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개막전 장소는 어디?(3) >
다운의 마음 속 1순위는 멕시코시티. 2순위는 한국, 3순위는 일본이었다.
시차가 거의 없다시피한 멕시코시티는 어느 팀이든 가고싶어하는 도시. 그럼 비슷한 이점을 가지고 있는 카라카스는 왜 순위권에 없냐고?
‘카라카스는 치안이 너무 불안해.’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중남미 선수들의 최대 수급처인 베네수엘라를 버릴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경기가 열리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보다는 갱단들의 위력이 더 높은 우범지역이라는 리스크는 남아있었다. 혹여나 선수단, 더 크게는 직원들까지도 해를 입을 수 있는 베네수엘라로는 결코 가고싶지 않았다.
그에비해 어느정도 야구에 대한 인기가 있는 한국이나 일본은 팀의 인지도를 높이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첫 번째 매치부터 뽑겠습니다.”
첫 타자는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매치.
단장들이 볼 수 있도록 전면만 유리로 되어있는 박스에 맨프레드의 팔이 쑥 들어갔다.
조용한 가운데 도시 이름이 적힌 야구공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회의실을 메웠다.
달각 달각
그리고 맨프레드의 손이 하나의 공을 쥐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잡힌 공을 그대로 뽑아올렸다.
“다저스 대 자이언츠의 개막전은 중국 톈진의 톈진체육학원 다저 봉구장에서 개최되겠습니다.”
첫 매치를 시작으로 개막전이 열리는 도시의 발표가 쭉쭉 이어졌다.
다저스 vs 자이언츠 - 중국 톈진
양키스 vs 레드삭스 - 일본 도쿄
에인절스 vs 매리너스 - 대만 타이난
메츠 vs 내셔널스 - 영국 런던
브레이브스 vs 컵스 - 독일 뮌헨
가디언스 vs 로열스 - 일본 후쿠오카
말린스 vs 오리올스 - 중국 광저우
로키스 vs 디백스 - 멕시코 멕시코시티
파드레스 vs 파이어리츠 - 중국 베이징
레즈 vs 필리스 - 호주 시드니
블루제이스 vs 트윈스 - 한국 서울
브루어스 vs 카디널스 - 중국 상하이
12매치까지의 개최지가 발표가 완료되었다.
단장들이 생각하는게 다 비슷했는지, 로키스와 디백스의 매치가 멕시코시티를 가져가자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도쿄면 나쁘지 않네요.”
“광저우라 흠······.”
다운의 양 옆의 두 사람은 선정된 개최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한결 여유로운 둘에 비해 다운은 초조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13매치는 레이스와 애스트로스의 경기입니다.”
바로 레이스의 개최지가 지금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남은 도시는 세 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한국 부산
일본 효고
‘하필 카라카스가 남았어 젠장!’
남은 두 개는 괜찮다. 어차피 2순위와 3순위로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곳들이니까. 하지만 카라카스는 아니다.
‘꼭 이렇게 하나 끼어있으면 내가 걸리던데······.’
어디든 상관 없으니까 제발 카라카스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빌었다.
달각달각
다운의 눈이 공 세 개를 휘젓고 있는 맨프레드의 손에 고정되었다. 공 세 개를 유린하던 맨프레드의 손이 공 하나를 포착했다.
탁!
그의 손이 박스에서 빠져나오는 걸 보는 다운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꿀꺽
‘제발! 제발! 제발!’
“레이스 대 애스트로스의 매치는 한국 부산에서 열리겠습니다.”
“으아!”
“예쓰!”
다운과 클릭이 동시에 안도와 기쁨이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클릭도 비슷한 이유로 카라카스는 꺼려졌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얼굴이 펴짐과 동시에 아직까지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레인저스, 타이거스, 화이트삭스, 애슬레틱스 단장들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어두워졌다.
레인저스 vs 타이거스 -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화이트삭스 vs 애슬레틱스 - 일본 효고
결국 지뢰는 레인저스와 타이거스가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두 팀을 제외하고는 다들 어느정도 자신들이 걸린 곳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회의장에는 긴장감이 여전히 감돌고 있었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제 원정여부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정여부가 무슨말인고 하면, 개막 시리즈의 홈 팀을 고른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다. 두 팀에게 모두 원정인 개막전이지만, 경기는 ‘누군가의 홈’에서 치뤄진 것으로 진행되어야한다.
“그냥 공동 원정으로 진행하고, 남은 경기는 나눠서 진행하면 되지 않나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메이저리그의 구조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지구가 아닌 팀과 벌어지는 매치업은 최소 4경기(인터리그) 최대 6경기다. 개막 시리즈에서는 인터리그 경기가 없으니 6경기라고 생각하면 남은 경기는 세 경기. 이 세 경기를 과연 홈 원정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치를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해도 남은 한 경기는 누구에게 어드밴티지를 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은 결코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아예 개막 시리즈를 6연전으로 하면 되지 않나요?”
이 의견 역시 이미 나온적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곧바로 기각되었다.
메이저리그가 개막하는 주는 북반구 기준 세계 각지의 야구리그가 개막하는 시기와 비슷했다. 특히나 15개의 개최지 중에서 5개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KBO와 일본의 NPB의 개막이 같은 주에 들어있었다. 첫 시리즈에서는 겹치지 않도록 두 리그에서 일정을 조정해서 저 구장들을 비워뒀다. 두 리그에서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줬기에 저렇게 다섯 개의 구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서울이나 부산 같은 경우는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주변의 구장들까지도 예비로 비워줬다.(서울은 고척 돔, 부산은 창원공룡구장)
이런 상황에서 두 번째 시리즈까지 조정해달라고 부탁하기는 무리였다.
결국 개막 시리즈는 누군가는 홈으로 치뤄야하고, 누군가는 원정으로 치루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개막 시리즈를 원정팀으로 치르게 되면 결국 상대 팀에 비해 홈 경기를 한 번 더 가질 수 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홈 구장에서는 홈팀이 결국에는 유리하다. 그러다보니 다들 개막 시리즈만큼은 원정팀이 되기를 원했다.
특히나 여섯 경기를 치르는 타 지구와의 경기가 잡힌 매치업에서는 더더욱 원정팀이 되고싶어했다. 우천으로 인한 연기가 없는 이상, 개막 시리즈를 원정팀으로 치르면 결국 미국에 돌아와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홈 시리즈만 한 번 치르면 끝이니까.
“홈 원정 선택은 코인토스로 하겠습니다.”
25센트짜리 동전이 30개 팀들의 운명을 결정짓기위해 등장했다.
“코인토스는 역순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두 팀 단장님은 앞 뒤를 정해주세요.”
앞 뒷면을 결정하는 방식은 역사와 전통이 깃든 가위바위보였다.
“락 시저스 페이퍼!”
“아!”
가위바위보에서 진 화이트삭스 단장이 탄식을 뱉었다.
“앞면을 하겠습니다.”
“그럼 화이트삭스는 뒷면입니다.”
팅!
25센트짜리 동전이 높이 솟았다가 맨프레드의 왼쪽 손등에 안착했다. 맨프레드는 동전을 덮은 오른손을 치웠다.
“뒷면이 나왔습니다.”
분명 가위바위보를 이긴건 애슬레틱스였는데, 코인토스에서는 화이트삭스가 이겨버렸다. 아까와는 상반된 표정의 릭 한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화이트삭스는 원정팀을 선택하겠습니다.”
앞선 두 매치의 홈 팀이 빠르게 결정되었다.
“레이스와 애스트로스 단장님들.”
맨프레드가 말하기 무섭게 다운과 클릭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락 시저스 페이퍼!”
다운은 주먹쥔 손과, 손바닥을 활짝 펼친 클릭의 손이 앞으로 뻗어나왔다.
“저는 뒷면을 택하겠습니다.”
클릭이 뒷면을 택하면서 다운은 자연스레 앞면이 되었다.
“자 그럼······.”
팅!
동전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탁!
동전을 가리고 있던 맨프레드의 손이 옆으로 치워졌다. 그러자 조지 워싱턴의 영롱한 얼굴이 드러났다.
“앞면이 나왔습니다!”
다운의 얼굴에는 희열이, 클릭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찾아왔다.
“레이스는 원정팀을 택하겠습니다!”
클릭의 어깨를 툭툭 쳐준 다운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오늘 일진이 꽤 좋은데요?”
“그러게말이야.”
최고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다. 멕시코시티는 걸리지 않았지만, 카라카스를 피하고 한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5분 정도가 지나자 홈 원정 팀까지도 모두 결정되었다.
“각 개최지에 대한 사전 답사는 이미 지난 시즌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각 구단에서 한 번 더 답사를 하는걸 추천드립니다. 특히나 시드니는 한 번 더 답사 와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시드니에는 야구전용 구장이 있긴 하지만 수용인원이 3천 명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2만 명 정도가 관람할 수 있는 구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임시 관중석이라던가, 구장 형태의 변경 같은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사직은 그런건 필요없겠지만.’
찾아보니 사직야구장은 이미 22,990명이 찾을 수 있는 꽤나 큰 구장이었다. 잔디가 엉망이라는 글이 꽤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답사는 필수일 것 같았다.
다운이 구장을 찾아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1차 단장회의가 끝났다.
“저녁에 보자.”
대런에게 손을 흔들어준 다운은 곧바로 레이스에게 배정된 헤드쿼터에 들어가서 파트장들을 끌어모았다.
“사직구장이라고요?”
“그래도 원정팀이 걸렸다니 다행이네요.”
“답사 가야겠죠?”
클라인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은 가야죠.”
이미 사무국에서 시행한 세 번에 걸친 답사 결과를 리포트를 받긴 했지만, 직접 구단 관계자들이 가서 잔디 상태라던가, 구장 상태를 알아오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야지 레이스 선수단에 딱 맞는 준비를 해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팬 서비스 할 장소도 물색해야하고.”
사무국이 도와주는 건 딱 개최지 선정까지만이다. 인지도를 올리기 위한 나머지 수단들은 각 구단에서 알아서 해야한다.
“괜찮은 팬 서비스 의견 내보세요.”
다운의 말에 여기저기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몇 차례나 하실 생각입니까?”
“선수단의 의견을 들어봐야하긴 하지만, 최대한 매일 했으면 좋겠는데요.”
“적당히 사인회 어떻습니까?”
“그건 너무 형식적이지 않아? 그리고 매일 경기 전후로 사인해줄텐데 뭐.”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현지 맛집을 선수단이 나눠서 돌면서 홍보하는건 어떨까? 밥도 먹일 수 있고, 관광도 할 수 있고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안돼. 우리가 모르는 금지 성분이 검출될 수도 있고, 음식이 맞지 않는 경우에 배탈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어.”
“예전에 배리 재계약 때 써먹었던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레이스 팝업 스토어에다가 직원으로 선수들이 가는거지.”
“나쁘지 않은데요? 유튜브 각 한 번 더 뽑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우우웅~!
다운의 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던 파트장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발신자 : 스캇 보라스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폰에 떠올랐다.
“이야기 나누고 있어봐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다운은 옆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폰을 꺼내들었다.
“정다운입니다.”
< 170화 - 개막전 장소는 어디?(3) > 끝