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76화 (176/268)

< 176화 - 한국 출장 >

야구와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돈이 많이 나가는 시기가 언제에요?”

라고 묻는다면, 다들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오프시즌!”

경기와 경기 사이에 텀이 있는 다른 종목들과는 다르게, 야구는 매일 경기를 하는 스포츠다. 그러다보니 야구와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집안일, 이벤트 등은 전부 오프시즌에 몰리게된다.

이 중에서 특히나 넘쳐나는 것이 바로 결혼식이었다.

“미국은 따로 축의금이 없지 않나요?”

없다.

그렇지만 아예 돈이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는 부부가 원하는 선물들을 리스트업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으면, 그 리스트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사주는 것이 일종의 예의였다. 비싼 TV나 프로젝터부터 소소한 요리도구들까지 쭉 늘어진 리스트에서 ‘연봉에 맞게 알아서 눈치껏 잘’ 사주곤 했는데, 단장된 입장으로 또 싼 선물을 고를수는 없어서 다운 역시 엄청난 지출을 했다.

“오늘까지 네 번짼가······.”

11월 두 번째 주 토요일에는 에디슨 포레스트의 결혼식이, 그 다음주 일요일에는 브라이언 앤더슨의 결혼식이 있었다. 마지막 주에는 미치 베이커의 결혼식이 있었고, 또 한 주가 지난 오늘은 리키 더지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렇게 결혼식들이 계속해서 있다보니 선수들끼리 일부러 안겹치려고 시즌 전부터 일정을 조율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매 주 주말마다 이어지는 결혼식 행진이었고.

“왔어 다운?.”

식장에 들어서자 브래넌이 다운을 반겼다.

“일 주일만에 또 보네. 의사 선생한테는 허락맡고 왔냐?”

회복까지는 3~4개월 걸린다더니, 브래넌은 거의 일반인처럼 행동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브래넌은 자신의 팔뚝을 통통치며 웃었다.

“하하하! 노력하면 안되는게 없더라고! 조심하긴 해야하는데, 내가 뭐 결혼식에서 순간적으로 힘을 쓸 일이 얼마나 있겠어?”

하기사 신랑 본인도 아닌데, 브래넌이 충격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여기는 올때마다 감탄이 나오네.”

“워낙에 장소가 좋으니까.”

이번을 포함해서 앞선 네 번의 웨딩은 모두 똑같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탬파 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야구장만한 정원이 딸려있는 대저택. 바로 글라이드가 소유한 별장이었다.

“예전에 싸게 매물로 나와서 사놨는데, 관리만하고 안살고 있거든? 거기 식장으로 쓰라고 해. 경치도 좋고, 뒷마당도 넓어서 결혼식 하기 딱 좋거든. 요리사도 지원해줄테니까 원하는 부부는 거기서 식 올리라고 해.”

결혼식은 신부의 축제다. 그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 별장을 와본 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주차장도 넓고, 뒷마당도 넓고, 심지어 알아서 요리도 해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결혼할때도 이런 구단주님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릴리랑 애들은?”

“스키캠프. 릴리도 따라갔어.”

“너도 가지 그랬어?”

“한 번 밖에 없는 리키 결혼식인데 어떻게 빠질 수가 있겠어?”

능청스럽게 말하는 브래넌에게 다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건 아니고?”

“쉿!”

역시 유부남들이란 똑같다.

“너도 인마! 결혼하게 되면 알게 될거다. 리키 저 놈도 나랑 똑같아질걸?”

브래넌이 환히 웃고 있는 더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장은 그렇게 안보이는데?”

“겪어봐야 아는거야 인마.”

- 곧 식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하객 여러분들은 자리에 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수들과 지인들의 축복속에서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의 맺었다.

“휘이이익!”

“잘생겼다 리키!”

“잘 살아라!”

“리키를 데려가줘서 감사합니다!”

다운 역시 진심을 담아 축하해준 뒤, 브래넌과 함께 구석탱이에 자리를 잡았다.

“후우! 진짜 여기 요리사는 최곤것 같아. 구단 식당 요리사도 진짜 요리 잘하는데, 여기가 더 나은 것 같아.”

“그래? 구단 식당 셰프가 오셔서 요리해주신건데?”

“······심장마비 올 때, 미각에도 마비 왔다고 전해주지 않을래?”

“고려해보도록 하지.”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은 다운은 방금과는 다른, 한 층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다운은 검지를 들어 브래넌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생각은 좀 해봤어?”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식장을 가득 채운 선수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들을 보는 브래넌의 눈에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릴리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릴리라면 네가 마음가는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릴리 브래넌은 언제나 배리 브래넌이라는 남자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여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닌 모양이었다.

“말리더라고.”

“릴리가?”

“그래. 그 릴리가 내가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고 싶다는걸 말리더라니까. 주치의의 말이 컸어.”

다운도 그의 주치의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들었다.

“몸을 열심히 만들면 괜찮다면서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했지, 괜찮을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보조장치를 달고 있는 이상, 격렬한 운동은 피하는게 좋습니다. 물론 야구가 엄청나게 동적인 운동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윙, 주루 등 한순간에 엄청난 힘을 쥐어짜내야하는 운동이잖습니까. 오히려 몸을 덥히면서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는 축구와 같은 운동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심장에도 순간적으로 엄청난 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이번에는 현장에서의 빠른 대처로 인해서 괜찮았지만, 다음번에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일상까지의 회복도 두 달만에 끝냈기에 브래넌은 선수생활을 더 이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의사의 의견은 달랐다.

“빠른 회복조차도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빠른 회복이 달갑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심장이 마지막 힘을 짜내고 있는것일지도 모르죠.”

그 말이 어쩌면 릴리에게는 결정타였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다운은 선수생활은 더 이상 힘들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브래넌의 앞에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당장 은퇴할래? 아니면 은퇴시즌 하고 은퇴할래?”

브래넌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주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애들을 아빠없는 자식을 만들 생각이냐면서 엄청 화내더라. 자기도 내가 은퇴하면 하고싶었던게 100가지가 넘는데 그것도 못하고 보낼 순 없다면서······.”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주는 것은 가족이다. 그렇기에 다운은 그의 결정을 이해했다.

“그래. 그럼 당장 은퇴식 계획을······.”

“뭐? 잠깐. 그게 아니라······.”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은퇴식이야? 은퇴시즌 할거라니까?”

“말하는 분위기가 은퇴하는 분위기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당연히 은퇴시즌 하는 분위기였지!”

“대체 넌 릴리랑 무슨 대화를 나눈거냐?”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어깨를 쫙 펴고 당당히 이야기했다.

“다운이 날 은퇴시키려고한다! 그래서 나한테는 은퇴시즌을 보내는 것과, 다른 팀에 가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선택지가 있다고······.”

“미친 놈······.”

브래넌 저 놈은 야구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놈이다. 어쩌면 릴리는 브래넌을 쉬게 내버려둔게 아니라 화가 나고 답답해서 애들과 함께 스키캠프를 간게 아닐까?

“이제 16개 밖에 안남았는데 적어도 600홈런은 때리고 은퇴해야지. 지금 은퇴하겠냐?”

“하긴, 그것도 그렇긴하네.”

아무리 브래넌이 수술을 했다고해도, 풀시즌을 치르게되면 16홈런 정도는 충분히 때려낼 수 있을 것이다.

“알겠어. 주치의하고 상의해서 최대한 컨디션 조절해가면서 출장시킬테니까 그 점은 네가 이해하고. 그리고 주치의 말도 맞아. 어쩌면 네가 너무 빠르게 준비하고 있어서 심장에 무리가 갔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넌 스프링 트레이닝이 아니라 4월까지 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준비해.”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울상을 지었다.

“아니, 그래도 스프링 트레이닝이랑 시범경기는 해야······.”

“이 부분은 네가 아무리 말해도 양보 못해. 휴식도 훈련에 일부라는걸 너도 잘 알거아냐. 이미 네 몸은 수술 이후부터 몸을 만들기 위해서 달려왔어. 그러니 적당히 휴식을 주면서 쉬는 기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4월까지 몸을 만들고, 4월 중순부터 리햅경기를 치르면서 5월에 메이저리그 복귀하는 스케줄로 하자.”

브래넌에게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었다. 하지만 심장 수술에서 회복되는 선수라는 패가 다운에게는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리햅 경기 일정과 복귀는 온전히 다운에게 달려있었다.

“그리고 브래드하고 이야기해서 네 은퇴투어 계획도 짜야겠네.”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손을 내저었다.

“됐어.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다고 은퇴투어를 해?”

“하아?”

브래넌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꼭 이상한데서 겸손할 때가 있었다.

“뭔 말도 안되는 소리야? 600홈런을 때리는 타자가 은퇴투어를 못하면 누가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이번 건은 양보 못해. 이건 레이스의 자존심도 걸려있는 문제라고. 레이스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을 갈 선수를 제대로 대우해주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싫다고.”

다운의 말에 민망해졌는지 브래넌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레이스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을 간다고? 그런 말 안했는데?”

“얼씨구? 그럼 네가 양키스 모자를 쓰고 가겠냐? 그 배리 브래넌이?”

“레인저스도 있잖아.”

“아, 그러니까 레이스보다는 레인저스가 좋으시다? 보내드려?”

“아, 나 갑자기 심장이! 심장이 아파서 텍사스로 트레이드는 힘들 것 같은데······.”

다운은 왼쪽 가슴을 잡고 아파하는 척을 하는 브래넌의 뒷통수를 후려갈겼다.

“악! 단장놈이 선수 팬다!”

“하여간 엄살은······.”

다운이 별다른 반응없이 앞에 있는 음식을 입에 집어넣자, 머리를 감싸쥐며 아픈 척을 하던 브래넌이 고개를 들었다.

“냉정하기는. 그래가지고 결혼은 하겠어?”

“그런말 안해도 알아서 잘 하고 있거든?”

“오? 꽤 잘돼가는 모양인데? 로저스가의 그 여자랑 잘 맞나봐?”

“그냥 뭐 적당히. 서로 비슷한 일을 하니까 통하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예뻐.”

“어머~ 짐승!”

덩치는 산만한 놈이 몸을 웅크리고는 손만 살짝 내젓는 모습을 보니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뻔 했다. 만약 브래넌이 그 살기를 감지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심폐소생술을 한 번 더 당하지 않았을까?

“크흠! 그나저나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안온다며?”

“이번에는 못갈 것 같아. 신년 파티도 힘들 것 같고. 일정이 생겼거든.”

“무슨 일정?”

“한국가는 일정이 잡혔어.”

“아, 이번에 무슨 이벤트 한다더니.”

“맞아. 뭐 그것 말고도 이런저런 일정들이 많아서 새해 지나고 들어올 것 같네.”

“네 여자친구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도 그렇고, 릴리도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 스테이시도 막 블루제이스 프런트로 자리 옮겨서 인수인계 받느라 바쁘거든.”

다운도 기대를 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테이시에게 단칼에 거절당해버렸다.

“그래서 혼자 가?”

브래넌의 말에 다운은 무슨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 댄이랑 같이 갈 생각이야. 자고로 언어는 쓰면 쓸수록 느는 법이거든.”

***

그 순간 프레슬리는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엣츄! 감기라도 걸리려나······. 으스스하네.”

< 176화 - 한국 출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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