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77화 (177/268)

< 177화 - 한국 출장(2) >

탬파에는 은근히 한국인들이 많이 오질 않는다. 가까운 곳에 있는 올랜도에는 디즈니 월드가 있어서 훨씬 놀기도 좋고, 볼 것도 많다. 게다가 플로리다하면 딱 떠오르는 도시는 탬파가 아니라 마이애미다. 미국에서 가장 뇌우가 많이 몰아치는 동네인 탬파보다는 마이애미를 선호하는 관광객들이 훨씬 많았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

그건 바로 탬파에서 인천까지 직항이 없다는 하소연을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오래 걸리는데 경유까지 해야한다니······. 시간 아까워.”

애틀란타를 거쳐서 가장 짧은 경유를 이용하더라도 18시간이 걸린다. 스토브리그와 같은 중요한 시기에 18시간이라니! 원래라면 결코 이런 곳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직접 가야했다.

‘구진환 부모님을 만나서 안심을 시켜드릴 필요도 있고, 연막작전으로 가려놨던 친구들도 만나서 눈도장을 찍어줘야해.’

무엇보다 사직에 가서 부산 시호크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퍼스트 클래스 좌석도 이렇게 답답한데······.’

비즈니스나 이코노미 석에서 18시간 비행은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령하세요. 댄 프레슬리라고 합!니다. 조는 미쿡에서 와썹니다.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마싵는 메뉴주세요.”

다운은 옆에서 열심히 한국어 책자를 보며 연습하는 프레슬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댄.”

“네 단장님.”

“한국어 공부 꽤 많이 했나봐? 발음이 생각보다 좋은데?”

다운은 일부러 영어 대신 한국어로, 평소와 같은 스피드로 말했다. 그런데 프레슬리는 대부분의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듣는건 거의 문제 없습니다. 문제는 말하는건데······. 그래도 한국가면 많이 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다운은 프레슬리에게 냉혹한 현실을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었다.

“댄. 혹시 그거 알아?”

“뭘요?”

“우리가 다닐 예정인 서울과 부산에서는 네가 어떤 가게를 가더라도 영어로 이야기하면 대부분 알아들을거야.”

다운의 말에 프레슬리는 입을 떡 벌린 채로 굳었다.

“그, 그럼 지금까지 제가 한 건······.”

“아냐아냐. 그래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거야. 열심히 공부해둬.”

다운은 축 처진 프레슬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프레슬리는 그런 것에 쉽사리 무너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 한국어 책자를 덮었다.

“그나저나 단장님. 로스터 정리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프레슬리의 말에 한 켠에 미뤄뒀던 문제가 순식간에 다운의 눈앞에 나타났다.

“하아······.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걱정이다, 걱정이야.”

현재 레이스의 로스터는 아래와 같다.

(B/T)

SP rotation

1 - 조나 파인트(R/R)

2 - 리키 더지(L/L)

3 - 진성찬(R/R)

4 - 에릭 슈어홀츠(R/R)

5 - 에디슨 포레스트(L/R)

6 - 라일리 제이콥스(L/L)

RP

1 - 짐 토머슨(R/R)

2 - 토마스 애커슬리(L/L)

3 - 미치 베이커(L/L)

4 - 자비어 에르난데스(R/R)

5 - 리처드 로버트슨(R/R)

6 - 비니 맥그리프(R/R)

CP

찰리 제프리스(L/L)

마이너

대니얼 윌슨(L/L)

알렉스 알마다(R/R)

일단 투수진부터 살펴보자.

오프너들로 연명하던 지난 시즌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꽉꽉 채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포화상태라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오프너 두 사람이 불펜으로 가고, 진성찬이 들어오게 되면서 꽉 차버린 상황.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에 빅게임 피쳐 하나 영입하는 거였잖습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지.”

진성찬이 예상치 못할 정도로 싼 값에 떨어지는 바람에 그 자리가 채워지게 된 것이다.

“진성찬이 지난 시즌 한국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하면 빅게임 피쳐 역할도 충분히 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니까. 일단은 지켜봐야지.”

진성찬이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트레이드 시장 역시 눈을 뗄 수 없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불펜은 누가 뭐래도 만족스러웠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를 데려온데다가 토머슨이 건재한 가운데 멀티이닝에서 최고의 활약을 해줄 수 있는 오프너 두 명이 불펜에 합류했다. 이 정도면 자신이 단장으로 있던 기간을 통틀어 가장 강한 불펜을 가지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이제 마지막 마이너 옵션을 행사해야하는 대니얼 윌슨과 함께, 지난 시즌 트리플 A에서 시즌을 마무리한 알렉스 알마다까지 메이저리그 데뷔 준비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누굴 내리실 생각인가요?”

“당연히 너클즈지.”

마이너 옵션이 없는 나머지 다섯 사람과는 다르게 너클즈는 아직 마이너 옵션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너클즈는 조금 더 다른 포수들에게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반대로 다른 포수들 역시 너클즈에게 조금 더 익숙해져야돼.”

윌슨, 비어만, 톰슨. 세 포수들은 너클즈의 너클볼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시즌은 길고, 부상은 사람과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법이다. 만에하나라도 투수진에 구멍이 생겨서 너클즈가 선발등판해야하는 상황에서 세 사람이 동시에 빠지는 일이 생겨버린다고 하더라도 너클즈의 공을 안정적으로 받아줄 포수는 필요했다.

“그래도 투수진은 교통정리가 덜 필요해서 다행이네요.”

그나마 교통정리가 가능한 선발진에 비해서 야수진은 답이 없었다.

C

알렉스 윌슨(R/R)

사무엘 비어만(S/R)

제시 톰슨(R/R)

1B

덕 흘로첵(L/L)

2B

제수스 로드리고(R/R)

세드릭 우드먼(L/R)

3B

알버트 서머스(R/R)

SS

네이선 드레이크(S/R)

IF

브라이언 앤더슨(R/R) - 내외야 전부 가능한 유틸리티

조 블랜튼(L/R) - 포수, 내외야 전부 가능

LF

패트릭 비어스(R/R)

CF

케빈 마이어(L/R)

RF

알렉스 스프라우트(L/L)

OF

배리 브래넌(R/R)

마이너

데이튼 레이몬드(S/R) - 내야

프란시스 에스코바(R/R) - 내야

애드리안 카스트로(R/R) - 내야

야수진의 문제점을 딱 한 가지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역시나

“내야의 과포화.”

“그리고 외야의 부족.”

내외야의 불균형이었다.

“윌슨이 1루로 간다는걸 생각해봤을 때, 내야만 8명이네요.”

“브라이언이 그나마 외야를 볼 수 있기는 한데······.”

“조는요?”

“걔는 배트가 너무 안돼. 결국 지난 시즌에 안타 세 개가 끝이었잖아.”

“트리플 A에서는 잘 치는데 말이죠.”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이너에서도 별다른 옵션이 없다는거지.”

위에서 보이다시피 메이저리그에서도 쓸만한 마이너 선수는 전부 내야수들이다. 브래넌 역시 복귀한 뒤 좌익수로는 쓸 수 없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쓸 수 있는 선수라고는 비어스, 마이어, 스프라우트, 여기에 앤더슨까지. 딱 네 명이 전부다.

“외야수를 최소한 하나는 데려와야하는데······.”

“문제는 매물이 별로 없다는거겠네요.”

괜찮은 외야수들은 대부분 장기계약으로 묶여있거나, FA 시장에 나와있다. 아닌 선수도 있기는 하지만, 다운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비싼 감이 없잖아 있었다.

“코너 앤드류스에 얼마나 요구했다고 했죠?”

코너 앤드류스는 브루어스의 외야수로 2할 중반에 2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는 선수였다.

“비니 맥그리프나 프란시스 에스코바를 코어로 한 4명 세트.”

3할이나 30홈런 이상을 때릴 수 있는 외야수였다면, 혹은 FA까지 2년 이상이 남아있는 선수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할 중반에 20홈런 언저리라는 애매한 타격에 4할이 조금 안되는 애매한 출루율. 수비도 평균치를 간신히 마크하고 있는데다가, 어깨마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30세 시즌을 맞이하는 아이에 FA까지는 1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선수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준비가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 맥그리프와 에스코바를 코어로 원한다?

“미쳤네요.”

“처음 들었을 때, 정신 나간줄 알았다니까?”

물론 브루어스에서도 저대로 받을 걸 생각한건 아닐거다. 아마 코어 카드를 포함한 2~3명 정도를 받을 생각으로 지른거겠지.

문제는 지금의 시장 상황을 보면 저게 마냥 팔기 싫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평균, 혹은 그 이상의 외야수는는 FA시장에서도 씨가 말랐고, 트레이드 시장에도 2~3명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적으니 그들의 가격이 비싸지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예 한 단계 낮은 선수들을 영입하는건 어떻습니까?”

다운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그 놈의 그럴바엔 병!’

“그럴바엔 블랜튼의 타격이 터지는걸 기대해보는게 낫지 않을까?”

“그럴바엔 덕이 좌익수로 가는게 낫지 않나?”

“그럴바엔 차라리 더블 A까지 갔던 메이슨을 빠르게 올리는게 낫지 않을까?”

“그럴바엔 타격에서 확실한 강점이 있는 카스트로를 코너 외야수로 바꾸는게 낫지 않나?”

“그럴바엔······.”

자신이 뽑고, 데려온 선수들에게 시간만 있다면 적어도 저 애매한 자원보다는 좋은 자원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걸린 빌어먹을 병이었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뭐가 나을 것 같아?”

어미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자신보다는 프레슬리가 조금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것 같았다.

다운의 말에 프레슬리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음······.”

정확히는 그런 척을 햇다.

“지금 떠오른 생각 있지 않아?”

다운의 말에 프레슬리가 움찔했다.

“있긴한데······.”

“생각난 선수가 있는 모양인데, 있으면 그냥 말해. 우물쭈물하지 말고.”

“제가 선수를 추천을 해도 될까 싶어서······.”

다른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프레슬리는 야구계에서 일한 이력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상황을 추천하는’일에는 거리낌이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선수를’ 추천하는 일에는 항상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자신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스카우트들보다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널 데려온 이유는 그냥 불쌍해서가 아냐. 동정만으로 데려왔따면 네가 아니라 길거리에 있는 노숙자를 데려왔겠지. 난 네가 야구를 볼 줄 아는, 그리고 상황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서 채용한거야. 이런 상황에서 사무실에서는 그나마 이해했지만, 지금은 둘 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편하게 말해도 돼. 제대로 일 할 생각 없으면 끝까지 숨겨도 되지만, 그건 아니잖아?”

다운의 격려 아닌 격려에 프레슬리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는 로열스의 트레버 이스트우드를 추천합니다.”

프레슬리의 추천에 다운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트레버 이스트우드? 로열스 중견수?”

“네.”

다운이 아는 이스트우드는 2할 초중반의 타율에 두 자릿 수 홈런을 간신히 치는, 수비가 꽤 좋은 중견수였다. 그의 무기는 역시나 빠른발. 나이는 27살로 FA까지 남은 기간은 2년. 다운이 보기에는 수비 빼고는 딱히 매력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레슬리가 저런 추천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설명해봐.”

< 177화 - 한국 출장(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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