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75화 (175/268)

< 175화 - 윈터미팅의 밤은 깊어만 가고(4) >

진성찬과 레이스가 맺은 계약은 조용하던 윈터미팅을 순식간에 시끄럽게 만들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680만 달러라는 금액으로 데려온거야?”

“그럴거면 우리가 더 잘해줄 수 있는데!”

“우리도 돈은 있었을텐데 왜 레이스를 못이겼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지만, 그들의 질문은 한 사람 선에서 정리가 됐다.

“제가 돈만 쫓는 사람이라고 알려져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도 제 고객, 선수가 원하는 바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이번 계약에서는 진의 의사가 아주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레이스를 원했고, 저는 레이스가 투자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끌어냈을 뿐입니다.”

다운은 보라스와 글라이드가 진성찬을 데리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걸 모니터로 지켜봤다.

“저 자리에 단장님이 가 계셔야하는거 아닙니까?”

리타의 말에 다운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한데······.”

원래라면 글라이드가 아니라 다운이 가있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다운은 그럴수가 없었다.

“내가 저기 나갔잖아? 기자회견만하고 끝났을까?”

전날 새벽 다운, 진성찬과 함께 야식을 먹었던 파트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끝났겠죠.”

“난 한국말로 그렇게 빠르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단장님 정신이 가출하는것도 처음봤지. 세상에 말빨로 단장님 영혼을 빼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다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에 이 자리가 단장이 잠 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바쁜 윈터미팅 자리가 아니었다면 또 다시 불려나갔다가 서너시간은 대화를 들어주면서 붙잡혀있어야 했을수도 있다.

“다들 일하자고 일!”

이번 윈터미팅에서 얻어낼 것은 딱히 없다. 해봤자 선발, 우타 빅뱃 1루수 정도였는데, 1루수는 내부 전환으로 해결하고, 선발은 진성찬을 영입하면서 메웠다.

그러다보니 이제 남은 건 룰 5 드래프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다운은 이번 룰5 드래프트는 정말로 괜찮은 선수가 남아있지 않는 한,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다.

“명단 나왔어?”

다운의 질문에 미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은 선수는?”

“없습니다. 예상대로 다 막았더라고요.”

누가봐도 괜찮은 선수, 그리고 레이스가 보기에 괜찮다고 여겨지는 선수 모두 막혔다. 남은 건 쭉정이들뿐인데, 그런 쭉정이를 굳이 로스터 한 자리를 주면서까지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앞서 이야기했던것처럼 이번 룰 5 드래프트는 넘어가는걸로 하죠. 다들 철수 준비하라고 하세요. 파트장들도 정리되는것만 보면 철수하도록 하고요. 미리 말했다시피 윈터미팅에 온 직원들은 오늘부터 이번 주말까지는 휴가니까 다들 출근하지 말라는 것도 잊지말고 전해주시고요.”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목, 금, 토, 일. 4일을 내리 쉴 수 있게 되는거다.

다운의 말에 클라인이 문을 열고는 소리쳤다.

“여기 온 직원들 전부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란다!”

“예에에에!”

“이 맛에 출장가는거지!”

“감사합니다 단장님!”

다운은 직원들의 환호성에 슬며시 웃으며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렇게 소리 안 질러도 오늘 회식비는 제가 쏠겁니다. 여러분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파트장님들은 제가 데리고 회식할테니 걱정말고 편하게 노세요!”

“네에에에엡!”

“빨리 정리하고 가자!”

직원들이 밖을 정리하는 동안 파트장들의 회의는 이어졌다.

“진성찬을 이용한 마케팅 계획은요?”

불과 6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미 심슨은 마케팅 전략을 어느정도 짜놓은 상태였다.

“이번 개막 시리즈를 이용해서 최대한 당겨봐야죠. 시호크스와도 연락을 취해놨습니다.”

여기는 새벽이었지만, 한국은 밤이었을거다. 그래서 연락이 닿았던 모양이다.

“부산에서 진성찬은 황제와 같다더군요. 특히나 시호크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정도로 더욱 크고요. 그래서인지 저쪽에서는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사항들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구단 홈페이지에 저희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홍보를 부탁했습니다.”

“잘했네요. 한국 팬들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채널도 만드는 편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결재서류를 만들어왔습니다.”

역시 준비된 남자 심슨!

다운은 그가 건넨 서류를 슥 훑었다. 그가 건넨 서류에는 한국어 홈페이지의 활성화와 더불어 한국어로 운영되는 새로운 유튜브 채널의 운영까지 적혀있었다.

“번역기를 쓰는 대신 한국인을 고용해서 확실하게 번역을 하자?”

“네. 아무래도 번역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뉴스를 번역해서 제공하는건 뭐죠?”

“만약 저희가 성공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게 된다면 팬들은 자연스레 저희 구단에 대한 더 많은 기사를 원하게 될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저희 구단에 대한 기사를 얼마나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심슨의 말에 거스가 반박했다.

“내가 지난 밤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꽤나 영어에 능통하다던데? 진도 그렇게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알아듣는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잖나.”

“영어를 할 줄 안다고해서 그들이 영어 기사를 찾아볼거라고 생각하는건 오만이에요 거스. 당장 우리가 하는 야구를 봐요. 재미를 느끼려던 애들도 끝없이 이어지는 규칙에 질려서 도망가죠. 그런 애들을 보면서 우리가 원래 어떻게 생각했었습니까? ‘쟤네는 규칙을 배울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지는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죠. 그렇게 수년을 이어온 결과가 어떻습니까?”

야구 인기의 끝없는 하락. 그리고 메이저리그는 그 하락세를 벗어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한국인들이 영어를 할 줄 안다지만, 그들이 과연 영어 기사를 찾아보면서 번역을 하는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감당하려고 하겠습니까?”

“절대 안하겠죠.”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저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굵직굵직한 뉴스들 밖에 없을겁니다. 세세한 저희 유망주들에 대한 뉴스라던가, 아니면 구단자체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같은건 모를 확률이 높죠. 그런 부분을 저희가 세세하게 제공해주는겁니다. 한국어 단독 유튜브 채널도 비슷한 의미에서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카를이 설명을 덧붙일겁니다.”

크로포드가 바톤을 넘겨받아 말을 이었다.

“단장님이 들어오신 이후에 저희 채널에 은근히 한국 팬들이 많습니다.”

“그래?”

이건 다운도 몰랐던 사실이다. 올라가는 영상들이 어떤건지 확인은 하지만, 댓글까지 직접 확인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 시즌까지 가장 많았던 댓글이 뭔지 아십니까?”

“뭔데?”

“바로 ‘우리 시호크스에게 저런 단장은 안오냐?’를 위시한 시호크스 팬들이 남긴 댓글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부연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시호크스를 보고 느낀 문제가 뭐였습니까?”

“확실한 장기 플랜 없이 구단을 운영한다는거지.”

“맞습니다. 그래서 양키스 리빌딩의 초석을 다진 단장님이 야구계를 떠나있을때에도 상당수의 팬들이 단장님이 한국에 오기를 원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금융계에 있을 때에 한국에서 제안이 왔었다. 시호크스와 팔라딘스에서 제안이 왔었는데 다운은 두 구단 모두에게 정중한 거절의 메일을 보냈었다. 그 뒤로도 시호크스는 세 번 정도 더 메일을 보냈지만, 다운의 완강한 거절에 결국 영입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단장님이 출연하신 영상을 보면 한국어 댓글이 꽤 많이 달리는 편입니다. 그런걸 보면 수요가 있다는 말이겠죠. 만약 한국에 있는, 그리고 부산 팬층을 끌어오실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어 채널을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팬들도 원하고 있는데다가, 더 많은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니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좋아요. 그럼 둘 다 추진해보세요.”

다운은 시원하게 결재서류에 사인을 해서 넘겼다.

“아, 그리고 회의에서 개막 시리즈 티켓 소유자 중 일부를 뽑아서 저희 홈 경기에 초청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우리 구단에서 모든 비용을 지원하는겁니까?”

“기본적으로는 3일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일주일 정도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씩이나 할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 저희 구단에서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형태였다면 3일이면 충분하죠. 하지만 만약 그들이 여행오는 목적이 경기를 보는게 아니라 관광이 되어버린다면 3일로는 부족합니다. 7일 동안 관광코스를 만들고, 이 코스를 탬파와 올랜도 시 관광처에 제안한다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겠네요.”

“100%까지는 무리더라도 티켓 값을 포함해서 50%이상은 따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탬파에서는 더 돈을 많이 줄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올랜도 같은 경우는 좀 뻗대는 경향이 있지만, 탬파, 클리어워터, 세인트피터스버그 세 군데에서 지원을 받으면 80%까지도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돈은 적당히 쓰면서 한국 팬들도 만족시킬 수 있는 아주 만족스러운 홍보계획이다.

“좋네요. 시의회랑 미팅을 한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논의해보도록 하죠.”

여기까지만해도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진 홍보계획으로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심슨은 아직 끝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개막 시리즈까지는 아직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잖습니까? 분명 진성찬의 계약으로 부산과 시호크스 팬들이 달아오를텐데, 이번 불씨를 개막까지 들고갈 이벤트도 하나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심슨이라면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니다. 분명히 뭔가 또 계획을 세워놨을거다.

“또 뭐 준비해놨죠? 뜸들이지 말고 말해봐요.”

다운의 말에 심슨이 씨익 웃었다.

“우선 곧 크리스마스지 않습니까? 그 안에 한국어 홈페이지와 유튜브채널 개장 준비를 마치고, 오픈 기념 겸 크리스마스 선물로 일정 인원을 뽑아서 새로운 구장 투어를 시켜주는겁니다. 경기가 없으니 당연히 기간은 길 필요도 없습니다. 3일 정도면 충분하겠죠. 그 기간동안 가능한 선수들도 나와주면 더 좋겠죠. 투어 기간은 1월 중으로 잡는걸로 하죠. 그래야지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주면서 관심을 이어나까기 쉬우니까요. 그리고 2월 중에는 스프링 트레이닝을 하는 중의 영상을 올리면서 팬들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3월에 시범경기, 4월에 부산에서의 개막까지 이어지게 만드는거죠. 그리고 이 모든걸 이용하기 쉽도록 앱도 한글화해서 연동시켜주는거죠.”

심슨의 계획대로라면 이벤트를 진행할 12월부터 1월, 2월, 3월, 4월까지 한국에 있을 팬들의 관심을 계속해서 끌어당길 수 있다.

“그거 알아요 브래드?”

“어떤걸 말씀이십니까?”

“제가 브래드를 데려온건 정말 최고의 선택 중 하나였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회의실 내부가 화기애애한 그 때, 헤드쿼터 세팅으로 출장을 나와있던 개발 및 기술 팀 소속 직원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썩어나갔다.

“두 달 안에 한국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유튜브 채널을 만들라고? 그리고 앱까지 한글화해서 다 연동시키라고?”

사표낼까?

< 175화 - 윈터미팅의 밤은 깊어만 가고(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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