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한국 출장(3) >
“이스트우드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수비력과 빠른 발이지. 다른 장점이라도 있어?”
2할 초중반의 타율과 간신히 10홈런 정도를 넘기는 파워는 도저히 장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3할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출루율 정도가 장점으로 쳐줄 수 있는 정도랄까?
“제가 생각하는 이스트우드의 최고 장점은 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
다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타격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네.”
미친놈을 보는 듯 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다운에게 프레슬리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스트우드는 수비보다는 타격에 훨씬 더 강점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뒤에는 그 장점이 스피드와 넓고 단단한 수비로 전환되었죠.”
“그건 흔히 있는 일이잖아.”
마이너리그에서는 잘하다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와서는 그 높은 장벽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는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타격성적을 눈에 띌 정도로 강화하는 것 보다는 수비실력이나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가시적으로는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빅리그에 올라와서는 타격에는 힘을 좀 덜고, 수비와 주루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대수비나 대주자로 라인업에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중요한건 그 장점이 전환된 시점입니다.”
“시점이라면······.”
“2019시즌은 몇 경기 깔짝 뛰었으니까 제외하고, 이스트우드가 주전 중견수로 올라선건 2020년 6월이었죠. 당시 주전 중견수였던 왓슨의 부상으로 인해서 콜업된 뒤로는 카우프먼 스타디움에 딱 들어맞는 빠른 발과 넓은 수비범위로 로열스의 계획에 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난 2021년, 이스트우드는 변화를 꾀합니다. 바로 타격에서도 한 층 더 업그레이드 된 자신을 보여주겠다는 변화 말이죠.”
프레슬리는 패드를 조작해 2021년 이스트우드의 성적을 띄웠다.
시범경기 - 0.434/0.521/0.671
5월 1주차까지 - 0.312/0.419/0.635, 5홈런
“적어도 시즌 초반까지의 이스트우드의 질주는 완벽했습니다.”
다운은 진지한 표정으로 프레슬리의 말을 받았다.
“5월 2주차에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어? 5월 2주차에 터진 사건 아십니까?”
놀라는 프레슬리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겠어? 심지어 그때는 나 야구도 안보고 있었을때야.”
“그럼 왜······.”
“딱 봐도 5월 2주차때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게 보이잖아. 그래서 한 번 말해봤지. 계속 이야기 해.”
‘난 또 뭔가 아는줄 알았네.’라는 중얼거림이 살짝 들리긴 했지만 살포시 무시해줬다.
“시범경기부터 5월 1주차까지의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사실 이스트우드의 수비력과 스피드는 타격과 반비례해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벌크업을 했나보네.”
“네. 자신에게 부족한 파워를 늘리기 위해 근육을 늘리고, 타격에 조금 더 집중하다보니 수비력과 스피드가 떨어진거죠.”
수비력과 스피드를 유지한 채로 근육을 키우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마이크 토켈슨조차도 근육을 더 키우면서 스피드를 유지하지 못하니까.
충분히 빠르지 않냐고?
그건 그냥 토켈슨이 동시에 파워와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치가 다른 사람에 비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포커스가 타격에 맞춰져 있으면 수비에서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선택과 집중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스트우드가 로열스 소속의 선수라는거죠.”
대칭형 구장으로 폴대까지의 거리는 100.6m, 좌우 중간까지는 118m, 가장 깊은곳까지는 125m의 드넓은 외야를 가진 카우프먼 스타디움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외야가 넓기로 손에 꼽히는 구장이었다. 홈 구장이 그런 특성을 가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로열스의 외야수들은 특징이 정해져 있었다.
1. 수비범위가 넓을 것
2. 어깨가 강할 것
3. 출루를 잘해서 주루로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을 것
4. 홈런보다는 2, 3루타를 많이 칠 수 있는 스피드가 뛰어난 중장거리 타자일 것
5. 그게 아니라면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질 것
여기서 1, 2번은 기본소양이고, 3, 4, 5번은 선택지다.
“이스트우드는 로열스가 원하는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진 선수가 될 수는 없었을겁니다.”
로열스가 원하는 파워는 한 시즌 홈 구장에서 적어도 20홈런 이상을 때려줄 수 있는 파워다. 이스트우드가 그렇게 되는게 불가능하지는 않을테지만, 결코 쉽지는 않을거다.
“그래서 이스트 우드는 4번을 택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가 꽤나 좋았죠. 문제는 그러면서 수비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첫 시즌 DRS가 +13이었는데,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2까지 떨어졌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수비지표에 얼마나 큰 문제가 생겼는지를 알 수 있죠.”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10을 넘어가던 DRS가 10점이 넘게 떨어졌다는건 심각한 문제였다.
“게다가 5월 2주차의 첫 시리즈인 인디언스와의 홈 3연전에서 실책을 무려 5개나 기록했습니다.”
믿기지 않는 기록에 다운의 입이 떡 벌어졌다.
“혼자서?”
“네. 첫 경기 하나, 두 번째 경기 하나, 세 번째 경기에는 5이닝만에 실책 세 개를 적립하고 대수비와 교체되어서 나갔습니다. 그 당시에 햄스트링에 불편함이 있는 상태에서 출전을 강행했다가 벌어진 일이었다는 기사가 뜨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죠. 구단 오피셜이 아니라 선수 본인의 인터뷰이기도 했고, 햄스트링에 불편함이 있었던 선수가 뛰는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정말로 실수였던거네.”
“네. 그래서 당시에 야구 커뮤니티들에서는 ‘타격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벌어진 일이다.’라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 당시 이스트우드가 인디언스와의 시리즈에서 타격 슬럼프를 겪고 있었거든요. 세 경기를 합해서 출루 한 번이 끝이었으니까요.”
“타석에서의 문제를 수비까지 끌고 들어왔던거네.”
“다들 그렇게 예측하고 있죠. 그렇게 마이너로 내려간 이스트우드는 두 달이 지나서야 다시 빅리그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는 두 시즌 반 내내 지금과 같은 출루율과 수비, 스피드로 먹고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됐죠. 여기서 제가 하고싶은 말은 수비력을 조금 낮추는 대신에서 공격력을 증가하는 쪽으로 간다면, 이스트우드는 더 매력적인 선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겁니다.”
한 번 트이기 시작한 프레슬리의 입에서 지금까지 참아왔던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지금은 출루를 의식해서인지 좌타석에서만 들어서고 있지만, 이스트우드는 기본적으로 스위치 히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사하는 구장의 외야가 좁은건 아니지만, 카우프먼 스타디움과 비교한다면 넓은 편이라고 하긴 힘들죠.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 팀에는 중견수를 맡을 수 있는 수비력이 좋은 선수가 셋이나 있습니다. 마이어, 스프라우트, 앤더슨까지 모두 평균 이상의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는 선수죠. 어깨가 좋은 이스트우드가 평균 정도의 수비력만 보여준다고 해도, 마이어나 스프라우트가 넓은 범위를 커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지금 당장 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 이스트우드를 데려와서 레이스에게 조금 더 맞게 타격쪽에 힘을 실어주는 타입으로 변경시킨다. 계획만 들으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계획한대로만 돌아간다면 이 바닥에서 실패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우리가 원하는건 적당한 타격을 가진 백업 외야수야. 브라이언 정도만 해줄 수 있는 외야수면 더할 나위가 없고. 그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21년 초반에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포텐셜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스트우드의 최대 문제점은 수비에 집중하면 타격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중견수 자리에서 물러나고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에 타격을 포기했었겠죠. 하지만 수비부담이 덜한 레이스의 코너 외야를 맡겨서 타격에 집중하게만 만든다면 자신의 포텐셜을 막힘없이 발휘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줄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경험을 많이 쌓았으니까 더 나은 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만약 플레이스타일을 제대로 바꾸지 못한다면 그 반작용은 어떻게 받을거야?”
“그 부분도 제가 영상을 보면서 분석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더라고요. 2020년의 이스트우드의 타격과, 2021년 빅리그에 돌아온 뒤의 타격이 완전히 같더라고요.”
그 점은 흥미롭다.
“초반에 잘나가던 타격 폼은 그때하고 또 다르고?”
“네.”
그러니까 이스트우드는 2020시즌 폼에서 2021시즌 초반 타격이 좋았던 폼으로 변환했다. 그런 뒤 팀에게 한 소리를 듣자 다시 2020시즌 초반의 폼으로 돌아가면서 수비에 집중하는 타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이너로 내려가서 초반 몇 경기 동안에는 21시즌 초반 좋았던 폼으로 타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본인이 집중해야하는 정도가 컸던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수비가 여전히 흔들렸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폼으로 돌아가자 오히려 생각없이 잘 쳐지고, 수비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거다. 그 이야기지?”
“네. 그리고 생각보다 그 전환이 빠르고 정확하더라고요.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빠졌던 2주를 제외하고 6주를 마이너리그에서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4주를 자신에게 맞는 폼을 찾아 헤맸죠. 그러다가 결국 안되겠는지 남은 2주는 예전의 폼으로 돌아와서 적당히 치르더군요.”
“그리고 콜업이 되었고?”
“네. 그런 점들에서 미루어봤을 때, 그에게 어느정도 시간을 주어서 타격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더라도 괜찮을 거라는 계산이 섰습니다. 만약 본인이 알아서 잘 적응하면 좋은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예전처럼 돌아와서 우리 팀에서 쓸 수 있는 타격은 별로지만 발 빠르고, 수비 좋고, 출루율 나쁘지 않은 외야수 하나는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남은 계약도 무척이나 좋습니다. 바로 저번 주에 로열스랑 2년 5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세드릭 우드먼과 1:1 교환이 최선의 수라고 생각합니다. 세드릭의 성장세는 느려졌고, 저희에게는 성작 가능성이 좋은 많은 유망주들이 있으니까요. 만약 세드릭이 주전급 활약을 해줘야했다면 모를까, 저희에게는 이제 로드리고가 있잖습니까? 레이몬드와 에스코바 모두 내야 백업 정도는 충분히 수행 가능한 선수들입니다. 그들을 쓰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네요. 아! 그리고 혹시나 모르니까 카스트로에게도 코너 외야수 훈련을 시키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신에 파워도 있는데, 저희 팀에서는 내야 자리가 쉽게 나지 않으니까요. 저번에 들으니까 낙구지점을 포착하는 센스는 충분하다고 하더라고요. 혹시나 이스트우드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부터는 코너 외야를 준비시키는게······.”
솔직히 조금 놀랐다.
다운은 그가 괜찮다고 생각한 선수의 장단점에 따른 추천만 생각할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많은 것을 고려한 일일테니까. 조금 더 하자면 팀에 어떤 도움이 될 선수인지까지는 생각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레슬리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 계약조건 확인과, 그게 불발되었을때의 백업 플랜까지도 모두 생각해놓은 상태로 추천을 하고 있었다. 마치 다운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거지.’
자신과 비슷한 관점에서 보면서도, 자신이 보지 못했던 추천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오늘의 프레슬리는 다운이 원했던 그 역할을 정확히 해주고 있었다.
“좋아 댄. 스카우트 팀이랑 협업해서 이스트우드에 대한 자료 싹 긁어모아서 가능성 다시 한 번 체크해봐. 그리고 네가 생각했을 때, 그 정도 가능성 있는 선수 두 명 정도 더 체크해오고. 3일이면 충분하지?”
“F······.”
욕설이 살포시 들린 것 같긴한데, 가뿐하게 무시해줬다.
꼬우면 단장 하시던가.
< 178화 - 한국 출장(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