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79화 (179/268)

< 179화 - 한국 출장(4) >

다운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프레슬리와 갈라섰다.

“그럼 부탁한다 댄.”

“알겠습니다.”

다운은 곧바로 김포공항으로 가서 부산으로, 프레슬리는 서울에서 구진환을 만나 하루를 머무는 스케줄이었다.

원래는 다운이 그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라스가 이를 반대했다.

[이번에 자네가 한국에 가게되면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다른 구단들의 시선까지 감당해야돼. 그 상황에서 구진환을 만난다? 대놓고 영입하겠다는 기사를 낸거나 다름없어. 그러지 말고, 이번에 레이스 투어 이벤트 한다며? 거기에 구진환 가족을 끼워넣어. 그러면 편하게 홈그라운드도 소개시켜주면서 이야기도 해볼 수 있지. 어때?]

적이 아니라 아군이 된 보라스의 서포트는 확실히 든든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은 짚어주기도 했고, 다른 구단들의 관심을 차단시켜주기까지했다. 게다가 레이스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덤이었다.

여하튼 보라스와 이야기를 나눈 다운은 그들과 한국에서 만나는 대신, 프레슬리를 통해 탬파행 비행기표와 스케줄을 알려주는 것으로 만남을 미루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부산으로 가는거지.’

부모님은 만나지 않냐고?

[어머 미안 어쩌지? 엄마랑 아빠는 호주에 있을 예정인데! 한 여름에 경험하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이번에 와보기로 했거든! 한국에서 맛있는거 먹고 잘 놀다가 가렴!]

그런고로 부모님과의 만남은 이번에 없을 예정이었다. 게다가 부산에 가서도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라 애초에 만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김해공항에 도착하자 시호크스에서 보낸 직원이 팻말을 들고 다가왔다.

“정다운 단장님이십니까?”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다.

“시호크스 단장인 신민국 단장님 맞으시죠?”

“하하! 목소리만으로 눈치채셨나보네요!”

전화를 통해서 만난 적은 있지만, 실제로 마주한 적은 한 번 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특색있는 목소리와 사투리 안쓰는 척 하는 표준말 덕에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단장님이 직접 오실줄은 몰랐네요.”

“하하하! 레이스에서도 직접 단장님이 오시는데, 저희도 단장이 나가야죠!”

호쾌하게 웃은 그가 다운의 캐리어 하나를 낚아챘다.

“이쪽으로 오시죠.”

다운은 그의 뒤를 따라 차에 올랐다. 두 사람만이 있는 공간이 되자 신민국 단장이 한층 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제가 여기 나온건 단장님이 제안하셨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의논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제휴라니!”

다운이 여기 온 이유 중 가장 큰 것. 그건 바로 부산 시호크스와의 제휴였다.

이 아이디어의 시작은 미미했다.

“이번 부산 개막 시리즈를 포함해서 이벤트들로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먹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시호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는 진성찬까지 영입하면서 그들을 활용할 최적의 시기이기에 레이스 프런트는 공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제휴라는 말만 전달해드리지 않았나요?”

“하하!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걸 어쩌겠습니까? 가는 길에 설명해주시죠. 어차피 도착하려면 1시간은 걸립니다.”

“우선 저희 레이스에서는 용병 선수들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역시.”

제휴라는 이름하에 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조항이 바로 용병 선수 수급이었다.

지난 시즌부터 변경된 조항으로 인해서 KBO구단들은 용병을 최대 6명까지 보유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괜찮은 선수 셋을 1군에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구단마다 최대 세 명까지 영입할 수 있었던 그 전에 비해서 각 구단별로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의 숫자가 두 배로 뛰었다. 말이 두 배지, 리그 전체로 봤을 때는 30명까지 찾을 수 있던 외국인이 순식간에 60명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30명일때도 찾기 힘들었던 괜찮은 외국인들을, 배는 더 찾아봐야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레이스에서 괜찮은 선수들을 공급해준다면?

“조건이 따로 붙겠죠?”

“네. 저희는 돈이 급하거나, 트리플 A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구단 사정상 자리를 만들 수 없는 25세 이상의 선수들을 제공할겁니다.”

어리고 포텐이 높은 선수는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로 줄 생각이 없었다.

“25세라······.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 나이 커트라인이 더 낮네요?”

다운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원래 다운은 27세 이상의 선수들을 제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스와 클라인이 결사반대를 외쳤다.

“안됩니다. 27세 이상의 선수들은 저희도 그리 많이 보유하고있지 않을뿐더러, 저희가 이런 임대식의 선수 제공을 하려는 이유를 생각하셔야합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선수를 제공하는 이유가 뭡니까?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와서 좋은 활약을 하는 선수들이 최근에 많으니까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윤경찬이 메이저리그에서 대차게 말아먹은 것과는 반대로 매 년 KBO에서 역수출된 용병들은 그 값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특히나 타자보다는 투수들 쪽에서 그런 경향이 짙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타자들 중에서는 변화구를 못치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강속구에 대처가 안되는 녀석들입니다.”

강속구에 대처가 안된다는 것은 결국 타석에서 70%의 확률로 지고 들어가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런 경향이 한국에 갔다온다고해서 바뀔리가 없었다.

하지만 투수들의 경우는 달랐다. 대부분의 한국 투수들은 메이저리그 투수들보다 변화구 승부를 선호했다. 그러다보니 타자들 역시 패스트볼보다는 변화구 타격에 강점이 있는 편이었다.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구를 갈고 닦아야 한다는 말. 그래서 한국에서 돌아온 투수들을 보면 다들 가기 전보다 변화구가 날카로워진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또 하나.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이 아래위로 긴 직사각형에 가깝다면, 한국의 스트라이크 존은 조금 더 옆으로 넙대대한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좌우를 활용하는 제구력이 좋아져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투수들은 안정적으로 선발 경기를 뛰면 뛸수록 경기를 운영하는 노하우를 배우고 좋아지기 마련이다. 구단에서 집중적으로 키우는 선발들에 밀려서 임시 선발이나 불펜으로 주로 출전하기 시작할 25세 이상의 투수들에게는 이런 기회 자체가 엄청난 성장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한국에서 2년 정도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은 다시 저희 구단에 데려와서 쓸 수 있게 해야합니다.”

“제휴 협정에 따라서 저희 구단에게 영입 우선권을 주는거죠. 대신 선수에게도 메리트는 있어야하니까 한국에서 받던 연봉의 80%는 보전해주고, 40인 로스터에는 무조건 넣어주는 것으로 하시죠.”

적어도 2년 정도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줘야 데려올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때의 나이가 27세 시즌이라는 어린나이면 더 좋다. 이런 생각 때문에 25세 이상의 나이까지 커트라인이 낮아진 것이다.

결국 이 제휴가 이루어진다면 레이스는 25세 이상의 잉여 전력이 될 수 있는 선수들에게 돈 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야구계에는 없는 ‘임대’와 비슷한 형식으로 선수를 키울 수 있게 된다.

사무국과 선수협 모두 이번 계획에 대해 긍정을 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선수들에 대한 구단 내부 스카우트 리포트까지 제공해주십니까?”

신민국이 날카롭게 찔러왔다.

만약 저 선수들에 대한 스카우트를 따로 더 해야한다면 시호크스로서도 제휴를 맺을 이유가 없었다. 더 좋은 선수가 있을수도 있는데, 굳이 레이스가 제공하는 선수들하고 계약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받는 리포트와 정확히 같은 리포트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로 저희가 해드려야 할 것은요?”

말이 선수를 제공하는것이지, 결국에는 레이스가 가지고 있었던 선수에 대한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대가는 적지 않을 것이었다.

“올 시즌부터 사직 야구장 네이밍 라이트를 파신다면서요? 우선 계약기간 동안에는 그 권리를 가지겠습니다. 추가적으로 연간 150만 달러도 지원하는걸로 하죠.”

한국 야구에서 구장 네이밍 라이트의 가치는 아직까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보라스의 정보통을 통해 들은 것에 의하면 500만 달러 수준에서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시호크스는 한국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많은 팬을 보유한 팀 중 하나다. 그런 팀의 홈구장의 이름을 사서 한국 시장에 들어가는 입구로 삼을 수만 있다면 150만 달러는 헐값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게 연간 500만 달러 수준인건 아십니까?”

신민국의 말에 다운은 마치 몰랐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저희가 지원하는 금액을 더 낮춰도 되겠군요. 매 년 새로운 선수를 최대 6명까지 지원해주는 값에, 레이스 스카우트 팀과 팜에 있는 코치들이 선수들을 낱낱이 평가한 리포트까지. 거기에 메이저리그에서 정확하기로 손꼽히는 제가 마지막으로 검토도 해드릴 예정이죠. 이 값만 해도 35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는 할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닙니까?”

“그것만 요구하시지는 않을테니까요.”

당연한 이야기다.

“야구장 내에 저희 레이스 상품을 파는 스토어를 내주시죠. 크기는 상관없고, 물량도 저희가 알아서 지원하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측에서 너무 손해가 많은데요?”

지금까지의 내용만 따지자면 시호크스가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운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돌릴 카드를 쥐고 있었다.

“그리고 제휴 시리즈를 한 번 정도는 할 생각입니다.”

“제휴 시리즈가 뭐죠?”

들어본 적 없는 단어에 신민국의 고개가 조수석쪽으로 틀어졌다.

“앞!”

“넵!”

다운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돌아왔던 그의 눈이 다시 앞을 향했다.

“별거 없습니다. 제휴 구단의 유니폼과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시리즈를 치르는거죠. 한 경기는 홈 유니폼, 한 경기는 원정 유니폼, 한 경기는 스페셜 유니폼.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다운의 설명에 신민국의 눈이 땡그래져서 조수석으로 또 다시 돌아갔다.

“제발 운전 중에는 앞 좀 보세요 앞!”

흥분한 신민국의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세웠다. 하지만 신민국의 흥분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니! 별거 없는게 아니잖습니까!”

다운이 가져온 카드는 시호크스에게는 다시 없을 엄청난 제안이었다. 메이저리그 팀이 정규 시즌 시리즈에서 시호크스의 유니폼들을 입고 뛴다니!

시호크스가 미국 시장에 발을 뻗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딱 3일뿐일지라도 이는 엄청난 홍보효과로 돌아올 것이다.

“그, 그게 됩니까?”

“사무국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시호크스라는 마크 대신에 레이스 마크를 새기면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대신 시호크스에서도 저희 유니폼을 입고 제휴 시리즈를 해주셔야합니다.”

여기까지 제안한 다운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손해가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 179화 - 한국 출장(4)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