 비록 시설은 낡았지만 경기장 내부만큼은 메이저리그 부럽지 않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습니다. 그럼 5년의 네이밍라이트 비용 중에서 앞선 2년의 비용은 잔디와 배수시설 공사에 대한 것으로 대체하기로 하죠.”

다운은 그의 결정에 싱긋 미소지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리고 구장의 의료체계에 대해서도 조금 보강을 했으면 하는데요. 혹시 선수들이 다쳤을 때는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나요?”

“네. 저희는 24시간 상주하고 있는 앰뷸런스와, 제휴하고 있는 병원이 있어서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보고서 심폐소생술 중에도 앰뷸런스까지 이동할 수 있는 들것과 경사로를 도입해놨습니다.”

“완벽하네요.”

다운이 워낙에 완벽하게 준비해갔기에 신민국이 거부할만한 건덕지는 없었다. 그래서 두 팀의 제휴는 큰 장애물 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하고 이야기를 나눠봐야하는거 아닙니까?”

“따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시 소속이기는 한데, 예산을 탈 때만 빼고는 제가 모든 일에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형식이거든요. 곧바로 사진 찍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한 가지. 제휴 발표를 조금 미뤄주실 수 있나요?”

“그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언제든지 가능하죠. 언제로 미뤄드릴까요?”

“신년까지 미루시죠. 새해 선물로 팬들에게 딱 소식을 전하는거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다운이 발표를 미룬 진짜 이유는 한국 기자들 때문이었다. 이미 양키스 단장 시절 한국의 기자들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경험해봤다. 만약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제휴 발표가 난다면 귀찮게 굴 것이 뻔했다. 그래서 자신이 출국하고 난 다음인 신년을 짚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원스런 신민국의 말에 다운이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5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저야말로! 큰 일도 끝났는데 식사라도 하실까요? 제가 죽여주는 횟집을 알고 있거든요!”

신민국과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온 다운은 호텔에 오자마자 넥타이를 풀고 핸드폰을 들었다.

To. 러셀, 심슨

네이밍라이트 따냈습니다.

“댄. 안 자고 있지?”

[네. 방으로 갈까요?]

“건너와.”

바로 옆 방에 있던 프레슬리는 다운의 호출에 금세 건너왔다.

“진성찬하고 만난건 어땠어?”

구진환의 가족들에게 티켓과 미국에서의 일정에 대해 설명해준 프레슬리는 쉴 틈 없이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진성찬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왔다.

“내가 없다고 뭐라고 하진 않았지?”

“단장님이 안오셔서 조금 서운해하는 눈치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장 특별보좌라는 걸 들은데다가, 한국어 리스닝만큼은 되는 사람이다보니까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좋아하더라고요.”

만약 그들이 프레슬리를 함부로 대했다면 상당히 실망할뻔 했다. 야구계에서는 초보이긴 하지만, 프레슬리는 엄연히 단장특별보좌로 다운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를 박대하는건 다운을 박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말 엄청 많지?”

그 당시가 떠올랐는지 프레슬리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괘, 괜찮았습니다.”

그의 얼굴만 보면 전혀 괜찮지 않았던 것 같지만, 다운은 피식 웃으며 넘겼다.

“가족들은 어떻게 한대?”

오늘 프레슬리가 그곳에 간 가장 큰 이유는 진성찬에게 가족들과 함께 오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선수들도 결국엔 사람이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고 힘을 내보려고 해도, 바로 옆에 자신을 서포트해주면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는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진성찬처럼 영어를 잘 못하지만 한국어로는 수다쟁이인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족의 부재가 크게 와닿을 것이었다.

전혀 연이 없는 지역으로 가야하는 그의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다운은 진성찬이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동행이 필수였다.

다운의 말에 프레슬리가 엄지를 위로 치켜세웠다.

“설득했습니다! 준비해간대로 탬파 지역의 범죄율이 타 지역에 비해서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저희가 추천하는 진성찬의 저택이 그 중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낮은 이버시티에 있다는 점을 위주로 설득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저희 탬파 선수단에 있는 가족 모임이라던가, 자녀 케어 시스템 등을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단장님이 말한대로 한 마디를 덧붙이니까 끝나던데요?”

다운이 그에게 전해줬던 마법의 문장이 하나 있었다.

“아이에게 영어 조기교육을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한국의 교육열은 다운도 익히 당해왔기에 알고 있었다.

“그 말 딱 끝나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여보! 우리 같이 건너가자! 민아한테 좋다잖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난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가족들 다 건너오는걸로 결정났습니다.”

“역시 부모의 마음이란······.”

다운이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 그 때 폰이 울렸다.

From 심슨

준비해놓겠습니다.

< 180화 - 한국 출장(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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