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약았네요 >
“정다운입니다.”
[통화할 시간 좀 있나?]
“없다고하면 끊을겁니까?”
냉정한 다운의 말에 수화기 너머로 보라스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아니지.]
“그럼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용건이나 꺼내보세요.”
[하여간 냉정하단 말이야.]
아마 눈앞에 있었다면 특유의 그 거만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듯 고개를 흔들었을거다.
[뭐 다른건 아니고, 일단은 자네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거든.]
“저한테요? 왜죠?”
[덕분에 우리 케니의 몸값이 올랐거든.]
케니 네일러는 F-Rod에 이어 1루수 FA 2위로 평가받는 자원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F-Rod에 비해 수비가 좀 더 좋고, 타격적인 측면에서는 전체적으로 다운그레이드 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F-Rod의 성적이 워낙에 좋아서 그렇지 네일러도 매 시즌 2할 중반에 출루율 4할 이상, 30개 이상의 홈런을 기대해볼 수 있는 최상급의 1루수였다.
그럼에도 그를 원하는 구단은 생각보다 적었다.
“스캇이랑 케니 그 자식한테는 잘 된 일이네요.”
[아주 잘됐지. 알다시피 케니에게 음······. 사상적인 문제가 조금 있잖아?]
“조금이라니, 생각보다 흐름을 잘 못읽네요 스캇. 그게 아니라 안읽으려고 하는건가?”
[그런 사소한 단점가지고 뭘 그러나 하하.]
“언제부터 인종차별이 사소한 단점이었죠?”
최상급에 해당하는 성적을 내면서도 구단들에게 선호되지 않는 이유. 그건 바로 그가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주는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이었다.
[케니가 대놓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로······.]
“흑인 리포터 질문을 스쳐지나가듯이 무시하고 백인 리포터들의 질문만 받았죠.”
[그건 그 기자가 안좋은 질문을 할 것 같아서······.]
“그야 그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 기자가 ‘인종차별’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려고 했을테니까요. 결국 그 전에 잘 했으면 없었을 논란이죠.”
[사실 우리 케니가 어릴적 흑인들에게 맞고 살았던 것이 트라우마여서······.]
“그러기에는 황인하고 히스패닉도 무시하던데요. 심지어는 마이너리거 시절에 인도인 택시 기사한테 폭언을 퍼부은 일도 있었잖아요.”
[빌어먹을 그 영상 다 지운줄 알았는데······.]
“영상은 물론이고 녹음본까지 양키스 자료실에 있더군요. 아직도 보관되어 있을겁니다.”
[젠장할······.]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뭡니까? 고작 케니 네일러 몸값 올랐다고 자랑하려고 전화하지는 않았을텐데요.”
그 보라스가 시간을 내면서까지 전화를 걸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거다.
[케니를 영입해줘.]
다운은 폰을 떼고는 귀를 한 번 후볐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요?”
[케니를 영입해달라고.]
영입해달라고 부탁을 하다니 아무래도 상대는 보라스가 아니라 그를 사칭하는 누군가인 것 같았다.
“끊겠습니다.”
다운이라면 분명 전화를 끊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보라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 내가 설마 진짜 영입해달라고 하는거겠어?]
“그렇죠?”
다운의 목소리가 다시 마이크에 가까워졌다.
“저는 또 스캇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받은줄 알았잖아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인종차별주의자를 영입하라니.”
백인 : 75%
히스패닉 : 8.2%
흑인 : 6.9%
아시아인 : 4.2%
기타 : 5.7%
이게 지난 시즌 사무국에서 발표한 미국 내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종 비율이다. 이렇게만 보면 백인들이 절대다수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바로 ‘전체 프로야구 선수’라는 것 말이다.
이 비율을 다시 메이저리그에만 적용을 시켜본다면
백인 : 48.2%
히스패닉 : 38.5%
흑인 : 8.9%
아시아인 : 3.3%
기타 : 1.1%
백인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게된다. 그 말은 곧 어느 구단에 가나 백인은 절반도 안되는 비율로 포진되어 있고, 절반 이상의 선수들이 백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정보는 케니 네일러는 절반 이상의 선수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여기서 네일러의 인기가 떨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나온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누구라고 생각해?”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야구팬들의 입에서 나오는 답은 다섯 명 안쪽일 것이다.
“그야 당연히 마이크 토켈슨 아냐?”
“아니지. 토켈슨은 이제 수비력도 떨어지고, 내려올 일만 남았잖아. 앤드류 켈리가 최고야!”
“호시노 쇼헤이지! 투타를 모두 그렇게 잘하는 선수가 언제 다시 나오겠어? 호시노는 역사를 바꾼 선수야!”
“걔네는 야구는 잘하지만 스타성은 없잖아. 좀 범생이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스타성만 따진다면 도널드 캐스퍼 주니어 아닐까?”
“그보다는 카를로스 앙헬 주니어가 더 낫지. 캐스퍼 주니어는 메이저리그를 압도하는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잖아.”
이 다섯 중에서 백인은 마이크 토켈슨과 앤드류 켈리밖에 없었다. 켈리도 어머니쪽에 히스패닉 피가 섞여있어서 완벽하게 백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순수한 백인은 토켈슨 하나.
메이저리그를 이끌어가는 간판 스타들조차도 백인의 비율이 바닥을 치고있다. 그나마도 ‘스타성이 없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스타성이 있으면서도 실력이 있는 선수는 대부분 백인이 아니었다.
레이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레이스를 대표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첫 순위로는 무조건 배리 브래넌과 조나 파인트가 뽑힐거다.
하지만 그 다음은?
열 명 중 일곱 명은 드레이크의 이름을 부를거다. 나머지는 비어만이라던가 더지를 뽑겠지.
“그건 히스패닉 선수들을 선호하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걸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라도 레이스는 네일러를 영입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서야 팬 좀 끌어올려보려고 하는데 레이스 망하게 할 일 있어요?”
[그냥 네가 우리 케니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만 내는거야. 그러다가 적당한 금액의 비드를 넣었다는 이야기가 돌고······.]
“그렇게 케니의 몸값을 올리시겠다?”
[내가 알아서 다 할테니 자네는 가만히만 있으면 돼.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제 이름과 이미지로 스캇이 이득을 취하겠다는건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하는게 되는거죠?”
사실 쓰는건 큰 상관은 없었다. 보라스도 그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바닥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적다는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그가 신경쓰는 것은 누군가가 다운에게 “케니한테 비드했어?”라고 물어봤을 때, “아니? 또 보라스가 뻥치네.”라고 답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특히나 다운은 그런 정보를 활용해서 상대를 압박하거나 우위에 서는 것에 능했다.
만약 다운이 조금이라도 그 정보를 이용할 마음을 먹게 된다면 네일러의 몸값을 높이려는 보라스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거기에 다운이 핀치에 몰린 자신을 어떤 식으로 압박할지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보라스는 그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 전화를 건 것이다.
모든 상황을 이해한 다운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저에게 어떤 이득도 없는데 스캇 좋은 일만 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렇게 해주면 뭘 내놓을래?
다운의 협박성 발언에 보라스가 웃었다.
[하하하!]
다운이 저렇게 말한다는건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다운이 끼어든다는 정보를 활용하면 최소 연 200만 달러 정도의 몸값을 높일 수 있다!’
이미 계산은 끝났다.
[당연하지! 이미 자네한테 줄 선물들을 잘 포장해 놨다고. 이제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야. 어떻게 할텐가?]
하여간 보라스는 약았다.
자신이 먼저 확답을 주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을 주겠다고 하는 저 단어들의 선택을 봐라.
다운은 그의 말에 답을하는 대신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보통 우리는 그걸 뇌물이라고 부르지 않나요?”
보라스는 다운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천진하게 물었다.
[그게 어떻게 뇌물인가? 자네가 이름을 쓰게 해준 호의에 보답하는 선물이지.]
그냥 확답해라 선물 줄테니까.
“저는 선물보다 뇌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서요.”
싫은데요? 먼저 까보세요. 마음에 안드는 뇌물이면 안들어줄거니까.
[하하! 벌써부터 그렇게 뇌물을 좋아하고 그러면 안된다네.]
고집부리지 말고 그냥 먼저 확답 줘. 알아서 챙겨준다니까?
“선물은 이득이 없을수도 있지만, 뇌물은 확실한 이득이 되죠. 그리고 그 이득을 쫓는게 우리 일 아니겠어요?”
잔말말고 먼저 패 까라.
한동안 이런 싸움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이 싸움의 결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후······. 어쩔 수 없지. 그럼 뇌물을 제안하도록하지.]
아쉬운게 조금이라도 있는 보라스가 결국은 백기를 들었다.
[진성찬이 이번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건 알고 있지?]
“모르는게 이상하죠.”
진성찬은 부산 시호크스 소속으로 KBO 최고의 투수라는 찬사를 듣는 선수다. 언더에 가까운 사이드암 투수로 최고 98마일의 공을 던지고, 구사하는 구종은 투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이 모든 구종들이 플러스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제구 역시 평균 이상. 3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제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95마일대에서 형성되던 평균 구속을 93마일정도까지 줄이고 제구를 잡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난 뒤 3년 연속으로 KBO MVP를 독식하며 한국 야구에 군림했다.
지난 시즌에는 꿈에도 그리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해낸 그는 한국에서 더 이룰 것이 없다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탐이 나는 선수긴 하지.’
만 27세라는 어린 나이와 함께 우승 경험이 있는 투수라는 점.
지금까지 포스트시즌에서 통산 38.2이닝을 던지면서 실점이 단 5점에 불과하다는 점.
레이스 투수진에 없는 사이드 암 유형의 투수라는 점.
이런 점들만 본다면 그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을 뛰어넘는 단점이 하나 있었다.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는 점.
보라스는 그를 엄청나게 포장해서 비싸게 팔 것이다. 여기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붙여서 몸값을 높이겠지.
게다가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도는 팀만해도 13팀이다. 영입전이 일어나면 보라스가 그 사이에서 신나게 몸값을 올릴거다. 그래서 다운은 애초부터 진성찬의 영입전에서 한 발을 빼놓고 있었다.
[다 빼고, 1000만 달러 아래 연봉으로 계약해주지. 대신 기한은 최대 3년이야.]
보라스의 제안을 모두 들은 다운은 들으라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그리고는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어 말했다.
“약았네요 스캇.”
< 171화 - 약았네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